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798화
-놀람. 놀람. 파손 이유 보고해야….
“누구한테 보고하게?”
-학카리아스 님에게 보고하러 감. 학카리아스 님에게 보고하러 감. 앗. 학키리아스 님.
“??!”
태현은 당황해서 움찔했다.
학카리아스가 여기 왜?
혹시 죽은 놈이 살아 돌아왔나?
혹시 숨겨둔 자식이라도?
-착각. 착각.
“…?”
골렘은 흑흑이를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너무 작음. 너무 작음.
-야! 더 크게 할 수 있는데 움직이기 편하려고 줄인 거야!
흑흑이가 발끈했다.
레벨이 내려간 탓에 작아진 덩치는 흑흑이의 콤플렉스였다.
현재 레벨 300을 넘긴 상태여서 어느 정도 크게 덩치를 키울 수는 있었지만, 학카리아스처럼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거대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
그리고 솔직히 덩치 작아진 것에 익숙해지기도 했고!
이게 의외로 공격도 잘 안 맞고 편했던 것이다.
골렘과 흑흑이의 대화를 보던 태현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어… 잠깐만. 잠깐만. 사실 얘가… 학카리아스의 아들이야.”
-?
-??
“???”
자리에 있던 전원이 놀람!
심지어 흑흑이마저 놀랐다.
다행히 골렘은 흑흑이의 감정 같은 걸 알아채는 기능이 없었다.
-주, 주인님. 그게 무슨….
-쉿. 조용히 해봐.
밑져야 본전!
지금 이 레어에는 주인이 없었다.
학카리아스는 집요하고 끈질긴 성격. 자기가 없을 때 침입자를 상대하기 위해 이런저런 준비를 해놨었다.
그렇지만 자기가 아예 죽었을 경우는?
‘대비했을 것 같지는 않다.’
그 자존심 세고 오만한 드래곤이 자기 죽었을 경우를 생각하고 준비하지는 않았을 것!
그렇다면 의외로 이런 방법이 먹힐지도 몰랐다.
학카리아스가 죽었다고 말하고, 학카리아스의 자식을 사칭해서 레어를 점거하는 방법!
‘싸우지 않는 방법이 최선이다. 보니까 여기 레어는 던전 뚫는 식으로는 무리야.’
난이도도 난이도지만, 학카리아스의 더러운 성격이 조심스러웠다.
침입자들이 계속 뚫고 가다 보면 나중에는 레어를 폭파시키거나 보물을 땅에 묻어버릴까 봐 걱정됐던 것이다.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놈!
태현이 골렘 상대로 사기를 시도하자 케인이 불안하다는 듯이 말했다.
“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골렘 상대로 화술 스킬은….”
[학카리아스의 레어 골렘을 설득합니다.]
[최고급 화술 스킬을…]
[……]
-으음….
“된다?!”
케인은 기겁했다.
아니 뭔 미친 무생물 상대로 설득이 돼?!
다행히도 케인의 상식은 지켜졌다. 골렘이 고개를 저은 것이다.
-너무 다름. 너무 다름.
[흑흑이의 모습이 학카리아스와 너무 다릅니다.]
[설득에 크게 페널티를 받습니다.]
[설득이 실패합니다.]
[카르바노그가 놀랍니다. 아키서스도 사기를 치지 못할 때가 있다고…]
콰직!
태현은 다시 한번 망치를 휘둘러 골렘을 쓰러뜨렸다. 골렘은 그대로 박살이 났다.
[카르바노그가 질겁합니다. 화난 거 아니지? 라고 묻습니다.]
-응? 아니. 다시 해보려고.
케인도 움찔 겁을 먹고 있었다. 태현은 그러거나 말거나 재빨리 가방에서 아이템을 꺼냈다.
그걸 본 흑흑이가 질겁했다.
설마….
-주… 주인님. 그건 좀….
“한 번 해보자. 흑흑아.”
태현이 꺼낸 건 학카리아스를 폭파시키고서 나온 각종 잔해 아이템들!
비늘, 가죽, 꼬리 일부 등등….
“흠. 고기를 두드려서 얇게 편 다음 바르면….”
-제발!
“알겠어. 그거까지는 안 할게. 어쨌든 다른 골렘 오기 전까지 빨리 준비하자고. 애들아. 좀 도와줘 봐.”
“…….”
“…….”
다른 일행들은 정신이 혼미한 표정으로 움직였다.
지금 우리 뭐하는 거지?
그러나 손은 재빨리 움직이고 있었다.
-아! 살살! 살살 좀!
비늘을 콱콱 꽂아 넣자 흑흑이가 비명을 질렀다.
“참아! 빨리 해야 한다고.”
[흑흑이를 학카리아스로 변장시킵니다.]
[학카리아스의 신체 일부를 가지고 있습니다. 보너스를…]
[……]
-손님. 손님. 뭐하….
콰직!
준비가 다 끝나기 전에 골렘이 새로 왔다. 태현은 대답 대신 망치를 휘둘렀다.
* * *
“휴. 간신히 시간 맞췄다.”
-뭔가 이상. 뭔가 이상. 왜 이렇게 많이 부서짐?
“그러게?”
태현 일행은 시치미를 뚝 떼고 시선을 피했다. 이다비는 휘파람까지 불었다.
“그나저나 여기를 봐라. 누굴 닮지 않았니?”
아까보다 뭔가 더 색이 진해지고 위압적으로 변한 흑흑이의 모습!
골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학카리아스 님… 은 아니다. 학카리아스 님과 닮은 드래곤?
“그래! 학카리아스의 아들이다!”
-…?
골렘은 당황했다.
-그런 이야기 들은 적 없음. 그런 이야기 들은 적 없음.
“여기에는 매우 슬프고 가슴 아픈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지. 학카리아스는 젊었을 적 한 드래곤을 사랑했는데….”
길고 그럴듯하게 말할수록 설득의 보너스는 늘어났다.
태현은 아버지가 챙겨보던 드라마의 내용을 떠올리며 그럴듯한 사연을 풀기 시작했다.
“어흑. 너무 슬프잖아.”
옆에서 듣던 케인이 무심코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다가 문득 깨닫고 멈칫했다.
‘잠깐. 저거 구라였지?’
“…그렇게 된 거지. 학카리아스가 그런 걸 너희들한테 말하고 다닐 드래곤은 또 아니잖아. 어쨌든 여기 흑흑이가 온 건 학카리아스의 레어를 이어받기 위해서다. 학카리아스가 죽었기 때문이지.”
-인정할 수 없음. 인정할 수 없음.
“학카리아스가 한동안 안 돌아오지 않았나?”
-그것만으로는 확인할 수 없음.
“학카리아스가 비상시 대비해서 자기를 소환할 수 있는 걸 남겨놓지 않았어?”
학카리아스 성격에 그 정도 대비는 해놨을 것이다.
만약 침입자가 장애물을 다 뚫고 더 안으로 들어왔을 때 자신을 부를 수 있도록!
-있음. 있음.
“그걸 사용해서 불러보라고. 학카리아스가 살아 있다면 올 거 아냐.”
-…….
골렘은 잠깐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쿠르릉-
“응?”
그들을 두고 나가버리는 골렘!
태현 일행은 당황했다.
“어디 가서 해야 하는 것 같은데?”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음. 그러면 뭐… 기다리는 동안 다른 곳 좀 더 털자.”
알뜰하게 시간을 활용하는 태현이었다.
* * *
2 고문실, 3 고문실까지 찾아서 쇠사슬 하나까지 다 긁어모은 순간, 메시지창이 떴다.
[학카리아스의 레어의 소유가 임시적으로 흑흑이한테 넘어갑니다!]
[학카리아스의 레어를 지키고 있는 방어 마법들과 함정들의 권한이 흑흑이한테 넘어갑니다!]
[학카리아스의 소환수들이 흑흑이에게 넘어갑니다!]
[……]
[학카리아스의 소환수들은 학카리아스가 돌아오기 전까지 흑흑이의 명령에 따를 것입니다.]
[흑흑이가 소환한 것이 아니기에 레어를 지키는 게 아닌 명령은 듣지 않을 수 있습니다.]
대박!
싸우지도 않고서 레어를 손에 넣은 것이다.
당사자인 태현도 이렇게 쉽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상황!
-주인님…! 제게도 레어가 생겼습니다!
인생역전!
흑흑이는 눈물을 머금었다.
이제 블랙 드래곤들 사이에서 어깨에 힘 좀 주고 다닐 수 있겠다!
자세한 사연은 말할 수 없겠지만!
“가자. 흑흑아.”
-어딜 말입니까?
“어디긴 어디야. 보물 털러 가야지.”
-…넵.
흑흑이와 태현 일행은 신이 나서 움직였다.
학카리아스의 보물 창고에는 과연 얼마나 많은 보물이 있을까!
산더미처럼 많이 쌓여 있겠지?!
덜커덩!
“와! 와… 와?”
골렘의 안내에 따라 학카리아스의 보물 창고에 들어선 일행은 온갖 금은보화가 쌓여 있는 무더기를 보고 감탄했다가, 의아해했다.
분명 어마어마한 양이긴 한데….
저 뒤까지 난 거대한 홀에 비해 보물은 그냥 한 무더기가 끝이었던 것이다.
“어라? 공간에 비해 너무 적은 거 아냐?”
“학카리아스가 검소한 드래곤이었나요?”
“아니면 저 보물을 최근에 쓴 거 아닐까요?”
이런저런 추측이 나왔다. 그러자 안내해 준 골렘이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이 말했다.
-흑흑이 님. 학카리아스 님은 원래 보물 대부분을 갖고 다니잖습니까. 모르셨습니까?
“…….”
“…….”
그러면 이게….
대부분을 갖고 남은 일부?
일부분이 이 정도라면 대체 전체 양은 얼마였단 건가?
“앗. 현기증이…!”
이다비가 휘청거렸다. 태현은 급히 달려가 부축했다.
“태, 태현 님. 앞이….”
“나도 그 마음은 알아! 하지만 그때는 어쩔 수가 없었어!”
골렘의 말을 들으니 태현도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
학카리아스 잡을 때 좀 더 고민 좀 해볼걸!
물론 그때는 어쩔 수 없었지만!
‘잠깐만. 토끼로 변신시켰을 때도 뭐 안 나왔는데? 그러면 이 자식 어디에 숨기고 있었던 거야? 설마 뱃속에 넣어두고 다닌 건 아니겠지?’
의외로 그럴듯한 추측!
태현은 가슴이 두 배로 미어지는 듯했다. 만약 뱃속에 넣어두고 다녔다면 그때 조금만 더 안으로 들어갔으면 보물 더미를 만났을지도 모르는 것 아닌가.
“아. 학카리아스는 마법을 잘 쓰는 드래곤이니 아마 공간 주머니를 만들어서 거기에 직접 넣고 다녔을 겁니다.”
정수혁의 말에 태현은 살짝 안도했다.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었지!
“…그래도 뭐 이게 어디냐. 다 챙기자.”
간단하게 어림잡아도 몇십만 골드는 나올 대박이었다.
만약 전체 보물을 다 챙겼으면 판온 끝날 때까지 골드 걱정은 안 하고 펑펑 살 수 있었을 텐데….
‘이거 다 수도하고 골짜기 운영비로 나가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살짝 서글퍼졌다.
영지는 밑 빠진 독에서 물 새어나가듯이 골드를 잡아먹었다.
세금을 올리고 던전이나 시설에 이용료를 엄격하게 붙이면 수입을 올릴 수 있겠지만, 태현은 그러지 않았다.
태현처럼 적이 많은 입장에서 인심을 잃는 건 치명적이었으니까!
태현이 길드 하나 없는 상황에서 길드 동맹에 맞서는 수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 있는 건, 그만큼 태현이 영지를 잘 운영하고 있어서가 컸다.
사람들은 지킬 게 있을 때 최선을 다하게 마련이었다.
[흑흑이가 학카리아스의 레어를 점령했다는 사실이 주변으로 퍼져나갑니다.]
[인근 드워프 부족들이 곧 찾아올 것입니다. 준비하십시오.]
“드워프 부족들이면….”
-아마 학카리아스가 괴롭히고 있던 부족들일 겁니다.
주변 종족들을 괴롭히는 건 블랙 드래곤의 전통!
뭐 내놔라, 작고 반짝이는 거 갖고 와라, 와서 공사 좀 도와라, 저기 가서 몬스터 좀 잡아라 등등….
해주는 건 없으면서 시키는 건 더럽게 많은 게 바로 드래곤!
그래도 어쩌겠는가. 죽기 싫으면 드래곤 레어 근처 종족들은 참고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 널 보자마자 공격하진 않겠지?”
-설… 설마. 제가 그래도 블랙 드래곤인데….
태현은 흑흑이를 빤히 쳐다보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만만해 보이는’ 블랙 드래곤!
-주인님. 그런데 이 비늘 뽑아도 됩니까? 오래 끼고 있으니까 좀 불편한데….
“아냐. 잘 어울리니까 좀만 더 하고 있자구.”
-언제까지요?
“주변 부족 애들 다 올 때까지?”
-…….
* * *
태현 일행은 학카리아스의 창고와 서재, 침실까지 샅샅이 뒤졌다. 혹시라도 남은 보물들을 마저 챙기기 위해서였다.
학카리아스가 두고 다니는 정도의 보물이지만, 그래도 한 가지 장점이 있었다.
비교적 수준이 낮은 덕분에, 지금 태현 일행이 입을 정도의 장비들이 나온다는 것!
“헉. 이거 봐! <드래곤에게 바쳐진 합금 갑옷>! 심지어 세트 아이템이다!”
케인은 세트 아이템을 보고 흥분해서 들어 올렸다.
드래곤에게 바쳐진 합금 갑옷:
내구력 900/900, 물리 방어력 400, 마법 방어력 180.
스킬 ‘드래곤의 형상’ 사용 가능, 스킬 ‘드래곤의 위엄’ 사용 가능, 스킬 ‘드래곤의 분노’ 사용 가능, 스킬 ‘드래곤의 파괴’ 사용 가능.
블랙 드래곤의 허락을 받지 않고 착용하면 저주받음.
착용 시 드워프들이 분노함.
블랙 드래곤 학카리아스가 인근 드워프 부족들을 협박해 얻어낸, 드워프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낸 걸작 갑옷이다. 학카리아스는 이 갑옷을 별로라고 생각했는지 버려두고 있었다.
갑옷의 뒷면을 보면 아주 작게 드워프 글씨로 학카리아스의 욕이 적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