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337화
레벨이 한 번에 2만큼 오르다니.
정말 언제 한 경험인지 기억도 안 났다.
물론 강력한 보스 몬스터를 사냥하거나 대륙, 전설 퀘스트를 깨면 레벨이 한 번에 여러 개 오르는 건 일도 아니었다.
남들은 보통 5, 6. 아니면 10 넘게 오르는 사람도 있었다.
안 그러면 고난이도 퀘스트를 깨는 사람은 없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문제는 태현에게는 그런 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하이 리스크 로우 리턴!
개고생을 해야 간신히 1업을 할 수 있는 게 태현의 직업이었다.
그런데 한 번에 2업이라니.
‘이 자식 대체 레벨이 몇이야?!’
태현은 깜짝 놀란 눈으로 슬라임 성문을 쳐다보았다.
‘생각해 보니까 거의 아슬아슬하게 오른 거 같긴 한데…….’
레벨 업 하기 직전의 경험치 상태에, 엄청난 경험치가 들어오니 1업을 하고 거기에 추가로 1업이 된 것.
태현이 여기 오기 전까지 올렸던 경험치들을 생각해 보면 맞는 계산이었다.
“으악! 사디크 만세! 사디크 만세! 야! 뭐하냐! 뭐하냐고!”
멀리서 들려오는 케인의 비명.
그제야 태현은 정신을 차렸다.
레벨이 한 번에 2가 오른 건 좀 많이 놀랐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뿌리치고 달려!
말과 함께 태현도 달려나갔다.
지금 중요한 건 뭐?
성문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지는 것이었다.
-폭발!
[살아 움직이는 폭탄이 곧 폭발합니다.]
[폭발의 위력은 레벨에 따라 비례합니다.]
꿈틀, 꿈틀-
성문의 표면이 비틀리기 시작했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플레이어들은 지루한 표정으로 하품을 했다.
“왜 더 공격 안 하는 거지?”
“언데드들이 다 막혔나 봐.”
“이세연이라면 뚫을 수 있지 않나? 왜 가만히 있는 거지?”
“몰라. 생각이 있겠지. 이세연이잖아.”
이세연 님이 다 해주실 거야!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믿음!
플레이어들은 먼저 나서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도망가지도 않았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콰지직, 콰직-
“저 성문 뭔가 움직이지 않았냐?”
“움직이긴 뭐가 움직여. 성문이 살아 있냐?”
시력이 좋은 궁수 플레이어 중 한 명이 말했지만, 다른 플레이어들은 그를 구박했다.
“아냐, 진짜 움직인 것 같았는데…….”
태현이 성문을 날려 버리는 것도 모르고, 이세연은 데스 와이번 나이트 짤짤이를 계속하고 있었다.
마치 스X크래프트의 뮤X리스크를 연상시키는 짤짤이!
그 순간…….
콰콰콰콰콰콰콰콰쾅!
귀를 찢는 굉음과 함께, 성문 요새가 폭발에 휩싸였다.
마침 그 주변을 날던 이세연의 데스 나이트들도 함께!
“내 데스 나이트!!!”
* * *
-말하고 터뜨렸어야지! 말하고 터뜨렸어야지!!
-미안하다니까. 나도 지금 사디크 성기사 놈들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었어!
정확히 말하자면 레벨이 오르고 고급 기계공학 스킬을 찍었다는 것에 말하는 것을 잊은 것이었다.
물론 그렇게 말했다가는 이세연이 잡아먹으려고 할 테니 태현은 말을 돌렸다.
-알겠어. 지금 공격하면 되겠지?
-그러니까 고급 기계공학 스킬로 달라진 게…….
-……야. 귓속말 켜져 있거든?
-아. 미안.
-그보다 고급 기계공학 스킬? 언제 찍은 거야? 너 설마 그거 때문에 정신 팔려서 말 안 해준 건…….
뚝.
태현은 귓속말을 끊고 움직였다. 옆에서 헐떡이며 케인이 달려오고 있었다.
“헉, 헉…… 잡히는 줄 알았네.”
“잘했다. 케인. 그런데 왜 표정이 그러냐?”
케인의 표정에는 이유가 있었다.
이번 난동의 대가로 얻은 스킬 때문!
[스킬 <내가 XXX의 XXX다!>을 얻었습니다.]
메시지창에 케인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탱커 계열의 직업인 케인에게, 이런 식으로 어그로를 끄는 스킬은 언제나 좋은 스킬이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이런 짓으로 받았다는 게 납득이 잘 안 돼……!’
원래 탱커 직업으로 이런 스킬을 얻으려면 수많은 몬스터들과 싸우고 어그로를 끌어서 막아야 했다.
‘뭔가 얻는 방법이 다르다고!’
“묻지 마라……!”
“그럼 안 묻지 뭐.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는데.”
“…….”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말하는 태현.
케인은 속으로 생각했다.
정말 말을 얄밉게 하는 데에는 달인이라고!
“이제 어쩔 거냐?”
“밖에서 흔들어주는 동안 우리도 돌아다니자고. 챙길 거 챙기고 쓰러뜨릴 놈 챙기고.”
태현의 말에 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불난 집에 도둑질하는 것만큼 쉬우고 편한 일도 없었다.
태현의 경우, 정확하게 말하자면 집에 불을 지르고 도둑질을 하는 셈이었지만…….
-와아아아아아아!
-놈들을 막아라!
“싸운다. 싸운다.”
“내버려 둬. 어차피 알아서 잘 싸울 거야.”
-에반젤린! 에반젤린!
“?”
“어디서 들어본 거 같은 이름인데?”
* * *
아까운 데스 나이트를 생으로 날려버렸지만, 이세연은 흔들리지 않았다.
폭발이 가시자, 성문 요새의 절반이 날아간 것이다.
절호의 기회!
-분노와 부정의 오오라!
-언데드 광란!
함성과 함께 언데드 군대들이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
명령을 내린 이세연은 새삼스럽게 다시 놀랐다.
‘저게 <고급 기계공학> 스킬의 힘?’
지금 현재 플레이어 중에서 저 정도 파괴력을 가진 스킬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NO였다.
파괴 마법 전문인 랭커 마법사를 뛰어넘는 위력!
물론 이 폭발은 성문을 대체하고 있던 마수 슬라임의 힘 덕분이었지만, 이세연에게는 알 길이 없었다.
“우리도 가자!”
“기회야! 기회!”
아까까지는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플레이어들도 앞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들이 보기에도 지금은 기회였던 것이다.
저 튼튼해 보이던 요새의 절반이 날아가서 안쪽이 그냥 드러난 상황.
가기만 하면 날로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우르르-
파티별로 모인 플레이어들이 언데드들 뒤를 따라서 돌격하기 시작했다.
“좋아. 사디크 교단 썰러 가보자!”
사디크 교단 NPC들을 상대하는 데에는 이제 이골이 난 에반젤린이 앞장섰다.
에반젤린도, 그녀의 파티도 랭커다보니 그 돌격은 차원이 달랐다.
쾅! 콰쾅!
위에서 내려오는 화살 공격이나 사디크 신성 마법은 가볍게 튕겨내고 돌격!
다른 플레이어들이 돌격하다가 공격을 맞고 ‘힐! 힐 좀 주세요!’하고 도망치는 것과는 비교되는 모습이었다.
스르르-
-막아라! 반드시 막아라!
성문 요새가 박살이 나자, 주변에 있던 사디크 성기사들이 전부 몰려나온 것 같았다.
그들은 폭발로 드러난 통로에 뭉쳐서 막을 준비를 했다.
-괴수를 내보내!
-다크 엘프들! 마법을 써라!
사디크의 거대한 괴수들이 성문 밖으로 뛰쳐나오고, 다크 엘프들이 사용한 암석 벽들이 구멍 주변에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대폭발에 대한 대응치고는 훌륭한 편이었지만, 상대가 너무 나빴다.
부우웅-
쾅!
에반젤린의 묵직한 일격이 사디크 성기사를 저 멀리 날려 버렸다.
-저, 저 뱀파이어! 사디크의 원수다!
-그 학살자다!
“…….”
저주를 받기 위해 사디크 교단을 하도 집요하게 쫓아다니다 보니, 에반젤린을 알아보는 사디크 NPC들이 여럿 있었다.
사디크 성기사들이 여럿 달려들었지만, 버프와 지원을 받는 에반젤린은 오히려 그들을 밀어냈다.
그리고 곳곳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랭커가 낀 파티는 사디크의 거대 괴수도 아랑곳하지 않고 능숙하게 사냥했다.
“어그로 끌어! 내가 뒤에서 친다!”
“묶어! 한 번에 때려!”
“놈이 날아가지 못하도록 막아!”
돌격하다가 공격 맞고 도망친 어설픈 플레이어들도 많았지만, 실력 있는 플레이어들도 그만큼 많았던 것이다.
눈치만 보던 이들이 본격적으로 나서자 싸움은 점점 치열하게 변했다.
“내가 마법으로 도움을…….”
“안, 안 돼. 수혁아. 우리 그러다 PK 당해!”
“맞아!”
정수혁이 마법을 쓰려고 하자 친구들이 모두 말렸다.
그들만 있을 때면 모를까, 지금 플레이어들이 우글거리는데 잘못 마법 쏴서 팀킬이라도 했다가는…….
생각만 해도 오싹!
태현 선배를 만나기도 전에 공적으로 몰려서 로그아웃당할 수도 있었다.
* * *
-갑자기 벌어진 프리카 대륙 공성전!
-어째서 벌어진 것일까? 이유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사디크 교단에 대해 사람들이 모르는 10가지 사실.
-공성전에 참가한 유명 플레이어들 정리.
게시판은 화끈하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프리카 투기장 리그를 기다리던 플레이어들에게는 정말 선물 같은 이벤트였다.
오랜만에 보는, 거대한 규모의 전투에 사람들은 환호했다.
모든 게 가능한 판온이었지만 이런 식으로 많은 플레이어가 모여서 치열하게 맞붙는 건 보기 드문 일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열기와 상관없는 곳에, 한 무리의 플레이어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드디어 퀘스트를 깼어! 이제 촌장한테 돌아가면 사디크 교단의 흔적을 알려줄 거야.”
“정말 고생 많았다! 지금 당장 돌아가자!”
태현한테 퀘스트를 강매당한 플레이어들!
그들의 우정은 그 짧은 사이에 끈끈해지고 있었다.
태현이라는 적 아래에 뭉친 우정!
플레이어 중 한 명은 별생각 없이 판온 사이트를 켰다.
그리고 경악했다.
“어, 저기, 애들아…….”
“빨리 돌아가자! 이 지긋지긋한 퀘스트를 끝내러!”
“어, 그…….”
“왜 그래? 빨리 움직이자고.”
아무것도 모르는 동료들을 보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말해야 했다.
“지금…… 사디크 교단…… 공성전 하고 있다는데…….”
“…….”
갑자기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 * *
“어디에 폭탄을 설치해야 할까?”
“그보다는 누구를 잡아야 할지 정해야 하지 않나?”
“그것보다는 어디 가서 뭘 털지 정하죠!”
시간은 없는데, 하고 싶은 건 너무 많았다. 각자의 의견은 또 모두 달랐다.
결국 결정해야 하는 건 태현!
“안토니오나 기사단장, 대주교를 잡아야 권능이 나오긴 하는데…….”
<권능 포식> 스킬을 얻고 나온 퀘스트.
<권능을 약탈하라-사디크 교단 토벌 퀘스트>
교단의 권능 스킬을 얻기 위해 꼭 그 교단의 신을 믿어야 하는 건 아니다.
당신은 신 잡아먹는 괴물의 정수를 먹고 그의 권능을 훔쳤다.
현재 대륙에서 여러 신의 권능을 가질 수 있는 건 오직 당신!
그리고 지금 당신이 확보하고 있는 권능은 사디크의 권능이다.
지난번 전투 이후 그림자로 숨어들어 간 사디크 교단을 찾아 고위 NPC들을 처치하라.
-아탈리 국왕의 삼촌, 안토니오.
-사디크 교단의 기사단장.
-사디크 교단의 대주교.
보상:사디크의 권능.
문제는 저 놈들이 하나같이 다 강력한 보스 몬스터라는 점이었다.
아까 성문의 슬라임처럼 가만히 맞아주는 놈은 절대로 아닐 것이고.
게다가 여기는 사디크 교단의 본거지. 괜히 잡으려다가 역으로 잡힐 수 있었다.
‘케인을 써먹어 볼까?’
<살아 움직이는 폭탄>을 쓰기 위해 태어난 사나이, 케인!
그런 태현의 눈빛에 케인은 등골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아냐. 케인은 지금 죽으면 안 되지. 일단 셋 중 하나는 잡아야 권능이 하나라도 나올 텐데. 으음…….’
태현은 머리를 굴렸다.
만약 본거지가 함락된다면, 저 셋은 다시 도망칠 가능성이 컸다.
그러면 또 지루한 술래잡기의 연속이었다.
최소한 여기서 하나, 많으면 둘은 잡고 싶었다.
‘만들어온 폭탄을 활용해서 한 번에 보낼 수밖에 없겠군. 좋아. 상황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나…….’
“거기 있었구나!”
“?!”
뒤에서 버포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현은 순간 당황했다.
설마 들켰나?!
지금은 케인, 이다비하고 같이 있는 상황.
버포드가 이걸 보고 뭔가 깨닫는다면 일이 귀찮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