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747화
도동수는 고개를 돌렸다. 악몽에서 많이 본 얼굴이 거기에 있었다.
“어… 어???”
태현 일행도 도동수 파티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서 많이 본 기분이었다.
“어라? 쟤 어디서 많이 본 거 같은데?”
“도동수잖아!”
그래도 케인이 가장 도동수를 먼저 알아봐 줬다.
대회에서 도동수를 쇠사슬로 끌고 와서 죽이기 좋게 대령한 것에 대한 죄책감!
“어? 도동수가 누구더… 아아! 도동수!”
“그 도동수!”
“선배를 방해하려다가 망신당하고 쫓겨난, 뒷조사해서 묻어버리려다가 말았던 그 도동수요?”
움찔!
도동수는 몸을 움츠렸다. 이건 어쩔 수 없는 본능이었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도동수가 자기가 성장했다고 했었지.”
태현은 기억이 되살아나 고개를 끄덕였다. 베이징 파이터즈의 연습 던전을 털러 갔을 때, 도동수는 확실히 성장한 모습을 보여줬었다.
가장 먼저 도망친 것!
“이번에도 보여줄 거냐?”
“잠깐, 김태현! 네가 날 미워하는 건 안다.”
“응? 별로 안 미워하는데.”
태현은 그렇게 말했다. 그걸 듣는 순간 도동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설마 김태현은 그를 미워하지 않는단 말인가?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그가 초라해 보였다. 그는 판온 1 때의 일 때문에 아직도 이러고 있었는데.
“너처럼 원한 갚겠다고 덤비는 놈이 한둘인 줄 아냐? 그냥 귀찮은 거지 미워하진 않아.”
“…….”
좋아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모르겠는 미묘한 대답!
“역시 선배! 대단해요! 멋져요!”
“그래. 내가 좀 대단하지. 물론 귀찮은 건 사실이니까, 귀찮은 걸 처리해 볼까? 우리 동수 실력 얼마나 늘었니?”
어두운 통로 저편에서 무기를 뽑는 태현의 모습.
베이징 파이터즈 선수들은 그 모습에 기겁했다.
공포영화를 직접 체험하는 기분!
“도동수! 어떻게 좀 해봐!”
“맞아! 네가 오자고 했잖아!”
애처롭게 징징대는 선수들! 도동수는 그 모습에 한숨이 나왔다.
어떻게 김태현 파티하고는 이렇게 차이가 나냐?
아니었다. 생각해 보니 저쪽 파티도 구성이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듣보잡 약탈자, 듣보잡 마법사, 듣보잡 궁수, 그리고 마지막으로 상인까지.
저런 놈들을 데리고 무서운 파티로 만든 건 바로 김태현이었다.
리더의 차이!
“저 새끼 뭔가 눈빛이 기분 나쁜데.”
케인은 중얼거렸다. 도동수가 보내는 눈빛이 왠지 모르게 깔보는 기분이 들었다.
도동수는 침을 한 번 삼키고서 말했다. 입안이 바짝 마르는 기분이었다.
“김태현! 거래하자.”
“뭔 거래? 설마 통로를 무너뜨린다거나 입구를 훼손한다는 걸 갖고 오진 않겠지? 그러기도 전에 널 잡을 수 있고, 이 던전은 그렇게까지 중요한 던전도 아니거든.”
“…….”
도동수는 당황했다.
아니, 그런 방법이 있었나?
베이징 파이터즈 선수들도 뒤에서 수군거리면서 감탄했다.
“도동수 역시 독해. 괜히 한국인이 아니야.”
“한국인들은 게임에 미쳤다니까. 교과과정에 게임이 있다는 게 진짜였나 봐.”
이대로 가다가는 협박을 한 꼴이 됐다. 도동수는 급히 말했다.
“그런 게 아니라 내가 모은 자료를 공유할 테니 사이좋게 던전을 돌자는 거다!”
“에이… 뭐야. 도동수. 그 독기 빠진 제안은.”
태현은 실망했다.
“난 널 그렇게 가르친 적이 없다. 뭘 배운 거냐?”
‘네가 언제 날 가르쳤어 이 새끼야!’
“거절하죠, 선배.”
“선배님. 저딴 제안은 들어볼 가치도 없습….”
“야! 기다려 이것들아!”
헐뜯는 일행의 말에 도동수는 급히 끼어들었다.
“이걸 보면 정말 생각이 달라질 거야! 정말 대단한 자료라고!”
도동수는 필사적으로 책을 건넸다. 태현은 그걸 보고 생각했다.
‘내가 이거 받고 먹튀하면 어쩌려고 이러냐 이놈? 머리가 없나?’
물론 도동수가 그 정도도 생각 못 할 사람은 아니었다. 태현이 앞에 있어서 판단력이 마비되어서 그렇지!
태현은 받고 도동수를 PK한 다음 떠날까 잠깐 고민했다.
‘에이, 됐다.’
그러기에는 너무 처절하고 절박하고 불쌍해 보이는 도동수!
태현은 그냥 써먹어주기로 했다.
[카르바노그가 결론이 이상하지 않냐고 당황해합니다.]
‘응? 엄청 친절한 거 아닌가?’
[…….]
어쨌든 태현은 아이템을 받아서 확인했다.
[<아스비안 제국의 역사서>를 얻었습니다.]
[<폭군에 대한 기록>을 얻었습니다.]
[<아스비안 제국의 군대 보급 기록>을 얻었…]
[……]
“?!”
[아스비안 제국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습니다. 제국 내 평판이 올라갑니다.]
[제국 내 명성이…]
[NPC들을 대할 때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어마어마한 양의 자료들!
태현은 깜짝 놀랐다. 이걸 도동수가 다 어떻게 모았지?
도동수는 도적 계열 직업이지, 탐험 계열 직업이 아니었다.
이런 정보를 이렇게 많이, 이렇게 빨리 모을 수는 없었다.
“너 이거 어떻게 모았냐?”
“나도 이 정도 능력은 있다.”
“맞고 말할래 그냥 말할래?”
“…직업 퀘스트 중에 아스비안 제국 관련 퀘스트가 있어서 미리 모아놓은 게 있었다.”
설마 이세연이 멸망한 제국을 부활시킬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었다.
도동수 입장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떡이 굴러들어온 셈!
“그리고 제카스한테서도 몇 개 샀고.”
“제카스?”
“그, 너 싫어하는 랭커 있잖냐. 쑤닝하고 손잡은 놈.”
“아… 그 중국인 랭커! 야만전사였나?”
“미친놈아! 탐험가거든?!”
심지어 나라도 틀렸어!
기억도 안 나면서 대충 나는 척 하는 태현의 모습에 도동수는 기가 막혔다.
새록새록 떠오르는 빡침!
슥-
“어디서 성질이십니까?”
“뒤질래요?”
“아… 아니. 미안.”
도동수는 기가 확 죽었다. 케인과 달리 정수혁과 유지수는 살벌했다.
‘흠. 이렇게 얻었는데도 교단 관련 정보는 없네.’
태현은 빠르게 정보를 훑어보았다. 아키서스란 이름은 없었다.
아마 수상쩍은 곳을 몇 군데 뒤져보면서 찾아야 할 것 같았다.
‘아스비안 제국이 부릴 수 있는 군대는… 휘유. 안 건드리는 게 낫겠군.’
언데드 황제가 부리는 언데드 군대!
그것도 네크로맨서가 소환하는 저급한 언데드가 아닌, 개개인이 다 특수 네임드 언데드라고 봐야 했다.
여기 있는 이들을 전부 상대한다고 생각하니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들이 오래 떠들자,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비밀결사원들이 다가왔다.
“안 죽이십니까?”
“아. 평화로운 방법. 평화로운 방법을 시도하고 있는 중이지.”
“침입자한테도 말입니까?!”
“덕과 사랑으로 교화하라. 용용이가 한 말이야.”
-…….
“…….”
눈치를 보던 도동수는 입을 열었다.
“그래서 김태현. 우리 사이 괜찮은 거지?”
“응? 아니, 그건 아니지. 왜 친한 척이야?”
“…….”
“어쨌든 이건 고맙다. 죽이지는 않으마.”
“그… 그래!”
“자. 뒤돌아.”
“…?”
“던전 깨야지. 문 열어.”
“어… 잠… 잠깐만. 같이?”
“응? 아. 뭐 너희가 양보하고 싶다면 나야 괜찮지. 그럼 잘 가라.”
그러자 베이징 파이터즈 선수들의 시선이 도동수에게 쏟아졌다.
-도동수!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최소한 같이는 깨야지!
“…같이 깨자.”
“그래. 문 열어.”
도동수는 다시 책을 펴고 문양을 풀기 시작했다.
‘근데 저 NPC들은 누구냐?’
* * *
좋으나 싫으나, 태현은 가장 유명한 판온 플레이어 중 한 명이었다.
태현과 비교하면 베이징 파이터즈 선수들은 보름달 앞의 반딧불!
판온 프로 선수라고 하면 엄청나게 대단해 보였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차이가 컸다.
전 세계에서 새로 만들어지는 게임단이 수십, 수백 개가 넘었다.
그중 하나에만 들어가도 그냥 프로 선수인 것!
이들 중 성적을 내고, 스폰서를 얻어 자리 잡는 게임단은 손가락에 꼽았다.
베이징 파이터즈는 나름 규모가 크고 투자를 많이 받은 게임단이었지만 미래가 확실한 건 아니었다.
선수 교체도 잦고 안에서 잡음도 많았다.
이런 게임단은 규모가 커도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 잘 굴러가는 거 맞나?
-선수를 소모품으로 쓰는 거 같은데….
그런 베이징 파이터즈 1군에 갓 올라온 선수들에게 있어서 태현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태현이 유명 중국 랭커 몇몇에게 엿을 먹인 일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김태현 선수. 흠흠… 그 던전 대회에서 공성 병기 활용은 어떻게 생각하신 겁니까?”
“상인 직업 플레이어를 쓰셨던데 혹시 투기장 리그 때도…?”
“공성 병기 활용이야 직업 특성 살리려고 한 거고, 투기장 리그 때도 그대로 갈 걸. 우리는 애초에 후보가 없어서.”
“!”
태현이 생각보다 대답을 잘 해주자 다들 눈빛이 반짝였다.
“김태현 선수!”
“김태현 선수!!!”
신나서 물어보는 선수들!
“…….”
파티장 도동수는 시무룩해져서 앞으로 걸어갔다. 어느새 찬밥이 되어버린 그였다.
‘이 새끼들… 오기 전에 나누었던 우정은 다 어디가고…!’
도동수는 차갑고 냉정한 프로의 세계를 맛보고 있었다.
이것이 프로인가!
툭-
[<지하 입구 함정>이 발동됩니다.]
“어?!?”
도동수는 당황했다.
도적 계열 직업이라 함정 관련해서는 어지간하면 패시브 스킬로 ‘앞에 함정 있다!’라고 뜨는 그였다.
그런데 눈치 못 채고 작동시키다니!
함정의 레벨이 높은 것도 높은 것이었지만, 정신이 사나워서 제대로 집중하지 못한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처음 온 던전에서는 일단 통로 바닥, 벽, 천장 등 모든 요소를 꼼꼼히 보며 걸었어야 했는데!
‘스킬을 써서 뛰어올라야….’
바닥이 확 열리고 아래로 떨어지는 함정.
초보자들은 자주 빠지는 함정이었지만 고수 정도만 되어도 능숙하게 벗어났다.
하물며 도동수라면야!
-그림자의 팔!
그림자로 된 팔이 새로 나와 추가 공격이나 도약을 가능하게 해주는 스킬!
도적인 도동수에게 잘 맞는 스킬이었다.
[지하에서 올라오는 <죽은 용의 저주>가 스킬을 가로막습니다.]
[<그림자의 팔>이 실패합니다.]
“!??!?!?”
너무 쉬운 스킬이라 실패할 거라고는 생각치도 못했다.
도동수는 기겁했다.
‘안 돼!’
차라리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갈고리 같은 아이템을 썼을 텐데!
괜히 만만히 보고 스킬을 썼다가 큰 코 다친 셈이었다.
“으아아아아아!”
슈우우웅-
도동수는 그대로 밑으로 떨어졌다.
“?”
“???”
뒤에서 화기애애하게 떠들며 따라가던 일행들은 멈칫했다.
“방금 뭐냐?”
“도동수 씨 비명 같은데요?”
“저거 함정 아냐? 작동된 함정인데?”
“설마 도동수가 저기 빠져서 비명 지른 건 아니지?”
“에이… 농담도. 도동수 씨가 그래도 직업이 직업인데… 도동수 씨! 장난 그만 치고 나오세요!”
베이징 파이터즈 선수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
-도동수 씨. 지금 장난칠 시간 없거든요?
[현재 플레이어는 귓속말을 받을 수 없는 곳에…]
“어?!”
“왜 그래?”
“귓속말 못 받는 거 보니까… 저기 빠진 것 같은데요….”
선수의 말에 다른 사람들은 충격 받은 얼굴로 수군거렸다.
“야. 도동수 도적 랭커 아니었냐? <그림자 춤꾼>? 근데 저런 구덩이 함정에 빠졌다고?”
어려워 보이는 고난이도의 함정도 아니고 그냥 밟으면 열리는 구덩이 형태 함정!
거기에 빠지다니 그게 랭커야?
“그 사람 랭커 맞습니까?”
“선배. 저 사람은 써먹지도 못할 것 같으니까 그냥 버리는 게 나을 거 같아요.”
쏟아지는 혹평!
도동수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눈물이 찔끔 나왔을 말이었다.
“흠. 뭔가 이상하긴 하군.”
“뭐? 왜?”
“도동수가 아무리 멍청하고 바보 같아도 갖고 있는 스킬이 있을 텐데 이런 함정에 걸렸다는 건….”
“앗!”
케인은 깨달았다는 듯이 외쳤다. 태현은 그걸 보고 흐뭇하게 웃었다.
“그래. 케인. 너도 눈치 챘구나? 이 함정이 뭔가 좀 특이….”
“그래! 놈은… 자살한 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