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814화
어이없어하는 건 윤주환만이 아니었다. 태현도 마찬가지로 어이없어했다.
“야. 지금 너희들도 불리해진 거거든?”
부활 요소가 추가되면 태현 팀은 불리해질 수밖에 없었다.
태현의 가장 큰 장점은 순간적인 폭딜!
케인과 연계해서 상대팀을 한 명씩 잘라먹는 플레이는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일행은 태연했다.
“그런다고 네가 지겠냐?”
“맞습니다. 이기실 수 있으시죠? 믿습니다. 선배님.”
“…….”
태현은 한 대 때리려다 말았다.
물론 판온 투기장은 다양해서, 부활 요소가 있는 데스매치 투기장도 있긴 했다.
그래도 그렇지 지들 불리한 이야기하는데 저렇게 ‘상관없습니다 헤헤’ 같은 반응이라니!
“맞아. 난 상관없….”
딱!
“왜 나만?!”
가장 마지막에 말을 얹었다가 피해를 본 케인!
대화를 들으며 눈치를 보던 최명성이 은근슬쩍 말을 붙였다.
“저, 김태현 선수?”
“…?”
“이거 사인 좀….”
“…….”
윤주환은 얼굴을 손으로 감쌌다. 이 양반이 결국….
* * *
호텔에 도착한 태현 일행은 짐을 풀고 밖으로 나가 수많은 팬들과 만나는 시간을 가지….
지 않았다.
“판온에서 보자.”
“네. 판온에서 봐요.”
“판온에서 뵙겠습니다!”
각자 방에 있는 캡슐에 들어가려는 이들!
판온 측에서 잡힌 이벤트 말고는 출연할 생각이 없는 이들이었다.
윤주환은 다시 한번 당황스러웠다.
이 선수들은 자기들 인기에 대해 잘 모르는 건가?!
아까 공항에서 그렇게 많은 팬들이 환호를 했는데도 별생각이 없어 보이다니.
미국 쪽 방송과 접촉을 하면 그쪽에서 쌍수를 들고 대환영할 것이고, 그게 부담스럽다면 개인방송만 해도 됐다.
개인방송으로 여기서 팬들과 간단하게 만나는 이벤트만 해도….
비전문가인 윤주환의 머리에서 떠오르는 것만 해도 이 정도인데, 전문가들이 고민하면 몇 배는 더 좋은 이벤트들이 나올 것이다.
근데 게임하러 가냐?!
* * *
“조카야! 월드 스타! 월드 스타!”
“저 이미 월드 스타인데요. 게임해야 해서….”
“조카야!! 조카야!!!”
“아, 이럴 시간에 김태현은 게임하고 있을 텐데 지시면 책임질 거예요?”
곧 대회를 앞두고 있어서인지 이세연의 목소리는 싸늘했다.
“김태현도 방송….”
“하고 있다고요?”
“…은 쌩깠지만….”
뚜-뚜-뚜.
“…이것들은 방송을 몰라!”
이동팔은 울컥해서 외쳤다. 엔터 소속 연예인들 중 세계적으로 먹히는 둘이 저러고 있으니 속이 답답했다.
남들은 하고 싶어도 못 하는 기회인데!
“아, 예. 죄송합니다. 지금 대회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라 대회에 집중을….”
“미안하다고 했잖아? 응. 아니, 삐지지 말고. 다음에 해외 로케 때 내가 밥 한 번 살게!”
“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회 때문에 어쩔 수가 없어요~”
이동팔은 사방에서 올려오는 전화들을 받으며 속으로 욕했다.
해외 인맥이란 인맥 모두에서 전화가 오는 것 같았다.
-대회 전에 얼굴 한 번 봐야지??
의도가 너무 뻔한 것!
원래 이동팔도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면서 만나서 방송 나가자! 이랬을 텐데….
태현과 이세연 둘 다 철벽을 치고 캡슐로 들어가 버린 상황.
울면서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대표로서 이 기회가 얼마나 대박인지 잘 알기에 눈물이 더욱 흘렀다.
‘아, 다음에는 회사에 제발 방송 욕심 있는 프로게이머 애들 들어왔으면 좋겠다.’
* * *
“너희 아직도 안 갔냐??”
태현은 접속했을 때 기사들이 우울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끈질긴 놈들 같으니!
물론 기사들이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다고 해서 뱀파이어들만큼 우울한 표정은 아니었다.
곧 처형될까 봐 겁먹은 뱀파이어들은 세상에서 가장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폐하. 언제 갑니까?”
“아니, 들어보니 여기 뱀파이어 놈들 수장이 사악한 유물을 어딘가에 숨겼다고 하더라고. 찾기 전까지는 처형을 못 할 거 같은데?”
뱀파이어들은 화색을, 기사들은 시무룩해졌다.
“저희가 찾는 걸 도울 테니 처형하는 건 어떻습니까?”
처형 매니아 에랑스 왕국 제4 기사단!
-한 번만 처형하게 해줘!
라고 눈빛으로 말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뱀파이어가 정보를 아는데 처형하면 어떻게 하나! 기다려야지!”
“??”
뱀파이어들은 서로 쳐다보았다.
우리 뭐 알고 있었냐?
아니, 모르는데…?
“흑흑… 그렇다면 폐하. 저희는 처형을 언제 합니까?”
“아니 저런 미친 기사 놈….”
“저거 누가 기사로 뽑은 거야?”
살라비안 교단 뱀파이어들은 기사들의 눈빛을 보며 소름 끼쳐 했다.
어떻게든 뱀파이어들을 태워 죽이고 싶어서 반짝반짝 빛나는 저 눈빛을 봐!
너무 소름 끼쳐!
“너희들이 꼭 처형을 하고 싶다면 방법이 있지.”
“…?”
“나와 같이 돌아다니다가 일이 다 끝나고 나서 처형을 하면 되잖아?”
“그런 좋은 방법이!”
“아니, 잠깐….”
뱀파이어는 당황해서 태현을 말리려고 들었다.
그게 우리 앞에서 할 소리야?
그리고 기사들 중에서도 의외로 제정신이 기사들이 몇 있었다.
“잠깐만. 폐하의 말씀은 옳지만 저 일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데….”
“맞아. 우리는 우리의 일이 있지 않나.”
“그렇다면 이렇게 하지. 폐하의 일을 돕다가 너무 오래 걸리면 우리의 일을 하러 가는 걸로.”
“폐하.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에랑스 왕국 제4 기사단이 정신을 반만 차립니다!]
[에랑스 왕국 제4 기사단이 퀘스트가 끝날 때까지 일을 돕습니다. 제한 시간이 끝날 때까지 퀘스트를 끝내지 못하면 제4 기사단은 돌아갈 것입니다.]
[명성이 매우 높습니다. 퀘스트를 끝내지 못해도 관계에 페널티가 없습니다.]
‘정신을 반만 차렸다는 게 무슨 소리… 아, 저건 카르바노그가 한 소리군.’
[카르바노그가 어떻게 알았냐고 묻습니다.]
은근슬쩍 메시지창인 척 말한 카르바노그!
“어쨌든 에반젤린! 준비는 다 끝났다. 너만 말하면 돼!”
“…내가 말한다고 했었나??”
에반젤린은 순간 분위기에 휩쓸려 대답할 뻔했다.
저번에 그렇게 말했는데도!
“뭐? 말해주는 거 아니었어?”
“너 같으면 그런 소리 듣고 말해주겠어?!”
에반젤린은 울컥해서 소리쳤다. 똑같은 말을 해도 정말!
에반젤린은 간신히 진정한 다음 말했다.
“말해주는 건 좋은데 조건이 있어.”
“안 돼.”
“경… 야!”
“아. 미안. 습관적으로… 뭔데? 말해봐.”
“…경기장 표 좀….”
“??”
“너 지금 미국 와 있을 거 아냐!”
“내가 미국에 와 있는 건 어떻게… 헉. 너 스토커였냐?”
수군수군-
뒤에 있던 태현 일행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스토커라고?”
“생각해 보니 은근히 쟤 자주 만난 것 같은데….”
“뭐? 선배 스토커였어요 저 사람?!”
순식간에 쌓이는 오해!
에반젤린은 당황해서 외쳤다.
“아니거든! 네가 미국 왔다고 방송 나왔잖아! 애초에 곧 있으면 경기인데….”
“아. 그랬지. 미안. 잊고 있었네.”
진짜 PK하고 싶다!
“…잠깐, 너 경기인데 이래도 돼?”
“아, 원래 경기는 평소 실력으로 하는 거야. 벼락치기는 꼭 평소에 공부 안 한 애들이 하더라.”
“???”
뭔가 개소리 같은 개소리!
에반젤린은 따지려다가 말았다. 태현 팀 성적 안 나오면 태현 문제지!
‘생각해 보니까 얘가 이세연한테 지면….’
보고 싶다!
이세연한테 져서 시무룩해진 태현의 얼굴이!
“그래서 경기 뭐?”
“응? 아. 어. 경기장 표 좀….”
“…….”
“…….”
순식간에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태현 일행은 다시 한번 수군거렸다.
-보통 관계자한테는 표 주지 않나?
-하나 주는 것도 아니고 꽤 줄 텐데?
-쟤 진짜 스토커 아니에요?
“아… 아니야!”
“너 우는 거 아니지?”
“우는 거 아니거든?”
그렇게 말하는 에반젤린의 눈가에는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나도 선수니까 표를 받긴 했는데, 그걸 다 다른 사람들 줬단 말이야….”
가족, 친구, 옆집 이웃까지!
신이 나서 나눠주던 에반젤린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내 표도 줬어!
뒤늦게 깨닫고 표를 구매해 보려고 했지만 이미 싹 매진된 지 오래였다.
판온 관련 경기인데 인기가 좋은 건 당연했다.
하물며 결승전이라면야!
“…판온 측에 하나만 더 달라고 하지?”
“어떻게 그런 소리를 해!”
“나한테는 그런 소리를 해도 되고? 아니다. 됐다. 하나 줄게.”
받긴 받았는데 왠지 모르게 기분 나쁜 받음!
태현 일행의 동정하는 눈빛이 매우 가슴이 아팠다.
어쨌든 받긴 받았으니 에반젤린은 입을 열었다.
“살라비안 교단 관련 NPC는 보통 다 타락한 뱀파이어들이야.”
“타락한 뱀파이어들이라면….”
“사람들 공격하고 피 빠는, 보통 몬스터나 그런 부류지. 그래서 나도 친하지는 않아.”
사실 에반젤린의 직업상, 저런 뱀파이어들은 잡아야 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뭐야. 표 받으려고 사기 친 거야?”
“…아직 다 말 안 했거든? 그래도 아는 뱀파이어 NPC가 몇몇 있긴 해. 아마 가면 바로 싸워야 하겠지만 너 정도면….”
너 정도면 알아서 잡아낸 다음 탈탈 털 수 있겠지!
뒷말은 생략됐지만 자리에 있던 모두가 알아들었다.
“그래. 가서 잡으면 되겠네.”
“타락한 뱀파이어들끼리는 서로 협력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알고 있는 게 꽤 있을 거야. 교단 대주교 정도면 보스 NPC니까 어중간한 NPC는 안 되겠지만….”
“괜찮아. 가서 도와줄 테니까 같이 잡자.”
“응?”
에반젤린은 태현의 말에 뭔가 위화감을 느꼈다.
같이 잡자고?
“아, 아니. 난 퀘스트 다 해서 갈 건데?”
“표.”
“…같이 가자….”
* * *
판온에서 뱀파이어들이 우글거리는 곳은 흔치 않았다.
일단 멀쩡하게 돌아가는 왕국이라면 뱀파이어를 잡으러 기사단을 보내게 마련!
마르덴 후작이 본색을 드러냈을 때 괜히 토벌을 당한 게 아니었다.
그런 만큼 판온에서 뱀파이어들의 지역은 한정되어 있었다.
“가장 가까운 곳은 에랑스 왕국 남쪽 지역에 붙어있는 섬들이지.”
핏빛 군도라고 불리는, 섬들이 모여 있는 구역!
에랑스 왕국 남쪽 항구에서 배 타고 몇십 분만 가면 도착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곳이었다.
덕분에 그 근처는 뱀파이어들이나 박쥐 몬스터들이 종종 보일 정도였다.
“거기 난이도가 어떻게 돼? 플레이어 공략이 가능한가?”
“공략이 가능했으면 아직까지 안 남아 있었겠지.”
뱀파이어 잡으면 공적치 주는 교단들이 많았다.
공적치에 목숨 건 플레이어들이 싹 쓸어갔을 것!
“핏빛 군도도 이름만 섬이지, 거기도 그냥 왕국이라고 보면 돼. 뱀파이어 왕국. 거기 우두머리는 왕이고. 에랑스 국왕 레이드하려는 사람은 없듯이….”
“…….”
눈앞에서 국왕 NPC가 쫓겨나거나 죽는 꼴을 몇 번이고 본 태현 입장에서는 좀 미묘한 말이었다.
왕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괜히 이상한 뱀파이어한테 시비 걸지 말고 소문 좀 파악하고 필요한 뱀파이어만 딱 잡아서 정보를 얻으면 되는 거지.”
“그렇군.”
태현은 납득했다.
“그리고 쟤네는 꼭 네가 말려야 해.”
에반젤린은 기사단을 가리켰다.
처형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놈들!
핏빛 군도로 간다는 소리를 들으면 신나서 칼춤을 출 것 같았다.
“뭐 그 정도야 해줄 수 있지. 그러면 아탈리 왕국 함대 부를 테니까….”
“스톱! 스톱!”
“??”
“거기에 왕국 함대 끌고 가면 어떡해! 뱀파이어들이 잘도 가만히 있겠다!”
왕국에서 토벌하려고 온 줄 알고 뱀파이어들이 전력을 다해 맞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