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685화

‘잠깐. 나한테는 좋은 거지?’

생각해 보니 장샨에게는 손해 볼 게 없었다.

아직 길드 소속이니 암살자가 찾아올 일도 없었고(물론 장샨 정도 되는 플레이어 잡겠다고 암살자를 보낼 일도 없겠지만), 나중에 상황이 꼬이면 길드 동맹에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근데 이 인간은 어떻게 보고를 한 거지? 내가 보고를 안 했는데?’

정답은 가짜로 보고를 한 거였지만, 장샨은 거기까지 상상하진 못했다.

설마 그렇게까지 했으리라고!

* * *

“잘 들어라. 오늘은 평생 없을 기회다.”

진지하고 딱딱한 목소리. 모두가 얼굴이 굳어 있었다.

“엄마, 저 사람들 뭐야?”

“쉿. 저쪽 쳐다보지 마!”

지나가는 사람들도 피해 가는 분위기!

모여 있는 사람들은 파워 워리어의 길드원들이었다. 그것도 정예 중의 정예!

다른 길드는 정예라고 하면 레벨이 높고 스킬 레벨이 높은 길드원을 의미하지만, 파워 워리어는 좀 달랐다.

파워 워리어의 정예는 가장 닳고 닳은 길드원이란 뜻!

“우리는 오늘이 올 걸 계속 대비해 왔다. 여기 있는 사람들 중 가장 준비된 사람은 누구냐!”

“파워 워리어!”

“여기 있는 사람들 중 가장 많이 팔아치울 사람은 누구냐!”

“파워 워리어!”

기합이 확 들어간 외침!

실제로 다른 상인 플레이어, 제작 직업 플레이어들은 가슴을 치며 한탄하고 있었다.

-아니 좀 더 걸릴 줄 알았는데!

-김태현 이 자식! 이렇게 깜박이도 안 키고 즉위식을 시작하는 놈이 어디 있어!

그러나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달랐다. 즉위식을 예상하고 미리 미리 준비한 그들!

“먹을 거 다 준비했냐?!”

“예!”

“다른 것들은?!”

“물론 준비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다른 것’들은 정말로 잡다한 것들이었다.

김태현 즉위식 기념 손수건, 김태현 즉위식 기념 머리띠, 김태현 즉위식 기념….

정말 이 자리 아니면 안 팔릴 아이템들!

그러나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갖고 있던 골드를 전부 털어 이 아이템들을 만들었다.

심지어 기계공학 대장장이들한테 부탁해 ‘김태현 즉위식 기념 폭죽’까지 만든 상태.

“다 팔지 못하면… 돌아오지 마라.”

끄덕-

길드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도 알고 있었다.

못 팔면 끝장이다!

그만큼 그들은 이 아이템에 목숨을 걸고 있었다.

“가자!”

파바바밧-

그 외침과 함께, 파워 워리어 길드의 즉위식 퀘스트… 아니, 태현의 즉위식 퀘스트가 시작되었다.

[즉위식이 시작됩니다!]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명성이 크게 오릅니다.]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능력치가 오릅니다.]

“김태현! 김태현! 김태현!”

이런 판온 이벤트를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이렇게 떨어지는 콩고물들이 있었기 때문!

“여러분!”

“!”

각종 확성기 마법을 건 태현의 목소리가 평원 끝까지 울리자, 모두 고개를 들고 집중했다.

과연 태현은 무슨 연설을 해줄까?

일반 플레이어들뿐만 아니라, 각종 게임 사이트들의 기자들도 대기하고 있었다.

-판온 최초의 즉위식!

-판온 처음으로 플레이어 국왕 탄생!

사실 엄밀히 따지면 쑤닝이 먼저였지만 지금 그걸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꼬우면 먼저 즉위식을 올렸어야지!

“여기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김태현! 김태현! 김태현!”

“그러면 즐겨주시길 바랍니다.”

획-

“?”

“??????”

“?????????????”

[즉위식 연설이 끝났습니다.]

[즉위식 축하 연회가 시작됩…]

“끝, 끝났어?”

가장 좋은 연설은 가장 짧은 연설!

태현은 굳이 아무 의미도 없고, 보너스도 없는 연설로 10초 이상 쓸 생각이 없었다.

‘보너스도 없는데 뭐하러 열심히 해?’

어안이 벙벙해진 플레이어들은 산더미처럼 음식이 차려진 식탁들이 나오는 걸 보고 환호했다.

“김태현 최고다!”

“역시 이래야 김태현이지!”

“아, 아니. 이게 끝이야? 기사에 좀 싣게 내용 좀….”

물론 기자들은 당황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10초 컷을 하다니!

“와구와구. 와, 이거 진짜 맛있는데?”

[<아탈리 왕국 귀족의 3단 케이크>를 먹었습니다.]

[신성력이 오릅니다.]

[체력이 오릅니다.]

[마법 스킬이 오릅…]

[……]

“우걱우걱. 이거 맛있다.”

“평소에 먹을 기회가 없는 거니까 지금 잔뜩 먹어둬야… 어, 이거 뭐지?”

“왜?”

“아니… 방금 엄청 이상한 맛이 느껴졌는데… 기분 탓이겠지.”

가끔 섞여 있는 괴식 요리는 덤!

평소에 먹을 수 없는 고급 요리들을 대량으로 풀어댔으니 분위기는 당연히 좋아졌다.

그 틈을 타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이 나섰다.

“기념품 사세요! 기념품!”

“앗. 이거 얼마죠?”

“쌉니다. 1골드면 됩니다.”

“싼… 싼가?”

“어허, 이거 다른 곳에서 못 구해요. 게다가 장인들이 만든 명품이에요.”

“이 폭죽들도 한번 보세요!”

“김태현 폭죽이라니, 태현 님이 만드신 건가요?”

“그렇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고 아닐지도 모르고… 흠흠.”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이곳저곳을 누비며 싹 팔아치웠다.

‘대박이다!’

‘골드를 투자한 보람이 있어!’

‘펠마스한테 골드를 바쳐도 충분히 남는 장사야!’

* * *

[즉위식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아탈리 왕국의 국왕이 되었습니다.]

[칭호: 아탈리 왕국의 국왕을 얻었습니다.]

[왕국 운영 권한…]

[모라 시 관련 권한…]

[각종 권한들을 얻었습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명성이 크게 오릅니다.]

[신성이 크게 오릅니다.]

[전술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고급 전술 스킬이 최고급 전술 스킬로 바뀝니다.]

“!”

레벨 업과 스킬들 대폭 성장. 힘들게 즉위식을 준비한 만큼 뿌듯한 보상이었다.

[<냉정한 지휘>, <영혼 착취>, <뛰어난 지휘관에 대한 믿음> 스킬들이 합쳐집니다. 최고급 전술 스킬에 오르기까지 어떤 전술을 썼느냐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집니다.]

[<폭군의 지휘> 스킬을 얻었습니다.]

<폭군의 지휘>

폭군다운 지휘로 모든 능력치를 급격히 상승시킵니다. 일정 시간이 지날 때마다 공포 수치가 상승합니다. 공포 수치가 한계에 도달하면 부하들이 도주할 수 있습니다.

“…?”

태현은 당황했다. 이건 너무 부작용이 심한 스킬 아닌가?

한 번 쓰면 엄청난 버프가 들어가긴 하지만, 잘못 쓰다가는 자칫 자기 손으로 부하들을 전부 쫓아버릴 수 있는 스킬!

‘최고급 전술 찍었는데 이런 걸 주다니….’

태현은 랜덤과 아슬아슬한 스킬들이 충분히 많은 상태였다. 안정적인 걸 원했는데, 이렇게 되다니.

물론 이제까지 태현이 해온 전술에 맞춰서 나온 거지만!

어떻게 보면 인과응보!

[국왕 작위를 갖고 있습니다.]

[최고급 전술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아탈리 왕국 첩자> 양성이 가능해집니다.]

[<아탈리 왕국 기사단> 양성이 가능해집니다.]

[<아탈리 왕국 근위대>…]

[<아탈리 왕국 군단병>…]

그래도 최고급 전술 스킬 덕분에, 왕국에서 고용 가능한 대부분의 NPC들을 고용할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아탈리 왕국 왕궁 사용 권한을 얻었습니다.]

[왕궁 창고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왕궁 비밀 창고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음. 길드 동맹한테서 훔치고 남은 건 저기에 넣으면 되겠군.’

정말 확실하게 숨길 수 있는 창고였다.

[몇몇 아탈리 왕국의 귀족들이 불만을 크게 품습니다.]

[그들은 곧 찾아와 항의할 것입니다.]

‘이건 무시하고.’

태현은 쿨하게 무시했다.

항의하거나 불만을 품거나 말거나, 태현은 수도와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를 이미 점령한 상태였다.

지들이 어쩔 건데?

[새로운 아탈리 국왕의 소문을 듣고 정체불명의 손님이 찾아옵니다.]

“…??”

* * *

“이렇게까지 해야 해?”

“분명 암살자일 거야.”

“아니, 암살자가 아닐 수도 있잖아.”

“맞아요. 꼭 암살자란 법은 없지 않나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케인, 이다비, 유지수는 그렇게 말하며 준비했다.

타이럼 사냥꾼들까지 기둥 뒤에 배치해놓은 철저한 준비!

“아니야. 암살자가 분명해.”

“…….”

자기 자신에게 저렇게 적이 많다는 걸 확신하기도 힘들었다. 케인은 다른 의미로 감탄했다.

“자. 여기 있다가 내가 신호 보내면 바로 달려드는 거다.”

원래라면 신하들과 귀족들로 반쯤 차 있어야 할 왕좌 앞 홀이, 지금은 매복 장소로 바뀌어 있었다.

“저, 저는 오ㅃ… 아니, 선배를 싫어할 사람이 많지 않다고 생각해요!”

유지수가 용기를 내어 말했다. 그러자 태현이 유지수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진지하게 말했다.

탁-

“지수야.”

“?!”

“그건 아니야.”

“…!!”

밖에서 펠마스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백작님… 아니, 폐하. 손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그보다 폐하. 이런 시종장 역할은 다른 놈을 시켜도….”

“안 돼. 한 푼이라도 아껴야지.”

잡다한 일을 처리하는 시종장 역할을 맡게 된 펠마스는 투덜거렸다.

시종장부터 시작해서 온갖 잡무는 다 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덜컥-

문이 열리고 정체불명의 손님이 들어왔다. 전신을 로브로 덮고서 가린 모습이 아주 수상해 보였다.

-내가 뭐라고 했냐? 암살자라니까?

-저, 저렇게 보니까 확실히 암살자 같긴 한데….

-진짜 암살자인가요? 누가 보냈지?

-누가 안 보냈는지 찾는 게 더 빠를 것 같다.

“폐하.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새로운 국왕이 되신 걸 축하합니다.”

“그래.”

태현은 말과 함께 무기에 손을 뻗었다. 상대가 언제 본색을 드러낼지 경계하면서.

“제가 누군지 궁금하실 겁니다. 저는 악ㅁ….”

“악마! 악마 쪽에서 보낸 암살자였군!”

“공격! 모두 공격!”

케인이 외치자 타이럼 사냥꾼들이 활을 들고 조준했다. 케인은 기다리지 않고 먼저 돌격했다.

쾅!

“뭐, 뭡니까? 뭡니까?!”

“시끄럽다, 이 악마 암살자! 누가 보낸 거냐! 에다오르냐! 아다드냐!”

“참고로 아다드의 부하 갈그랄을 죽인 건 케인이다!”

“야!!!”

에다오르, 아다드. 둘 다 태현에게 엿을 먹은 마계의 층을 지배하는 악마 공작들이었다.

둘이라면 태현에게 악마 암살자를 보내도 이상할 것 없었다.

쾅-

[막대한 힘에 제압당합니다!]

[움직일 수 없습니다!]

“?!?!”

케인은 깜짝 놀랐다. 순간 하늘이 빙글 돌더니 그대로 제압당한 것이다.

“전 에다오르와 아다드 둘 다 관계없는 악마입니다. 공격을 멈춰 주십시오, 폐하!”

케인이 잡힌 걸 본 타이럼 사냥꾼들이 수군거렸다.

“어떡하지? 인질로 잡혔는데?”

“그냥 쏘면 되지 않을까? 저놈 튼튼하던데.”

“이것들아!!”

“일단 중지!”

타이럼 사냥꾼이 활을 내리자 악마 사신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케인을 노려보며 말했다.

“폐하. 이런 성급한 부하를 데리고 있는 건 명성에 흠이 갈 수 있는 행위입니다.”

“하하. 미안하게 됐군. 케인이 좀 성급하지.”

“야!!!!”

지가 준비하라고 해놓고!

케인은 억울했지만, 이미 악마 사신은 케인이 한 것이라고 확신하는 모습이었다.

“에다오르도 아다드도 보낸 게 아니라면 여긴 무슨 일로 온 거지?”

“후후후. 폐하의 소문은 많이 들었습니다. 마계의 악마 공작들을 상대로 인간이 그렇게 활약을 하다니. 제 주인님께서도 그 소문을 듣고 흥미로워하셨지요.”

“내가 좀 악마들을 많이 괴롭히긴 했지.”

태현은 긍정했다. 확실히 악마 입장에서는 태현만큼 짜증 나는 놈도 없을 것 같았다.

뭐만 하려면 와서 산통을 깨는 놈!

“그냥 영웅일 때에는 제 주인님의 제안을 받을 자격이 없었지만, 이제 폐하가 되셨으니 제 주인님께서도 정식으로 제안을 하시려고 합니다. 저희 주인님과 손을 잡으시지 않겠습니까?”

[악마 데르벤이 비밀스러운 동맹을 제안합니다!]

[동맹을 받을 경우 악마의 후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