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544화
태현은 차근차근 생각을 정리했다.
지금 쓰고 있는 태현의 무기들도 어마어마한 무기들이었다.
<유성>이나 <에다오르의 뜨겁게 끓어오르는 진홍빛 대검> 같은 무기들은 지금 경매장에 올라와도 소란을 일으킬 것이다.
그렇지만 태현은 더 강력하고 폭발적인 공격력을 가진 무기를 원했다.
물론 그런 무기는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실제로 태현이 이번에 우르크 대족장의 창고를 털려다가 실패하지 않았는가.
보통 플레이어들은 게임하면서 한 번 보기 힘든 것!
‘+8…… +9까지 가면 일반 아이템이어도 성능이 어마어마해지지. 내가 직접 만들고, 거기에 불안정한 옵션까지 단 다음 강화하면 어디 가서 밀리지는 않을 거다. 한 번 해볼 가치는 있어!’
결정을 내린 태현은 이다비에게 힘차게 말했다.
“이다비!”
“네?”
“이제 강화는 그만하자! 모두 챙겨!”
강화 스킬 레벨을 올리지 못한 건 아쉬웠지만 지금은 여기까지면 됐다.
영지로 돌아가서 다른 대장장이들의 도움을 받아 이번 아이디어를 시험해볼 생각이었다.
성능 좋고 안정적인 아티팩트 무기 대신, 불안정하고 잘 망가지더라도 폭발적인 성능을 가진 무기!
“네! 좋아요!”
이다비는 벌떡 일어서서 강화석들과 장비들을 모조리 집어넣기 시작했다.
늦게 하면 태현이 다시 강화를 할까 두려워하는 모습이었다.
그걸 보니 태현도 살짝 양심에 찔렸다.
“아, 그러고 보니 저번에 물어본 거 말인데.”
“네? 뭐요?”
“그 판온 아이템 선물로 주는 거.”
“……그, 그러고 보니 그런 이야기도 했었죠?”
이다비는 태현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시선을 피했다.
죄책감!
“다른 사람한테도 물어봤는데 그렇다고 하더라고. 너한테 물어보길 잘한 거 같아.”
“네?! 진짜요?!”
이다비도 처음 듣는 소리!
요즘 선물로 판온 아이템이 유행한다니!
“그래서 말인데, 판온 아이템이면 어떤 게 좋을까?”
“역…… 역시 갑옷 아닐까요? 묵직하고 투박하고 성능 좋은 갑옷만큼 좋은 게 없지 않을까…… 싶은데요…….”
이다비의 말끝은 자신감 없다는 듯이 흐려졌다.
양심이 찔렸던 것이다.
“갑옷? 흐음. 그렇군. 그렇군. 잘됐네. 내 무기 만들고 강화하면서 갑옷이나 만들어볼까…….”
“……응? 잠깐만요. 강화라뇨. 다시 하실 거예요?”
“……응.”
“대체 왜……!”
“아, 아니. +10까지 노리지는 않을 거야. 거기까지 노리는 건 너무 타산이 안 맞으니까.”
“앗. 그러면요?”
“내가 쓸 만한 무기 만들어서 +8~+9까지만 강화해 보려고.”
“태현 님이 쓰실 무기라면 힘들지 않을까요? 재료 구하는 것도 만만치 않을 텐데.”
“응. 그래서 재료는 일반적인 것만 쓸 거야. 철 같은 거.”
불안정한 무기 강화의 핵심은, 강화 도중 무기가 박살 나더라도 타격이 적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8, +9 성공률이 20%, 10%라도 거기까지 가는 확률까지 합치면 그 밑으로 떨어졌다.
그걸 생각해 보면 귀한 광석이나 보석은 재료로 쓸 수 없었다.
애초에 불안정한 옵션을 달려는 것 자체가 무기 재료의 한계를 보완해 보려는 것!
“그런 거라면 이번에 구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되겠네요.”
“그렇지. 몇 개야 도중에 박살 나겠지만 어떻게든 커버가 될 거야.”
“다행이에요. 정말……! 망하는 줄 알았어요! 안 그래도 요즘 영지 수입 관리 때문에 머리 아파 죽겠다고요!”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의 골드를 관리하고 있는 이다비 입장에서는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했다.
영지에서 골드 먹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던 것!
“그, 그래도 요즘 나름 영지 잘 굴러가지 않아? 새로운 플레이어들도 많이 오고 건설도 진행되어가고 있고…….”
“그 사람들한테 들어가는 골드가 더 많다고요. 건설은 당연히 골드 많이 잡아먹고요!”
저번 카르바노그 토끼 소동 이후 태현의 영지에는 새로 온 플레이어들이 늘었다.
문제는 이 플레이어들이 돈이 되는지였다.
나오는 것보다 들어가는 게 더 많은 플레이어들!
-아키서스의 이름으로 축복을 내려드리겠습니다! 모두 아키서스를 믿으십시오!
-농작물을 더 많이 자라게 하고 싶으십니까! 아키서스를 믿으십시오!
-더 나은 물건을 만들고 싶으십니까! 아키서스를 믿으십시오!
-배가 고프십니까? 아키서스의 이름으로 음식을 드리겠습니다!
“뭐 갈락파드가 아키서스 전도하는 데에 열심이니까…… 그래도 다른 놈들보다는 낫잖아? 다른 놈들은 아키서스 전도할 생각도 안 하는데. 교단 유지하려면 아무래도 갈락파드가 있어야…….”
갈락파드는 과한 면이 있어도, 펠마스나 에드안보다는 훨씬 더 괜찮은 NPC였다.
무엇보다 교단 유지, 관리, 성장이 가능한 NPC!
아키서스 교단에서 이 정도 NPC면 무릎 꿇고 ‘감사합니다!’를 해야 할 NPC였다.
말하던 태현은 뭔가 이상한 걸 깨달았다.
“……잠깐만. 아키서스의 이름으로 음식을 준다니? 그건 처음 듣는데?”
“네? 갈락파드가 영지 내에서 공짜로 음식 풀잖아요? 플레이어들 먹고 사냥 가라고.”
“처음 듣는 소린데?!?!”
“모르고 계셨어요?!”
“아니, 지금 우르크 지역에서 퀘스트 깨느라 바빴는데 영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일일이 확인할 시간이 있겠어?”
“저는 당연히 태현 님 허락받고 한 줄 알았죠!”
이다비의 잘못이 아니었다.
이다비의 상식 안에서는, 태현의 허락도 안 받고 멋대로 일을 벌이는 NPC가 이상한 것!
“갈락파드 이놈……! 잠깐만, 아키서스 교단에 있는 건 하급 사제들과 성기사들, 그리고 쓸데없는 NPC들밖에 없는데 요리사는 어디서 구한 거야?”
“당연히 요리사 플레이어들을 퀘스트 주고 고용했죠.”
“…….”
태현은 얼굴을 감싸 쥐었다.
* * *
“갈락파드 님! 여기 이번에 거둔 <축복받은 밀>입니다! 이걸 바치겠습니다!”
“갈락파드 님! 저는 여기 <상처 하나 없는 마력 넘치는 사과>를 갖고 왔습니다! 이걸 바치겠습니다!”
“아주 좋다. 축복을 받아가도록.”
“까르륵!”
“아이 좋아!”
새로 영지에 도착한 농부 플레이어들은 농작물을 바치고 공적치 포인트를 쌓아갔다.
보통 다른 교단의 퀘스트를 깨는 플레이어들은 공적치 포인트를 바로 쓰지 않고 쌓아 놨다.
조금 모은 걸 쓰는 것보단, 많이 모아서 교단의 아티팩트 같은 것과 바꾸는 게 효과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키서스 교단을 믿는 플레이어들은 아니었다.
하루 받아서 하루에 다 쓰는 그들!
애초에 다른 교단들과 달리, 아키서스 교단을 믿는 플레이어들은 교단 공적치 포인트를 많이 쌓으면 뭐가 좋은지 몰랐다.
-아키서스 교단은 공적치 포인트 많이 쌓으면 바꿀 수 있는 거 있나?
-아티팩트? 근데 관련 정보가 하나도 없던데. 없는 거 아니야?
-교단 사제들이나 성기사들 빌릴 수 있나? 근데 물어봐도 빌릴 수 있는 항목 없던데. 이것도 안 되는 거 같은데.
-그러면 그냥 축복이나 받자!
-그래! 안 그래도 새로 만들 아이템 있는데 그냥 써야지!
아키서스 교단 공적치 포인트는 제작 직업 플레이어들에게 매우 유용했다.
이제 본인이 직접 축복을 받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아키서스 사제들까지 자리에 불러서 제작 과정에 도움을 받는 그들!
-여기! 여기에 축복 걸어주시죠!
-축복 포션 다 갖고 와! 지금 간다! 3, 2, 1!
결과물이 랜덤일 때가 있긴 했지만 효과 하나만은 확실했다.
그 결과…….
“으음. 창고에 농작물들이 가득 쌓였군.”
“헤헤, 갈락파드. 이렇게 농작물들이 쌓였으니…….”
펠마스는 은근슬쩍 갈락파드에게 말을 걸었다.
산더미처럼 쌓인 농작물들. 게다가 하나하나가 아키서스의 축복으로 인해 품질이 좋았다.
이걸 잘 판다면……!
“그래. 많이 쌓였군.”
“그럼~ 그렇지! 우리 교단 내에서는 이걸 다 소모하지도 못하잖아?”
현재 아키서스 교단 성기사들, 사제들, 기타 영지 NPC들이 먹어도 한참 남을 양!
“그렇군.”
“그렇다면 역시 팔ㅇ…….”
“이걸 신도들에게 뿌려야겠다.”
“……응? 잠, 잠깐만. 그건 좀 아니지 않아? 팔면…….”
“어허! 네 이놈 펠마스! 또 네 버릇을 못 고치고 어디서 헛소리를! 아키서스 님의 축복을 받아 무럭무럭 자란 작물들을 어디 감히 골드로 바꾸려고 하느냐!”
“아, 아니. 사람이 이것만 먹고 살 수는 없잖아…… 골드도 있어야…… 영지 관리를…….”
“시끄럽다!”
“힉!”
무력으로 붙는다면 펠마스는 갈락파드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펠마스는 황급히 전략을 바꿨다.
“아니. 이걸 뿌리는 것도 좀 그렇잖아? 어떻게 뿌리게?”
“영지에 굶주리는 모험가들이 많을 테니, 이걸 요리해서 먹고 가게 하면 더 열심히 사냥할 수 있겠지. 이 근처 영지의 몬스터들도 줄어들 테고, 결과적으로 영지가 더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아키서스 님 만세!”
“아키서스 님하고 상관이 없…… 헉. 그게 아니라, 우리 요리사도 없잖아?”
“그렇긴 하군.”
“그렇지? 그러니까 그냥 팔…….”
“요리사를 모집해라!”
“야!!”
* * *
“응? 퀘스트 떴네? 요리사 모집?”
“난 패스. 지금 재료 없어. 필드로 나가서 재료 구해야 해.”
“아냐. 퀘스트창 읽어봐. 재료 준다는데?”
“뭐? 재료를 줘? 진짜?”
“가서 요리만 하면 된다는데?”
“그래? 그러면 해볼까?”
요리사 플레이어 입장에서 재료도 주고 보상도 주니 솔깃한 퀘스트였다.
게다가 아키서스 영지에서 돌아다니는 플레이어라면, 교단 퀘스트가 얼마나 쏠쏠한지 알고 있었다.
-더 크고, 더 강한 축복!
-축복을 내놔라……! 축복을 내놓으란 말이다!
제작 직업이 한 번 맛 들이면 절대 아키서스 축복 없이 제작을 할 수 없다는 말까지 있었다.
“무슨 요리를 하면 됩니까?”
“알아서 해서 나가는 모험가들에게 먹이도록.”
“네? 진짜요?”
“알아서 해라. 나는 요리는 모른다.”
쿨하게 지시하고 떠나 버리는 갈락파드!
평소와는 너무 다른 퀘스트 내용에 요리사 플레이어들은 당황했다.
“진짜 마음대로 해도 돼?”
“재료는 여기 있긴 한데…….”
당황하던 요리사 플레이어들은 곧바로 깨달았다.
이건 기회라는 것을!
“평소에 못 만들었던 거 만들어본다!”
“재료 소모가 너무 심해서 못 만들어봤던 요리인데…… 이것도 만들어봐야지!”
이다비가 들었다면 피눈물을 흘릴 소리를 하는 플레이어들!
그러나 한 번 욕심에 불이 붙은 요리사 플레이어들은 멈추지 않았다.
덕분에 신이 난 건 전투 직업 플레이어들이었다.
“어? 공짜 요리야? 잘됐네. 요즘 이 영지도 잘나가나 봐. 이런 이벤트도 열고.”
“에이, 이런 거는 초보한테나 도움이 되지, 나 정도 되는 플레이어한테는 도움이 안 된다고. 공짜 요리 수준이라고 해봤자 뻔하지. 차라리 다른 곳에서 요리 사와서 먹는 게 도움이 더…… 아닛?!”
투덜거리던 고렙 플레이어는 먹자마자 나오는 진한 맛과 강력한 버프 효과에 기겁했다.
[<의욕 넘치는 새내기 요리사가 만든 호화로운 사과 파이>를 먹었습니다.]
[행운 스탯이 영구적으로 1 오릅니다.]
[일시적으로 민첩, 체력, 행운 스탯이 오릅니다.]
[……]
[……]
[<아키서스의 축복을 받은 사과> 버프를 받습니다.]
[<아키서스의 축복을 받은 설탕> 버프를 받습니다.]
[<아키서스의 축복을 받은 요리> 버프를 받습니다.]
요리 하나를 먹은 것치고는 믿을 수 없는 수준의 버프!
이미 재료부터가 아키서스의 축복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는데, 거기에 요리사들도 축복을 받고 요리를 하고, 사제들이 완성된 요리에 또 축복을 하니…….
과잉축복요리!
“내, 내구도가 안 깎여?!”
“공격을 이렇게 맞았는데 피했다고?!”
“이 거리에서 공격이 맞아?!”
전투 직업 플레이어들은 충격을 받았다.
이제까지 다른 교단에서 받아왔던 버프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버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