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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437화 (437/1,826)

§ 나는 될놈이다 437화

관중석에서는 폭소가 터져 나왔지만 방송국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서둘러서 다른 영상으로 대체하려고 했지만 이미 다 나간 영상!

해설자들과 캐스터도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하나’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들은 프로!

이런 상황에서도 말을 할 수 있는 게 그들이었다.

-아…… 하하! 방금 하이라이트가 조금…… 그랬죠?

-이게 하이라이트가 사람이 고르는 게 아니라 AI가 알아서 골라 주는 거다 보니 좀 잔 실수가 있습니다.

-방금 경기가 조금 그렇긴 했죠. 1~4경기를 본 관중들 눈에는 5경기가 성에 안 찼을 테니까요. 사실 류태수 선수가 방금 미ㅊ…….

배중환 해설자가 별생각 없이 또 자기 생각을 말하려고 하는 순간 배중열이 재빨리 형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컥!’

‘제발 생각 좀 하고 말해, 형! 아까 말한 것 때문에 MBS 눈치 보여 죽겠는데!’

배중열은 필사적인 눈빛을 형에게 보냈다. 배중환은 미안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배중환은 다 좋았는데 저렇게 생각 안 하고 말부터 먼저 하는 게 문제였다.

프로게이머 선수로 뛰던 시절에도 저 생각 안 하고 도발부터 먼저 하는 성격 때문에 문제가 많았다.

‘어휴, 저기 케인 선수 보니까 우리 형 생각나네, 진짜.’

배중열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케인이 알게 된다면 억울해서 눈물을 흘렸을 생각이었다.

아까 도동수 관해서 MBS를 한 번 깐 것 때문에 눈치가 보이는 상황.

물론 MBS 측에서 팀을 개떡같이 짰어도 그걸 말할 수는 없었다.

-아. 캡슐에서 선수들이 일어나서 나옵니다!

-박수가 쏟아지네요. 명경기를 펼쳐준 선수들을 향한 박수입니다!

-그런데 분위기가 좀…….

-형 제발 좀!

-저, 저기 두 분…….

캐스터가 당황해서 해설자들을 말렸다.

그러나 배중환의 말은 틀린 게 없었다. 그만큼 자리의 분위기는 어색했던 것이다.

아까 하이라이트의 어색함은 시작이었을 뿐!

먼저 태현 팀의 분위기가 어색했다. 승리한 팀의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다.

일단 태현과 도동수는 서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거기까지는 자리의 모두가 이해했다.

-저러는 게 당연하지!

그리고 케인도 태현에게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아까 들은 사실의 충격 때문이었다.

경기가 다 끝나니 새삼스럽게 밀려오는 충격!

‘이건 말도 안 돼……!’

도저히 머리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실!

아니, 태현의 말을 들어보니 이제까지 눈치 못 챈 게 이상하긴 한데 그래도 좀…….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이세연이 그걸 보고 태현에게 속삭였다.

“야, 쟤 망가진 거 같은데?”

“한 대 때리면 돌아올 거야. 기다려봐.”

“안 돼! 카메라 있다고!”

마지막으로 팀 에이트의 분위기도 어색 그 자체였다.

특히 류태수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팬들은 ‘태수야! 고개 들어! 넌 최선을 다했어!’라고 하거나 ‘저렇게 최선을 다하는 게 프로지!’ 하면서 응원과 격려를 던졌다.

류태수가 저러는 이유가 패배의 분함 때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진정 프로는 경기 하나에 저렇게 목숨을 거는 거야!

-류태수 너무 멋지다!

물론 패배의 분함도 있었지만, 류태수가 저러는 이유는 다른 데에 있었다.

“어, 음…….”

“…….”

승자와 패자가 서로 악수하는 시간. 류태수는 태현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음, 미안…….”

“…….”

그 태현이 어색한 분위기를 이기지 못해 사과할 정도!

“아, 아니…… 김태현 씨…… 잘못이 아닙니다…….”

“어…… 그래…….”

“제가…… 음…… 그래도…… 혹, 혹시 사인 해주실 수 있으신지?”

태현과 좀 다른 방향으로 험상궂게 생긴 사람이 저런 말을 하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대회 방송 끝나고 해드리겠습니다.”

“감, 감사합니다…….”

류태수와 태현은 일단 악수하고 서로 멀어졌다.

류태수가 저 멀리 걸어가자 태현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와, 숨 막혀 죽는 줄 알았네.”

“왜 그래?”

“네가 나 같은 일을 겪어봤어야 알지. 내가 4경기 때 얼마나 끔찍한 일을 겪었는데.”

“??”

이세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가 알 리 없었다. 류태수가 태현과 마주해서 무슨 말을 했는지!

선수들이 세상에서 가장 어색한 시간을 보내는 동안, 해설자들도 최선을 다해서 어색함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쳤다.

-아, 그러고 보니 4경기 때 김태현 선수가 폭탄 발언을 했었죠.

김수아 캐스터가 생각났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아까는 도동수 팀킬과 대회 도중이라 넘어갔지만, 생각해 보니 이건 엄청난 화젯거리였다.

게다가 이렇게 어색한 상황에서 꺼내면 주제를 넘기기 좋은 화제!

-네? 도동수 선수를 팀킬하자고 한 거요?

-아니요…… 자기가 판온 1 때 김태현이라고 한 거요…….

이제 김수아까지 배중환 해설자를 차가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배중환은 면목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분위기가 또 개판이 될 거 같자 배중열이 재빨리 끼어들었다.

-아. 그 발언은 정말 충격적이었죠. 사실 판온 1 김태현 플레이어가 김태현 선수 아니냐는 말은 예전부터 많이 나온 말이긴 했습니다.

-그런가요? 저는 왜 못 들어본 거 같죠?

-왜냐하면 김태현 선수 본인이 그걸 부정했거든요. 판온 1 김태현 플레이어가 워낙 대단했던 플레이어라, 다들 ‘어라? 정말 김태현이면 그걸 부정할 필요가 있나?’ 생각했던 거죠.

물론 태현이야 자기가 PK한 수많은 플레이어들의 원한 때문에 숨긴 거였지만, 배중열 같은 사람이 그 이유를 알 리 없었다.

태현과 엮인 적 없는 사람들에게 태현은 그저 판온 1의 마지막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화제의 랭커였을 뿐!

-아. 그런 거군요. 그런데 김태현 선수는 왜 그걸 부정했던 거였을까요?

-김태현 선수 본인이 말했듯이 판온 1과는 선을 긋고 싶었던 거겠죠. 얼핏 들으면 이해하기 힘들지만 전 이해가 갑니다. 만약 김태현 선수가 처음부터 밝히고 했다면 다른 사람들이 다 판온 1 때 했던 일들과 엮어서 생각했을 거예요. 그런 관심을 좋아하지 않았던 거죠. 저런 타입의 선수는 자존심이 강하거든요.

배중열은 ‘난 알 거 같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멀리서 듣던 태현은 황당했지만 내버려 두었다.

알아서 좋게 해석해주는데 굳이 말릴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어찌 보면 대단하네요?

-그렇죠. 사실 판온 1때 랭커들 중 자기 신분 숨기고 판온 2 시작한 랭커들은 드물거든요. 김태현 선수 정도 되는 랭커라면 더더욱 그렇죠.

“장난해?”

같이 듣던 이세연은 어이가 없었다.

적을 하도 많이 만들어서 정체 숨기고 다닌 놈인데 무슨 ‘자존심’이니 ‘다른 랭커들과 달리 처음부터 시작한다’느니…….

아무리 콩깍지가 껴도 정도가 있지!

태현은 그 말을 듣고 이세연을 비웃었다.

“판온1때 랭커 찍은 거 등에 업고 판온2 하는 치사한 플레이어도 있나 봐?”

“……너 진짜 죽는다.”

둘이 그러는 동안 해설자들은 한참 태현의 칭찬을 늘어놓았다.

대회 우승도 이끌었고, MVP는 거의 확실시된 상황.

대회 내 팀킬 같은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진 이상 수습하기 가장 좋은 건 이런 거였다.

“가자. 이제 곧 시상식 해야지.”

“쟤네들은 저기 두고 가면 안 되냐? 분위기 칙칙하게…….”

태현은 케인과 도동수를 가리키며 말했다. 물론 일이 그렇게 될 리 없었다.

* * *

시상식은 평탄하게 진행되었다.

대회 내 MVP는 태현이 받았다.

태현이 받으러 갈 때 옆에서 뿌드득 소리가 들렸지만 태현은 상큼하게 웃어주며 상을 받았다.

준우승은 팀 에이트.

류태수가 태현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세상에서 가장 어색한 얼굴로 피했기에 태현도 같이 피해줬다.

그러나 그 정도 어색함은 그 이후에 비교하면 약한 편이었다.

우승 트로피를 받기 위해 팀 전원이 나왔을 때가 절정이었다.

모두 다 어색하게 미소지으며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모습!

게시판에는 ‘세상에서 가장 어색한 사진’ 같은 이름으로 남게 되는 모습이었다.

다행히 해설자들이나 캐스터도 경기 내 있었던 팀킬 사건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사건이라 MBS 측에서도 어떻게 건드려야 할지 모르고 넘겼던 것이다.

“자, 그러면. 마지막으로 소감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함께해서 더러웠고 다시는 만나기 싫네요!”

이세연의 말과 함께 웃음이 터져 나왔다.

‘진담이지?’

‘진담이지.’

* * *

“축하드려요!”

“어…… 게임 안에서 보고 있던 거 아니었어?”

“결승인데 그럴 수는 없죠!”

이다비는 축하의 꽃다발을 건넸다. 태현은 당황한 표정으로 받았다.

“뭘 이런 걸 다?”

“축하잖아요!”

“근데 왜 못 놓고 있냐?”

이다비는 꽃다발을 잡은 손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가격 때문에!

“무리하면서 살 필요는 없는데…….”

“이, 이 정도는 괜찮거든요.”

“너 눈에 눈물 고인 거 아니지?”

“아니거든요!? 기쁨의 눈물이거든요?!”

태현과 이다비가 떠드는 동안 이세연은 피곤한 표정으로 말했다.

“난 이만 가볼게. 먼저 약속이 있어서.”

“남자친구분이세요?”

“무슨 소리야?! 가족이야!”

“아, 네…….”

이세연은 당황한 표정을 가다듬더니 먼저 가버렸다.

태현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러면 뭐 남은 사람들끼리 축하 회식이나 할까?”

“어, 죄송하지만 저도 약속이 있어서…….”

김철수가 미안하다는 듯이 말했다.

“가족 약속이면 어쩔 수 없죠.”

“여자친구하고 약속이 있는데요.”

“…….”

“…….”

태현과 이다비의 싸늘한 눈빛에 김철수는 재빨리 도망쳤다.

“근데 케인 씨는 어디 계세요?”

“아. 걔는…….”

태현은 안쓰럽다는 듯이 말했다.

“붙잡혔어. 웬 이상한 여자한테.”

“??”

시상식까지 끝나고, 방송국 스태프들에게 ‘고생 많으셨습니다’라고 인사하며 태현 팀은 나서려고 했다.

그 순간 파이브 걸즈의 하연이 찾아왔다.

-아. 안녕하세요. 하연 씨. 여기는 무슨 일로?

-여기 케인이란 선수 누구예요?

-저분인데요?

-감사합니다!

멀리서 하연의 얼굴을 알아본 태현은 어떻게 된 일인지 깨달았다.

‘아하! 내가 케인의 이름을 써서 그렇게 된 거였군!’

물론 그렇다고 케인에게 사과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태현은 케인을 버리고 재빨리 뒤로 돌아서서 튀었다.

경기의 충격으로 멘탈이 나간 케인은 태현이 사라진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멍하니 있다가 그대로 붙잡힌 것이다.

거기까지 설명을 들은 이다비가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래서요? 그다음에는요?”

“나도 몰라. 도망쳤다니까?”

“…….”

“뭐 알아서 잘 하겠지. 설마 죽기야 하겠어.”

그때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케인에게서 온 전화였다. 태현은 가볍게 통화를 끊었다.

“우리끼리 먹자. 얘는 못 나올 거 같다.”

“어, 저도…….”

“……설마 너도 약속 있냐?”

태현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친구 없는 건 에반젤린밖에 없단 말인가!

아니, 이제 에반젤린도 친구가 있었으니…….

“아뇨. 약속은 아니고 동생들 데리고 왔거든요. 동생들 챙겨줘야 해서…….”

“걔네들도 데리고 와. 같이 먹으면 되잖아.”

“네? 그래도 돼요?”

“안 될 게 뭐가 있어. 데리고 와.”

“네!”

이다비가 신이 나서 동생들을 데리러 간 사이, 태현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케인인 줄 알고 끊으려고 했지만 최상윤에게서 온 전화였다.

“어. 상윤아.”

-우승 축하한다! 미친놈아!

“아니, 나는 잘 해보려고 했는데 도동수가 자꾸 날 괴롭히더라.”

-나도 방송 봤거든? 네가 도동수를 괴롭히면 괴롭혔지 도동수가 널 괴롭히긴 뭘 괴롭혀! 그보다 뒷감당은 어떻게 할 거냐?

“에이, 뭐 이제 초보자도 아닌데 한두 명 덤비는 것 정도는 상대하거나 도망칠 수 있겠지.”

-한두 명이 아닐 텐데.

“응?”

-지금 너 잡으러 가자는 놈들이 게시판에 수십 명 넘게 모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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