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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775화 (775/1,826)

§ 나는 될놈이다 775화

흑흑이는 생각에 잠겼다.

학카리아스와 언제 이야기했더라?

한 몇백 년은 넘은 것 같은데….

‘이야기가 통하려나?’

드래곤들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이고 자기밖에 모르는 이들이었다.

같은 색 드래곤이면 말은 들어줄지 몰라도, 그 이상은 기대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태현은 이미 이야기가 끝났다는 듯이 흑흑이의 말을 듣지 않았다.

-주인님….

“그래. 자신 있다고?”

-아니 그게….

“그래그래. 알겠으니까 그만 자신해라.”

-…….

흑흑이는 깨달았다.

태현은 지금 가능하냐 불가능하냐를 묻고 있는 게 아니었다.

무조건 되게 해라!

용용이가 안쓰럽다는 듯이 흑흑이를 토닥였다. 흑흑이는 감동받았다.

어쩐지 아스비안 제국에 와서 용용이와 점점 더 친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알렉세오스 님.”

-또 뭐냐?

알렉세오스는 질색했다.

이쯤 대화했으면 빨리 나가서 위험을 막아야지, 뭘 또 계속 말을 거는 거야?

이미 몸이 죽었어도 숨길 수 없는 아키서스에 대한 경계심!

그러나 알렉세오스는 알지 못했다. 태현 앞에서는 말 한마디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와.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아… 아니. 지금 밖의 세계는 혼란스러운데 이 몸이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고, 네가 여기서 너무 시간을 많이 쓰는 것 같아서….

“제가 지금 얼마나 열심히 하는데… 지금 다른 놈들은 다 황제한테 굽신거리는데 저 혼자 비밀결사와 손잡아가면서 황제와 맞서고 있는 거 아십니까? 와, 참, 진짜, 참. 드래곤이라고 그러시는 거 아닙니다.”

[최고급 화술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알렉세오스가 당신에게 매우 미안해합니다.]

-아니… 미안하다.

알렉세오스가 살아 있고, 아쉬운 게 없었다면 아무리 최고급 화술 스킬이 있었어도 사과가 나오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알렉세오스는 많이 아쉬운 입장이었다.

태현은 그걸 알았기에 강하게 나갔다.

태현이 아니면 알렉세오스의 일을 도와줄 사람이 별로 없었으니까!

-미안하게 됐다.

“흥. 됐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아키서스 싫어하는 것에서 알아봤습니다.”

-아니… 아키서스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꺼리는 거다. 나만 꺼리는 게 아니라 상식 있고 교양 있는 드래곤이면 모두 다 꺼려 하는데….

“그게 싫어하는 거 아닙니까! 제가 아키서스의 화신을 맡아 대륙의 위험을 얼마나 많이 해결해 왔는데 이런 취급을 받는다니 정말 서러워서….”

태현은 울컥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용용이가 날개를 퍼덕이며 태현을 달랬다.

-미안하다. 생각해 보니 아키서스도 나쁘진 않은 것 같다. 소문이 안 좋게 퍼졌을 뿐이지….

‘이 상황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다.’

용용이는 속으로 생각했다.

골드 드래곤 장로들이 아키서스한테 속아 넘어갈 때 저런 식으로 경계심을 풀었다고 들었는데….

“후. 어쩌겠습니까. 대륙이 위험한데 제가 또 참아야겠죠.”

-…뭐 필요한 거라도 있나?

“<알렉세오스의 권능>을 좀 강화시켜주실 수 있으십니까?”

-지금 그걸 말이라고…!

알렉세오스는 황당해했다.

드래곤 리치로 변신할 수 있는 <알렉세오스의 권능>은 정말 어마어마한 스킬이었다.

마법 스킬이 부족한 태현도 이세연 뺨치는 리치로 만들어주는 사기 스킬!

하늘을 뚫는 총 MP 양, 눈만 깜박여도 회복되는 MP 속도, 각종 강력한 네크로맨서 스킬 등등을 스킬 하나에 주는 것이다.

당연히 알렉세오스도 이걸 그냥 속 편하게 준 건 아니었다. 알렉세오스의 원래 힘을 많이 나눠준 것이다.

그런데 그걸 더 강화시켜달라니.

벼룩의 간을 빼달라는 소리였다.

-안 된다! 더 힘을 내줄 수는 없다.

“…….”

태현은 대답 대신 침묵했다.

때로는 말보다는 침묵이 더 강한 힘을 발휘했다.

[최고급 화술이…]

[……]

-…레어의 다른 보물을 내줄까?

“…….”

-…권능을 바꿔줄 수는 있다. 보아하니 아키서스의 화신인 너는 마법사보다는 전사에 가깝더군. 드래곤 리치가 아닌, 전사에 맞는 힘을 줄 수 있다.

“…!”

태현은 솔깃했다.

사실 <알렉세오스의 권능>을 강화시켜달라고 말한 건, 태현도 크게 기대하지 않고 말한 것이었다.

<알렉세오스의 권능>은 이미 충분히 사기적이었으니까!

스킬 쿨타임을 대폭 줄여주는 <알렉세오스의 축복>과 함께 이걸 받은 지금, 이걸 더 강화시켜달라는 건 정말 도둑놈 심보였다.

그렇지만 권능을 바꿔준다?

‘학카리아스하고 싸울 때, 드래곤 리치보다는 아키서스의 화신 상태가 더 나아.’

태현은 냉철하게 판단했다.

드래곤 리치는 혼자서 군단을 이끌지만, 가끔은 군단이 할 수 없는 일도 있었다.

학카리아스는 마법의 달인인 드래곤이고, 각종 흑마법도 강력할 것이다. 그런 상대로 드래곤 리치는 딱히 상성이 좋지 않았다.

게다가 태현은 이미 이세연과 손을 잡았다. 언데드 군대를 부릴 거면 이세연의 힘을 빌리면 됐다.

차라리 아키서스의 화신 상태에서, 상대의 공격을 유연하게 피하며 폭딜을 넣는 게 더 낫다!

“음… 어쩔 수 없지요. 그러면 그렇게 할까요?”

-그래.

“레어의 다른 보물도 내주실 거죠?”

-…한 개만 가져가라.

“감사합니다!”

-봐서 고르면 안 된다.

“아니, 안 보고 어떻게 고릅니까? 빠르게 보고 고르겠습니다. 5초도 안 걸립니다.”

-아키서스의 힘은 행운의 힘. 절대 안 된다.

‘쯧.’

알렉세오스는 괜히 고룡이 아니었다.

경험 많은 현명한 드래곤!

다른 NPC였다면 완전히 호구 잡혔을 테지만, 알렉세오스는 현명해서 그런지 절반만 호구를 잡혔다.

“그러면 어떻게 고릅니까?”

-내가 골라줄….

“…….”

-…수는 없겠지.

태현은 분명히 봤다. 알렉세오스의 눈동자가 태현의 눈치를 힐끗 봤다가 다시 돌아가는 것을!

-그러면 제3자가 고르게 하자. 제일 운이 없어 보이는….

“예?”

-아, 아니. 제일 공정해 보이는… 저 블랙 드래곤을 시키지?

흑흑이!

용용이는 아키서스의 신수인 데다가 골드 드래곤이니 왠지 운이 좋아 보였던 것이다.

태현은 흑흑이를 보며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흑흑아.”

-예?

“믿는다!”

-아, 아니. 밑도 끝도 없이 좀 그만 믿어주시면….

부담된다!

흑흑이는 날개를 축 늘어뜨리고 레어 안으로 들어갔다.

* * *

“뭐 골랐냐?”

태현은 기대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흑흑이는 작은 비단 주머니를 내밀었다.

그걸 본 태현의 얼굴이 차갑게 식었다.

아무리 봐도 좋은 아이템이 들어있을 것 같지는 않은 주머니!

알렉세오스도 왠지 모르게 웃는 것 같았다. 뼈밖에 없었지만!

“흑흑아. 넌… 생각이 없니? 안에 뭐가 들었는지 모를 때에는 큰 걸 골라야지.”

기본적인 법칙!

일단 부피가 커야 뭔가 더 들어있을 확률도 많지 않겠는가.

흑흑이는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주인님. 눈을 가리고 골라야 했습니다.

“아니 이런 치사한….”

알렉세오스는 못 들은 척 고개를 돌렸다.

-아키서스의 화신이여. 우이포아틀은 너를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최대한 빨리 중앙 대륙으로 가 문제를 해결하고 돌아와야….

“알겠습니다.”

받을 거 다 받은 태현은 귓등으로 들었다.

‘안에 뭐 들은 거야?’

[<고대의 힘으로 밀봉된 비단 주머니>를 개봉하시겠습니까? 한 번 개봉하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습니다.]

-개봉.

[<정체불명의 고대 씨앗>을 얻었습니다.]

“……????”

태현은 황당한 얼굴로 손바닥에 놓인 씨앗 몇 개를 바라보았다.

이게 다야?

‘아니 이게 뭔….’

정체불명의 고대 씨앗:

고대에서부터 살아남은 정체불명의 씨앗이다. 심었을 때 무엇이 자랄지는 심어봐야만 알 수 있을 것이다.

-정체불명의 고대 씨앗은 행운에 영향을 받습니다.

-정체불명의 고대 씨앗은 명성에 영향을 받습니다.

-정체불명의 고대 씨앗은 악명에 영향을 받습니다.

-정체불명의 고대 씨앗은 신성에 영향을 받습니다.

“…….”

태현은 뭔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다. 생각보다 꽝은 아닌 것 같긴 했지만….

‘그냥 쓰기 좋고 알기 쉬운 아이템이 좋은데….’

언제, 어떻게 효과가 나올지 모르는 아이템들은 이미 충분!

바로 심으면 되겠지만, 그러기에는 찜찜한 게 한 가지 있었다.

하필이면 이 고대 씨앗이 영향받는 스탯들이 태현이 미친 듯이 높은 스탯들이라는 점이었다.

‘행운, 명성, 신성은 높아도 괜찮을 것 같은데, 악명은… 높으면 안 될 것 같은데….’

행운, 명성, 신성도 높지만 악명도 어마어마하게 높은 태현!

이게 왠지 함정 같았다.

‘안 심을 수도 없고… 영지에서 좀 떨어진 곳에 심어야겠다.’

태현은 아탈리 왕국 외곽, 태현의 말을 안 듣는 귀족 NPC들 영지 근처에 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얻었으니 안 심을 수는 없었다.

-빨리 가라, 아키서스의 화신!

“예, 예.”

[<알렉세오스의 권능>이 변화합니다!]

<알렉세오스의 권능>

리치가 된 용 알렉세오스가 당신에게 전사의 힘을 빌려줍니다. 스킬을 사용하면 일시적으로 드래곤 나이트의 힘이 당신의 팔에 깃듭니다.

‘오. 훨씬 낫군.’

드래곤 리치로 변신하는 게 아니라, 아키서스의 화신 직업 스킬은 전부 그대로 사용이 가능했다.

변신이 아닌 버프 스킬!

-빨리 좀 가라니까!

“아. 갑니다. 가요.”

* * *

-그런데 주인이여.

“…?”

-…우리는 아키서스의 권능 찾으러 온 거 아니었나?

용용이는 의문을 표했다.

분명 아스비안 제국에 온 건, 아키서스의 권능을 찾아서 온 거였는데….

와서 한 건 우이포아틀을 속여서 지원을 받고, 알렉세오스를 속여서 권능을 받고, 이 근처를 돌면서 부족들을 털고, 광산을 공격해 부하들을 만들고….

“아. 그랬지.”

태현도 순순히 인정했다.

어쩌다 보니 아키서스의 권능을 찾을 시간이 안 났다.

“하지만 용용아. 중요한 건 아키서스의 권능이 아니야.”

아키서스의 화신이 하는 것치고는 지나치게 유연한 말!

-그, 그러면 뭐가 중요한가?

“당연히 시간 제한 있는 것들이 중요하지. 권능은 나중에도 찾을 수 있으니까. 그걸 누가 찾아가겠어.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물건인데.”

-…….

“빨리 배 띄워서 돌아가야지. 지금쯤이면 준비가 다 끝났을 거야.”

태현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이럴 줄 알고 이미 일행들을 먼저 항구로 보내 출발 준비를 시켜놓은 태현이었다.

지금쯤이면 항구에 벌써 다 출발할 준비가 되었을 터!

그러나 태현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저거 어떻게 태우냐! 올라만 가면 배가 무너지고 녹는데!”

“얼음 마법을 몸에 쏴볼까요?”

-쿠오! 쿠오오!

“어. 하지 말라는 거 같은데요.”

난장판!

아스비안 제국 항구는 시장바닥보다 더 혼란스러웠다.

아스비안 제국을 구경 온 수많은 플레이어들.

그 플레이어들이 지금 배 태우려는 걸 다 보러 구경 온 것이다.

“와. 저거 뭔 거인이야? 처음 보는데.”

“저걸 김태현이 부리는 건가? 역시 김태현이다.”

“근데 거인이 왜 이렇게 시들시들해 보이지?”

“잠을 못 잤나?”

“김태현이다!”

“뭔 소리야? 잠을 못 잤냐고 했잖아. 김태현 때문에 시들시들하다니, 무슨 길드 동맹 애들도 아니고.”

“아니, 저기 김태현이라고!”

촤아아악-

태현이 나타나자, 마치 바다가 양쪽으로 갈리듯 그 많던 플레이어들이 쫙 옆으로 갈라졌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도 자동으로 열리는 수준!

케인은 그걸 보고 감탄했다.

“와. 나도 저거 하고 싶다.”

“케인 씨는… 무리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뿜어내는 카리스마가 차원이 달랐다.

유유히 걸어오는 태현을 보며, 플레이어들 중 몇몇이 수군거렸다.

“현상금… 지금 때려도 되려나?”

“그거 근데 제대로 지급 안 된다는 소문이 있던데.”

“일단 때리고 생각을….”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 태현이 있다니!

한 대만 치고 튀면 될 것 같은데….

그러나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너무 얕보고 있었다.

도시 밖에서는 그들만 있었지만, 여기는 태현의 팬들도 우글거렸던 것이다.

“애들아! 얘네 현상금 사냥꾼이야!”

“밟아!”

“?!”

그들이 선공을 하면 했지, 설마 도시에서 선공을 당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현상금 사냥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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