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543화
“뭔데?”
“강화석이에요!”
“……!”
타다닥!
태현은 재빨리 달려갔다. 이다비가 가리킨 곳에는 강화석이 가득 들어 있는 상자들이 쌓여 있었다.
[오크들의 주술을 위한 강화석! 고블린들은 건드리지 마시오!]
“이거 누가 쓴 거야?”
“그, 그게 지금 중요한가요?”
이다비의 말이 맞았다. 지금 중요한 건 산더미처럼 쌓인 강화석이었다.
‘생각해 보니 강화 스킬을 의외로 안 쓰고 있었군.’
태현은 고대의 망치(+7)를 꺼냈다.
판온 1과 판온 2의 강화 스킬이 달라진 것도 모르고, 겁 없이 강화를 시도한 덕분에 +7까지 강화에 성공한 고대의 망치!
덕분에 이제까지 쏠쏠하게 잘 쓰고 있었다.
물론 그다음부터는 깨먹을까봐 겁나서 강화에는 손도 대지 않고 있었지만!
‘현재 강화 스킬 레벨은 5고…….’
강화 스킬 레벨이 5니, +4 강화까지는 실패하지 않고 강화할 수 있었다.
실제로 태현의 장비는 <고대의 망치>를 제외하면 기본적으로 다 강화를 해놓은 상태였다.
‘강화 스킬을 올리는 건 확실히 너무 비효율적이었긴 하지.’
태현이 강화 스킬을 내버려 두고 다른 스킬부터 올린 건, 판온 2에서 강화 스킬이 너무 비효율적으로 변했기 때문이었다.
강화 스킬 레벨이 5면 +4까지는 실패하지 않고 강화할 수 있긴 했지만, 그래도 스킬 레벨이 너무 더디게 올랐다.
안 그래도 스킬이 느리게 오르는데, 그 스킬을 올리기 위해서 수백, 수천 개의 장비를 구해 강화석을 꼬라박아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싸구려 장비는 오르지도 않았다. 나름 좋은 장비여야 했다. 강화석 가격도 만만치 않은데!
골드를 엄청나게 먹는 영지를 갖고 있는 태현에게는 강화 스킬을 올릴 만한 금전적 여유도,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그럴 시간에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나 기계공학 스킬, 아니면 직업 퀘스트를 깨는 게 더 빨랐다.
‘그렇지만 이렇게 강화석하고 장비들이 나오면…… 하고 싶어지는데…….’
태현의 손가락이 꿈틀거렸다.
판온 1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
-한 번도 강화를 안 해본 놈은 있어도 강화를 한 번만 한 놈은 없다!
한 번 시작하면 끊을 수 없는 강화의 마력!
판온 2에서 강화 스킬이 그렇게 까다롭게 변했는데도 아직 강화에 목을 매는 대장장이 플레이어들이 많다는 게 그 증거였다.
강화에 발을 디뎠다가 패가망신한 대장장이 플레이어들이 한둘이 아니었던 것!
“음, 조금만 해볼까…….”
“강화하시게요?”
“응. 여기 장비들도 있으니까.”
“강화하면 더 비싸게 팔 수 있으니까 그것도 나쁘지는 않겠네요.”
이다비는 빠르게 견적을 계산했다.
여기 있는 오크 장비들은 대충 레벨 제한이 100~150 정도인 장비들이었다.
지금이라면 고렙~랭커에게까지 팔 수 있는 장비란 뜻!
강화를 몇 번 더 하면 비싸게 팔 수 있었다.
“좋아. 한 번 해볼까?”
“……태현 님. 눈빛이 좀 이상한 것 같은데…….”
“하하. 착각이겠지.”
* * *
“앗. 함정이다. 지나가면 옆쪽 벽에서 화염이 나오는 고블린식 함정이래!”
“오오!”
“대단해! 주프! 역시 주프야!”
화기애애하게 떠드는 약탈자 플레이어들. 그 뒤에서 무표정하게 있던 케인이 입을 열었다.
“잘됐네. 전진.”
“……네?”
“전진하라고. 이것들아!”
“아니, 함정 있다니까요?”
“그러니까 전진해야지! 쉭쉭!”
케인은 진심으로 무기를 휘둘렀다. 그 서슬에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기겁해서 앞으로 피했다.
“으악! 저 인간 미쳤어!”
“뭐하는 거야!”
달칵-
[<옆쪽에서 화염이 나오는 고블린 식 함정>을 밟았습니다.]
“포션 꺼내!! 포션!”
“화염 저항 포션 어딨어?!”
“장비 갈아끼고 엎드려! 일단 엎드려!!”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약탈자 플레이어들!
케인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쳐다보았다.
“크하하하! 내가 김태현한테 당한 거의 1/100도 안 된다! 이 자식들!”
“…….”
옆에서 최상윤과 정수혁이 슬슬 거리를 벌렸다. 최상윤은 속으로 생각했다.
‘태현이 이 자식은 대체 뭔 짓을 했길래 사람이 이렇게 맛이 갔대?’
“헉, 헉헉…….”
“살았다!”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얼싸안았다.
원래 직격당했으면 바로 로그아웃 당할 뻔한 함정이었다. 그런 걸 서로 협력해서 살아남은 것이다.
원래 우정이나 팀워크는 찾아볼 수 없는 그들이었지만, 이번에 살아남자 갑자기 우정과 팀워크가 샘솟았다.
“이거야! 이렇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어!”
“맞아! 서로를 믿으면 된다고!”
“우리 꼭 같이 살아남는 거다!”
“……??”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정수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저렇게 합을 맞추는 건 우리가 하려고 했던 거 아닌가?’
대회를 준비하기 위해서 던전에 들어왔는데, 정작 이상한 놈들이 합을 맞추고 팀으로 완성되어 가는 기분이었다.
“시끄러, 이것들아!”
케인은 큰 소리로 외쳤다.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케인을 노려보았다.
방금 케인이 함정으로 밀어 넣은 덕분에 죽을 뻔한 것이다.
“너무하지 않습니까!”
“맞아! 케인 님! 사람이라면 이러면 안 되는 겁니다!”
“뭐라는 거야 이것들이? 남 삥 뜯고 다니던 놈들이 왜 착한 척이야!”
케인은 가당치도 않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최소한 선량한 플레이어가 저런 소리를 하면 흔들리기나 했을 것이다.
그런데 저놈들 중 한 명은 그를 벗겨먹으려고 했던 놈이 아닌가!
어디서 착한 척을!
“앞으로 가! 이것들아! 뒤로 물러서면 공격이다!”
“태현 님한테 이를 겁니다!”
“일러봐, 이 자식들아! 너희들은 여기에 김태현이 없는 걸 감사히 여겼어야 해! 김태현이 있었으면 포션도 못 쓰게 했을걸!”
* * *
“아, 왜 귀가 간지럽지.”
“태현 님. 그런데 강화 너무 많이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러다가 장비 부서지면 본전도 못 건지잖아요!”
“응? 애초에 부서지는 거 감안하고 하는 건데?”
태현은 여기 쌓여 있는 오크들의 장비들과 강화석으로 강화 스킬 레벨을 올릴 생각이었다.
나름 쓸 만한 장비들인 데다가 강화석도 많으니, 계속 시도하다 보면 강화 스킬을 올릴 수 있겠지!
목표는 강화 스킬 레벨 6.
여기 있는 걸 모두 써서 스킬 레벨 1이라도 올리면 엄청난 성과였다.
그만큼 강화 스킬은 올리기 어려웠으니까.
태현의 말을 이해한 이다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만두세요! 그거 팔면 얼마인데!”
“이 정도 희생은 감수해야지!”
“강화 스킬에 쏟아부어서 좋은 꼴 본 사람 없다고요! 저희 길드원 중에서 강화 스킬 때문에 접은 애들이 몇 명인데!”
이다비가 안절부절못했지만 태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망치를 휘둘렀다.
파괴는 강화하는 자의 숙명!
[강화를 시도합니다.]
[강화가 성공합니다.]
[우르크 불꽃 꼬리 부족의 오크 중갑옷(+7)이 우르크 불꽃 꼬리 부족의 오크 중갑옷(+8)로 변합니다.]
[강화 스킬이 오릅니다.]
[칭호:팔성 강화의 성공자를 얻었습니다.]
[서버에서 처음 얻은 칭호입니다. 각 스탯이 30씩 증가합니다.]
‘응?’
무심코 두드리다 보니 무심코 성공해 버린, +8의 영역!
파아앗!
<우르크 불꽃 꼬리 부족의 오크 중갑옷(+8)>에서는 화려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걸 본 이다비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설, 설마……?”
“8강이네. 다음 강화 가야지.”
+8인데도 망설이지 않고 다음 강화를 가려는 태현. 피도 눈물도 없는 냉정함이었다.
그러나 강화를 해본 대장장이 플레이어들이라면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강화는 멈출 수 없는 법!
“안, 안 돼……! 그만두세요……! 그걸 팔면! 그걸 팔면!!”
[강화를 시도합니다.]
[강화가 실패합니다.]
[우르크 불꽃 꼬리 부족의 오크 중갑옷(+8)이 파괴됩니다.]
[강화 스킬이 오릅니다.]
파지직!
고대의 망치 밑에 있던 갑옷이 그대로 파스스 소리를 내며 가루가 되어버렸다.
“…….”
“으…….”
“으?”
“으아아앙!”
“우냐?!”
진심으로 통한의 눈물을 흘리는 이다비!
태현도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었다.
“아, 아니. 강화를 하다 보면 이런 일은 원래 있는 법이잖아.”
“으흑흑!”
“미안. 미안.”
“그러면서 강화하지 마세요!”
입은 미안하다고 하면서 손은 다음 갑옷을 가져다가 강화를 시작하는 태현!
[강화를 시도합니다.]
[강화가 성공합니다.]
[……]
[우르크 불꽃 꼬리 부족의 불꽃 꼬리 장검(+7)이 우르크 불꽃 꼬리 부족의 불꽃 꼬리 장검(+8)로 변합니다.]
파아앗!
다시 한번 도착한 +8의 영역. 그제야 태현은 위화감을 느꼈다.
‘어? 뭔가 이상한데?’
강화 성공률이 너무 높았다.
현재 태현의 강화 스킬 레벨은 5.
강화는 한 단계 올라갈수록 성공 확률이 절반으로 팍팍 떨어졌다.
지금 태현의 강화 스킬 레벨로 +8 강화에 성공할 확률은 원래 6%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벌써 두 번째 성공하고 있었다.
우연치고는 너무 행운에 가까웠다.
“앗?! 다시 +8이면 이제 멈춰…… 안 돼! 안 된다고요!”
“실험을 해봐야 해!”
“그만두세요!!”
이다비는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태현은 멈추지 않았다.
[강화를 시도합니다.]
[강화가 실패합니다.]
“……아직 장비는 많아!”
* * *
이다비가 더 이상 흘릴 눈물이 없을 때쯤 되자, 태현은 몇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강화 성공률이 너무 높다!’
[칭호:9성 강화의 성공자를 얻었습니다.]
[서버에서 처음 얻은 칭호입니다. 각 스탯이 50씩 증가합니다.]
실제로 태현은 +9까지 강화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원래 싸구려 아이템 수백 개를 들고 와서 계속해서 강화를 해도 도달하기 불가능한 영역.
0.1% 미만으로 내려가는 확률을 계속 뚫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런데 태현은 뚫는 것에 성공했다.
‘강화에 행운 스탯이 영향을 끼치는 거였어? 젠장, 진작 알았으면…… 아니, 그래도 달라지는 건 없겠군. 지금 장비들은 더 이상 강화하기 무리니까.’
+8을 성공하는 건 다섯 번에 한 번 정도.
+9를 성공하는 건 열 번에 한 번 정도.
처음이 이상하게 운이 좋았던 거였지, 계속 장비를 강화해 보자 대충 평균을 구할 만한 확률이 나왔다.
‘20%, 10%…… 이 정도 확률이면 지금 갖고 있는 장비를 강화하는 건 무리겠고…….’
지금 태현이 착용한 장비들은 흔한 제작 템이 아닌, 어디서 구하기 힘든 유니크한 장비들이었다.
그런 장비들을 저런 확률을 믿고 강화할 수는 없었다.
그러다가 부서지기라도 하면 이번에는 이다비 대신 태현이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음…… 그렇지만 영 아쉬운데. 이 정도만 되어도 다른 놈들보다 훨씬 더 나은 조건이고…… 이걸 어떻게 활용할 수 없나…….’
태현은 자신이 갖고 있는 스킬들을 훑어보며, 지금 이 강화 스킬을 어떻게 유용하게 쓸 수 없나 고민했다.
<불안정한 장비 제작>
<불안정한 강화>
“……!”
<장비 위조>나 <장비 강제 착용> 같은 스킬들이 있는 라제단 대장장이의 스킬들.
‘불안정’ 옵션이 달린 아이템 제작 스킬이나 강화도 라제단 대장장이의 스킬이었다.
내구도는 엄청나게 하락하고 파괴 확률이 올라가지만, 성능이 전체적으로 올라가는 ‘불안정’ 옵션!
‘아예 <불안정한 장비 제작>으로 내가 쓸 만한 무기를 만든 다음, 거기에 강화까지 넣어서 사용하면 어떨까?’
발상의 전환!
계속 쓸 수 있는 좋은 무기를 만드는 게 아닌, 불안정한 장비를 만든 다음 강화해 무기를 만드는 것!
안 그래도 쓸 만한 무기를 찾고 있던 태현에게 이 발상은 끌리는 발상이었다.
‘불안정한 장비에 강화까지 넣고 최대한 성능을 끌어올리면 어지간한 아티팩트보다는 성능 좋지 않을까? 빠르게 부서질 테니 일회용일 수밖에 없긴 하겠지만 이건 숫자로 커버하면 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