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349화
“뭐? 벌써?”
“벌써라니. 오히려 늦은 편이지.”
지금 본선에 참가하는 팀들이나, 참가하려는 팀들은 예전에 팀원을 확정짓고 호흡을 맞추고 있었다.
지금에 와서야 다 정한 건 정말 늦은 편!
“그런가? 그래서 어떻게 뽑았는데? 제비뽑기?”
“…….”
태현을 쳐다보는 이세연의 눈빛이 점점 어이가 없다는 듯이 변했다.
“제비뽑기로 뽑을 리가 없잖아. 애초에 이 팀을 구성한 이유가 뭔데.”
“네가 날 괴롭히려고?”
“하하.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어! 이상한 소리를 하고 그래!”
“맞잖아.”
이세연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들은 사람이 있나 확인했다.
다행히 태현과 이세연이 단둘이 대화하는데 옆에서 어슬렁거리는 간 큰 플레이어는 없었다.
“조용히 해라. 응? 지금 누구 때문에 여기 와서 이 고생 중인데.”
“고생은 다른 플레이어들이 했지.”
불리해질 것 같자 이세연은 말을 돌렸다.
“으흠. 어쨌든 우리 팀이 구성된 이유는 하나야. 화제 때문이지.”
판온 1에서 한 번 망했던 투기장 대회.
그 투기장 대회를 다시 여는 방송국도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철저하게 계산을 세우고, ‘이번에는 확실하게 된다!’라고 생각해도 숨길 수 없는 불안!
그래서 섭외한 게 태현과 이세연으로 이루어진 팀이었다.
국내 플레이어들 중 화제성으로 따진다면 언제나 톱에 드는 둘!
한 명은 판온 1에서부터 실력으로 유명한 랭커 중의 랭커.
다른 한 명은 판온 2에서 갑자기 나타나(사실은 판온 1도 했지만) 굵직굵직한 퀘스트들을 최초로 해결해 다른 플레이어들의 관심과 호기심을 한 몸에 받는 플레이어.
아직도 수많은 플레이어가 태현이 어떤 직업인지 추측하고 있었다.
그런 둘이니 방송국의 히든카드가 된 것!
당연히 다른 플레이어들도 인기와 화제성을 신경 써서 뽑아야 했다.
물론 케인은 덤에 가까웠지만.
“화제라…….”
“너 다른 플레이어들 방송은 좀 봐?”
“아니, 안 보는데.”
즉답하는 태현! 이세연은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
“그래. 그럴 것 같았어.”
“나중에 또 랭커 사냥할 일 있으면 그때 보겠지.”
“……농담이지?”
“그렇지.”
태현이 농담이라고 해도 왠지 농담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안 보면 모르겠네. 네 번째 멤버로 뽑힌 사람은 김철수야.”
“누구야?”
“사제 플레이어. 성격 좋은 사람이고 실력도 검증됐으니까 문제는 없을 거야.”
태현은 몰랐지만 김철수도 나름 유명한 플레이어였다.
국내 사제 플레이어 중에 나름 괜찮은 실력을 갖고 있고, 방송도 나름 재미있게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
여러모로 ‘나름’이 잘 어울리는 플레이어!
사제 플레이어들은 보통 파티 플레이가 필수다 보니 성격이 좋은 플레이어들이 많았다.
그런 면에서 김철수는 경험이 많았기에 이세연은 안심했다.
한 성격 하는 태현과 같이 팀을 해도 절대 충돌이 일어나지 않을 플레이어였던 것이다.
이세연한테 설명을 다 들은 태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한마디로 평범하다는 거지?”
“……너 내가 한 말 안 들었지?”
“국내에서도 사제 톱이 아니면 평범한 거지. 너 솔직하게 말해봐. 네가 국내 네크로맨서 톱이라고 생각해, 안 생각해?”
“생, 생각하지만…….”
태현의 질문에 이세연은 말을 더듬었다.
사실 태현의 기준으로 따진다면 대부분의 플레이어가 다 평범한 플레이어였다.
“팀으로 뽑힐 정도면 적어도 국내 사제 플레이어 중에서는 톱이라고 불리는 플레이어가 올 줄 알았는데.”
“어쨌든 그런 소리는 그 사람 앞에서는 하지 마.”
“내가 그런 소리를 왜 하겠어?”
“네가 일부러 망칠까 봐…….”
“아. 그런 방법이!”
“너 진짜 일부러 망치기만 해봐. 내가 게임 쪽 기자들 불러서 기자회견 열 거야!”
“…….”
이세연도 만만치 않았다. 태현은 입맛을 다시며 물러섰다.
서로가 서로의 약점을 잘 알고 있는 둘!
사실 다른 쟁쟁한 사제 플레이어들을 제치고 김철수가 뽑힌 이유는 하나였다.
정말 실력 있는 사제 플레이어들은 이미 다른 플레이어들과 팀을 맺고 진지하게 본선 진출을 노리고 있었던 것!
당연히 MBS 측에서는 길드에 들지 않은 솔로 플레이어 중에서 고를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가 김철수였다.
솔로로 활동하는 플레이어면서, 나름 실력 있는 사제 직업에, 나름 인기까지 있는 플레이어!
“알겠어. 그 김민수라는 사람과 만나면 예의 바르게 대하도록 노력하지.”
“……김철수야.”
“그게 그거지. 그래서 마지막 남은 한 명은 누군데?”
“그게 문제인데…….”
이세연은 말끝을 흐렸다.
다섯 명.
이세연, 김태현, 케인, 김철수, 이 네 명은 태현과 마찰을 일으키지 않을 플레이어들이었다.
즉 팀플레이를 하는 데에도 문제가 없는 플레이어들이라는 것!
그러나 마지막 플레이어는 아니었다.
“도동수라고 알아?”
도동수.
판온 1에서 두 가지로 유명했던 도적 랭커 중 하나였다.
태현과 싸우기 전에는 뛰어난 국내 도적 랭커로.
태현과 싸운 다음에는 ‘대장장이한테 1:1로 싸워서 진 도적ㅋㅋㅋ’으로!
당연히 당사자는 이를 갈고 갈고 또 갈고 있었다.
어느 정도냐면, 도동수의 개인 방송의 채팅창에서 ‘김태현’, ‘태현’, ‘대장장이’ 같은 단어들을 꺼내면 강퇴시킬 정도!
이세연은 도동수가 판온 2에서 플레이하는 모습을 한 번 본 적 있었다.
멀쩡하게 잘 싸우던 도동수였지만, 뒤에서 대장장이 플레이어가 수리를 위해 접근하자 화들짝 놀라서 칼을 겨눴다.
뼛속 깊이 각인된 트라우마!
물론 당사자인 도동수한테 태현 이야기를 꺼내면 불같이 화를 내니 아무도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모르는데? 그게 누구야?”
“역시 잊고 있었구나…… 네가 이겼던 랭커 중 하나야.”
“……?”
물론 이세연이 말한다고 해서 태현이 바로 떠올릴 사람은 아니었다.
떠올릴 사람이라면 애초에 그 정도로 원한을 쌓고 다니지도 않았을 것!
“그 도동수가 마지막 팀원으로 결정됐어.”
“그래?”
“그래? 가 아니지! 좀 당황해해라! 안 당황스러워? 상대방이 널 얼마나 싫어하는데!”
“음, 나는 다른 사람이 날 싫어하면 더 확실하게 싫어하도록 만들어주는 편이라서.”
얼굴에 철판을 깔고 말하는 태현의 모습에 이세연은 기가 막혔다.
“자랑이다!”
“그보다 그렇게 날 싫어하는 놈이면 뽑은 방송국 잘못 아닌가? 그리고 걔는 내가 나인지 모를 텐데?”
“방송국도 사정이 있었겠지. 도동수는 인기가 엄청 좋은 편이니까.”
“그래?”
“도적 플레이어 중에서는 톱 수준이야. 판온 1보다 훨씬 더 실력이 올라갔어.”
도동수의 실력이 올라간 데에는 태현에 대한 원한이 있었지만, 그것까지 이세연이 알지는 못했다.
실력이 확실한 데다가 인기투표에서도 압도적인 표를 얻은 도동수를 뽑지 않는 것은 MBS 쪽에서도 꽤나 부담 가는 일이었다.
게다가 도동수는 길드에 들지 않은 솔로 플레이어!
도동수의 원한을 모르는 방송국 쪽 간부들이 ‘그냥 도동수 넣어라’, ‘도동수 말고 뭐 얼마나 대단한 플레이어를 찾을 수 있겠냐’ 하고 압력을 넣었고, 결국 도동수가 뽑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물론 네가 판온 1의 김태현이라는 건 모르겠지만…… 도동수 그 사람이 널 좀 심각하게 싫어해서…….”
태현의 ㅌ자만 들어도 발작을 일으키고 대장장이가 뒤에서만 다가가도 먼저 선공을 날릴 정도!
“그런 의혹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까칠하게 굴걸?”
“제카스가 참, 사람 귀찮게 만드는군.”
태현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리고 뒤에 작게 덧붙였다.
“그 자식도 빨리 찾아서 족쳐야 하는데…….”
“?!”
“어쨌든 그게 전부지? 김철수는 나 안 싫어하고, 도동수는 나 싫어하고. 간단하네.”
“…….”
아무리 생각해도 간단하지 않은 내용을 간단하다고 하는 태현!
그 모습에 이세연은 점점 불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저거 사고 치면 안 되는데…….’
“너 진짜 사고 치면 안 된다?”
“아, 안 친다니까. 믿어.”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며, 둘은 투기장으로 떠날 준비를 마쳤다.
* * *
“언니, 저 괜찮죠?”
“그 질문 지금 열 번째거든……? 어차피 판온 외모는 알아서 커스터마이징 되는데 뭐가 그렇게 불안한데?”
“그, 그래도…… 이 갑옷이 나을까요, 이 갑옷이 나을까요?”
“…….”
주가연은 참을성 있게 유지수의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벌써 짜증을 냈어도 몇 번은 냈을 것!
기껏 사디크 교단 토벌에서 공을 세워놓고 유지수는 망설이고 있었다.
어떻게 나타나야 가장 극적일까!
어떻게 나타나야 가장 인상에 깊게 남을까!
그 결과가 바로 지금 상황이었다.
주가연을 붙잡고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는 것!
“지수야…… 제발…… 너 정말 예쁘니까 그냥 가도 괜찮다니까?”
“그, 그래요? 그러면…….”
유지수는 몇 번 헛기침을 하더니 태현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나 거기에는 이미 아무도 없었다.
“……?”
유지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현실을 바로 받아들이지 못한 모습!
유지수는 그 주변에 있던 플레이어를 붙잡고 물었다.
“김태현 플레이어 어디 갔어요?”
“그 새…… 아니, 김태현 님은 이세연하고 같이 와이번 타고 날아갔는데요.”
“…….”
태현한테 뭔가 많이 당한 것 같은 플레이어는 둘째 치고, 유지수는 예상을 벗어난 상황에 멍해졌다.
여기 와서 개고생을 한 이유가 완전히 사라진 것!
옆에서 그 말을 들은 주가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쩜 재수가 없어도 저렇게 없을 수가 있을까!
“말, 말도 안 돼…….”
절망에 빠져 있는 유지수의 앞에 덜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
지금 사디크 교단의 본거지는 완전히 토벌된 상태였다.
호기심 많은 플레이어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뭐 숨겨진 창고 같은 거 없을까?’ 하고 수색을 할 뿐!
갑자기 이런 소리가 들릴 이유가 없었다.
“뭐지?”
주가연도 긴장해서 활을 꺼내 들었다.
그 순간 저 앞의 폐쇄된 광산의 문이 부서졌다.
거기서 걸어나온 건 유 회장!
“김태현 이놈 어디 갔어! 나와!”
저번에 봤을 때와는 너무나 달라진 겉모습!
저번에 봤을 때에는 누가 봐도 ‘나 게임 처음 시작한 초보자입니다’ 같은 겉모습이었다.
그러나 지금 유 회장의 분위기는 게임을 몇 년은 넘게 해온 것 같은 백전노장의 분위기가 풍겼다.
“아저씨 거기서 뭐하세요?”
“?!”
유 회장은 당황한 얼굴로 유지수를 쳐다보았다.
왜 손녀가 여기 있단 말인가?
* * *
이미 태현의 이름을 말하면서 뛰쳐나온 이상, 어설픈 거짓말은 할 수 없었다.
유 회장은 있었던 일들을 그대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그의 정체는 최대한 숨긴 채!
“그러니까 그놈이 아주 나쁜 놈이라니까!”
“오빠는 그럴 사람이 아니에요.”
“…….”
단호하게, 칼 자르듯이 대답하는 유지수의 모습에 유 회장은 명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싸늘한 분위기!
‘김, 김태현 이놈……!’
가슴 속을 맴도는 건 억울한 마음뿐!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미 콩깍지가 제대로 씌었는데.
유 회장은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말을 바꿨다.
“아, 아니…… 그놈이 속이 깊기는 하지. 나 레벨 업 하라고 거기 넣어줬으니까. 그냥 밖에 있었으면 싸우다 죽었을지도 모르고.”
“그렇죠?”
태현의 칭찬을 하자 금세 풀어지는 유지수의 분위기였다. 그 모습에 유 회장의 가슴은 한층 더 타들어 갔다.
“그래. 그러면 나는 이만…….”
더 있다가는 속이 더 타들어 가거나, 정체만 들킬 것 같아서 유 회장은 일단 거리를 벌리려고 했다.
그런데 유지수는 의외로 관심을 보였다.
“어디로 가시려고요?”
“투기장으로 가려고 하는데.”
태현이 투기장으로 갔다고 했으니, 유 회장도 투기장으로 갈 셈이었다.
내가 반드시 네놈의 등짝에 낚싯대 한 방은 후려갈겨 주고 말겠다!
“같이 가실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