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335화
말을 돌리려고 했지만 태현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냐니까? 왜 다른 플레이어들이 여기 있어?
-그야 너를 도와주려고 데려온 거지!
말을 돌릴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이세연은 오히려 당당하게 대답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고개를 숙이면 불리해진다!
-나를…… 도와주려고 데려왔다고?
태현은 멈칫했다.
다른 사람들이 이세연한테 저런 말을 들었다면 ‘아니, 이세연이 나를 위해 저렇게 말해주다니’ 하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그러나 태현은 아니었다.
태현 안에서 이세연은 사악하고 비열한 인격의 소유자!
태현 본인과는 반대되는 사악한 사람이 바로 이세연이었다.
‘말이 안 되는데?’
-그래. 혼자서 도와주는 데에는 한계가 있잖아? 그래서 사람들을 모았지.
-어떻게?
-그냥 말하니까 모이던데?
-……!
태현은 다시 한번 놀랐다.
태현의 기준에서, 저렇게 사람들이 모이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난이도는 전설 등급에, 깰 방법이 있는지도 모르고, 알려진 정보도 별로 없는 퀘스트인 것이다.
그걸 그냥 따라가는 건 순진한 걸 떠나서 멍청한 수준!
저런 수상쩍은 제안, 태현이라면 절대 따라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세연은 해냈다.
‘유명인은 이래서 대단하군. 원래라면 아무도 안 따라올 일인데 다 따라오게 만들고.’
태현이 한 가지 놓치고 있는 게 있었다.
그것은 이세연이 태현의 이름을 사용했다는 것!
이세연이 참가하는 퀘스트에, 태현까지 낀다고 하니 대체 무슨 퀘스트인지 궁금해서 따라온 플레이어들의 숫자도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태현은 아직까지 자신의 이름이 가진 힘을 완벽하게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고맙지? 고맙지?
-고, 고, 고…….
-그래! 말을 하는 거야. 고맙다고 말을 해!
-크으윽……!
명분에서 밀린 태현은 괴로워했다. 이세연한테 ‘고맙다’고 말하는 건 정말 괴로운 일이었다.
그에 비해 이세연은 기대감으로 잔뜩 흥분한 상태였다.
사소한 일이지만 태현을 무릎 꿇릴 기회!
“하악, 하악…….”
“언, 언니. 왜 그래요?”
옆에서 현아가 기겁한 표정으로 이세연을 쳐다보았다. 평소에는 절대로 볼 수 없는 모습!
대체 무슨 귓속말을 하는데 저렇게 숨을 거칠게 내쉰단 말인가?
태현의 위기를 구해준 것은 버포드였다.
“모두 모여 봐!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앗. 버포드가 부른다. 이따가 다시 이야기하자고.
-야! 야! 말하고 가!
그러나 태현이 대답할 리 없었다.
순간 이세연은 이런 일이 예전에도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 판온 1때…….’
길드에 들어오라고 할 때도 그냥 접속 종료를 해버린 태현이었다.
‘그리고 오스턴 왕국에서도…….’
오크들 군세에서 관대한 마음으로(심지어 왕관을 뺏겼는데도!) 제안을 했을 때에도, 태현은 거절을 했었다.
‘생각해 보니까 이 나쁜 놈은 진짜 내가 뭐만 하자고 하면 다 거절이네!’
새삼스럽게 화가 치밀어 오르는 기억들!
그렇다고 이세연이 나쁜 제안을 한 것도 아니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름 다 좋은 제안들이었다.
‘그래. 아무리 생각해도 내 잘못이 아니야. 김태현 잘못이지!’
상대방이 저러니 이세연도 자꾸 이상해지는 것 같았다.
이세연은 일단 태현에 대한 불만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지금 중요한 건 사디크 교단 공략!
‘그보다 버포드? 버포드면 사디크 교단에 가장 먼저 들어간 플레이어일 텐데…… 안에서 만난 건가? 어떻게?’
그녀가 안 본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말로 궁금했다.
* * *
“여기 앞에 토벌대가 왔다잖아! 어떻게 된 거냐고!”
버포드가 당황해서 외치자, 약탈자 플레이어 중 한 명이 손을 들고 말했다.
“어쩌다가 여기로 온 파티 아냐?”
투기장 리그도 그렇고, 프리카 대륙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있었다.
새로 온 플레이어 중 산맥을 돌아다니다가 여기 앞에 도착한 걸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버포드는 가슴을 치며 답답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게 아니라니까. 엄청 대규모야! 이세연이 주도해서 끌고 왔어!”
“뭐?!”
“이세연이?!”
약탈자 파티의 표정이 변했다.
이세연이 직접 플레이어들을 데리고 토벌을 위해 왔다니.
이건 가볍게 넘길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야,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여기가 어떻게 알려진 거지?
-그보다 어떻게 할 건지부터 정해야 하지 않나? 기껏 가입했는데 아무것도 못 얻고 나가야 하나?
-아오. 이세연은 왜 여기에 와가지고…….
-조금 기다려 보자고. 여기가 바로 뚫릴지는 모르는 일이잖아? 만약에 막아내면 공적치 포인트 꽤 나올 테니까 그거 받고 바로 튀자고.
그들은 일단 남아 있기로 결정했다.
그들이 보기에도 여기 요새는 정말 튼튼해 보였던 것이다.
게다가 사디크 교단의 전력과 다크 엘프들, 타 부족의 전사들까지 있었다.
아무리 이세연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 정도면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왜 아무도 대답이 없어?”
약탈자 플레이어들이 자기들끼리 떠드는 동안, 버포드는 초조해졌다.
“이게 어떻게 된 건지 아는 사람 없어? 어? 밖에 플레이어들이 여기를 대체 어떻게 안 거지?”
“그건…….”
“그쪽밖에 없지 않나요?”
“?!”
약탈자 플레이어가 버포드를 가리키며 말했다.
말은 공손했지만 내용은 전혀 공손하지 않았다.
“뭐? 왜 나야?”
“그야 우리도 그쪽이 올린 글 보고 여기 온 거니까…….”
“…….”
생각해 보니 그랬다.
버포드는 사디크 교단을 소개하는 글을 사이트에 올렸던 것이다.
물론 교단 본거지의 위치를 바로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대놓고 쓰지는 않았다.
교단 밖에서 가입을 하면 본거지로 올 수 있으니, 교단 밖에서 가입을 하는 방법 위주로 설명을 했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그런 건 의미가 없었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건 버포드의 글!
“아, 아니야! 나는 분명 본거지 위치는 빼고 글을 썼다고. 밖에서 가입하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하는 글! 너희들도 봤잖아!”
“우리야 그걸 봤지만 그쪽이 글을 한두 개 쓴 게 아니잖습니까. 아주 게시판에 도배를 했던데. 글 쓰던 도중 실수한 거 아니에요?”
“아니라니까!”
버포드는 억울해서 가슴을 쳤지만, 이미 약탈자 파티의 눈빛은 차가워진 상태였다.
범인을 버포드라고 생각하고 있는 눈빛!
물론 범인은 태현이었지만, 그들은 설마 저 약해 보이는 플레이어가 뒤통수를 쳤다고는 상상치도 못하고 있었다.
여기 본거지까지 오려면 그래도 퀘스트를 좀 깨고 왔을 텐데, 뭐가 아쉬워서 밖에 정보를 뿌린단 말인가?
‘살짝 미안해지는데?’
범인으로 몰려서 울먹거리는 버포드를 보며 태현은 아주 조금 미안해졌다.
설마 배에서 순간이동했는데 사디크 교단 믿는 마을로 떨어져서 한 번에 올 줄이라고 누가 알았겠는가?
“나 아니라고! 내가 왜 내 무덤을 파는 짓을 하겠냐니까?”
“그야 실수겠죠.”
“그런 실수를 내가 하겠냐?!”
“할 거 같은데…….”
“그쪽이 이제까지 한 걸 보면…….”
버포드의 입이 더욱 벌어졌다.
치사하게 사실로 두들겨 패다니!
이제까지 했던 것들을 따져보면 반박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때 태현이 나섰다.
“그만하죠,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어디서 새어나갔든…….”
태현에게서 새어나갔다.
“중요한 건 지금 힘을 합쳐서 공격을 막아내는 거 아니겠어요? 저는 버포드 씨를 믿어요. 밖의 플레이어들이 다른 방법으로 알아냈을 수도 있잖아요.”
“너……!”
버포드는 감격한 표정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궁지에 몰린 버포드에게 비친 한 줄기 빛!
물론 그 상대가 버포드를 궁지로 몬 상대였지만!
버포드가 감격해서 태현의 손을 잡고 꺼이꺼이 하는 모습을 보며, 약탈자 파티는 다시 한번 혀를 찼다.
-아, 저 쪼렙 자식 진짜 더럽게 거슬리네.
-그러게 왜 멀쩡한 호구를 괴롭히고 그래?
-아무리 생각해도 저놈이 한 짓이잖아. 어떻게 저렇게 토벌대가 빨리 와? 지가 분명 실수로 글 써놓고 잊어버린 거라니까. 저놈 칠칠찮은 거 알잖아.
버포드가 들었다면 울었을 정도의 공격이었다.
그러나 버포드는 태현의 응원으로 힘을 되찾았다.
“그래! 일단 성문 요새로 가자! 지금 중요한 건 공격을 막아내는 거니까!”
“그래요! 성문 요새의 취약한 곳으로 가죠!”
요새를 부술 생각으로 가득한 태현!
그것도 모르고 버포드는 감격한 얼굴이었다.
* * *
“이 주변에 언데드들이 별로 없나?”
이세연의 말에, 다른 사람들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그들 앞에는 언데드 군대가 일어나고 있었으니까.
-죽은 자의 땅.
-언데드 라이징. 언데드 라이징. 언데드 라이징.
-깊게 매장된 무덤.
-사악하고 어두운 힘!
주변 전체에 언데드한테 버프를 주는 광역기를 깔고, 대량의 언데드들을 일으킨 다음, 그 언데드들에게 다시 버프를 걸었다.
언데드 종류는 기껏해야 스켈레톤이나 구울 정도였지만 아무도 비웃지 못했다.
느껴지는 힘이 장난이 아니었던 것!
-크르륵…….
-크르륵…… 산 자의 기운이 느껴진다…….
약한 언데드 몬스터들이지만, 이세연의 버프를 몇 겹으로 받자 절대 잡몹으로 취급할 수 없는 강함이 드러났다.
스켈레톤 전사들 주변에서 넘실대는 검은 오오라를 본 플레이어들은 수군거렸다.
“저게 <사악하고 어두운 힘> 스킬인가? 네크로맨서 비전 스킬인?”
“이세연이 얻었다는 소문이 있다던데 정말로 얻었었구나.”
“어디서 얻은 거지?”
따라온 플레이어 중에 가장 관심 있게 쳐다보는 사람들은 네크로맨서였다.
네크로맨서인 그들에게 이세연은 롤모델 그 자체!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이 태현을 우러러보듯이, 네크로맨서는 이세연을 우러러봤다.
물론 그 두 직업은 안정성이 전혀 다르지만…….
“거기, 좀 도와줄래?”
“네? 네?”
“네크로맨서면 같이 하는 게 더 편하잖아. 와서 언데드들 좀 소환해. 이 영역 안에서는 소환하기 편할 거야.”
“……예!!”
네크로맨서 플레이어들은 냉큼 앞으로 달려나갔다.
이세연과 같이 싸울 수 있는 기회라니!
이세연에게 많은 걸 배울 수 있는 기회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도 영광이었다.
-중급 언데드 소환! 중급 언데드 소환!
-데스 나이트 소환!
“벌써부터 그렇게 힘을 뺄 필요는 없는데…….”
언데드들을 소환하는 데 공을 들이는 플레이어들을 보고 이세연은 중얼거렸다.
지금은 아직 공성전 초반.
나중을 대비해 스킬들을 아껴놓는 게 좋았다.
다른 사람들이 알았다면 다시 경악했을 것이다. 이게 스킬들을 아껴놓은 수준이라니.
일인군단이라는 네크로맨서의 위력을 절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김태현은 제대로 준비하고 있겠지?’
대충 준비가 끝나자, 이세연은 공격을 시작했다.
“가라!”
작전은 간단했다.
이세연과 네크로맨서들이 이끄는 언데드들이 방패가 될 테니, 나머지 플레이어들은 알아서 공격해라!
어차피 여기 모인 플레이어들 데리고 복잡한 전략은 쓸 수도 없었다.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고 다 제각각이었으니까.
-크와아앙!
-쿠와아아앙!
강화된 스켈레톤 전사들과 구울 전사들이 유령 늑대들을 타고 돌진하기 시작했다.
그 뒤를 따라가는 건 언데드 궁수들과 마법사!
뒤의 네크로맨서에 비하면 엄청나게 부족하지만, 원거리 공격이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파파파파팍-
-더러운 언데드 놈들이 온다!
-사디크 님이시여, 힘을 주소서!
그에 맞서서 요새 위에서도 드디어 적들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사디크 성기사들과 주변 부족 전사들이었다.
퍼퍼퍼퍽!
요새 위에서 화살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 공격에 언데드 전사들이 나뒹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