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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492화 (492/1,826)

§ 나는 될놈이다 492화

도착한 김태산은 눈을 깜박였다. 자선대회가 열리는 장소가 뭔가…… 언밸런스했던 것이다.

“어…… 보통 E스포츠용 경기장이나 오픈 스튜디오 빌려서 하지 않냐? 왜, 왜 이런 곳에서?”

“……그러게요?”

축구 대회는 축구장에서 하고, 야구 대회는 야구장에서 하듯이, 이런 E스포츠 대회도 어울리는 장소가 있었다.

하다못해 규모 작은 대회는 PC방을 빌려서 하는데…….

“왜, 왜 호텔에서 하는 거지?”

“유성그룹 계열사에 호텔도 있으니…….”

“지금 그걸 묻는 게 아니잖아, 인마!”

김태산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랬다.

이번 자선대회가 진행되는 곳은 유성호텔의 홀이었다. 그것도 VIP 전용 홀!

실제로 먼저 도착한 사람들은 매우 어색한 자세로 ‘여기서 어떻게 있어야 하죠?’ 하는 얼굴이었다.

불려온 대부분의 프로게이머들은 이런 곳과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아왔던 것이다.

“음료 드시겠습니까?”

“헉, 그, 그러면 콜라로?”

“……죄송하지만 콜라는 없습니다만…….”

“그, 그러면 물로! 물로 괜찮습니다!”

어디선가 애처로운 대화가 들려왔다. 태현은 고개를 돌렸다. 케인이 얼굴이 새빨개져서 물을 마시고 있었다.

“김, 김태현!”

랭커 수십 명에게 둘러싸여서 공격을 받는 도중에 태현이 나타났을 때에도 이것보다 더 반가운 표정은 짓기 어려웠을 것이다.

케인은 지옥에서 부처를 만난 얼굴로 태현에게 달려들었다.

“김태현…… 어? 안, 안녕하세요?”

험악한 아저씨를 본 케인은 일단 움츠러들었다. 그리고 태현에게 속삭였다.

“누, 누구셔?”

“우리 아버지신데.”

“아, 그……!”

케인이 말을 멈추자 김태산이 궁금해졌다.

“뭐가 ‘그’라는 거야?”

“아마 아버지가 방송에 나왔던 거 말하는 거 아닐까요?”

“그게 언제 때 일인데!”

“사실 그렇게까지 오래되지는 않았죠.”

방송에 나와서 태현 험담을 늘어놓다가 오히려 칭찬한 꼴만 되어서 ‘에이, 안 해!’ 하고 포기했던 일!

케인도 당연히 그 방송은 봤었다. 태현의 가족이 나와서 태현 이야기를 한다니 흥미가 안 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아 뭐야. 칭찬만 하네 저거 짜고 친 거지?’ 하고 껐었지만…….

어쨌든 케인은 헛기침을 하며 자세를 가다듬었다. 친구 아버지 앞인데 나쁜 인상을 남길 수는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김태산은 그냥 무섭게 생겼다!

“안, 안녕하십니까! 저는 김태현 친구인 케인이라고 합니다!”

케인의 말에 김태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름이 케인이야? 외국인인가?”

“아뇨. 게임 닉이죠.”

“…….”

망설이던 케인은 약간 작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김, 김덕수입니다…….”

“오, 이름 좋군. 멋진 이름이야.”

“네?”

케인은 순간 김태산이 놀리나 싶었다. 김태현 아버지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

그러나 김태산은 진심으로 감탄한 기색이었다.

“???”

“우리 아버지 취향이 좀 그러니까 알아서 받아들여라.”

“…….”

케인은 복잡한 기분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손가락으로 뒤를 가리켰다.

“어? 저기 이다비잖아?”

“응? 이다비가 여기를 왜 와?”

대회에 참가했던 선수들, 판온에서 유명한 플레이어들, 기타 등등(유 회장이 태현을 쓰러뜨리기 위해 고용한 자객들)이 참가한 자선대회였지만, 이다비는 참가하지 않았다.

태현이 ‘참가할래?’라고 물었지만 이다비는 쿨하게 ‘우승 못 하면 상금 없는데 그냥 집에서 판온할래요!’라고 거절했던 것이다.

“쟤, 쟤 봐라. 어색해하고 있어! 어색해하고 있다고!”

“아까 콜라 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한 네가 할 말은 아니야.”

“…….”

케인은 시무룩해져서 입을 다물었다. 태현은 이다비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태현 님!”

“대회 안 온다고 하지 않았어?”

“그러려고 했는데 연락이 와서요. 대회 참가비 준다던데요?”

“응?”

“응?”

태현과 김태산은 서로 쳐다보았다. 그런 거 없었다.

‘그런 게 있었나?’

‘없었는데요.’

태현은 어떻게 된 건지 깨달았다. 이다비에게 신세를 많이 진 유 회장이 따로 시킨 게 분명했다.

“참가비가 세더라고요!”

“그래. 잘됐네.”

“그보다 대체 왜 이런 장소에서 대회를……?”

“그 이야기는 아까부터 하고 있었지.”

이다비는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인 자신이 신경 쓰인다는 듯이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걱정 마. 어차피 다른 놈들도 다 비슷하게 차려입고 왔어.”

“신, 신경 안 썼거든요.”

김태산은 둘의 대화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케인에게 물었다.

“쟤네 둘 많이 친하냐?”

“예? 많이 친하죠! 저 두 새…… 아니, 두 명이 맨날 손잡고 절 엿…… 아니, 괴롭힌다고요!”

“흐으음…….”

김태산은 이다비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 시선을 눈치챈 이다비가 말했다.

“저번에 아이템 감사했어요!”

“응? 무슨 아이템?”

그러나 이다비는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유 회장이 나타난 것이다.

“왔군.”

“헉!” “힉!” “허억!”

갑자기 나타난 유 회장. 그 모습에 다들 깜짝 놀랐다. 그리고…….

“누구세요?” “뉘신지?”

케인과 이다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유 회장을 쳐다보았다. 그 모습에 태현과 김태산은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그러고 보니 쟤네는 어르신이 뭐 하는 사람인지 모르네요?’

‘그걸 아직도 모른다고? 하긴, 어르신이 판온을 하면 얼마나 하겠다고…….’

‘……그건 아니지만…….’

유 회장은 낚시꾼처럼 차려입고 있었다.

덕분에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설마, 이 후줄근한 늙은이가 유성그룹의 회장이라고는 생각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이번 대회를 연 사람이네.”

“이번 대회를 연 사람이면…… 직원이시구나! 부장님 정도?”

케인은 알았다는 듯이 말했다. 유 회장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케인을 쳐다보며 말했다.

“둔한 건 게임이나 밖이나 똑같군. 그보다 좀 더 위다.”

“아니, 제가 게임에서 둔하다고 누가 그럽니까? 그보다 조금 더 위면…… 어…… 과장인가?”

“……그건 더 아래잖아…….”

“그, 그렇군. 헉! 혹시 사장님?!”

케인은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이런 자리에 저런 자유로운 복장이라니.

저건 권력자만이 가능한 거 아닐까?

“더 위.”

“더 위가 있어?!”

케인은 깜짝 놀라 태현을 쳐다보았다. 태현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회장이 있지.”

“그렇군. 회장이었…… 뭐?! 뭐?!?! 뭐?!?!?!?!”

케인은 기겁해서 유 회장을 쳐다보았다. 유 회장은 기분 좋다는 얼굴로 그 시선을 마주했다.

‘게임에서도 이 정도 존경심을 보여줄 것이지…….’

“충…….”

“충?”

“충성충성충성!”

90도로 꺾이는 케인의 허리! 유 회장은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의를 아는 젊은이군.”

그걸 본 이다비도 바로 허리를 꺾으려고 했다. 권력과 금력 앞에 납작 엎드리는 게 이다비의 신조였다.

“저도요!”

“아, 그쪽은 그럴 필요 없네. 신세는 내가 많이 지고 있지.”

“?”

이다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유 회장은 많이 만난 사이처럼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물어보기도 전에 유 회장은 김태산과 같이 다른 곳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요즘 잘하고 있나?”

“하하, 저야 뭐…… 어르신은 요즘 판온 하십니까? 영 안 맞으시죠?”

“그, 그게…… 음…….”

“그나저나 이 대회 계획한 게 누구인지 모르겠습니다.”

“잘 만들었지? 응?”

“예? 아니, E스포츠 대회 장소를 이런 곳으로 잡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고급스럽고 좋지 않나? 품격 있고…….”

“아니, 그래도 좀 컴퓨터 친화적인 장소에서 해야죠.”

“그, 그래도…….”

희미하게 들리던 대화를 듣던 태현은 고개를 저었다. 유 회장이 안쓰러워질 지경이었다.

“김, 김태현. 지금 내가 회장님이랑 이야기했어!”

“그래. 잘됐다.”

“지금 나, 어마어마한 기회를 잡은 거 아니냐? 회장님이 날 좋게 봐준 걸지도……!”

“음…… 그래. 그럴 수도 있겠다.”

* * *

어색한 자리에 어색하게 모인 프로게이머들.

그나마 여유로운 태도로 있는 건 태현이나 이세연 같은 사람 정도였다.

덕분에 유 회장이 앞에 올라와 말을 시작하자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빨리 대회나 하자! 그게 차라리 편하겠다!

“……오늘 좋은 뜻으로 모인 이 자리를 빛내줄…….”

태현은 하품을 했다. 유 회장이 노려보는 것 같았지만 기분 탓이겠지?

찰칵, 찰칵-

이야기하는 도중에 계속해서 플래시가 터져 나왔다. 태현은 뒤를 쳐다보았다. 기자들이 신나서 촬영하고 있었다.

‘하긴, 화젯거리가 되긴 하겠네.’

선수들이야 ‘아, 왜 이런 곳에서 하는 거야’ 싶어도 기자들 입장에서는 화젯거리가 되고 좋았다.

“……하길 바라겠네!”

짝짝짝짝짝-

“끝났나보다.”

“앗. 대진표 짜네요.”

“제발 김태현이랑 반대, 제발 김태현이랑 반대…….”

“…….”

“…….”

중얼거리는 케인. 태현과 이다비는 안쓰럽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헉! 반대다!”

“야, 근데…….”

“?”

“너 3회전 상대가 우리 아버진데?”

“……!”

케인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에이, 뭐야. 놀랐는데 생각해 보니 별거 아니잖아.”

“?”

“네 아버지 정도 분들은 게임을 잘 못하신다고. 판온처럼 가상현실게임도 그런데 판타지 크래프트면 더하겠지!”

“그 소리, 우리 아버지 앞에서 하면 반응이 재밌을걸.”

“후후. 어쨌든 반대 블록이니까 됐어……! 김태현! 가능하면 실수해서 떨어져라!”

케인은 그렇게 말하고서 신이 난 얼굴로 먼저 대회장을 향해 걸어갔다.

그걸 본 이다비가 중얼거렸다.

“저렇게 당당한 얼굴로 비굴한 말을 하기도 힘들지 않나요?”

“뭐, 쟤야 원래 저렇지.”

* * *

태현한테는 처참하게 무너졌지만 케인은 기본적으로 실력이 있는 선수였다.

1회전, 2회전에 만난 선수들을 가볍게 이기고 3회전에 진출했다.

꿀꺽-

“잘,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 잘 부탁하마.”

언제나 위압 넘치는 김태산의 모습. 그러나 케인은 고개를 저었다.

겉모습 험악하다고 게임을 이기는 건 아니니까!

‘집중하자. 집중!’

케인은 정석적인 전략을 선택했다.

방어를 굳히며 자원을 많이 모은 다음 강력한 유닛들을 뽑아내 후반에 승부를 보려는 전략.

이런 식으로 힘 싸움을 가면 김태산보다는 케인처럼 젊은 사람한테 유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어?”

케인은 당혹감에 차서 눈을 깜박였다. 맵에 우르르 달려오는 게 보였던 것이다.

최대한 빠르게 뽑은 하급 유닛들과 일꾼들까지 포함시켜서 덤벼오는 초반 맹공격!

이건…….

날빌이었다!

“어, 어, 어???”

태현은 화면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완전히 말렸군.’

김태산의 겉모습만 보면 중후하고 정면 승부만 할 것 같이 생겼지만, 그 속은 좁고 치사했다.

케인이 1, 2회전에 취한 전략을 보고 날빌이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게 분명!

“으아아, 으아아!”

케인은 괴성을 흘리며 막아내려고 발버둥 쳤다. 그러나 이미 늦어 있었다.

김태산의 유닛과 일꾼들은 맹렬하게 케인의 본진을 박살 내기 시작했다.

“안, 안 돼……!”

“크하하핫! 크하하하핫!”

김태산은 본색을 드러내고 호탕하게 웃기 시작했다. 태현은 혀를 찼다.

‘방송에 나온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지금 김태산이 하고 있는 건 다 방송 카메라에 잡히고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망신!

‘한동안 TV는 켜지도 않으시겠군.’

미래가 눈에 잡힐 듯이 보였다. 한편 그러는 사이 케인은 고개를 푹 숙이고 마우스를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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