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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405화 (405/1,826)

§ 나는 될놈이다 405화

태현의 속셈은 간단했다.

가운데 진지에 불을 지르는 이유는 태현에게 유리한 전장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사디크의 화염 속에서 싸우면 당연히 유리한 건 태현.

그리고 밑의 진지 쪽으로 불을 지르는 이유는…….

‘도동수 쪽으로 몇 명이 오든 간에 도동수가 한 명은 잡고 죽어야 게임이 안 꼬인다.’

아무리 그래도 본선까지 올라온 팀들인데, 태현이 전부 다 쓸어버리고 이기는 건 불가능했다.

처음에 판이 완전히 기울어지는 걸 막아야 했다.

그렇지만 태현의 팀은 콩가루 그 자체!

도동수가 말을 안 들을 거라는 건 이미 예상을 한 상태였고, 상대방 팀이 바보가 아니라면 어떻게든 태현의 팀이 가진 허점을 파고들 것이다.

‘도동수를 카운터 칠 수 있는 놈이 한 명 오거나, 아니면 두 명 이상이서 도동수를 한 번에 잡으려고 하던가. 어떻게 되든 간에 도동수는 도적 직업이니 이렇게 불 질러 놓고 난장판으로 만들면 한 명은 잡고 죽겠지.’

거기에 얄미운 놈이 가는 곳에 불 지르는 즐거움은 덤!

사실 이 이유가 더 큰 거 같기도 했다.

태현의 설명을 들은 케인은 의외로 그럴듯한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거면 미리 말을 하라고. 놀랐잖아. 왜 나한테만 말을 안 한 거야?

-다 말 안 했는데?

-……야!!!

* * *

도동수는 은신 스킬을 사용하고 빠르게 움직였다.

영웅 직업, <그림자 춤꾼>을 갖고 있는 도동수에게 은신 계열 스킬은 밥줄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림자 속에 숨어서 움직이다가 상대가 보이면 뒤를 친다!

그런 면에서 숲으로 전장이 정해진 것은 행운이었다.

더 숨을 곳이 많아지고, 더 다양한 전술이 가능해졌으니까.

도동수는 운이 따라준다는 걸 느꼈다.

‘김태현 자식만 띄워주는 건 사양이다. 이번 경기에서는 내가 활약한다!’

판온 1의 김태현과 같은 팀을 하는 것도 속이 뒤집히는데(김태현과 이세연은 한사코 아니라고 하지만 도동수는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주목도 김태현 혼자 다 받고 있었다.

태현을 엿먹이려고 나왔는데 오히려 태현을 부각시켜 주게 된 상황!

더 환장하겠는 건 그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의도적으로 깽판을 치거나 태현을 방해하면 오히려 그가 속 좁은 놈으로 몰리는 상황이라니.

사실, 방송에서 태현이 의도적으로 그런 판을 만든 건 아니었지만 도동수 입장에서는 모든 게 태현의 사악한 계략으로 느껴졌다.

결국 답은 하나였다.

‘실력이다. 일단 실력으로 내 위치를 확보하고 나서 김태현 놈을 밟아버리는 거야.’

팀 내에서 태현과 싸우더라도 지금 도동수의 편을 들어줄 여론은 별로 없었다.

활약을 좀 해야지 나중에 문제가 생겨도 ‘김태현 잘못이다’ 같은 말들이 좀 나올 테니까!

도동수는 이번 경기에서 최대한 활약을 할 생각이었다.

결승이나 4강전 전에 활약을 해서 팀 내의 위치를 탄탄히 쌓고, 그 다음 태현을 공격해서 무너뜨린다.

“……!”

도동수는 멈칫했다.

저 밑의 길에서 대놓고 한 명의 플레이어가 걸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뭐지? 함정인가?’

이런 상황에서 몸을 숨기지 않고 당당히 걸어오다니.

함정을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몇 가지 탐색 스킬을 써도 함정은 없었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고.

‘그렇다면 여기에는 한 명만 온 건가?’

1:1 상황.

가장 기본적이지만, 가장 실력 발휘를 하기 좋은 상황이기도 했다.

도동수는 상대방의 얼굴을 알아봤다.

차원철.

성격 좋고, 나름 인기 있는 플레이어지만 도동수는 그를 무시했다.

판온에서는 그가 더 강했으니까.

실제로 경기장 밖에서 한 번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차원철은 도동수의 옷깃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

평타는 압도적인 스피드 차이로 공격 자체를 피하고, 범위 스킬을 쓸 때마다 도동수의 각종 스킬로 카운터를 쳤던 것이다.

‘느려터진 전사 직업. 갖고 놀 수 있겠군.’

상대 파악을 끝낸 도동수는 씩 웃으며 차원철의 뒤를 잡았다.

실력 발휘를 할 시간이었다.

-그림자의 표적, 살육의 춤!

콰직!

은신 상태에서 튀어나오며 도동수는 딜을 넣기 시작했다.

갑자기 나온 도동수의 모습에 차원철의 얼굴에 순간 놀란 기색이 보였다.

예상했어도 이런 기습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너밖에 안 왔냐? 멍청하기는!”

손맛이 느껴졌다. 상대방에게 제대로 데미지를 넣었을 때 느껴지는 손맛.

도동수는 차원철을 비웃으며 뒤로 물러섰다.

때리고 튀고, 때리고 튀고.

히트 앤 런!

느리고 단단한 직업을 상대할 때의 기본 전략이었다.

‘자, 와봐라. 저번처럼 갖고 놀아줄 테니까.’

그러나 차원철은 달려들지 않았다. 차원철은 침착한 얼굴로 스킬을 사용했다.

-붉은 피의 가호, 들끓는 체력 증가, 야생 곰의 형상, 중급 방어 강화, 중급 체력 강화…….

연속으로 켜지는 버프들!

차원철 주변에 여러 빛깔의 버프 스킬들이 터져 나오는 걸 보며 도동수는 비웃었다.

“그거 킨다고 뭐 달라지냐? 얻어맞는 시간만 늘어나지!”

퍼퍽! 퍼퍼퍽!

상대방이 반격을 안 해준다면 오히려 고마웠다.

그 시간에 더 공격을 할 수 있었으니까.

“넌 다른 놈들을 데려왔어야 했어! 그래야 승부가 되지! 이거 뭐 너무 시시한데?”

도동수는 접근해서 공격을 퍼부었다. 그러나 차원철은 끝까지 반격 하나 하지 않고 수비에만 집중했다.

공격을 피해내거나 흘려내는 센스는 없었다.

그러나 방패로 공격을 최대한 막아내며, 계속해서 버프와 방어 스킬을 사용했다.

묵직한 바윗덩어리 같은 모습!

공격을 퍼붓던 도동수는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약점 간파 확인!

“……!!”

그가 퍼부을 수 있는 연계 스킬들을 풀 가동시켜서 폭딜을 넣었는데, 상대방의 HP가 아직도 절반 넘게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HP도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다 했냐?”

방패 뒤에서 차원철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섬뜩!

도동수는 빠르게 뒤로 물러섰다. 방금까지 그가 있던 자리에 철퇴가 내려 찍혔다.

별 스킬 없는 평타였고, 그냥 맞아도 흘릴 수 있었는데 피한 것이다.

겁을 먹어서!

도동수는 굴욕으로 얼굴을 붉혔다. 그제야 차원철이 입을 열었다.

“난 네가 여기 올 거란 걸 알고 있었어. 도동수. 그런데 혼자 왔지. 이게 무슨 뜻인지 알겠냐?”

“……!!”

“널 이길 자신이 충분히 있다는 거지!”

차원철은 말과 함께 달려들었다.

도동수는 방금 폭딜을 넣느라 온갖 스킬들을 사용했다.

MP도 바닥일 테고 스킬 쿨타임도 걸려 있는 상태일 것이다.

역시 도동수는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전진해서 몰아붙이며 차원철이 말했다.

“밖에서 이겼다고 여기서도 쉽게 이길 줄 알았어? 멍청하기는. 장비도 벗고 레벨도 맞춰졌는데!”

‘XX!’

도동수는 속으로 욕설을 내뱉으며 공격을 피했다.

차원철의 말이 맞았다.

그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때 이겼을 때에는 장비와 레벨 차이가 있었고, 그리고 각종 소모 아이템도 쓸 수 있었다.

그런 게 다 없는 상황이라면 차이가 확 좁혀졌다.

쾅! 콰쾅! 쾅!

차원철은 옆으로 공격을 퍼부어 피하기 힘들게 만들며 점점 거리를 좁혀 들어왔다.

‘썅, 쿨타임이…… 쿨타임 얼마 남았지?’

-도동수 선수, 지금 완전히 물렸어요! 빠져나오기 힘들 거 같아요!

-맞습니다. MP가 남았다면 바로 회피 스킬을 사용해서 거리를 벌렸을 텐데 그러지 못하고 있잖습니까. 지금 저게 증거죠.

-아주 전형적인 모습이에요. 딜러 직업이 탱커 직업을 잡아야 할 때 못 잡으면 저렇게 됩니다.

원래 빠르고 폭딜 가능한 딜러 직업은 느리고 둔한 탱커 직업을 갖고 놀 수 있었다.

그렇지만 폭딜을 퍼붓다가 잡지 못한다면?

이렇게 역으로 몰리게 되는 것이다.

어찌 보면 도동수와 차원철의 대결은 태현과 스미스의 하위호환 대결이었다.

한쪽은 낮은 방어력과 HP 대신 높은 회피력과 폭딜 스킬을 갖고 있고, 다른 한쪽은 느리고 둔한 대신 높은 HP와 방어력을 갖고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도동수는 이런 예상치 못한 상황에 빠졌을 때 발휘할 임기응변 능력이 부족했다.

우습게도 이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도동수는 태현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 자식 때문에 너무 성급하게 행동했어!’

투기장에서도 평소처럼 상대방을 순식간에 삭제시켜 버리는 태현의 모습.

그 모습 때문에 도동수도 영향을 받은 것이다.

저놈이 할 수 있으면 나도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했다.

점점 거리가 좁혀지고, 한두 대씩 스친 공격에 데미지가 들어오고…….

도동수의 얼굴에도 절망이 서렸다.

‘잡았다!’

‘잡혔다!’

두 사람이 동시에 똑같은 생각을 한 그 순간, 메시지창이 떴다.

[마법 폭주로 사디크의 화염의 위력이 증가합니다!]

화르륵!

옆에서 불길이 혓바닥을 낼름거리며 거세게 덮쳐 들어왔다.

한순간 시야를 가려 버릴 정도로 맹렬한 기세!

정신없이 싸우느라 밑에서 화염이 번지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둘이었다.

-여기서 화염이! 여기까지 화염이!

-김태현 선수 설마 이걸 예상을 하고 불을 놓은 건가요! 정말 대단합니다! 대체 몇 수를 앞서가고 있는 거죠!?

관중석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해설자들도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목줄에 핏대가 설 정도!

그럴 법도 했다.

경기가 시작했을 때 도동수가 먼저 움직이고, 태현이 그 뒤에 불을 질렀을 때 모두들 고개를 갸웃거렸으니까.

-아, 저게 뭐 하는 거죠?

-불을…… 지르네요? 뭘 노리는 걸까요?

-장애물을 없애려는 생각일까요? 케인 선수의 쇠사슬 스킬을 쓰려면 확실히 장애물이 없는 게 편하기는 할 겁니다.

-그렇지만 그건 좀 무리가 있지 않습니까? 장애물을 없애려고 불을 지르다니. 불이 퍼지면 이게 어떻게 작용할지 예측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불인 거죠!

-맞습니다. 게다가 지금 밑에 불을 붙여봤자 가운데 진지까지 번지려면 한참 걸리지 않을까요? 싸움은 거기서 벌어질 텐데요?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아직 더 봐야 알겠습니다만 태현 선수가 성급하게 실수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게 일반적인 반응이었다.

그러나 해설자들은 모르고 있었다. 태현이 놓은 불이 무엇인지, 그리고 불이 이 마법 폭주의 숲과 만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화르르륵!

빠르게 숲을 타고 번지며 점점 커지는 사디크의 화염!

“으아악!”

“으억?!”

도동수도, 차원철도 깜짝 놀라서 멈칫했다.

갑자기 시야를 가릴 정도로 화염이 치솟아 들어오니 놀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덕분에 차원철은 도동수에게 제대로 데미지를 넣을 기회를 날려 버렸다.

‘아차……!’

“하하! 멍청한 자식!”

도동수는 차원철을 비웃으며 재빨리 급소 파악 스킬을 쓰고 공격을 했다.

‘이…… 그래도 아직 버틸 수 있다!’

아까 HP를 생각해 보고, 걸린 버프 스킬을 계산해 본다면 방어하지 못하고 맞더라도 이 정도는 버틸 수 있었다.

차원철은 맞으면서 후려칠 생각으로 덤벼들었다.

난타전!

그러나 차원철이 여전히 계산하지 못한 게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사디크의 화염이었다.

“?!”

단순히 불이 아닌, 사디크의 화염!

당연히 데미지도 훨씬 더 들어왔다. 레벨이 100으로 맞춰지고 각종 장비 버프가 없어진 지금은 더더욱!

‘말, 말도 안 돼……!’

차원철은 도동수의 공격까지는 계산하고 버텼지만 조금 남은 HP가 사디크의 화염 때문에 다 닳아버렸다.

[HP가 0으로 내려가 사망합니다.]

[경기장 밖으로 이동합니다.]

그대로 아웃되는 차원철!

도동수는 환호성을 질렀다.

“내가 이겼다!”

그러나 사디크의 화염을 계산하지 못한 건 도동수도 마찬가지였다.

[HP가 0으로 내려가 사망합니다.]

[경기장 밖으로 이동합니다.]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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