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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503화 (503/1,826)

§ 나는 될놈이다 503화

‘응?’

태현은 순간 무슨 소리인가 했다. 그렇지만 경험 많은 플레이어답게 바로 알아차렸다.

-변장하고 있다고?

-그렇다.

-주인님. 저도 그 소리를 하려고 했는데…….

태현은 다시 한번 흑흑이를 무시했다.

‘지금 상황에서 오크 종족이 아닌 놈이 오크로 변장하고 있다면…… 플레이어잖아?’

수상쩍게도, 변장한 오크는 진짜 오크 몇 명과 떠들고 있었다.

만약 오크 종족이 아닌 플레이어와 오크 종족인 플레이어가 파티를 맺고 여기 들어온 거라면 설명이 됐다.

태현은 그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놈들은 쓸 만한 놈들인가?”

“췩,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신참 놈들이다. 실력은 보장할 수 없다.”

‘역시 플레이어 맞군.’

태현은 그 말에 확신했다.

종족을 변장하고, 수상쩍게 자기들끼리 모여서 떠들고, 들어온 지 얼마 안 됐다는데 장비는 다른 오크 전사들과 다르게 좋은 걸 끼고 있었다.

플레이어가 확실!

‘뭐 하는 놈들인지는 모르겠지만 뭐…… 써먹기는 좋겠는데?’

태현의 눈에 플레이어는 그저 더 좋은 노동력으로 보일 뿐이었다.

같은 레벨의 플레이어와 NPC가 붙으면 플레이어가 아무래도 더 강했다.

어지간히 못하는 플레이어가 아니고서야…….

“저놈들도 데리고 가지.”

“취익, 마법사의 생각은 정말 잘 모르겠다.”

“원래 마법사는 그런 거야.”

“췩, 그런가? 마법사는 어렵군.”

태현 덕분에 오크 부관은 마법사에 대해 왜곡된 지식을 갖게 되었다.

“아, 그리고 여기 있는 오크들만 시키는 건 미안해서 그런데…….”

“……??”

오크 부관은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이 태현을 쳐다보았다.

비쩍 마른 오크 노인까지 동원하고서 무슨 소리?

그러나 태현은 당당했다.

<얼굴 두께> 스탯이 있다면 이미 10,000을 넘겼을 태현!

“내가 데리고 온 시종들도 시키려고 하는데, 혹시 도와줄 수 있나?”

“췩, 어떻게?”

“여기 돌아다니면서 다른 오크들하고 부딪히면 싸움이 날 테니까,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해줬으면 좋겠는데.”

“취익. 알겠다. 이 징표들을 받아가라.”

뼈로 만든 오크 징표:

우르크 지역의 오크 부족들이 사용하는 징표다. 외부인들이 이 징표를 갖고 있으면 오크 부족의 전사들이 공격하지 않는다.

어딘가 냄새나는 것 같은 징표들!

그래도 태현은 일단 받아서 챙겼다.

‘부려먹을 놈들 많으니까, 케인이나 이다비는 이거 주고서 따로 부족들 찾으라고 해야겠다.’

* * *

“췩, 너희, 영광으로 알아라. 마법사가 너희를 지목했다.”

“……?”

“뭔?”

“아니, 왜?”

당황한 듯한 오크 플레이어들의 반응. 태현은 그들을 빤히 쳐다보았다.

‘내가 플레이어인지는 모르나 보군. 하긴, 이런 겉모습을 하고 있으니…….’

태현의 겉모습은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사악해 보이는 마법사 NPC 그 자체였다.

다른 플레이어들이 눈치를 못 채도 이상한 건 아니었다.

“취익! 새로 들어온 전사들이 일을 가리다니! 명령을 거역할 건가! 췩!”

“아, 아뇨. 그게 아니라…….”

“에이, 우리 부관님 왜 이러실까.”

오크 부관이 화를 내자 플레이어들은 부관을 달래려고 애를 썼다.

기껏 마을 안에 들어오는 걸 허락받았는데 밉보여서 쫓겨나고 싶지는 않았다.

“췩, 마법사 명령을 잘 따라라.”

“알겠습니다!”

앨콧과 길드원들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저 마법사의 정체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대충 퀘스트만 깨고 나머지 시간에 다시 찾아보자!

태현이 출발하자, 오크 전사들과 플레이어들이 뒤를 쫓아 우르르 몰려왔다.

태현은 굳이 입을 열지 않고 조용히 기다렸다. 가만히 있으면 플레이어들은 알아서 떠들게 되어 있었다.

“아, 진짜 앨콧은 성질 너무 더럽다니까.”

“또 너한테 지X이야?”

“어. 완전 찍힌 거 같아. 그냥 길드 나갈까?”

“나갔다가 보복이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그, 최강지존무쌍 길드 들어갈까 생각 중인데. 거기 오크 플레이어 많다잖아.”

판온 종족은 선택 자유지만, 인간이나 엘프, 드워프를 많이 고르는 편이었다.

오크는 보통…… 고르는 사람이 적었다.

그런 면에서 길마부터 간부까지 전부 다 오크 아저씨들인 최강지존무쌍 길드는 특이한 편!

“야, 거기 소문이 안 좋다던데…….”

“억지로 개그 시킨다고? 야, 차라리 그게 낫지!”

‘이놈들 설마 길드 동맹인가?’

태현은 슬슬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 뭐 하는 놈들인가 그냥 들어보려고 했는데, 대화가 영 수상하지 않은가.

-야, 야. 앨콧이 누구더라?

-앨콧이요? 길드 동맹 쪽 랭커잖아요. 태현 님도 한 번 만난 적 있을 텐데요? 그때 태현 님 잡으러 온 랭커 중에 있었는데…….

-응? 아, 그랬나.

이다비는 새삼스럽게 놀라지 않았다. 태현이 안중 밖에 있는 사람을 기억 안 하는 게 어제오늘 일인가.

-그런데 그건 왜요?

-여기 길드 동맹 애들 와있는데? 앨콧이라는 놈도 있나 봐.

-네?!?!

이다비는 깜짝 놀랐다. 그 모습에 옆에 있던 일행들도 놀랐다.

“뭐야, 뭐야?”

“무슨 일입니까?”

“여기 근처에 길드 동맹 길드원들 와있다나 봐요.”

“……!”

케인과 정수혁은 얼굴을 굳혔다. 이미 둘은 길드 동맹에게 찍힌 상황.

만나서 좋을 게 없었다.

“이런…… 김태현도 없는데!”

“흠, 흠흠. 흠흠흠.”

장쓰안은 헛기침을 했다.

아까까지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 어리벙벙하게 있었다.

그러다가 태현에게 오크 징표 받고 ‘야, 너희들은 방해 안 되게 저 멀리 가서 다른 부족들 퀘스트 좀 깨고 있어. 특히 장쓰안 넌 사고 치지 말고’란 말을 들었고.

굴욕 그 자체!

그런데 지금 보니 상황이 재밌게 흘러가고 있었다.

길드 동맹과 이 일행이 사이가 안 좋은 건 장쓰안도 알았다.

즉, 이대로 가면…….

활약할 기회가 온다!

“어떡하지?”

“지금 우리 전력이 좀 그런데. 그나마 케인 씨밖에 없잖아요.”

“맞아요, 케인 씨밖에 없어요.”

“…….”

케인은 복잡한 기분이었다. 말이야 맞는 말인데 뭔가 욕먹는 기분!

“화력이야 수혁이도 있고, 저도 기본은 할 수 있으니 어느 정도는 되겠지만 너무 조합이 안 맞지 않나요?”

굴러 들어온 돌, 김세형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고 의견을 말했다.

태현과 같이 다니면서 비상식에 적응해 버린 일행과 달리, 김세형은 아직 멀쩡한 정신을 갖고 있었다.

그가 보기에 태현 일행의 조합은 괴상하기 그지없었다.

밸런스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조합!

보통 탱커, 딜러, 힐러로 구성되는 파티인데 태현 파티는…….

그래도 케인이 탱커 역할을 한다지만, 힐러는 없고 딜러만 있는 극단적인 구성이었다.

“맞는 말이긴 해요. 마법사가 둘이나 있으니 딜은 괜찮은데, 태현 님이 빠져서 근접 딜러가 없으니…….”

사실 태현 파티가 잘 굴러가는 데에는 태현의 역할이 컸다.

빠르게 적을 녹여버리는 폭딜과, <아키서스의 화신>이라는 전설 직업의 스킬로 다양한 상황을 커버해 주는 능력이 있었기에 파티가 굴러갈 수 있었던 것이다.

“흠, 흠흠. 크흐흠! 커험!”

장쓰안은 점점 크게 기침을 했다. 기침의 뜻은 간단했다.

너희, 지금 랭커인 근접 딜러를 잊고 있지 않니?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정말로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근접 딜러가 없으니 싸우는 방식을 좀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발을 묶은 다음에…….”

“쿨럭쿨럭! 커허허헉!”

이제 거의 발악 수준의 기침!

“왜 그래, 장쓰안? 너 뭐 잘못 마셨냐?”

“…….”

친절한 케인이 장쓰안을 보며 물었다. 그사이 이다비는 태현에게 다시 귓속말을 들었다.

“아, 괜찮겠네요. 어차피 그 사람들은 태현 님이 부리고 있다는데요?”

“응?”

“어떻게??”

기침하던 장쓰안도 기침을 멈추고 물어볼 정도로 이해가 안 가는 상황!

* * *

“흐음…….”

“……?”

“저기 저 절벽 위에 약초 보이지?”

“……보이는데요.”

“따와.”

“……아니, 저, 저 위에 있는 걸요?”

“아, 마법을 써야 할 거 아니야! 너희 오크들을 위해 하는 일인데 이렇게 나오다니, 오크 부관한테 그대로 전해…….”

“아, 아닙니다! 하겠습니다!”

태현이 가리킨 약초는 가파른 절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었다.

길드원들은 투덜거리며 탈것을 꺼내려고 들었다.

“잠깐.”

“……?”

“이 주변은 비행형 몬스터가 많다는 것도 모르나? 타고 가면 당연히 들키지.”

“취익, 맞다. 이 오크들 바보다.”

“췩, 맞다 맞다.”

다른 오크 전사들까지 태현의 말에 동의했다.

오크들한테 바보라고 놀림 받는 것만큼 굴욕적인 일도 드물었다.

“그, 그러면 어떻게?”

“기어서 올라가야지.”

“…….”

* * *

“저 개XX 소XX 말XXX……!”

“아니, 이게 뭐 하는 짓이냐고!!”

길드원들과 오크 전사들이 절벽을 기어 올라가는 동안, 태현은 느긋하게 지도를 펼쳐보았다.

오크 부족에게서 얻어낸 근방의 지도였다.

길드원들을 저렇게 굴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로, 저 절벽 위에 있는 약초들은 실제로 구하기 힘든 아이템이었다.

두 번째로, 태현이 지도를 보고 고민하려면 근처에 플레이어들이 없는 게 아무래도 편했다.

세 번째로, 원래 태현은 적들을 엿 먹이는 걸 좋아했다.

‘재밌잖아?’

“흐으음…….”

태현이 지금 찾고 있는 건 <옛 땅굴 고블린 부족>의 위치였다.

마법 특화 부족인 원시 인간 부족은 정수혁이 한 번 아키서스 퀘스트를 깬 적이 있으니, 다른 일행을 보냈다.

가서 그들을 도와주고 안전하게 만들기만 해도 될 테니까.

그렇지만 <붉은 바다 무법자 부족>과 <옛 땅굴 고블린 부족>은 태현이 직접 나설 필요가 있었다.

‘역시 <옛 땅굴 고블린 부족>이 좋겠지?’

아직 한 번 만나본 적도 없었지만, 태현은 자신이 있었다.

고블린 종족의 특징, 기계공학!

기계공학에 능숙한 종족이 바로 고블린!

태현이 갖고 있는 기계공학 관련 칭호들은 드워프나 고블린을 상대할 때 친밀도를 상승시켜줬다.

그런 칭호가 한둘이 아니었으니…….

“헉, 헉헉…… 갖고 왔습니다.”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재료만 갖고 왔는데도 길드원들의 HP는 10% 이상 닳아 있었다.

절벽을 기어 올라가는 건 만만한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도중에 떨어지고, 부딪히고…….

“좋다. 훌륭하다.”

“감, 감사합니다?”

“그러면 다음 장소로 가자. 아직 챙겨야 할 게 많거든.”

“…….”

길드원들은 슬슬 앨콧이 싫은지 저 사악해 보이는 마법사가 싫은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 * *

“쉴 시간 없다, 더 빠르게!”

깡, 까깡, 까까깡-

다음으로 길드원들이 하게 된 일은 곡괭이질이었다.

[쉬지 않고 곡괭이를 휘둘렀습니다. 계속해서 쉬지 않을 경우 체력이 감소할 수 있습니다.]

[힘이 1 오릅니다.]

“……뭔가 이상하지 않냐? 마법사가 왜 이런 걸……? 이건 대장장이잖아……?”

“마법사도 시약으로 광석이나 보석 쓰잖아.”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철을 많이 챙기나?”

“거기, 무슨 불만이라도 있나?”

“없, 없습니다.”

타타탓-

“……?”

멀리서 누군가가 다가오는 소리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돌렸다.

“취익! 마법사님의 노예다!”

“췩! 모두 인사를…… 억! 췩! 왜 때리나!”

퍽!

태현은 손을 멈춘 오크를 지팡이로 때리고서, 냉정하게 말했다.

“손 멈추지 마라.”

“…….”

[오크 부족 사이에서 당신의 악명이 오릅니다.]

‘특이하게 생겼는데?’

오크들이 마법사의 노예라고 말한 상대는 특이한 생김새를 갖고 있었다.

인간이나 오크 종족은 아닌 것 같고…….

-악마다!

-악마입니다, 저거!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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