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813화
최명성은 그렇게 말했지만 다른 팀장들은 시선을 피했다.
최명성은 근처에 있던 로널드 팀장을 잡고 물었다.
-로널드. 내가 이상한 짓 할 사람이야?
-예스.
-그렇지? 대표님은… 아니, 예스라고?
-예스.
-네가 내 질문의 뜻을 잘못 이해한 것 같은데, 번역기가 고장 났나?
-…….
-최명성 팀장. 그만하고 앉으세요.
-네.
원하는 걸 얻었기에 최명성은 얌전하게 자리에 앉았다.
그걸 본 다른 팀장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실력은 확실한데 사람이 좀 또라이야!
* * *
“김태현을 만났을 때 김태현이 ‘판온 개발자들은 다들 왜 이렇게 후줄근하고 폐인처럼 살고 있지?’라고 생각하면 좋겠냐?”
“그런 생각을 할 거 같지도 않고 그렇게 생각해도 상관없습니다.”
윤주환은 크게 하품을 했다.
이 아침에 공항 나와서 정장 입고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이런 멍청한…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잖아!”
최명성은 일갈했다.
판온 제작진은 하나의 신화였다.
각 분야의 뛰어난 개발자들이 모여 만들어 낸 걸작 게임!
나오기 전만 해도 ‘과연 저게 가능할까?’, ‘지금 수준에서 저런 스펙의 게임이 유지가 되나?’ 같은 걱정들이 많았지만, 게임이 나오자 그런 말들은 싹 사라졌다.
혁신적인 인공지능이 판온의 대부분을 관리하고 있는 덕분이었다.
팀장들이 ‘일은 인공지능이 다 하고 우리는 그냥 구경꾼’이라고 농담할 정도였으니….
그러나 그런 속사정과 별개로, 외부에 보이는 판온 팀장들의 이미지는 천재에 가까웠다.
저런 게임을 만들다니! 정말 대단해!
그리고 최명성은 이런 이미지를 매우 아꼈다.
특히 태현을 곧 만나게 될 상황에서는 더더욱!
“여기에 사인해달라고 해야지.”
‘화낼 거 같은데….’
최명성이 꺼낸 사진은 판온 1 때 사진이었다.
수많은 명장면들이 있었지만 역시 가장 대단한 명장면은 태현 vs 이세연!
그런데 이세연한테 패배한 태현이 그걸 좋아할지 의문이었다.
‘뭐 상관없지.’
윤주환은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이게 뭘 의미하는지 알아? 이 사진에 담긴 철학을 알겠냐고?”
“예? 거기 뭐 의미라도 있나요?”
“이런 멍청한….”
지금 대회 결승전도 어떻게 보면 판온 1 때의 연장이라고 볼 수 있었다.
판온 1 때부터 봐왔던 팬들은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최명성처럼!
‘이 양반 진짜 울잖아?!’
나이 먹고 눈가에 이슬 맺힌 걸 본 윤주환은 기겁했다.
번쩍! 번쩍!
“…?”
윤주환은 고개를 돌렸다.
딱 봐도 방송국에서 나온 것 같은 사람들이 우르르 공항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누가 옵니까?”
“누가 오기는. 김태현 오는 거 듣고 온 거겠지.”
“!!”
윤주환은 깜짝 놀랐다. 대회 경기장도 아니고 공항에 이렇게 몰려온다고?
“와. 진짜 여기까지 온다고요?”
“인기 생각하면 비행기 안에 탔어도 이상할 거 없지.”
윤주환은 그제야 팀장에게 감사했다.
정장 입고 나와서 다행이다!
“김태현! 김태현!!”
“김태현 언제 나오냐!”
팀 KL은 일정을 공개하지도 않았는데 용케 어디서 알아낸 팬들이 한쪽에서 외치고 있었다.
특이한 건 태현의 이름을 외치는 팬들 중 아저씨들이 많았다는 점이었다.
판온 1 때부터 이어져 온 굳건한 팬층!
“케인! …근데 케인은 왜 안 보이지?”
“덩치 큰 놈이 케인인데… 왜 안 보이지?”
“정수혁! 난 네 팬이다!”
“정수혁! 시작할 때 무조건 번개 써야 한다! 내가 거기에 전 재산 걸었거든!”
태현뿐만 아니라 다른 팀원들도 팬들이 많이 생긴 상태였다.
밖으로 걸어 나온 팀원들은 예상치 못한 인파에 당황했다.
태현 빼고!
“김태현 선수. 곧 있으면 경기가 있는데 소감이 어떠신지….”
“특별한 소감은 없고, 연습한 대로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대단하다!’
뒤에서 따라오던 케인은 감탄했다.
몰려드는 인파에 혼이 반쯤 나간 기분이었는데 태현은 침착하고 유창하게 대답하고 있었다.
‘아니, 그보다 저 자식 번역기 안 쓰고 있네?!’
자동번역기 쓰고서 대답할 줄 알았는데 태현의 귀 밑에는 아무것도 달려 있지 않았다.
새삼스럽지만 보면 볼수록 능력자!
저런 놈이 왜 같이 숙소에 머물며 게임을 하는지 신기할 때가 많았다.
그냥 다른 걸 해도 잘나갔을 것 같은데….
‘머리 쓰는 것도 그렇고 운동 선수도 그렇고 뭘 해도….’
“김태현 선수. 전략은 어떻게 구상하셨습니까?”
“김태현 선수. 유성 게임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태현 선수. 최근 판온 트렌드에….”
“이번 해에 있을 투기장 리그에서 가장 위협적인….”
기자들은 서로 밀치고 때리며 질문을 던졌다. 그래도 처음에는 나름 생산적인 질문이었다.
그러나 여기 모인 기자들이 그런 것만 묻고 만족할 리 없었다.
점점 질문들은 쓸데없어지고 한심해졌다.
“김태현 선수. 두유 노우 스미스?”
“김태현 선수. 하트 한 번만 해주세요!”
“…여기 한국인가?”
한류가 여기까지??
태현은 순간 당황했다.
여기 미국 맞지? 한국 아니지?
“김태현 선수. 유성 게임단의 주장 이세연 선수와 사귀는 사이라는 말이 있던데 정말인가요?”
순간 팀원들은 볼 수 있었다.
태현의 주먹이 불끈 쥐어지는 것을!
‘안 돼!’
기자에게 죽빵을 날리는 모습이 전세계의 생중계!
팀원들은 공포에 떨었다.
탁-
이다비가 태현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시선을 보냈다.
‘때리면 안 돼요!’
‘…안 때리거든?’
태현은 반성했다.
이다비까지 걱정할 줄이야!
“안 사귑니다.”
“에이, 일부러 부정하는 거 아닙니까?”
“하하. 그런 소문이 퍼지는 건 저뿐만이 아니라 이세연 선수한테도 피해가 가니 그만둬주셨으면 하네요.”
“!!”
최상윤은 놀랐다.
주먹은 안 날아가도 욕은 무조건 나올 줄 알았는데!
태현은 정말 성장한 것이다.
게임단의 단장이자 주장, 구단주로서!
‘내가 다 눈물이 나네.’
최상윤은 울컥했다. 친구로서 태현이 저렇게 성장한 모습을 보다니.
물론 최상윤이 감동한다고 기자도 감동하진 않았다.
기자는 매우 재미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더니 옆을 쳐다보았다. 태현의 어깨 위에 손을 올린 이다비가 보였다.
“아하. 그런 거군요!”
“…?”
“이세연 선수가 아니라 이쪽, 이다비 선수였나요?”
기자는 화살을 이다비한테 돌렸다. 오랜 기자 생활로 인한 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태현은 건드려봤자 별로 나올 게 없을 것 같다고!
약한 사람을 건드려야 뭔가 재밌는 구도가 나오게 마련이었다.
“이다비 선수! 김태현 선수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네? 네?? 네???? 어???”
실제로 이다비는 질문을 받자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서 당황해하고 있었다.
‘이야, 제대로 골랐다!’
탁!
접근하는 기자를 쳐낸 건 태현이었다.
태현은 앞으로 걸어가는 척하면서 접근하는 기자를 어깨로 받았다.
“…!”
그 순간 기자의 동작이 정지하고 태현과 기자의 몸이 붙여지면서 사각(死角)이 만들어졌다.
뭘 해도 카메라에 안 잡히는 범위!
케인은 그때 보았다.
밀착한 상태에서 태현의 주먹이 짧게 움직여 기자의 복부를 후려갈기는 모습을!
‘촌, 촌경?!’
옛날 이소룡이 나오던 영화에서나 보던 걸 현실에서 보게 될 줄이야!
“으허헉!”
기자는 갑작스러운 충격에 비틀거렸다. 태현은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외쳤다.
“왜 그러세요! 괜찮으세요?”
“아, 아니 당신이 배를….”
태현은 그렇게 걱정해 주는 척하면서 한 번 더 다가갔다.
퍽!
“으허어억!”
“이 사람 상태가 좀 안 좋은 것 같은데 데리고 가주시겠습니까?”
두 번 맞은 기자는 얼굴이 새파래져서 제대로 숨도 쉬지 못했다.
기자들은 일정도 바쁜 태현이 저렇게 상냥하게 걱정해 주는 모습에 감동했다.
초일류 선수는 인성도 초일류구나!
그러는 사이 최명성과 윤주환이 다가왔다.
“김태현 선수? 최명성 팀장입니다.”
“앗. 안녕하십니까.”
꽉-
태현은 최명성이 내민 손을 붙잡고 악수했다.
“??”
왜 이리 오래 악수하지?
미국은 원래 이런가?
보통 시간보다 서너배는 더 오래 악수를 한 기분이었다. 최명성은 표정 관리를 하며 말했다.
“밖에 차를 준비했으니 가시죠.”
* * *
“그래서 판온 2가 탄생하게 된 겁니다. 처음에는 시행착오가 많았지만 결국에는 개발자들을 성장시켜줬죠.”
리무진 안은 화기애애했다.
최명성은 호텔로 가는 사이 판온 개발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걸 본 윤주환은 감탄했다.
‘배우해도 되겠다!’
누가 보면 정말 이성적이고 침착한 사람인 줄 알 것이다.
판온 1의 제작진들과, 최명성 같은 외부 인공지능 전문가들이 손을 잡고 탄생한 걸작인 판온 2!
최상윤은 손을 들고 물었다.
“그러면 그 판온 내 세세한 데이터들은 다 일일이 만드신 겁니까? 아무리 봐도 사람 손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던데….”
“하하. 아닙니다. 저희는 그저 틀만 만들어줬을 뿐입니다. 나머지는 인공지능이 알아서 전부 다 만들어 준 거죠.”
“그래도 뭐 기반은 있어야 하지 않아요? 아무것도 없는데 만든다고요?”
“아. 물론 기반은 있지요. 판온 1입니다. 판온 1에서 쌓인 데이터들. 그게 기반이죠.”
최명성은 웃으며 설명했다.
“판온 1의 데이터들을 기반으로, 인공지능이 자신이 판단하기에 알맞은 세계를 만든 겁니다. 사실 저희는 한 게 별로 없습니다. 인공지능에 문제를 일으키면 관리하는 정도? 하하하.”
“아. 그래서 판온 1과 비슷한 지형이나 스킬들이 나왔던 건가?”
“네. 그렇죠. 달라진 건 인공지능이 밸런스 패치를 해야 한다고 생가해서겠죠. 여기 김태현 선수는 판온 1 때도 했던 플레이어인데, 아마 김태현 선수도 판온 2가 만들어지는 데에 영향을 끼쳤을 수 있겠네요.”
“…?”
태현은 그 말을 듣고 문득 생각나는 게 있었다.
판온 2의 강화 시스템은 판온 1의 강화 시스템보다 유난히 불편하고 까다롭게 되어 있었다.
파괴까지 들어가는 탓에 판온 1에서 강화로 재미를 본 대부분의 대장장이들이 재미를 못 보고 있었는데….
잠깐 설마?
‘아니, 아니겠지….’
그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있을리가!
태현이 강화를 너무 많이 한 탓에 판온 2는 못하게 패치를 했을….
수도 있나?
‘아니, 패치하는 건 좋은데 이세연도 좀 불리하게 해줘야 하지 않나? 걔가 언데드로 쓸어버린 도시가 몇 개인데.’
태현은 불평했다.
자기가 손해본 건 괜찮지만 이세연이 손해 안 본 건 참을 수가 없는 정의로운 성격!
“맞다. 김태현 선수. 아마 결승전 이벤트 때 발표하겠지만, 투기장 리그 규칙도 이번에 정식 소개가 될 겁니다.”
“저번 대회와 룰이 달라지나요?”
“그건 아무래도 한국 방송국 주관이고, 이건 판온에서 직접 주최하는 거니 룰이 다를 수밖에 없죠. 그리고….”
“…?”
최명성은 망설였다. 이거 말해도 되나? 괜히 자기만 미움 사는 거 아냐?
“…김태현 선수한테 약간 불리할지도….”
“??”
“????”
일행들은 모두 고개를 갸웃거렸다.
“헉. 태현이 눈 감고 오른팔 묶고 싸우게 하나요?”
“…물론 아니죠. 그런 게 아니라….”
“태현이 스킬 봉인?”
“스탯 봉인???”
“설마 태현이 픽 금지??”
“…그런 미친 룰을 만들 리 없잖습니까?”
“에이, 그런 거 아니면 별로 안 불리할 것 같은데.”
“맞아, 맞아.”
미친 신뢰감!
태현은 어이없다는 듯이 팀원들을 쳐다보았다. 이것들이….
“그런 게 아니라, 부활 요소 추가, 몬스터 추가 같은 겁니다.”
“아. 뭐 그 정도라면야.”
“그 정도면 뭐….”
걱정했던 팀원들은 모두 안심했다. 윤주환은 그 모습에 정말 신기했다.
보통 자기한테 불리한 요소 하나만 추가되어도 절망하고 걱정하고 화를 내는 게 정상인데, 대체 이 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