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245화
[신성 스탯이 소모됩니다.]
“윽. 빨리 가자.”
화염이 더 번지지 않도록 조절할 수는 있었지만, 신성 스탯을 계속해서 써야 했다.
횃불 크기로 유지하는 건 별로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꾸준히 감소하는 건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 * *
“이렇게 신전 지하 2층의 심장부로 들어왔습니다. 여기는 사디크 교단의 은신처 중에서도 매우 위험한 곳입니다. 저기 석상들 보이십니까? 저건 골렘들입니다. 여기, 여기, 여기 발판을 건드리는 순간 바로 일어납니다.”
탐험가 제카스는 열정적인 목소리로 설명했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방송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절대로 골렘들을 놀라게 하거나 화나게 하면 안 됩니다. 그랬다가는 바로 일어나거든요. 계속 조심하면서 골렘들을 깨우지 않게 움직여야 합니다.”
제카스는 매우 집중한 상태였다. 방송의 리플이 갑자기 늘어났지만, 바닥의 함정을 보느라 제카스는 신경 쓰지 못했다.
-야. 방송 봤냐?!
-지금 함정 푸는 중이야! 나중에 말해!
-멍청아! 네 방송 리플이나 확인해봐.
“???”
제카스는 친구의 귓속말에 함정을 풀던 걸 멈추고 리플을 확인했다.
-화염 꺼졌어요!
-제카스 님! 화염 꺼졌어요!
“네??”
-김태현이 성물 반지 갖고 가서 화염을 풀었어요!
“…….”
제카스는 정말로 놀랐다.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실수를 저지를 정도로.
덜컥-
[사디크 신전의 골렘이 깨어납니다.]
“아차!”
제카스는 황급히 달아나기 시작했다. 골렘들이 일어나서 침입자를 쫓기 전에.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 * *
“김태현이 오스턴 왕국에 난 불을 껐다는데요?”
“뭐? 말도 안 돼. MBS 방송 편성표에 김태현 없었는데? 언제 방송을 한 거야?”
“아뇨, 개인 방송에 나와서 공개했네요.”
“개인 방송? 하긴, 김태현 정도면 이제까지 안 시작한 게 이상할 정도긴 하지. 시작한 건가?”
“아뇨, 김태현이 개인 방송을 하는 게 아니라, 파워 워리어 길드 방송에 나와서 공개를 했다나 봐요.”
“뭐? 진짜?”
배미나는 깜짝 놀라서 부하 직원을 쳐다보았다.
“왜 파워 워리어 길드랑?”
“김태현이 파워 워리어 길드하고 같이 다녔잖습니까?”
“아니, 김태현이 파워 워리어 길드랑 같이 다니는 건 알고 있었지만…… 방송에도 같이 나와줄 정도로 친한 줄은 몰랐네. 걔네하고 김태현은 급이 좀 안 맞지 않아?”
“그렇긴 하죠. 파워 워리어는 좀…….”
‘파워 워리어는 좀……’에서 파워 워리어 길드가 어떤 이미지인지 알 수 있었다.
배미나는 시계를 쳐다보았다. 지금 그녀는 일 때문에 나와 있었다.
바로 유명 플레이어의 섭외!
SBC의 PD이자, MBS의 배장욱과는 남매 사이로 어렸을 때부터 경쟁한 배미나였다.
‘절대 오빠한테 질 수 없어.’
“잘 될까요?”
“글쎄, 만나 봐야 알겠지.”
배미나는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김태현을 뺏긴 게 컸어. MBS가 김태현으로 얼마나 우려먹는지 봤지? 3부작으로 방송하고, 그거 끝난 다음에 다시 재방송하고, 재방송 끝난 다음에는 하이라이트만 다시 편집해서 내보내고…….”
“그래도 사람들이 보니까요.”
“그러니까 진짜…… 플레이어 한 명이 방송을 먹여 살린다니까. 김태현은 놓쳤지만 사람들은 많아. 판타지 온라인은 언제나 이슈 거리가 나오잖아. 그런 사람들을 잡아야 해.”
“오늘 만나기로 한 사람처럼요?”
“그렇지.”
“나이가 좀 있으신 분 같던데…….”
“뭐 어때. 실력만 있으면 그만이지. 실력은 확실하잖아? 캐릭터도 확실하고.”
“좀 센스가 괴상하다고 들었습니다.”
“그게 다 캐릭터야. 소문을 들어보니까 김태현하고 사이가 안 좋다는 말도 있던데. 대립하는 이미지가 나올 수도 있고, 여러모로 좋지 않을까?”
“김태현하고 싸움을 붙이시려고요?”
“붙이려고 해도 붙겠어? 애초에 랭커끼리는 붙으면 손해 볼 일 많아서 잘 안 붙잖아.”
얼마 전 스미스와 이세연, 김태현이 죽어라 싸운 건 전혀 상상치도 못하는 배미나였다.
“그냥 김태현하고 대립하는 이미지만 만들어줘도 우리는 고마운 거지.”
“김태현을 데리고 올 수 있으면 좋을 텐데요.”
“MBS에서 놔주겠어? 내 오ㅃ…… 아니, 배장욱 그 인간이 얼마나 철저한 인간인데.”
“이번에 오스턴 왕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퀘스트는 완전히 비공개로 진행됐잖습니까? 화염 끈 것도 파워 워리어 길드 개인 방송으로 공개했고. MBS하고 독점 계약을 한 건 아닌 것 같던데요. 혹시 사이가 틀어지기라도 했다면…….”
“그랬을 것 같지는 않은데. 차라리 퀘스트 내용을 공개하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했을 가능성이 높을걸.”
배미나는 정확하게 짚어냈다. 김태현 정도 되는 플레이어는 가치가 무궁무진했다.
배장욱이 그런 사람을 상대로 괜한 짓을 해서 사이가 틀어질 리가 없었다.
챠랑-
카페의 문이 열렸다. 배미나와 부하 직원의 시선이 동시에 문으로 쏠렸다.
들어온 건 근육질에 약간 험상궂은 인상의 중년 남성이었다.
바로 김태산!
들어오는 김태산을 본 배미나는 빠르게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계약하러 오는데 운동복? 잠깐…… 저 손목시계는 그 명품 브X게잖아? 가짜인가? 아니, 가짜가 아닌 것 같아.’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안 맞는 김태산의 복장!
하지만 배미나의 감은 저 시계가 진품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면…… 엄청난 부자!’
그렇게 말하니 저 운동복도 뭔가 달라 보였다. 상표도 메이커도 보이지 않는 운동복.
‘혹시 주문제작을…… 아니, 거기까지는 아니겠지. 내가 무슨 생각을. 운동복을 주문제작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아무리 부자라도…….’
있었다. 바로 김태산이었다.
“처, 처음 뵙겠습니다. SBC에서 일하는 배미나입니다. 여기 명함…….”
“그래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김태산입니다.”
엄청난 부자에, 나이까지 많으면 보통 말을 편하게 놓거나, 좀 거만한 태도가 나와야 할 테지만, 김태산은 예의 바르게 존댓말을 썼다.
그걸 본 배미나는 살짝 감동했다.
‘생각보다 진중하고 예의 바르신 분이구나.’
물론 김태산의 진짜 모습은 정반대였지만…….
‘어떻게 설득을 하지?’
배미나는 망설였다. 아쉬운 게 없는 상대. 이런 상대가 가장 설득하기 까다로웠다.
‘진심을 다해서 설득해 보자!’
“네. 안녕하세요. 저희가 김태산 님을 부른 이유는…….”
배미나는 최선을 다해서 설명을 했다.
<최강지존무쌍> 길드의 활약에 대해서 예전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고, 김태산과 길드원들의 캐릭터가 어째서 좋은지.
“음…… 난 방송 같은 건 복잡해서 싫은데.”
중년 이상에서 볼 수 있는, 새로운 기기를 다루기 귀찮아하는 모습!
물론 배미나가 여기서 물러날 리 없었다.
“저, 저희가 다 해드릴 수 있어요! 그냥 게임에서 녹화만 해주시면, 나머지는 저희가 다 알아서 해드리겠습니다. 확인도 하실 수 있고요.”
“그러면 태현이처럼 방송에 나오고 그러는 건가?”
“네? 태현이가 누구죠?”
“내 아들놈인데 이놈도 방송에 나와서…….”
“아, 그런가요? 아드님이 개인 방송을 하시나 봐요.”
‘김태현하고 이름이 똑같네.’
공교로운 우연이었다.
“아니, MBS 쪽인가? 거기서 방송에 나왔지.”
“?!”
배미나는 깜짝 놀랐다. MBS 방송에 출연하는 김태현이면 한 명밖에 없었다.
“설, 설마 이 김태현 플레이어를 말하시는 건가요?”
“그렇지.”
“?!?!?!?”
* * *
“역시 김태현 백작이야! 김태현 백작밖에 없어!”
“과찬이십니다. 1왕자님. 제가 한 가지 준비한 계획이 있는데…….”
“오오, 뭔가! 김태현 백작이 준비한 거라면 뭐든지 들어주겠네!”
“2왕자를 함정에 빠뜨리는 계획입니다.”
태현은 1왕자에게 계획을 설명했다.
-태현이 2왕자한테 돌아가서 1왕자 성의 약한 부분을 말한다.
-2왕자가 신이 나서 달려온다.
-짜잔! 함정이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아주 좋군!”
이제 1왕자파 안에서 태현의 말을 거스를 사람은 없었다.
사디크의 화염을 끈 것 덕분에 최대치에 도달한 공적치 포인트와 평가.
거기에다가 1왕자파 귀족들은 개인적으로 태현한테 빚진 것까지 있었다.
“김태현 백작의 계책이 옳은 것 같습니다.”
“과연 김태현 백작입니다! 김태현 백작의 책략이 하늘을 뚫고 땅을 뒤덮습니다!”
“김태현 백작 만세!”
옆에서 우르르 찬성하는 귀족들!
한 명이 칭찬하자 다른 귀족들도 태현의 눈치를 보며 칭찬을 덧붙였다.
“그러면 1왕자님, 2왕자에게 가서 그를 속이고 오겠습니다.”
“부탁하네, 김태현 백작!”
* * *
“2왕자님! 카나안 성의 약점을 완벽하게 조사해 왔습니다. 그 주변을 돌아다니는 병사들도 매수를 끝냈습니다!”
1왕자만큼은 아니어도 2왕자파 내에서 태현의 위치는 굳건했다.
병사들을 바치고(1왕자파의 병사들이었지만), 사디크의 화염을 처리하고(태현이 저지른 불이었지만), 어지간한 신하들은 뺨칠 정도의 공적이었다.
“뭐라고! 그러면 지금 당장 군사를 보내도 되는 건가?”
“물론입니다! 캄캄한 밤에 몰래 기습을 한다면, 날이 밝았을 때쯤에는 카나안 성이 2왕자님의 손아귀에 떨어져 있을 겁니다!”
“크핫핫핫! 아주 좋다!”
아직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2왕자는 벌써 헤벌쭉해져서 웃고 있었다.
“2왕자님. 직접 행차하셔서 그 광경을 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음? 이 몸이 굳이 그런 곳까지 가야 하나?”
“물론 2왕자님께서 오지 않으셔도 상관없지만, 당황해하는 1왕자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으으음…… 좋다! 놈의 그 낯짝을 마지막으로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왕족을 속여 넘기는 데 성공합니다.]
[화술 스킬이 오릅니다.]
지옥에 걸어 들어가는지도 모른 채 즐거워하는 2왕자!
그렇게 태현은 오스턴 왕국의 패권을 바꿀 함정을 착착 준비해가고 있었다.
“이제 이 화염만 잘 다루면 된다.”
“아키서스 교단 수장인데 사디크의 화염 같은 거 막 다뤄도 되는 거 맞냐?”
“정의롭게 잘 쓰면 사디크 같은 악신의 화염도 정의로운 화염이 되는 거야.”
“개소리 같은데…….”
“뭐 인마? 정의의 화염에 타고 싶냐?”
“야! 그거 치워! 그거 데미지 장난 아니라고!”
* * *
빛 하나 없는 칠흑 같은 밤에, 중무장한 병사들이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다.
“김태현 백작, 이 길이 맞나?”
“예. 물론입니다.”
1차 관문인 성벽을 돌파할 샛길. 성벽에 난 개구멍을 이용한 샛길이었다.
1왕자파 병사들은 샛길의 출구에서 완전히 준비해 대기하고 있었지만…….
태현은 거기로 갈 생각이 없었다.
‘거기로 가면 2왕자만 죽잖아?’
태현이 노리는 건 어디까지나 공멸! 1왕자와 2왕자가 깔끔하게 손을 잡고 사라져주는 결말이었다.
“여기입니다.”
“……조금 더 좋은 길은 없었나?”
“세상일이 그렇게 쉽게 돌아가지 않죠. 자, 들어 가십쇼!”
태현이 2왕자의 병사들을 데리고 온 곳은 전혀 다른 샛길이었다. 태현이 몰래 기계공학 스킬로 구멍을 뚫어놓은 샛길!
1왕자파 병사들은 전혀 예상을 못 하고 다른 곳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콜록, 콜록. 길이 너무 좁은데……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여기로 쭉 가면 1왕자가 머무르고 있는 내성입니다. 들어가서 1왕자만 잡으면…….”
“남은 놈들은 전부 무너지겠군. 크핫핫핫!”
“바로 그겁니다, 2왕자님! 가십시오! 가서 오스턴 왕국의 왕관을 그 손으로 움켜쥐시는 겁니다!”
“그래! 가겠다!”
태현은 옆에서 부추기듯이 손뼉을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