§ 나는 될놈이다 867화
그것도 꽤 급이 되어 보이는 악마였다.
에다오르의 심복, 주케넨!
구시온이 ‘왜 저런 악마가 여기 있지?’ 하는 사이에 태현 일행은 수군거리고 있었다.
“길드 동맹이 아니잖아?”
“어떻게 된 거지?”
“길드 동맹이 나와야 하는데…?”
길드 동맹을 붙잡고 마르체티 백작한테 넘기면서 ‘볼로네 백작의 원수를 갚았다!’라고 외치려던 계획이 틀어지고 있었다.
물론 이미 떠넘기기는 성공한 것 같았지만, 원래 태현은 관을 묻을 때 못질까지 해서 묻는 사람이었다.
무엇이든지 철저하게!
“쟤네는 누구지?”
“보니까 길드 동맹이 만난 NPC 같은데요?”
이다비는 첩자들이 보낸 정보를 정리했다.
보아하니 길드 동맹은 아무것도 없이 싹 비워진 영지를 방황하다가 저 NPC들을 만난 것 같았다.
그리고…?
“…쟤네들이 악마라는데요?”
“뭐?”
태현은 깜짝 놀랐다. 물론 태현이 악마를 퇴치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플레이어들을 선동하긴 했다.
근데 그건 그거였고, 이 넓은 판온 세계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흠. 살짝 미안하군.’
태현은 약간의 죄책감을 느꼈다.
물론 태현의 영지에서 난리를 친 악마였다면 죄책감이고 뭐고 머리와 몸통을 분리해 줬겠지만, 적어도 저 악마는 태현의 영지에서 난리를 친 악마가 아니지 않은가.
친절하게 볼로네 백작의 영지에서 날뛰어 준 덕분에 태현을 도와준 악마!
그런 악마를 <아키서스 십자군>으로 탈탈 털어서 쫓아냈으니….
“근데 왜 쟤네만 나와? 길드 동맹하고 같이 나와야 하지 않아?”
“…그게, 쟤네들이 통로를 무너뜨리고 쟤네만 빠져나왔다고….”
“…저런 악마 같은 놈!”
태현은 분노했다.
방금까지 갖고 있던 약간의 죄책감은 싹 사라졌다.
감히 계획을 망치다니!
“밟아버려!”
“화신님!”
“?”
태현이 분노해서 외치려는 찰나, 뒤에서 아키서스 포병대의 드워프 하나가 말했다.
“혹시 저희에게 저 악마를 주실 수 있으십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
“저 악마를 보아하니 뿔이 단단하고 색이 진하니 아주 기운이 튼실한 놈 같습니다.”
악마 사육 전문가 드워프!
구시온을 소환해서 잡아넣은 다음 동력원으로 써먹었던 만큼, 그 안목은 보통이 아니었다.
드워프들은 군침을 흘리며 주케넨을 쳐다보았다.
저놈 잘 잡으면 대포 몇 개는 그냥 굴리겠구나!
“흠. 그래. 뭐 나쁘지 않겠지.”
우리 안에서 듣고 있던 구시온은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저놈을 잡으면 내 부담이 줄어드나?’
생각해 보니 그랬다.
구시온의 에너지도 적게 뽑아갈 것이고, 두 마리를 감시하다 보니 빈틈도 늘어날 것이고….
무엇보다 혼자 당하기는 억울하지 않은가!
구시온은 재빨리 고개를 들어 외쳤다.
-저놈은 주케넨! 에다오르의 심복 중 하나며, 키는 176㎝, 혈액형은 B형, 취약한 마법은 번개 마법, 약점은….
“?!?”
* * *
통로를 빠져나온 주케넨 일행도 태현 일행 못지않게 더 당황했다.
게다가 전력이 무시무시해 보였던 것이다.
‘속이거나 도망쳐야겠다!’
주케넨은 꿀꺽 침을 삼켰다.
이놈들을 속이면 좋겠지만 잘 안 될 수도 있으니 도망칠 방법을 준비해야 했다.
일단 공간마법을 준비하는 동안 추종자들과 네크로맨서들을 동원해서 상대방을 막으면….
-저놈 저거 도망치려고 한다! 저놈 특기가 공간마법이다! 빨리 마법 방해 걸고 마법 못 쓰도록 때려야 한다!
?????
어떤 놈이 날 이렇게 잘 아는 거야!?
주케넨은 경악했다.
상대방 쪽에 악마 전문가라도 있는 것인가?
아니, 아무리 악마 전문 기사단이라 할지라도 주케넨의 능력은 알지 못했다.
주케넨은 그 정도로 철저하게 숨겨 왔….
-?????
그 순간 주케넨과 구시온의 눈이 마주쳤다.
‘저놈 왜 저기 있어!?’
주케넨은 경악했다.
악마 공작 구시렉의 아들, 구시온!
마계의 공자로 불리는 강력한 악마가 왜 저기 우리에 갇혀서 자기의 약점을 줄줄 불고 있단 말인가.
그 모습에 주케넨의 머릿속에 번뜩이고 지나가는 게 있었다.
-아탈리 왕국에 있는 아키서스 놈이 악마 상대로 뭐한지 넌 알고나 있냐? 거기 가면 곱게 죽을 수도 없다더라.
-영지로 잡아가 노예로 부려먹거나 잡아서 우리에 가둔다더라!
같이 세계수를 타고 대륙에 내려온 악마들이 했던 소리.
처음에는 그 악마들이 겁쟁이라서 개소리를 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저렇게 갇혀 있는 악마를 보니 그 개소리가 진짜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저렇게 강렬한 신성력이라니.
저놈이 설마…!
-아… 아키서스!
주케넨은 자기도 모르게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그제야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다른 악마들처럼 다른 왕국을 노릴 걸 그랬다!
* * *
[구시온에게 <지옥 마력 방해> 스킬을 얻었습니다.]
[구시온에게 <악마의 발목 봉쇄> 스킬을 얻었습니다.]
[구시온에게 <악마의 차원문 방해> 스킬을…]
“아. 그만 떠들어 인마!”
태현은 짜증 나서 구시온을 구박했다.
구시온은 주케넨이 혹시 도망이라도 갈까 봐 필사적이었다.
태현 일행에게 각종 마법을 가르쳐주면서 막으라고 할 정도!
물론 마법 배워서 나쁠 건 없었지만, 저 스킬들은 좀 애매했다.
악마 상대로만 쓸 만한 애매한 스킬들!
<지옥 마력 방해>는 악마의 마법을 방해하는 스킬이었고 <악마의 발목 봉쇄>는 악마를 못 움직이게 만드는 스킬이었고 <악마의 차원문 방해>는 악마가 만드는 마계의 차원문을 없애는….
굳이 저런 것까지 쓸 필요 없었다.
“케인!”
“오케이!”
-노예의 쇠사슬!
촤르르르륵!
그 한 번에 주케넨은 태현 앞으로 배달되었다. 주케넨은 기겁해서 땅바닥을 기며 도망치려 했다.
“주케넨 님!!”
“뭐하시는 겁니까!”
추종자들과 네크로맨서들이 경악할 정도로 추한 모습!
그러나 주케넨은 그런 걸 신경 쓰지 못할 정도로 겁에 질려 있었다.
여기서 도망쳐야 해!
탁!
[<아키서스 포병대>에 소속된 거인 전사가 악마 주케넨을 붙잡습니다!]
-이거 놔라!
-이거 먹어도 되나?
“안 돼.”
-흑흑. 악마 맛있어 보이는데. 슬프다.
새로 추가된 거인 전사들은 시무룩한 얼굴로 주케넨을 우리에 집어 던졌다.
[악마 주케넨이 <아키서스 포병대>의 특제 악마 우리에 들어갑니다!]
-크하하하하하!
구시온은 그 모습을 보고 호탕하게 웃었다.
과연 악마 공작의 아들다운 호탕한 웃음소리!
-뭘 웃는 거야 미친놈아!!
물론 주케넨 입장에서는 기가 막힌 웃음이었다.
저 악마 놈이 돌았나!
-나 혼자 죽을 수는 없지!
-…!!!
그랬다.
원래 맛있는 거는 혼자 먹고 힘든 건 꼭 나눠서 같이 하려는 게 악마!
예전 아키서스가 마계의 악마들을 속이고 다닐 때도 왜 그렇게 피해가 컸었던가.
속은 악마들이 입을 싹 다물고 ‘야, 아키서스 정말 착한 신이던데? 너도 거래해 봐!’라고 추천해서 그러지 않았던가!
아키서스는 악마들의 이기심을 기가 막히게 이용하는 신이었다.
-멍청한 놈! 악마 공작 아들 주제에 잡혀 다니는 놈!
-흥. 안 들린다.
주케넨의 욕설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기에 구시온은 타격을 전혀 받지 않았다.
저런 거에 흔들린다면 악마의 자격이 없다!
-그리고 멍청한 놈은 너 아니냐? 에다오르 심복이 아키서스의 영역에 오다니.
게다가 구시온도 할 말이 많았다.
그는 솔직히 실수한 게 없었던 것이다.
드워프들의 정식 소환에 나왔다가 잡혀서→아키서스한테 팔려가게 된 것!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주케넨은?
지가 알아서 아키서스 영역에 출몰한 멍청한 놈!
완전 바보 아닌가?
-그게 무슨 소리냐?
-…너 설마 에다오르가 누구한테 당했는지도 모르는 거냐?
-…주인님께서는… 대륙의 영웅들과 교단들이 모두 힘을 합해서 비열하게 합공을 가한 것 때문에 잠시 상처를 회복하신다고….
-크하하하! 그게 무슨 개소리냐! 에다오르는 아키서스한테 속아서 이용당하다가 무기까지 뺏겼는데!
구시온은 바닥을 탕탕 내려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악마에게 가장 즐거운 순간은 남을 절망으로 빠뜨리는 이런 순간!
그걸 보며 드워프들은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어이구. 저 악마놈이 요즘 웃지도 않고 너무 우울해해서 걱정했는데.”
“저렇게 웃으니 얼마나 예뻐. 내가 눈물이 다 나오네.”
훈훈하게 미소 짓는 드워프들!
그러는 사이 주케넨은 엄청난 충격에 빠져 입을 뻐끔댔다.
그러고 보니…!
-말… 말도 안 돼… 그건 말도 안 돼!
-크하하하. 멍청한 놈. 멍청한 놈! 이제야 알… 헉.
떠들던 구시온은 입을 다물었다. 태현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구시온은 다소곳이 무릎을 꿇고 앉아 시선을 깔았다.
공손하고 조신하게!
아키서스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직접 몸으로 체험한 것이다.
“구시온. 네가 세운 공이 크니, 1주일 동안 에너지를 뽑지 않겠다.”
-감… 감사합니다! 아키서스 님!
-????
주케넨은 충격에 빠져 있다가도 놀라서 정신을 차렸다.
방금 뭘 본 거지?
그 거만하고 강력한 악마 구시온이 무슨 강아지처럼 굽신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다. 기분이다! 2주일!”
-허어억! 그럴 수가…!
“녀석. 좋아하니 나도 기쁘군. 구시온에게 먹이… 아니, 간식을 주라고.”
“예. 아키서스 님.”
드워프들이 마력석을 꺼내 우리 안에 던져 넣었다. 주케넨은 입을 떡 벌리고 그걸 지켜보았다.
방금… 먹이라고 하지 않았나?
완전 키우는 짐승 취급!
“자. 그러면 구시온한테서 못 뽑는 만큼 주케넨에게서 뽑아내야겠지.”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크헬헬!”
드워프들은 간신 같은 웃음을 터뜨리며 손바닥을 비볐다.
매우 사악하고 간사한 웃음소리!
그 웃음소리에 주케넨은 움찔했다. 뭘 뽑아?
-이 하찮은 필멸자 놈들! 나는 에다오르의 악마 주케넨이다!
“에다오르?”
“어쩐지 호구 같아 보이더니….”
나름 협박하려고 외친 말이었지만, 다른 일행들은 그 말에 매우 불쌍하고 하찮은 걸 보듯이 쳐다보았다.
주케넨 입장에서는 더더욱 충격일 뿐이었다.
-내가 주케넨….
“애들아. 악마가 입을 안 다물잖아.”
“죄송합니다! 화신님! 지금 뽑겠습니다!”
“장치 가동시켜!”
우우우웅!
-크아아악!
주케넨은 전신의 힘이 뽑혀나가는 느낌에 비명을 질렀다. 구시온은 그걸 보며 싱글벙글 웃었다.
-네가 와서 기쁘다. 주케넨.
-개… 으아아악! 으아아악!
* * *
[<지옥 마력 방해> 스킬을…]
[<악마의 발목 봉쇄> 스킬을…]
[<악마의 차원문 방해> 스킬을…]
[악마 주케넨을 사로잡았습니다!]
[<악마의 기계공학 비전> 스킬이 해금되었습니다! 새로운 제작법을 얻었습니다!]
“오오!”
태현은 메시지창에 기뻐했다.
악마 대장장이들한테서 내려온 제작법들을 모은 <악마의 기계공학 비전> 스킬.
스킬 레벨이 오를 때마다 하나씩 랜덤으로 풀린다는 것만 제외하면 최고의 스킬이었다.
원래 대륙에서 천사나 악마의 제작법 같은 건 구하는 게 불가능한 수준이었으니까!
이번에는 뭐가 나왔을까?
[<에다오르의 머스킷> 제작법을 얻었습니다.]
‘에이. 원거리 무기는 좀 별로인데.’
태현은 떨떠름했다. 장비, 혹은 기타 공성 병기면 모를까 활이나 머스킷 같은 건 지금도 충분했다.
유지수가 지금 쓰고 있는 활도 매우 비싼 전설 등급 활이었고, 이다비도 강력한 머스킷 아이템을 갖고 있었으니 굳이….
게다가 이름에 에다오르가 들어갔다.
원래 아이템 이름에 저런 게 들어가면 보통 좋다는 뜻이지만, 에다오르가 들어가니까 뭔가 좀 약해 보였다.
[카르바노그가 동의합니다.]
에다오르가 들었다면 분해서 피눈물을 흘렸을 소리!
‘만들어서 파워 워리어 애들한테 뿌려야 하나?’
사람들이 의외로 착각하는 게 있었다.
파워 워리어 길드의 전투력은 허접하다는 착각!
숫자는 어마어마하게 많지만 다른 길드에 비해 전투력은 별 볼 일 없다는 편견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건 옛날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