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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505화 (505/1,826)

§ 나는 될놈이다 505화

태현은 딱히 ‘나 플레이어 아니라 NPC인데?’라고 한 적이 없었다.

말이야 맞는 말이었다.

두들겨 맞는 말!

“이…… 새끼가…… 그러니까 알고 우리를 그렇게 부려먹었다 이거지?”

“부려먹다니. 말이 좀 심하다. 난 너희들이 도와준다고 해서 받아들인 건데.”

“닥쳐!”

“하기 싫으면 하기 싫다고 말하면 됐잖아? 왜 말을 안 했냐?”

말을 하면 퀘스트가 실패하고 마을 내에서 평판이 깎이니 못한 것이었다.

물론 태현도 그걸 잘 알고 있었다.

“너 우리가 누군지는 알고 있냐?”

“‘너 내가 누군지 알아?’하는 놈들 중에 멀쩡한 놈들 본 기억이 드문데. 글쎄. 누구냐? <임모크오구호> 길드?”

태현의 말에 길드원들은 순간 멈칫했다.

“거긴 뭐 하는 길드야?”

“거꾸로 읽어봐.”

“……죽여 버린다!!!”

안 그래도 열 받았는데 계속 도발을 하는 태현!

길드원은 무기를 뽑고 태현에게 덤벼들었다.

“저놈들 막아라.”

“취익! 뭐 하는 거냐 너희!”

“췩! 반란이냐!”

“닥쳐! 이 멍청한 오크들아!”

“너희들 때문에 우리는 쓸데없이 고생만 했잖아!!”

이제 앨콧이고 퀘스트고 뭐고 상관없었다.

저놈은 확실하게 잡고 가야겠다!

앞을 가로막는 오크들.

그러나 그래 봤자 길드원들에 비하면 레벨이 낮았다. 여기 있는 길드원들은 전원이 고렙 플레이어였다.

-무기 밀치기!

-충격의 함성!

“공간 나왔다! 들어가!”

“이야. 잘하네.”

길드원들은 정석에 따라 행동하고 있었다. 레벨 높은 마법사를 상대할 때의 정석.

시간을 끌지 말고, 최대한 빨리 마법사한테 붙어서 근접전으로 간다!

아무리 레벨 높은 마법사라도 마법사인 이상 근접전은 약할 수밖에 없었다.

“오크 잡느라 시간 낭비하지 말고 전부 다 모여! 저놈부터 조지면 돼!”

“마법 쓸 시간 주지 마!”

“여, 여러분! 응원하겠습니다! 저도 좀 풀어주세요!”

묶여 있던 악마는 싸움이 일어나자 입을 놀리기 시작했다.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는데 자기들끼리 싸우는 상황, 잘하면 풀려날 수 있을지도?

그러나 아무도 악마한테는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노리는 건 오직 태현!

“크아앗!”

가장 먼저 도착한 길드원 한 명이 태현에게 공격을 꽂아 넣었다.

그리고…….

-반격의 원!

[정확하게 들어갔습니다!]

[힘 스탯이 어마어마하게 높습니다. 상대의 무기가 파괴됩니다.]

[상대가 상태 이상 <기절>에 걸립니다.]

[상대의 갑옷이……]

[……]

“커허헉!”

대형 몬스터한테 맞은 것처럼, 덤벼들었던 길드원이 멀리 날아갔다.

그 믿을 수 없는 모습에 다른 길드원들이 일순 멈췄다.

눈 뒤집혀서 덤벼드는 사람들도 멈추게 만들 정도로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지팡이로……?”

“무슨…… 말도 안 돼……!”

길드원들의 눈에는 태현이 지팡이로 길드원 한 명을 저렇게 만든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저런 마법사는 없었다!

“저, 저거 마법사 맞아? 마법사로 위장한 전사 아냐?”

“그럴지도…… 생각해 보니까 저놈 마법 안 썼잖아!”

“아냐! 마법사의 노예를 제압할 때 썼잖아!”

“그, 그런가?”

사실 마법사의 노예를 제압할 때도 힘으로 때려눕힌 거지만, 길드원들은 거기까지 상상하지는 못했다.

태현의 겉모습이 너무 마법사 같았던 것이다.

[<행운 전환>이 끝납니다.]

[바뀌었던 힘 스탯이 행운 스탯으로 돌아옵니다.]

‘아. 끝났군.’

마침 타이밍 좋게 행운 전환 스킬이 끝났다. 태현은 피식 웃으며 지팡이를 앞으로 들었다.

-어둠의 화살, 어둠의 화살, 어둠의 화살, 어둠의 화살!

쉬쉬쉬쉭!

“……!”

마법사 아닌가 고민하고 있었는데, 태현이 마법을 쓰니 길드원들은 당황했다.

“피해!”

접근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정석대로만 행동하던 길드원들은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 빠지자 손발이 안 맞기 시작했다.

한 명은 덤비고, 한 명은 일단 거리를 벌리려고 하는 엇박자!

휙!

태현은 지팡이를 집어 던졌다. 덤벼들던 길드원은 깜짝 놀라 피했다.

또 무슨 수작인가 싶었던 것이다.

물론 그런 건 없었다.

-쾅!

태현은 머스킷을 꺼내 한 방 쏘았다. 피하느라 움직임이 멎은 길드원은 그대로 맞고 비틀거렸다.

툭-

그러자 바로 들어오는 다음 공격!

태현이 던진 폭탄이 길드원 앞으로 굴러들어왔다. 치명타에 스턴 상태에 걸린 길드원은 피하지도 못했다.

콰아앙!

태현이 너무 손쉽게 길드원을 잡아버리자, 거리를 벌리던 길드원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게다가 심지어 방금 건 마법도, 근접전도 아니었다.

“뭐, 뭐야, 대체……?”

그러나 태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아키서스의 저주>를 사용했다.

-아키서스의 저주!

[아키서스의 저주를 겁니다.]

[해제하기 전까지는 저주가 풀리지 않으며, 지속적으로 행운 스탯이 소모됩니다.]

“?!!!”

거리를 벌리던 길드원에게 건 저주가 아니었다.

태현이 저주를 건 것은, 뒤에서 접근하던 앨콧한테였다.

* * *

전투가 시작되자, 앨콧은 바로 은신을 사용했다.

태현한테 겁을 먹어서가 아니었다. 원래 암살자 직업은 이런 식으로 싸웠다.

은신 후 상대방의 뒤를 잡아서 연계 스킬로 폭딜!

주변은 폭발의 여파와 오크 전사들 대 길드원들로 시끄럽고 혼란스러웠다.

이런 상황일수록 암살자는 편해졌다.

앨콧은 의기양양하게 접근했다. 상대가 랭커 마법사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암살자와 마법사가 붙으면 암살자가 훨씬 유리했다. 일단 근접 거리로 붙기 전까지 막기 힘든 것이다.

붙는 순간 마법사는 죽었다고 봐야 했다.

그런데…….

-퍽!

마법사가 지팡이를 휘둘러 길드원을 날려 버렸다.

“……?!”

은신 상태에 있던 앨콧은 경악했다. 뭔 놈의 마법사가 저런 식으로 싸운단 말인가.

‘저거 마법사 아닌가? 아니지. 판온에는 직업이 많으니까…… 혹시 마법 전사인가?’

판온 직업은 워낙 많다 보니, 마법을 쓰면서 근접전을 벌이려는 마법 전사 같은 직업도 있었다.

마법 전사 계열 직업은 안 좋기로 소문이 났고, 유명한 플레이어도 없는 직업이었는데…….

‘어떻게 된 거지?’

일단 앨콧은 멈췄다. 어떻게 보면 신중하고, 어떻게 보면 겁 많은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이런 성격 덕분에 앨콧은 암살자 플레이어로 잘나갈 수 있었다.

뭔가 위험하다 싶으면 멈춘다!

‘은신은 안 들킨 것 같고…… 좋아. 상황 좀 보면서 스킬 준비한 다음 한 번에 꽂아 넣어야겠군.’

상대가 마법 전사 계열이라면, 마법사를 상대할 때처럼 만만하게 보고 덤빌 수는 없었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덤벼야 했다.

‘일단 움직이지 못하게 연계 스킬 준비하고, 독 좀 발라서 데미지도 올리고…….’

암살자가 모습을 드러내고 스킬 연계를 퍼부어 폭딜을 넣었는데 끝내지 못한다면?

암살자가 역으로 위험해졌다.

그렇기에 앨콧은 완벽하게 준비를 했다.

그사이 다른 길드원들은 덤비다가 머스킷-폭탄 콤보로 쓰러지고…….

‘대체 뭐 하는 놈인지 모르겠지만, 지금이다!’

앨콧은 눈을 빛내며 뛰어들었다. 태현이 떠드는 사이, 등이 완전히 비어 있었던 것이다.

‘잡았…….’

-아키서스의 저주!

순간 태현이 빙글 돌더니 스킬을 사용했다. 앨콧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태현의 입가에 걸린 비웃음을.

* * *

[아키서스의 저주에 걸렸습니다.]

[해제 불가능한 저주입니다.]

‘……?’

그 짧은 시간 사이에, 앨콧의 머릿속에는 수십 가지의 생각이 지나갔다.

-아키서스? 어디서 엄청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아키서스의 저주면 무슨 저주지? 왜 설명 메시지창이 안 뜨는 거지?

답은 곧바로 나왔다.

[<3단 도약> 스킬이 실패합니다. 잠시 동안 이동할 수 없습니다.]

[<바람을 가르는 칼날> 스킬이 실패합니다. 무기의 내구도가 하락합니다.]

[저주에 걸린 상태입니다. 무기의 내구도가 추가적으로 다시 하락합니다.]

[무기에 발라진 독을 다루는 데에 실패합니다. 중독됩니다.]

[……]

[……]

저주 자체는 아무런 공격 능력이 없었지만, 그 저주에 걸리고 나서 일어나는 일들이 끔찍했다.

불운의 종합 세트!

‘스킬 실패라니, 초보자 때도 안 했던 실패를……!’

앨콧은 독 다루는 데에 실패해서 중독됐다는 메시지창을 처음 봤다.

이런 건 보통 <이번 주의 가장 웃긴 판온 순간들>에 나오는 놈들이나 하는 줄 알았는데!

[……]

[저주로 인해 은신이 풀립니다.]

‘……아차!’

은신이 풀렸다는 걸 보자 정신이 돌아왔다. 그러나 태현은 덤비지 않았다.

‘……??’

“야, 밟아라.”

우르르 몰려오는 오크 전사들!

“잠, 잠깐……!”

앨콧은 반격하려고 했지만, 워낙 많은 스킬들이 실패한 덕분에 페널티가 장난이 아니었다.

움직이는 거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

퍽, 퍼퍼퍼퍽, 퍼퍼퍼퍽!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앨콧은 넘어져서 오크 전사들한테 두들겨 맞기 시작했다.

[오크 변신 물약의 효과가 사라집니다. 변신이 풀립니다.]

“안, 안 돼!”

“취익? 취익! 이거 인간이다!”

“췩! 인간 놈이 우리를 속이고 있었다! 그래서 배신한 거였다!”

분노한 오크들은 괴성을 내질렀다. 태현은 박수를 치며 그들을 부추겼다.

“그래. 잘 알겠지? 내가 배신자들을 찾아내려고 이런 짓을 한 거야.”

“취익, 마법사의 계략은 너무 깊고 무섭다!”

“췩! 맞다!”

멀리서 혼자 살아남은 길드원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가 태현과 눈이 마주쳤다.

“…….”

까닥까닥-

태현은 손가락으로 이리 오라고 신호를 보냈다. 길드원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저, 그…….”

퍽! 퍼퍽! 퍼퍼퍽!

“아까 뭐라고 했더라?”

“그, 그게…… 아까는 너무 화가 나서…… 아시다시피 일을 너무 심하게 했잖습니까?”

매우 공손해진 태도!

“일을 너무 심하게 하다니. 그게 나 좋으려고 한 거냐? 너희들 좋으라고 한 거잖아. 그거 하면서 힘 스탯 올랐어, 안 올랐어?”

“…….”

세상에 뭐 이런 새끼가 다 있냐.

길드원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이미 앨콧을 상대하면서 경험했던 것이다.

“올랐…… 습니다.”

“그러면 감사해야지. 어디서 성질을 부리면서 PK질이야? 응? 리스폰 포인트까지 따라가서 죽이려고 했지?”

“그, 그런 소리는 안 했던 것 같은데…….”

퍽! 퍼퍽!

“안 했어도 속으로 생각했을 거 아니야!”

‘……우리 귓속말을 엿들었나?’

길드원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태현이 어떻게 알아차린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퍼퍼퍽!

“뭐 이렇게 오래 걸려? 아직도 안 죽었냐?”

앨콧이 암살자 직업이어도, 랭커다 보니 장비가 워낙 좋았다.

덕분에 오크 전사들이 계속 두들겨 패는데도 아직 안 죽고 두들겨 맞고 있었다.

“췩! 이놈, 너무 단단하다!”

“취익! 불을 지르자! 움직이지 못하니 불 지르기 쉬울 거다!”

“안 돼, 미친놈들아! 멈춰! 죽인다!”

앨콧이 발버둥쳤지만 오크들은 냉정했다. 태현은 시큰둥하게 말했다.

“야. 빨리 좀 잡아. 스탯 깎이잖아.”

“췩, 알겠다!”

앨콧이 할 수 있는 건 대화밖에 없었다. 앨콧은 두들겨 맞으면서 말했다.

“협상, 협상하자!”

“그래. 협상 좋지. 난 원하는 걸 얻고, 넌 못 얻고. 좋은 협상 아니냐?”

“……?”

앨콧은 순간 멈칫했다.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김, 김, 김, 김태현!!!!!”

거의 비명과 비슷한 목소리였다. 앨콧은 아까 저주가 걸렸을 때보다 더 당황하고 겁먹은 태도로 비명을 질렀다.

그런 앨콧의 태도에 길드원이 더 놀랐다. 생전 처음 보는 겁먹은 모습!

“이 자식은 어떻게 안 거지? 아까 저주를 걸 때도 눈치 못 채더니…….”

태현은 신기해했다.

<아키서스의 저주>를 걸렸을 때에는 눈치 못 채던 놈이 왜 갑자기?

“야, 어떻게 안 거냐?”

“아, 아니. 네 스킬 보고…….”

“그런 거 치고 너무 늦었는데?”

“아, 아니야. 진짜로…… 진짜로 네 스킬 보고 안 거야.”

“너, 근데 왜 내 눈을 피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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