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667화
모젝의 비장한 각오와 상관없이, 이미 이길 수 있는 기회는 없었다.
제무반은 그대로 모젝을 끝내버렸다.
[결투에서 패배했습니다.]
[원정대의 사기가…]
‘쯔쯔.’
태현은 혀를 찼다. 이 정도는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 정도도 못 깨다니.
제무반은 기세등등해져서 외쳤다.
“누가 나를 상대하겠느냐! 나와 봐라!”
모젝 다음 순서인 플레이어가 나가야 할 차례지만, 왜인지 바로 나가지 않고 미적거렸다.
“왜 안 나가?”
“나, 나는 취소할게. 너 나가.”
취소 때문에 3순위까지 밀려오는 차례! 그러자 3순위였던 플레이어도 물러섰다.
“나도 좀… 너 나갈래?”
‘기회다!’
에반젤린은 눈을 반짝였다.
순위는 한참 뒤긴 했지만, 지금 분위기를 보니 손 들고 나서겠다고 하면 다들 등을 떠밀어줄 분위기였다.
“내가 나ㄱ….”
타타탓-
“??”
누군가 앞으로 뛰쳐나갔다.
태현이었다.
“김태현 백작! 정정당당하게 승…컥!”
대화고 뭐고 필요 없이 창부터 뽑아서 찔러 넣고 보는 태현!
[<조금 더 깨어난 카르바노그의 무딘 창>을 찌르는 데 성공했습니다. <카르바노그의 발목 공격>이 들어갑니다.]
철푸덕!
데미지는 없지만 창을 맞자 제무반은 그대로 쓰러졌다.
정정당당한 대결을 기다리고 있던 제무반에게는 당황스러운 기습!
“김, 김태현 백작! 이런 비겁한… 크악!”
태현은 물 흐르는 듯한 동작으로 창을 집어넣고 검을 꺼내서 후려치기 시작했다.
이미 나오기 전에 각종 스킬로 데미지를 뻥튀기시켜놓은 상황.
-아키서스 검법!
쓰러진 제무반은 제대로 된 반격도 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얻어맞았다. 아키서스 검법이 발동된 대만불강검은 때릴 때마다 추가 효과를 일으켰다.
[상대의 약점을 노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아키서스 검법의 추가 효과가 발동합니다.]
[<태양의 눈>이 작렬합니다.]
[상대의 약점을 노리는 데…]
[<연쇄 화염 화살>이…]
“으아아악!”
하필이면 추가 효과도 극상성인 효과들!
꿀꺽-
플레이어들은 압도된 채로 싸움을 지켜보았다. 방금 전에 모젝을 완전히 갖고 놀던 제무반이 그냥 두들겨 맞고 있었다.
물론 제무반이 작정을 하고 태현과 맞섰다면 이렇게 비참하게 두들겨 맞지는 않았겠지만, 태현 상대로 기습을 당하고 선공을 허가한 대가는 가혹했다.
순간적으로 넣는 폭딜로 따지자면 판온에서 적수를 찾기 힘든 게 태현!
[<피 흘리는 제무반>이 쓰러집니다!]
[결투에서 승리했습니다. 원정대의 사기가 오릅니다.]
[기습을 가했습니다. 악명이 오릅니다.]
[<고대 뱀파이어의 징표>를 얻습니다.]
“?”
태현은 특이하게 생긴 붉은색 징표를 들고 확인했다.
고대 뱀파이어의 징표:
내구력 15/15
고대 뱀파이어들이 자신의 신분을 나타내기 위해 갖고 있던 징표다. 징표 자체에는 별다른 힘이 없지만, 뱀파이어들 사이에서는 의미 깊은 상징이다.
“아아아앗!”
뒤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에반젤린이 손가락으로 징표를 가리키며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러던 에반젤린은 태현과 눈이 마주쳤다.
‘아차!’
태현의 눈빛을 본 순간 에반젤린은 실수했다는 걸 깨달았다.
티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태현의 눈빛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뭘 주고 찾아갈래?
호구, 아니, 에반젤린을 뜯어내는 건 나중에도 할 수 있었다. 태현은 일단 명령부터 내렸다.
“공격 개시! 공격 개시!”
“개시하랍신다!”
“폭탄 갖고 와! 폭탄 갖고 와!”
쿠르릉-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은 신이 나서 준비해두었던 병기들을 닥치는 대로 앞으로 끌고 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서 성벽 위에 있던 왕국군과 살라비안 교단원들은 왠지 모를 으스스함을 느꼈다.
뭔가 무섭다!
“방어 마법을 펼쳐라! 살라비안 님이 주신 마법을….”
슈우우우-
콰콰콰쾅! 콰쾅! 콰콰쾅! 콰콰콰쾅! 콰콰쾅! 콰쾅! 콰쾅!
“아니 이런 미친놈ㄷ….”
콰쾅! 콰콰쾅! 콰쾅!
대화할 틈도 없이 미친 듯이 쏟아지는 폭탄 세례!
“계속 던져! 계속!”
“저기 방어막 있는데요?”
“계속 던지다 보면 깨지게 되어 있어! 던져!”
“골렘들 앞으로! 골렘들 앞으로!”
-우리도 던지겠다! 우리도 던지겠다!
-재밌어 보인다!
영지에 있던 거인족들까지 나서서 폭탄을 집어 던지기 시작했다.
거대한 덩치를 가진 거인족들은 존재 자체가 공성 병기!
폭탄 몇 개씩을 묶어서 던질 때마다 강한 폭발이 성벽에서 터져 나왔다.
[무지막지한 힘으로 폭탄을 던졌습니다. 추가 폭발이 일어납니다!]
[성벽을 꿰뚫고 폭탄이 안으로 들어갑니다!]
꽝! 꽝! 꽈르릉!
“와…!”
“이건 진짜…!”
아까까지 태현이 제무반을 잡는 것을 보고 압도당했던 사람들은, 이제 다른 것을 보고 압도당하고 있었다.
눈앞에서 화려한 불꽃놀이가 펼쳐지고 있었다.
마법 한 방 쓰지 않고도 성벽과 성문을 때려 부수는 마법!
이것이 바로 기계공학이다!
“저 위에 놈들이 계속 방어막 친다! 가서 폭탄 던지자! 글라이더 준비!”
“글라이더 준비했습니다!”
“발사!”
파아앗!
콰아앙!
[급조된 글라이더 발사기가 폭발합니다!]
“…….”
“괜찮다! 이 정도 희생은 원래 예상하고 있었다! 다음 타자 준비!”
“발사!”
슈우우욱!
방금 동료가 폭탄 사고로 로그아웃 당했는데도 무시하고 날아가는 대장장이들!
그들은 날아오는 공격 따위는 무시하고 닥치는 대로 폭탄을 집어 던졌다.
쉬이익-
쾅! 콰쾅!
“으아악!”
“크헉!”
살라비안 교단의 사제들은 폭탄 세례를 견디지 못하고 성벽 아래로 후퇴했다.
그러자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은 앞으로 접근했다.
더 강하고 더 많이 던져 넣기 위해서!
“우리도 가자!”
“공격 시작!!”
멍하니 지켜보고 있던 플레이어들도 정신을 차렸다.
마법사부터 시작해서 궁수들은 닥치는 대로 공격을 날리기 시작!
자리에 있는 원정대 플레이어들도, 이 공성전을 구경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도, 한 가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저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은 공성전에서는 최강의 창이나 다름없다!
저 인원이 저렇게 공격을 했을 때 어떤 성이 버틸 수 있을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 * *
‘성문이 안 깨졌군.’
성벽은 슬슬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는데도 멀쩡한 성문이 눈에 거슬렸다.
태현은 고대의 망치를 꺼내들고 달려들었다.
수많은 폭탄이 터지고 있는데도 망설임 없는 움직임!
“멈추지 마! 계속 쏴!”
“태, 태현 님…!”
“저게 바로 기계공학의 정신이야! 봤냐! 모두들 봤냐고!”
태현은 안 죽을 자신이 있어서 그렇게 말한 것이었지만, 대장장이들은 다른 뜻으로 받아들였다.
광기 그 자체!
“쏴!!! 쏴!!!!!”
‘이 자식들 이상하게 내 쪽으로 더 많이 던지는 거 같은데. 기분 탓이겠지.’
태현은 그렇게 생각하며 망치를 휘둘렀다.
꽝, 꽝, 꽝….
꽈르릉!
[아탈리 왕국 수도 1 성문이 무너집니다!]
[공성전에서 처음으로 왕국 수도에 발을 디뎠습니다. 명성이 크게 오릅니다.]
[공적치 포인트가 쌓입니다.]
[칭호: 공성전 선봉장을…]
무너진 성문과 성벽 너머로 준비하고 있는 왕국군과 교단 괴수들이 보였다.
압도적인 폭탄 공격을 버티지 않고 물러선 덕분에 피해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난전의 예감!
그 순간 뒤에서 기사들의 함성이 들려왔다.
“오송 기사단 출진!”
“부카드 기사단 출진!”
“피브레 기사단 출진!”
“와! 기사단이다!”
“기사단이 나섰어!”
평소 기사단을 볼 일 없는 플레이어들의 환호가 뒤따랐다.
두두두두두두두-
“돌격!”
평원을 울리며 돌격하는 기사들!
어마어마한 기세와 소리가 주변을 뒤덮었다.
‘잠깐. 지금 돌격하면….’
태현은 당황했다. 성벽이랑 성문이 무너져서 작은 산이 만들어진 상태인데, 거기에 기사들 돌격해서 뭐하려고?
히히히힝!
태현의 예측은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기사들은 대부분 잔해 앞에서 발을 멈춰야 했다.
몇몇 기사들은 잔해를 날려버리고 돌격에 성공했지만 소수일 뿐!
기사들이 멈추자 대기하고 있던 살라비안 교단 괴수들이 위, 아래, 정면에서 덤비기 시작했다.
캬아아악!
“덤벼라! 이 괴물들!”
카카캉! 카캉!
기사들도 물러서지 않았다.
피 튀기는 난전!
기사 한 명이 죽을 때마다 괴수 한 마리가 쓰러지는 개싸움이 벌어졌다.
태현은 생각했다.
어떻게 이렇게 생각한 대로 잘 움직여줄까!
“백작님! 적의 저항이 생각보다 강합니다! 잠깐 후퇴해서 마법사들의 지원을 받는 게….”
‘앗.’
기사단장처럼 보이는 남자가 오송 백작에게 외치자, 오송 백작은 호통을 쳤다.
“무쓴 소리! 명예로운 기사단의 이름으로 어떻게 후퇴를 할 수 있나! 절대 후퇴는 없다! 모두 돌격!”
태현은 흐뭇하게 웃었다. 화술 스킬을 쓸 필요도 없이 싸우는 그들!
기사단이 먼저 선봉에 뛰어들어서 가장 피해를 보는 역할을 해주자, 뒤에 있던 플레이어들은 부담 없이 전장에 뛰어들 수 있게 됐다.
“우리도 가자!”
“와아아아아아!”
어마어마한 숫자들의 플레이어들이 망설임 없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파티별로 구성된 플레이어들은 서로 힘을 합쳐 살라비안 교단 괴수 하나를 레이드하거나, 전사 하나를 공격했다.
“비겁한 인간 놈들 같으… 으억!”
“찔러! 찔러!”
“성수 던져!”
[살라비안 교단 괴수가 아키서스의 성수를 맞았습니다.]
캬아아악!
“저놈 스킬 쓴다! 주의해!”
콰당탕-
“??”
스킬을 쓰려던 괴수가 넘어져서 뒹굴자 플레이어들은 당황했다. 왜 혼자서 스킬을 실패하지?
“일단 지금이다! 때려!”
“밟아! 밟아!”
적의 불행은 나의 행복!
이유는 모르겠지만 일단 쓰러졌으니까 패자!
플레이어들은 신이 나서 괴수를 밟아댔다.
-하찮은 인간들이 잘도 날뛰는구나!
“!”
[타락한 뱀파이어, 흡혈백작 루콘이 나타났습니다!]
[흡혈백작 루콘은 오랜 시간을 살아온 고대의 뱀파이어로서 눈이 마주치는 상대를 굳게 만듭니다.]
[루콘의 시선을 주의하십시오!]
“모두 조심해!”
에반젤린은 메시지창을 보자마자 경고를 날렸다. 여기서 살라비안 교단과 뱀파이어에 대해 가장 잘 아는 것은 그녀였다.
그녀가 알기로 흡혈백작 루콘은 살라비안 교단의 간부 중 하나!
온갖 특수 능력과 스킬로 무장한 위협적인 보스 몬스터였다.
-피의 폭풍!
“으아악!”
루콘이 스킬을 사용하자 회오리가 치며 주변 사람들을 날려버렸다.
‘조심하라고 했는데!’
에반젤린은 안달을 내며 루콘을 상대하기 위해 움직이려고 했다.
지금 루콘을 상대할 수 있는 건 그녀뿐!
그러나 루콘은 다른 곳으로 움직였다.
바로 태현을 향해!
“김태현! 조심해!”
“!”
괴수들을 대만불강검으로 미친 듯이 찔러대며 썰어 넘기던 태현은 에반젤린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옆에서 같이 싸우던 케인은 감탄했다.
“쟤는 맨날 너한테 괴롭힘당하는데 참 착하다야.”
“누가 들으면 오해할 소리 하지 말자고!”
-김태현 백작. 어디 한번 내 시선을 마주해 봐라!
[루콘이 살라비안의 시선을 사용합니다!]
“케인, 알아서 잘 싸우고 있어라.”
“어, 어??”
타탓-
태현은 재빨리 도망쳤다. 그걸 본 루콘은 곧바로 태현을 따라갔다.
‘역시.’
태현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다른 건 몰라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살라비안 교단원들이 가장 싫어하는 건 태현이라는 것!
다른 플레이어들이 넘쳐나는데 그걸 내버려 두고 태현을 쫓아오고 있지 않은가.
“김태현! 어디 가?! 같이 싸워!”
에반젤린은 태현을 불렀지만 태현은 무시하고 계속 움직였다.
그 방향은….
“오송 백작님!”
“김태현 백작…! 잠깐. 저 뒤에 쫓아오고 있는 놈은….”
바로 오송 백작과 백작이 이끄는 기사단이 있는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