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261화
NPC들을 이용해 먹을 놈!
“뭐, 알아서 잘하겠지. 김태현은 실패하더라도 크게 타격을 입지 않을 거야. 도망은 칠 수 있을 테니까.”
태현의 스킬셋을 알고 있는 최명성이었기에, 그렇게까지 걱정하지 않았다.
상대는 못 잡더라도 도망은 칠 수 있는 상황!
“팀장님, 여기 길마들끼리 모이는데요.”
“아, 그 반푼이들?”
“…….”
최명성 팀장이 반푼이라고 했지만, 대형 길드 연합은 절대 반푼이가 아니었다.
길마, 그것도 대형 길드의 길마를 하려면 게임 실력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고, 현실에서도 여유가 있어서 꽤 현질이 가능한 사람만이 할 수 있었다.
결코 아무나 하는 게 아닌 자리!
그러나 최명성의 눈에 길드 연합은 태현한테 당한 피해자 모임으로 보일 뿐이었다.
“그래도 모이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모일 리가 있나. 판온 1 때도 그런 놈들 있었어. 근데 왜 안 됐겠냐.”
최명성은 심드렁했다. 그는 길드 연합에 크게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다.
판온 1 때도 비슷한 걸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건 결코 잘될 수가 없었다.
사람의 이기심 때문!
대형 길드의 길마 정도 되면 욕심이 어마어마했다. 자기가 최고가 되려는 욕심, 자기가 더 잘 나가려는 욕심…….
그런 욕심을 가진 사람들은 절대로 힘을 합칠 수 없었다. 당장에는 손을 잡는 거 같아도 결국에는 갈라지게 되어 있었다.
“반푼이들 모아봤자 반푼이들이지. 알아서 저들끼리 싸우고 갈라질 거다.”
“에이, 그래도 나름 좀 한다는 사람들인데…….”
“사람이란 건 안 변한다니까. 아쉬운 거 없는 놈들은 안 뭉쳐.”
그러나 최명성은 잊고 있었다. 1과 달리, 이번의 그들은 뭉칠 이유를 하나 갖고 있었다.
바로 김태현!
* * *
“아니…… 스킬이 다 봉인됐네. 기계공학 재료를 좀 더 갖고 올 거 그랬어. 너무 안일했다.”
“튈까요?”
“너의 그 현실적인 태도는 참 마음에 드는데, 그래도 지금 튀는 건 좀 아니지.”
이다비의 말에 태현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 도망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좀 도망칠 만한 상황에 도망을 쳐야지, 아무것도 안 했는데 냅다 도망치면 다른 교단 NPC들이 바로 물어뜯을 게 분명했다.
안 그래도 사이가 안 좋은데 구실을 만들어줄 수는 없는 상황!
케인은 구시렁대며 구석에 앉아 있었다.
“하필 왜 이상한 직업으로 전직해 가지고…….”
“이제까지 이득 본 건 다 기억에서 지웠냐? 그만 구시렁대고 일어서!”
케인은 투덜거리며 일어섰다.
타타탁-
기다리고 있자, 차례대로 <검은 바위단>의 길드원들이 떨어졌다.
그들 중에서 사제 직업을 가진 플레이어들은 당황한 표정이었다.
“어? 스킬이 봉인됐는데?”
“괜찮아?”
그들이 떠드는 사이, 다른 교단의 NPC들도 차례대로 던전에 들어왔다.
그들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
“이게 어떻게 된 일이오?”
“기록에 이런 건 듣지 못했는데…….”
태현은 그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러게 좀 조사 제대로 하고 오지 그랬어.”
“그, 그쪽한테 그런 말을 들을 이유는 없소이다!”
“정말 불쾌하군! 우리는 우리가 알아서 이 던전을 조사하겠소. 뭔가 찾으면 그때 말하리다!”
“앗! 야타 사제! 기다리시오!”
하론이 말리려고 했지만, 다른 교단의 NPC들은 잔뜩 화가 나서 자기들끼리 먼저 출발을 해버렸다.
그걸 본 하론이 머리를 감싸고 괴로워했다.
“앗…… 아아…… 이렇게 돼버리면 안 되는데…….”
“괜찮아. 괜찮아. 어차피 옆에 있어 봤자 별 도움도 안 될 놈들이었어.”
“…….”
<검은 바위단> 길드원들은 태현을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먼저 원인 제공을 해놓고 저렇게 뻔뻔하게……
“그러면 우리도 슬슬 가볼까?”
“네? 어디를요?”
“쟤네들이 먼저 갔을 테니까, 뒤를 천천히 쫓아가자고. 함정이 있으면 알아서 걸려주겠지.”
“…….”
태현의 속셈은 간단했다.
총알받이!
<신의 예지> 스킬도 같이 봉인된 상황에서, 함정이나 그런 걸 피하기 가장 좋은 건 역시 누군가 앞장서주는 것이었다.
물론 태현은 앞장설 생각이 없었다.
하론 사제가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그런…… 같은 목적을 가진 동지들입니다! 도와야 합니다!”
“그래. 도울 거야. 좀 뒤에서.”
“같이 가야죠!”
“쟤네들이 싫다잖아. 걱정 마. 바로는 안 죽을 거야. 스킬 봉인되어도 기본 스탯이 워낙 좋고 장비도 빵빵한 놈들이라…….”
태현은 그렇게 말하며 던전을 훑어보았다. 수많은 던전을 깨고 클리어한 태현이었지만, 이번 해저던전은 꽤 독특했다.
무엇보다 해저라는 점!
‘이거 설마 바닷물이 들이닥친다거나 하는 건 아니겠지…….’
태현은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해저던전의 벽은 깊은 바닷속의 물이었다. 건드리면 찰랑거리면서 손에 잠기는 물!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게 사라지면 그대로 덮쳐오는 것이다.
퉁, 퉁-
태현은 벽을 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벽에서는 경쾌한 소리가 났다. 다른 사람들도 경계를 늦추지 않고 태현을 뒤따랐다.
그 순간…….
파아아아아앗!
“?!”
[시험의 방이 열립니다.]
[당신은 <아키서스의 방>으로 이동합니다.]
불길하다고 생각한 지 얼마나 됐다고 바로 무너지는 파도의 벽!
거센 물소리와 함께 파도가 들이닥쳐 사람들을 나누기 시작했다.
“이건……!”
“김태현 백작님! 이쪽으로 오십! 으헉헉! 어푸어푸!”
하론은 끝까지 말하지도 못하고 허우적거렸다.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태현은 예리하게 관찰했다.
‘물이 그냥 움직이는 게 아니다!’
태현하고 케인을 묶고, 하론하고 데메르 성기사단을 묶고 있었다. 게다가 방금 뜬 <아키서스의 방>으로 이동한다는 메시지창.
‘관련된 신과 함께 엮는 건가?’
태현은 고개를 홱 돌렸다. <검은 바위단> 길드원 대부분은 물이 덮치지 않고 있었다.
‘역시 맞았군!’
촤아악!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태현은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 * *
“푸허억!”
케인은 물을 뱉어냈다. 갑작스러운 물벼락!
“아오, 김태현 이 자식이랑 같이 다니니까 진짜 별의별…….”
“나 옆에 있는데.”
“……재밌고 유쾌한 일을 겪게 되네! 아이 신나라!”
케인은 스스로의 순발력에 감탄했다. 이렇게 성장할 줄이야!
스르릉-
[<아키서스의 노예>가 나타납니다. 쓰러뜨리십시오.]
“잉?”
케인은 메시지창을 보고 눈을 깜박거렸다. <아키서스의 노예>라니, 그건 그였다.
-후우우욱…….
앞에서 나타난 건 온몸에 쇠사슬을 칭칭 감고 있는 중갑의 전사였다.
투구의 틈으로 번쩍이는 눈빛!
딱 봐도 고렙 몬스터의 감이 왔다.
“나…… 나, 스킬 봉인됐는데.”
“스탯으로 때려잡아.”
“그게 말이 쉽지! 그보다 저 자식은 뭐가 저렇게 흉측해?!”
-내…… 영혼은…… 아키서스에게 묶여 있다…… 내…… 허기를…… 달래다오…….
케인은 적에게 달려들며 외쳤다.
“너도 사기당했냐! 이 멍청한 자식아!”
콰직!
‘윽, 힘이 뭔…….’
케인은 물러섰다. 상대의 휘두르는 검격이 만만치 않았다.
“상대할 수 있겠냐?”
“그래! 가능할 거 같다.”
허세를 부리는 게 아니었다. 케인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플레이어보다 압도적으로 힘이 높거나, 민첩이 높은 적은 상대하면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상대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케인과 비슷한 수준!
스킬이 봉인됐다지만 검술 스킬이나 스탯이 다 사라진 건 아니었다.
“후. <강타>! <파워 스매시>!”
케인은 초보자 때 쓰던 스킬로 돌아왔다. 상대는 재빨리 방패를 꺼내 막아냈다.
공격을 퍼부은 다음 케인은 물러서려고 했다. 스킬 사용 후 짧은 시간 동안 경직이 있었다.
그때가 반격당하기 좋은 타이밍!
그러나 상대는 곧바로 치고 들어왔다.
-노예의 쇠사슬!
“야! 그건 내 스킬이야!!”
케인은 억울해서 외쳤지만 상대는 묵묵부답이었다. 순식간에 케인의 팔에 쇠사슬이 묶이더니 그대로 끌려갔다.
퍼퍼퍽!
“크으윽…… 김태현! 도와줘!”
“지금 내가 도와줄 때가 아닌데.”
“?!”
“어쩐지 같은 곳에 묶어놓는다 했다…….”
[<아키서스의 화신>이 나타납니다. 쓰러뜨리십시오.]
앞에서 나타나는 허름한 차림의 검사. 태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케인 상대도 저런데, 그의 상대가 쉬울 리 없었던 것이다.
“좋아. 어떤지 한번 보자고.”
파파팍!
태현은 빠르게 움직이며 페이크를 걸었다. 그런 다음 상대의 품 안으로 들어가 검을 휘둘렀다.
“……!”
상대가 막거나 피할 줄 알았는데, 그냥 몸으로 막으면서 반격해 들어왔다.
이건 설마…….
[회피에 성공했습니다.]
[공격이 빗나갔습니다.]
“…….”
서로 때려도 빗나가는 두 사람! 태현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상대를 쳐다보았다.
“뭐하자는 거야?”
상대는 대답하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회피에 성공했습니다.]
[공격이 빗나갔습니다.]
무한 반복!
“아니, 이게 뭐하는…….”
아키서스의 화신 직업 특성 때문에 벌어진 웃지 못할 상황!
옆에서 케인은 처절하게 비명을 지르고 포션을 쓰고 바닥을 구르며 싸우고 있었다.
그러나 태현은 그냥 앞에 서서 주거니 받거니 칼을 휘두를 뿐!
“와, 내 직업이기는 하지만 정말 짜증 나는 직업이다.”
태현은 이제까지 그를 상대했던 사람들이 얼마나 짜증 났을지 느낄 수 있었다.
마땅한 공격 수단이 없으면 그냥 투명한 공기를 때리는 기분!
태현은 생각에 잠겼다. 그러는 사이에도 상대는 태현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회피에 성공했습니다.]
[회피에 성공했습니다.]
간간히 스킬도 섞어서 썼지만, 그건 아무 의미가 없었다.
<행운의 일격>도 빗나가고, <아키서스의 신성 영역>은 태현의 행운 스탯이 그대로여서 그냥 통과!
‘이걸 어떻게 쓰러뜨리나…….’
검술 스킬은 의미가 없고, 마법도 마찬가지. 기계공학 스킬도 저 정도 되는 회피력은 의미가 없었다.
태현은 처음으로 막막한 벽 앞에 선 기분이었다.
태현 자신이 이렇게 상대하기 어려운 놈이었다니!
“케인, 잘 싸우고 있냐?”
태현은 일단 상대를 무시하고 케인을 도와주려고 했다. 어차피 상대는 공기나 다름없었다.
“헉, 헉헉…… 여유 있으면…… 좀 도와줘 이 자식아…….”
“알겠어. 지금 간다.”
태현은 케인 앞에 다가가 케인의 상대인 <아키서스의 노예>의 머리통을 강하게 후려갈겼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아키서스의 노예는 바로 태현을 향해 공격하려고 했다. 태현도 맞설 준비를 했다.
그런데…….
획!
“???”
그냥 돌아서서 다시 케인을 향해 덤비는 아키서스의 노예!
“야 이 자식아! 저기 김태현! 저기 김태현 좀 공격하라고!”
HP가 많이 깎인 케인은 울부짖었지만, 태현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 이게 직업 특성을 그대로 베낀 거구나.”
“야! 지금 떠들 때냐!”
케인은 막다가 이제 뒤로 돌아서서 도망치고 있었다. 아키서스의 노예는 무기를 들고 케인의 뒤를 천천히 쫓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태현은 말했다.
“너하고 얘가 팽팽하게 싸울 때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상대는 우리 스탯을 그대로 복사한 거야. 거기에다가 각 직업 특성을 복사해 넣은 거지.”
“악! 아아악! 야! 도와달라니까!”
“그래서 저놈이 날 공격 못 하는 거지. 아키서스의 노예 페널티 알잖아?”
“크아악! 크헉!”
“그러면 이제 화신을 어떻게 쓰러뜨리냐가 문제인데…… 와, 진짜 생각도 안 해봤네. 날 상대하게 될 줄은 몰랐어. 아차. 일단 네 적부터 쓰러뜨리자고.”
“나 혼자 잡았다 이 자식아!!”
케인은 씩씩대며 태현을 향해 외쳤다. 발밑에는 쓰러진 아키서스의 노예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