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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260화 (260/1,826)

§ 나는 될놈이다 260화

현명한 길마의 불안과 달리, 태현한테 당한 피해자들은 신이 나서 김태산한테 접촉을 시도했다.

적의 적은 나의 친구!

그러나 세상은 언제나 논리적으로만 돌아가는 게 아니었다.

* * *

“저, 길마님…….”

로이는 헤헤 웃으며 김태산에게 말을 걸었다. 김태산한테 잡힌 다음, 로이는 제대로 된 퀘스트에 참가하지를 못했다.

기껏 시켜주는 일이라고는 성벽 도주 같은 초보자들이 하는 잡퀘스트!

차라리 페널티를 받고 도주할까 싶었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잡혀 있자 오히려 억울해지고 독한 마음이 들었다.

-반드시 내가 복수한다!

“뭐냐?”

“제가 아는 형님께서, 길마님한테 메시지를 하나…… 보내셨는데…….”

“뭔데?”

“길마님한테 잘 어울리시는 제안일 겁니다. 헤헤.”

“네가 그렇게 웃는 걸 보니 별로 좋은 제안 같지 않은데. 너 함정 팠냐?”

“아, 아닙니다. 제가 어떻게…….”

“흐으음…….”

의심의 눈초리로 로이를 쳐다보는 김태산! 로이는 갑자기 긴장되는 걸 느꼈다.

로이의 계획은 간단했다.

김태산이 길드 연합에 들어가면, 김태산을 길드 연합에 소개시켜 준 공으로 로이는 김태산에게서 해방되는 것이다.

길드 연합에 들어갔는데 다른 길마들의 말을 듣지 않을 수는 없을 테니까!

“어쨌든 말씀이나 들어보시죠?”

“찾아오라고 해.”

“예?”

“찾아오라고 하라고. 여기로.”

“아니, 그게…… 귓속말도 있잖습니까?”

“난 네가 아는 형님이랑 친추하고 싶지 않다.”

“…….”

고집을 피우는 김태산! 로이는 속으로 김태산을 욕했다. 아니, 억지를 부릴 게 따로 있지 왜 이런 걸로 억지를 부린단 말인가.

귓속말로 이야기해도 되고, 아니면 사이트에서 익명으로 이야기해도 되고, 온갖 방법이 많은데 왜 하필 직접 판온에서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겠다는 거란 말인가.

“예…… 알겠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말하겠습니다.”

그러나 로이는 김태산의 고집을 잘 알고 있었다.

한번 말한 이상 절대 꺾지는 않을 양반!

* * *

“이야, 바다 예쁘네. 이렇게 보는 것도 장관인데?”

“정말 그러네요.”

태현과 이다비는 함선의 앞머리에 서서 빠르게 갈라지는 파도를 구경하고 있었다.

반짝이는 물결 밑에는 온갖 종류의 물고기들이 돌아다니고 있었고, 더 밑으로 보면 바다의 몬스터들이 하나씩 하나씩 보였다.

그야말로 판타지 세계의 장관!

둘의 대화를 뒤에서 듣던 케인은 속으로 생각했다.

‘아무리 저 둘이라지만 그래도 감수성은 좀 남아 있나 보군.’

감수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둘!

한 명은 바다를 보면 ‘흠, 저기다가 시체를 빠뜨리면 증거를 없애기 좋겠는데’라고 말할 사람이었고, 다른 한 명은 ‘저기 먼저 선점하면 골드 좀 벌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말할 사람!

그래도 저렇게 순순히 경치를 감상하고 있다니, 케인은 그가 잘못 판단했다고 생각했다.

“저걸로 골드 벌 방법이 있지 않을까요?”

“글쎄. 훔치거나 처리 곤란한 아이템 있으면 여기에다가 던져놓은 다음에 나중에 찾아가게 할까?”

“……그런 방법 말고요! 좀 더 순수하고 깨끗하게, 관광만 시켜줘도…….”

“관광하려고 골드를 낼까?”

“이렇게 크고 빠른 배, 아직 플레이어들은 구하기 힘들잖아요.”

“으음. 이 배를 어떻게 뺏을 방법이 없나…….”

“몰래 사고를 일으켜서 다른 교단의 배를 뺏는 거예요. 당사자들이 다 죽으면 우리 거!”

“글쎄. 교단에 다른 동료들이 찾으러 오지 않나?”

“…….”

케인은 입을 다물고 둘의 대화를 들었다. 그리고 다른 곳으로 걸어갔다.

‘모르는 척하고 싶다…….’

저 멀리 수평선이 유난히 반짝이고 푸르렀다. 케인은 초점 없는 눈으로 먼 곳을 쳐다보았다.

* * *

“저 자식 눈치챈 거 아냐?!”

“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냥 그대로 있는데요.”

“왜 여기를 계속 보는 거야? 불길하게. 저놈 누구냐?”

“케인이네요.”

“케인, 케인…… 어디서 들어봤더라?”

“유명한 놈이죠. 원래 약탈자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김태현하고 같이 다니더라고요.”

“재수 없는 놈이네.”

“약탈자 플레이어들은 다 케인 싫어해요. 원래 똑같이 놀던 놈이 갑자기 뒤통수치고 이미지 세탁한 다음 깨끗한 척한다고.”

케인이 듣는다면 억울해서 꺼이꺼이 울었을 소리였다.

-내가 XX 하고 싶어서 이렇게 됐냐!! 니들도 당해봐야 알지!!!!

그러나 케인의 억울함과는 상관없이, 케인은 이미 사람들 사이에서 단단히 이미지가 굳혀진 상태였다.

-김태현의 오른팔!

-마음을 고쳐먹은 악당!

방송에서 보여준 모습 덕분에 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지만, 케인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만만찮게 있었다.

레드존 길마로 했던 짓 때문에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건 소수였다. 그만큼 케인은 이미지 세탁을 완벽하게 했던 것이다.

케인을 싫어하는 사람 대부분은 약탈자 플레이어들!

-약탈자 주제에 착한 척하고 다니냐!

-약탈자 망신은 다 시키고 다녀요!

-만나면 PK 신청한다. 어디 한 번 김태현 없어도 잘 싸우나 보자!

이렇듯 케인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잭과 잭의 부하도 거기에 속했다.

“일단 망원경은 치우자고. 저놈이 본 것 같지는 않지만…….”

“거리를 좀 벌릴까요?”

“그래. 그러자. 들키는 것보단 낫지.”

잭은 신중한 사람이었다. 케인은 멍하니 ‘모르는 척하고 싶다’ 생각하며 수평선을 본 것뿐이었지만, 잭에게는 예리한 눈동자로 주변을 둘러본 것으로 보였다.

‘김태현의 적이 많다는 걸 알고 있다 이거지? 재수 없는 자식. 같은 약탈자 주제에…….’

잭은 추측했다. 태현이 이제까지 많은 습격에서 무사할 수 있었던 건 케인 때문이라고.

케인은 약탈자 플레이어 출신. 그런 플레이어들이 어떻게 덤비고 어떻게 함정을 파는지 잘 알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놈이 알려준 게 분명해!’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플레이어라도, PVP만 전문으로 뛰는 약탈자 플레이어들에게는 당할 때가 많았다.

몬스터와 싸우는 플레이어와 플레이어와 싸우는 플레이어는 그만큼 달랐던 것이다.

그러나 잭은 알지 못했다. 케인이 태현한테 알려준 게 아니었다는 것을.

* * *

“왜 여기서 멈추지?”

“여기입니다. 백작님.”

“……?”

태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리 봐도 아무것도 없는 망망대해!

던전이라고 해서 어딘가의 섬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좀 더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 여기 주변에 던전의 입구가 있다는 건가?”

“예. 그렇습니다. 역시 백작님이시군요.”

하론은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지만, 태현은 별로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래서 어디로 들어가는데?”

“이제 곧 열릴 겁니다. 모두들 모이시오!”

하론의 말은 큰 목소리가 아니었는데도 주변의 모두의 귓가에 생생하게 들렸다.

신성 마법!

그러자 각 교단의 함선에서 사제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서로 어색하고 피하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태현 덕분에 생긴 감정의 골이 아직도 풀리지 않은 것이다.

대륙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모인 교단의 강자들을 혓바닥 하나로 갈라놓은 태현!

그래도 사제들은 일단 마법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던전의 입구를 열기 위한 마법이었다.

“……!”

콰아아아-

엄청난 굉음과 함께 바다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 밑에서 보이는 입구!

[잊혀진 괴물이 봉인된 해저던전의 입구를 찾았습니다.]

[명성이 오릅니다.]

[신성이 오릅니다.]

[잊혀진 괴물이 봉인된 해저던전의 입구에 들어갈 경우, 로그아웃이 제한됩니다. 강제로 로그아웃할 경우 페널티를 받을 수 있습니다.]

“……바다 밑 던전이야?”

“바로 그렇습니다! 역시 백작님이시…….”

“너 일부러 놀리는 거 아니지?”

태현이 하론과 대화하면서 시간을 끌자, 타이란 교단의 성기사가 발끈하며 나섰다.

“이런 중요한 일에 시간을 끌다니! 내가 먼저 들어가겠다!”

“아. 그러던가.”

“……이런 명예를 뺏겨도 된단 말인가?”

“던전 처음 들어가는 게 명예냐? 새로 지은 건물 화장실 처음 쓰는 것도 명예라고 할 놈일세.”

“…….”

타이란 교단의 성기사가 울컥해서 뭐라고 하려고 하자, 뒤의 사제들이 말렸다.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태현과 화술로 붙어봤자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씩씩대던 성기사는 흥하고 고개를 돌리더니 그대로 배 밖으로 뛰어내렸다.

첨벙!

“저렇게 들어가야 한다고?”

“예!”

“아무리 봐도 자살행위 같은데…….”

저 깊은 바닷속으로 사라진 성기사는 보이지도 않았다.

태현은 입맛을 다시며 뛰어내릴 준비를 했다.

서두르지 않은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어차피 NPC는 먼저 들어가 봤자 던전 특혜를 받지 못하니까!

이 주변의 플레이어 중에서만 가장 먼저 들어가면 됐다.

“입수!”

첨벙!

* * *

[던전:잊혀진 괴물이 봉인된 해저던전에 입장하셨습니다.]

[이 던전 내에서는 신성 관련 스킬이 봉인됩니다.]

“……응?”

물속을 헤엄치다가 툭, 하고 던전의 입구로 떨어진 태현은 앞에 뜬 메시지창을 보고 경악했다.

방금 뭐라고?

[이 던전 내에서는 신성 관련 스킬이 봉인됩니다.]

신성 관련 스킬이 그냥 봉인된다니.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봉인!

괜히 이름이 <신 잡아먹는 괴물>이 아니었다.

‘뭐 이런 미친…….’

순간 어이가 없었던 태현이었지만, 곧바로 생각을 다잡았다. 차라리 태현은 나을 수도 있었다.

태현의 핵심 전투력은 바로 어마어마한 행운 스탯에서 나왔다.

엄청난 회피력, 미친 듯한 치명타율, 거기에 연계되는 강력한 폭딜 스킬들과 유틸기까지. 이 모든 근원이 행운 스탯이었다.

그 행운 스탯은 그대로였다.

게다가 태현은 만약을 대비해서 온갖 스킬들을 익힌, 그야말로 잡캐!

평생 신성 스킬만 주야장천 파온 성기사들과 사제들에 비해서는 상황이 나았다.

“이게 뭐야?!?!”

옆에서 지금 막 떨어진 케인이 절규했다.

원래 직업이었다면 상관이 없었겠지만, <아키서스의 노예>도 일종의 성기사 같은 직업!

관련 스킬 모두 봉인!

‘이거 진짜 골치 좀 아프겠는데…….’

태현은 관련 스킬을 열어서 전부 확인했다.

-행운의 일격!

[행운의 일격은 사용할 수 없습니다.]

“뭐?! 행운의 일격은 왜?!”

<행운의 일격>은 아키서스의 화신으로 전직하기 전부터 써왔던 폭딜 스킬.

이것도 막혔다는 건…….

‘이게 아키서스 관련 스킬이었나 본데?’

아키서스의 화신은 일정 행운 스탯 이상을 최초로 찍었을 때 강제로 전직되는 직업.

그렇다면 행운 스탯만 찍었다고 바로 받는 <행운의 일격> 스킬이 아키서스 관련 스킬이라고 추측하는 것도 이상할 게 없었다.

* * *

“그렇지, 김태현. 이제야 눈치챘군. 그렇게 좋은 스킬이 일반 스킬이겠어?”

최명성 팀장은 태현의 상황을 보며 중얼거렸다.

폭딜 스킬 <행운의 일격>이나 스킬 성공 확률을 보정해 주는 <확률 조작>스킬은 <아키서스의 화신> 전직 이전에 얻었지만……

아키서스 관련 스킬이었다.

서버 최초로 행운 스탯을 그렇게까지 찍은 것에 대한 보상!

판타지 온라인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어, 팀장님. 김태현 들어갔습니까?”

“그래. 들어갔어. 이제 좀 힘들어지겠지. 데리고 온 교단 NPC들이 다 전력이 반쪽이 됐으니까.”

“NPC들 챙기면서 퀘스트 깨기 힘들지 않을까요?”

“김태현이 그러지는 않을걸?”

최명성은 우왕좌왕하는 교단 NPC들을 보며 생각했다. 보통 플레이어들이라면 당황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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