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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493화 (493/1,826)

§ 나는 될놈이다 493화

GG!

케인은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얼굴로 돌아왔다.

“속았어!”

“또 뭐가?”

“어떻게 그런 얼굴로 그런 사악한 빌드를……!”

“우리 아버지 원래 그렇다니까.”

태현의 말을 듣고 나서야 케인은 깨달았다.

‘생각해 보니 김태현 가족이잖아……!’

왜 그걸 지금에서야 알았단 말인가!

“오. 이제 내 차례군.”

케인이 좌절에 빠진 사이 태현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태현의 다음 상대는 배중환.

현 판온 해설가, 그리고 전 판타지 크래프트 프로게이머였다.

-네! 이건 기대되는 경기입니다. 지금 자리에 있는 다른 선수분들도 시선이 확 쏠리고 있죠?

-경기하고 있는 선수분들이 섭섭해하겠어요.

-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김태현 선수야 현재 판온에서 가장 뜨거운 선수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배중환 해설가는 알다시피 판타지 크래프트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선수고요.

-그렇죠. 저는 아무래도 배중환 해설가가 더 유리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알다시피 사람마다 잘하는 게 있고 전공이 있지 않습니까? 김태현 선수한테 그게 판온이라면 배중환 해설가한테는 그게 판타지 크래프트에요. 김태현 선수처럼 젊은 세대들한테는 게임이라고 하면 가상현실게임이겠지만, 우리 때만 해도 게임이라고 하면 키보드랑 모니터로 하는 거였거든요!

-맞습니다. 배중환 해설가가 그냥 선수도 아니었고, 전설 아니었습니까 전설. 비록 전성기 때만큼은 아니었어도 그 실력이 어디 가지는 않을 겁니다. 심지어 본인도 대회 일주일 전부터 맹훈련으로 기량을 되찾기 위해 노력을 했다고 말했죠.

-이야, 그 정도예요? 정말 대단한데요?

-단순한 대회라고 하지만 예전 선수로서 피가 끓었던 거겠죠!

“우리 때랑 너무 반응이 다르지 않냐?”

“김태현이니까 어쩔 수 없지.”

선수들끼리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까지의 미적지근한 반응과 달리 잔뜩 기합을 넣고 해설을 하는 해설자들!

그러거나 말거나, 배중환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회장님이 김태현 선수를 싫어하나?’

배중환은 태현을 좋아했다.

판온 해설가로서 태현처럼 이슈를 만들어주고 경기를 재밌게 만드는 선수를 싫어할 리 없었다.

게다가 그뿐만이 아니었다. 태현의 게임 스타일에는 보는 사람을 매혹시키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걸 카리스마라고 하든, 실력이라고 하든…… 확실히 스타성이 강렬한 건 사실이었다.

문제는 유 회장이 대회 시작 전 배중환을 불러 신신당부를 했다는 것이었다.

-김태현 저놈은 무조건 이겨야 하네! 알겠나?

-예??

-절대 얕보지 말고, 최선을 다해서 이겨주게! 나중에 얕봤다가 큰코다쳤다, 이런 소리 같은 건 절대 하지 말라고!

-알, 알겠습니다.

태현을 좋아하긴 했지만 그것과 별개로 유 회장 같은 거물의 말을 듣지 않을 생각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 철저하게 들으면 모를까!

‘미안하다. 김태현. 널 좋아하지만 난 유 회장 말을 들어야 해! 회장님이 해주는 광고가 몇 개인데!’

배중환은 그렇게 생각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배중환은 스스로가 질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 * *

-김태현 선수! 치고 빠집니다! 치고 빠지고 있어요! 정말 악랄한 플레이입니다!

-저런 플레이는 처음 봅니다! 저렇게 활용할 수도 있군요!

태현은 판온 때 하던 플레이를 판타지 크래프트에서도 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남 괴롭히기!

인간 진영의 유닛 중 기마 궁수는 비교적 값이 싼 대신 빠른 이동 속도를 가지고 있었다.

대신 하나하나 일일이 컨트롤하지 않으면 금세 두들겨 맞다가 죽어버리는 약한 맷집이 약점이었다.

잘 쓰이지 않는 비주류 유닛이었지만, 태현은 기마궁수만 닥치는 대로 뽑아 배중환의 진영으로 돌진했다.

노리는 것은 일꾼!

상대의 성장을 방해하기 위해 계속해서 일꾼만 노렸다.

‘뭐 이런 놈이 다 있냐?!’

배중환은 어이가 없었다. 그가 선수일 때도 기마궁수를 이용하던 선수는 가끔씩 있었다.

그러나 기껏해야 조금 뽑아서 깔짝대는 정도가 전부였지, 태현처럼 이렇게 올인하는 놈은 드물었다.

통제가 불가능하니까!

‘손이 4개인 것도 아니고……!’

대회만 아니었다면 ‘저거 핵 아니야?!’라고 말했을 정도로 답답한 상황.

배중환은 이제야 태현을 마주한 다른 선수들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해설자 입장에서는 ‘아! 김태현 선수! 잘하네요! 정말 감탄스러운 플레이입니다!’라고 말하면 됐지만 직접 마주하게 되니 정말 무시무시했다.

마치 정교한 인공지능을 상대하는 것 같은 압박감!

“정, 정 실장. 지금 배중환 해설가가 밀리는 것 같은데 내가 잘못 보고 있는 건가?”

“……죄송합니다. 회장님. 배중환 해설가가 밀리고 있는 거 맞습니다.”

“아니, 저…… 내가 방심하지 말라고 말했는데!”

배중환이 들었다면 ‘저는 방심 안 했습니다!’라고 항변했을 것이다. 실제로 배중환은 방심하지 않았다.

정말 태현이 예상 밖이었던 것일뿐!

“아, 안 돼……! 배중환 해설가가 지면 대진표가 어떻게 되나?!”

유 회장은 황급히 확인에 들어섰다. 배중환만 믿고 대진표를 짰던 것이다.

“아직 동생인 배중열 해설가가 남아 있습니다. 혹시 몰라서 반대편 블록에 넣어놨습니다만…….”

“최악은 아니군. 배중열 해설가도 형이 진 걸 보면 정신을 차려서 최선을 다하겠지? 못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했잖나.”

“그, 그게…… 잘 풀리면 좋겠습니다만…….”

정지용 비서실장은 땀을 닦으며 대답했다. 그렇지만 불안함은 가시지 않았다.

과연 배중열이 저렇게 날뛰는 태현을 이길 수 있을까?

* * *

“우오옷! 우오오옷! 우오오오옷!”

김태산은 믿을 수 없는 뒷심을 보여주며 배중열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생각지 못한 김태산의 뒷심에 배중열은 흔들리고 있었다.

초반, 중반.

배중열은 완벽한 전략으로 김태산을 몰아붙였다. 태현처럼 눈부신 컨트롤을 보여줄 수 없는 김태산은 정석으로 부딪히면 배중열에게 밀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점점 밀리던 후반이 되자, 김태산은 필사의 각오로 전면전에 나섰다.

있는 유닛을 다 쏟아부으며 몰아붙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 기세에 배중열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니, 저…… 저건 또 왜 저래?!”

유 회장은 슬슬 뒷목이 당기기 시작했다. 김태현이 난리 치니 김태산도 난리를 치려고 하고 있었다.

-김태산 선수! 대단한 뒷심입니다! 모든 걸 포기하고 이 한타에 나섰어요!

-배중열 해설가는 설마 이렇게까지 나올 거라고는 예상을 못 한 모양입니다. 당황했어요! 이렇게 흔들리면 안 됩니다! 아직 유리한 상황이거든요!

-역시 배중열 해설가도 사람이긴 한 모양입니다. 은퇴한 지 오래되니 이런 부분에서 실수를 하네요! 아! 오른쪽 진영이 무너집니다! 김태산 선수가 역전의 발판을 잡습니다!

“이, 이…… 김 씨 부자들이 진짜……!”

유 회장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졌나?”

“……예. 배중열 해설가가 졌습니다.”

“……어쩔 수 없지…….”

유 회장은 생각에 잠겼다.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멍청이나 하는 짓이었다.

지금 중요한 건 상황을 받아들이고 어떻게 해야 하느냐 결정하는 것!

유 회장은 뼛속까지 냉정한 사업가였다.

‘……이렇게 된 이상 김태산 그 친구가 우승하길 바랄 수밖에 없겠군…….’

태현이 우승하는 것보다는 김태산이 우승하는 게 나았다.

김태산한테 잘 부탁하면 오토바이 정도는 줄 수 있을 테니까!

‘내가 판온에 흥미가 없어졌는데 그 오토바이 주면 갑자기 흥미가 생길 것 같다고 말하면 그 친구는 분명…….’

어떻게 말할까 고민하던 유 회장은 갑자기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 오토바이가 뭐라고 이렇게 난리를 치고 있나!

밖에서는 ‘유성그룹, 사회를 위한 통큰 기부 쾌척’, ‘트렌드에 맞춘 기부, 유성그룹이 사회적 책임을 말하다’ 같은 말들로 칭송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그런 게 아니었다.

“후, 됐네. 마음을 비워야지.”

유 회장은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수들과 한 번 만나면서 격려나 해줄 생각이었다.

“영, 영광입니다!”

“그래. 오늘 대회에 참석해 줘서 고맙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그래.”

“이,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서…….”

“?”

유 회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서 본 것 같은 얼굴이 있었던 것이다.

도동수였다.

‘이놈은 왜 여기 있어?’

‘대회에 참석한 선수는 원칙적으로 전부 초대장을 보냈습니다만…….’

‘쯧. 어쩔 수 없었겠지. 그래, 잘했네.’

유 회장은 도동수를 좋아하지 않았다.

태현과 사이가 안 좋아서 대회 도중 방해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팀 선수들만 모이는 자리에 유 회장이 구경하러 들어갔는데 도동수가 구박하고 쫓아냈기 때문이었다.

‘이놈은 김태현을 잡으려면 확실히 잡을 것이지 그것도 못하는 놈이 속만 좁아가지고 이 늙은이를 쫓아내?’

유 회장은 그렇게 생각하며 도동수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도동수는 잔뜩 긴장해 있었다.

살아오면서 만난 사람 중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 아닌가!

“그래. 대회는 잘 봤네. 열심히 잘 하더군.”

“감, 감사합니다!”

“그런데 게임 내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 더 친절했으면 좋겠는데.”

“예? 물, 물론 친절하게 대하고 있…….”

“거짓말!”

“?!”

“나이 든 사람이 대회 구경 좀 하겠다고 대기실에 들어갔는데 매몰차게 대한 적이 있나, 없나?”

“있,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런 짓을 하지 말란 말이야! 알아들었나!?”

“죄, 죄송합니다……!”

대체 왜 그런 일 가지고 이러는지는 모르겠지만, 도동수는 일단 빌었다.

그런 도동수를 보면서 유 회장은 막혔던 기분이 풀리는 걸 느꼈다.

‘아, 자선대회를 열길 잘했군. 앞으로 더 열어볼까?’

* * *

사람들은 슬슬 느끼고 있었다.

이 대회의 결승전에서 누구와 누가 붙을지!

설마설마했던 부자간의 싸움!

“참 열심히도 한다. 미리 연습했어?”

“연습 좀 했지. 넌 왜 이렇게 빨리 탈락했냐?”

“판타지 크래프트는 취향이 아니라서. 자선대회니까 불참하기도 그렇고…… 가볍게 했어.”

“……라고 패배자가 말했습니다.”

“…….”

이세연은 잔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꼈다.

원래 그녀가 이렇게 쉽게 흔들리는 사람이 아닌데, 태현만 상대하면 열 받는 경우가 많았다.

정말 별거 아닌데 사람 긁는 데에는 탁월한 재주가 있는 태현!

“가볍게 했다니까. 이런 자선대회에 이기려고 목숨 걸지는 않아.”

“이다비. 넌 저렇게 변명하는 사람이 되면 안 돼.”

“저를 두 분 싸움에 끼워 넣지 말아주세요…….”

이다비는 싸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슬슬 자리를 옮기려고 들었다.

탁-

그러나 태현과 이세연은 동시에 이다비의 양쪽 팔을 붙잡았다.

“들어보세요. 이다비 씨. 판온 1에서 누가 이겼죠? 그런데도 저런 태도라니까요. 제가 관대하게 길드에 들어오라고 말을 했는데도 그냥 거절하질 않나…….”

“판온 1때 이야기를 아직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니, 그게 진짜야? 와, 그런 사람이 있는지는 몰랐는데. 판온 1때 이야기하는 사람 저기 한 명 더 있는 거 알아? 도동수라고.”

“지금 누가 누구 때문에 <켠김에 끝까지> 나가는데! 나 원래 그런 프로그램 나가고 싶지 않았거든? 거기 얼마나 빡센 프로그램인지 알아? 못 끝내면 계속 밤을 새워야 한다고!”

“뭐지? 판타지 크래프트처럼 <켠김에 끝까지>에 나오는 게임도 이길 자신이 없다고 미리 말하는 건가?”

“……좋아! 붙어! 누가 먼저 끝내는지!”

멀리서 음료와 음식을 접시에 담고 돌아오던 케인은 활활 타오르는 셋을 보고 멈칫했다.

그리고 180도로 꺾어, 왔던 길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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