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201화
“대충 겉에다가 돌 비슷한 느낌 나게 씌워놓고 건물 주변에 세워놓으면 사람들도 눈치 못 챌 거야.”
“……차라리 골짜기 안에 숨기는 게 낫겠습니다.”
“사실 골짜기 안도 완벽하지가 않아서.”
“예? 거길 누가 봅니까?”
“영지에 사람 좀 부를 생각이다.”
태현은 이렇게 된 이상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를 좀 더 활용해 볼 생각이었다.
“저희 상단 직원들 말씀하시는 거면 맥크레니 님께서도 최선을 다해 지원을…….”
다른 왕국 영지를 털고서 거기서 나온 골드와 아이템들로 영지 개발을 하겠다는 아이디어는 맥크레니도 황당해했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배를 보냈다는 건 끝까지 같이 가겠다는 뜻. 이후 영지 개발에 맥크레니 상단이 꽤 도와줄 게 분명했다.
“아니, 그건 당연한 거고.”
“당연한 건 아닌데……. 맥크레니 님도 위험한 거 감수하고…….”
“야. 먼 왕국에서 악마들 데리고 직접 솔선수범해서 약탈한 내가 더 위험을 겪었냐, 멀리서 배 보낸 맥크레니가 위험을 겪었냐?”
“태현 님께서 벌이신 일이잖습니까!”
“원인은 중요하지 않아. 어쨌든 사람들 부른다는 건 영지 개발 이야기가 아니야.”
“……?”
“플레이어들 부를 생각이다. 골드 좀 벌어야지.”
“모험가들은 왜 부르시려고요?”
태현은 씩 웃었다. 바르도 시에서 약탈한 것 말고도 얻은 아이템들이 또 있었다.
아발랍 시에서 길드들과 PK를 해서 얻은 아이템들!
그중 좋은 건 태현이 벌써 끼고 있었지만, 워낙 아이템들이 많다 보니 태현이 다 낄 수 없었다.
태현은 이런 아이템들을 처리할 생각이었다.
영지 내 경매로!
‘사이트 경매도 좋지만 게임 내 경매도 장점이 있지.’
실제로 플레이어들이 영지에 온다는 점. 그게 바로 장점이었다.
‘교단 건물 세우고, 플레이어들 모아서 신성 스탯도 좀 더 올리고, 쓸모없는 아이템들 골드로 바꾸고…….’
일석삼조의 계획!
“방송할 때 영지에 놀러 오라고 해야겠군. 경매한다고.”
* * *
“배를 타고 갔다고?!?! 어떻게?!”
“해, 해적선이…….”
“뭔 해적?”
“김태현이 해적단 퀘스트도 깬 거 아냐? 해적단 동원할 정도면…….”
“그 자식은 대체 몸이 몇 개야? 그사이에 벌써…….”
바르도 시에 급히 달려온 플레이어들은 닭 쫓던 개 꼴이 되었다.
설마 진짜로 중요한 것만 털고 배를 탄 다음 떠나버리다니.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방송에서 그렇게 명성이 높던 태현이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칠 줄은 몰랐다.
다들 허탈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대장간의 시설들이 파괴되어 한동안 대장간을 이용할 수 없습니다.]
[상점의 아이템들이 전부 떨어졌습니다. 한동안 상점을 이용할 수 없습니다.]
거리 곳곳에서 보이는 피해 상황 메시지들. 정말 욕이 나올 정도로 알짜배기만 쏙쏙 빼간 태현이었다.
“쫓을 방법 없냐! 그 자식 멀리 못 갔을 거야!”
“항구에 배도 없잖아. 어떻게 쫓아가려고.”
“크으윽……! 김태현!”
“가다가 배 가라앉아라, 개자식!”
바르도 시 플레이어들이 욕과 분통을 터뜨리는 동안, 바르도 시 외곽을 공격했던 악마들은 슬슬 도망치기 시작했다.
나누어져서 공격하다가 전멸할 뻔했는데 플레이어들이 도시로 급하게 달려간 덕분에 숨통이 트인 것이다.
-철퇴와 도끼의 악마, 칸타차. 힘을 합치지 않겠소?
-포효와 함성의 악마, 바르카. 좋다. 제안을 받아들이겠다.
-그 악마 같은 인간은 어디로 갔지? 연합을 한다면…….
-허튼소리 하지 마라! 언제 우리 뒤를 칠지 모르는 놈이다!
-맞는 말이다. 아무리 처지가 곤란하더라도 그런 놈을 부를 수는 없다.
이제 악마들한테도 불신을 받는 태현!
-일단 물러서서 방법을 생각해야 할 것 같소. 저 도시는 난공불락이오.
-그러지!
나뉘어 있던 악마들이 합쳐지고 다른 곳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태현의 약탈이 불러온 나비효과!
에스파 왕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고, 태현은 배 위에서 흥얼거렸다.
* * *
“이게 아니야!”
[가고일처럼 보이는 흉측한 돌 갑옷을 파괴했습니다.]
배 위에서 남는 시간. 태현은 대장장이 기술로 날개 악마들에게 입힐 위장용 갑옷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저…… 주인님. 그런 걸 꼭 입어야 할지……. 어차피 저희는 강한데…….
긴꼬리 1이 우물쭈물하며 말하자 태현이 눈을 치켜떴다.
“지금 내가 손수 만들어주는 걸 못 입겠다 이거냐?”
-그, 그런 게 아니라…….
악마들 사이에서 태현은 카리스마 그 자체! 긴꼬리 1을 포함해서 다른 악마들은 시선을 마주치지를 못했다.
웅성웅성-
“왜 시끄럽지?”
해적처럼 보였지만 배에 타고 있는 건 모두 맥크레니 상단 직원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떠들고 있으니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태현 님. 저기 수평선에 배가 보이는데……. 해적 같습니다.”
태현은 눈을 가늘게 떴다. 말 그대로 저 멀리 수평선에 배 한 척이 보였다. 검은색 깃발에 해골. 아주 보통의 해적이었다.
“그래서 뭐? 싸울 준비라도 해야 하나?”
“아, 아뇨. 어차피 저희도 해적이니 서로 안 건드리고 지나가지 않을까 싶어서…….”
“아. 그랬지?”
태현은 그제야 카테란드 해적단의 깃발을 걸고 있었다는 걸 떠올렸다.
“동업자라고 봐주는 건가?”
“그런 것보다는 그냥 서로 공격해봤자 먹을 게 없으니까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뭐든 간에 저쪽에서 먼저 공격 안 하면 상관없겠지. 공격해도 상관없고. 어차피 배도 한 척이잖아. 그냥 붙어도 이기겠군.”
[에스파 왕국의 바다를 주름잡는 대해적, 갈르두가 카테란드 해적단 깃발을 알아봅니다.]
“……응?”
뭔 대해적?
촤아아아아아악!
멀리서 들렸는데도 또렷하게 들리는 소리. 저 멀리 수평선에서 갑자기 배들이 솟구쳐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수십 척!
마법으로 배를 가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순식간에 나타난 해적 함대에 상단 직원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태, 태현 님…….”
“튀어야! 튀어야 합니다!”
“저희는 무장도 없어요!”
급하게 오느라 배에는 마법 대포도 없었다. 깃발만 해적 깃발일 뿐.
저 멀리 해적 함대가 빠르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함선 관련 조종 스킬이 없는 태현. 상단 직원들은 있다고 쳐도 저 해적들보다 높지는 않을 것이다.
속도에서 붙으면 이길 수가 없었다. 여기서 도망치는 건 의미가 없는 짓이었다.
그렇다면?
태현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지금 저들은 카테란드 해적단 깃발을 알아봤다고 했다.
그렇다면 카테란드 해적단과 아는 사이라는 뜻인데…….
‘적이었을까? 친구였을까?’
태현은 후자에 걸기로 마음먹었다. 지금은 그것밖에 방법이 없었으니까.
“야. 아이템 중에서 적당히 해적 선장이 입을 것 같은 아이템 있으면 갖고 와!”
태현은 마르덴 후작의 살아 움직이는 가면을 급히 변형시키며 외쳤다. 지시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긴꼬리 너! 악마들 데리고 갑판 밑으로 들어가! 고개 내밀면 전부 잘라버린다!”
-예, 예!
태현은 카테란드 해적단 대장 데넬손처럼 얼굴을 만들려고 최대한 노력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멀리서 보면 속을 것 같은 수준!
“데넬손-!”
멀리서 거대한 전함이 멈추더니, 위에서 대포를 쏘는 것 같은 시끄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현은 헛기침을 하며 대답했다.
“그, 그래.”
“뭐라고? 데넬손, 지금 뭐라고 했지?”
“……?”
태현은 상대의 반응에서 불쾌함을 집어냈다.
‘데넬손이 저 갈르두 밑이었나?’
“그래도 요즘 잘 지내셨냐, 고 했습니다!”
“걱정은 하지도 않는 놈이 입은 살았구나. 내가 왜 달려왔는지 알고 있겠지?”
“…….”
알고 있을 리가 없잖아, 이 자식아, 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태현은 참았다.
“물론입니다.”
[중급 화술 스킬로 보너스를 받습니다.]
[중급 사기 스킬로 보너스를 받습니다.]
[대해적 갈르두가 당신을 카테란드 해적단의 선장, 데넬손으로 착각합니다.]
“알고 있는 놈이 왜 이렇게 늦고 굼뜬 거냐! 내가 말했었지! <해적왕의 저주받은 지도>를 갖고 오지 않으면 내가 직접 네놈의 굴로 들어가 네놈의 목을 날려버리겠다고! 그런데도 계속 늦장을 부리던 주제에 이렇게 당당하게 찾아오다니. 지도를 찾아온 거겠지?!”
<해적왕의 저주받은 지도>. 태현이 카테란드 섬에서 얻은 아이템 중 하나였다.
척하면 척.
태현은 어떻게 된 건지 바로 파악했다.
‘갈르두가 데넬손한테 <해적왕의 저주받은 지도>를 찾아서 갖고 오라고 시켰군!’
보아하니 갈르두는 데넬손을 시킬 정도의 위치였다.
물론 해적들끼리 믿음과 신뢰가 있을 리 없으니, 데넬손은 찾고서 그냥 자기가 꿀꺽 삼킨 게 분명했다.
에스파 왕국의 바다와 카테란드 섬은 많이 멀었으니까.
게다가 카테란드 섬의 요새는 단단하고 아탈리 왕국 해군도 있으니 갈르두가 쉽게 찾아오지 못할 거라고 믿은 것 같았다.
그래서 화를 내고 있는 상황에, 태현이 떡하니 카테란드 해적단의 깃발을 달고 바다를 지나간 것이다.
“앞으로 깃발 재활용하려는 놈이 있으면 두들겨 패야겠어.”
태현은 중얼거렸다. 그냥 새로 아무 해적단 깃발을 그렸으면 이런 문제가 없었을 것 아닌가.
그거 아낀다고 카테란드 해적단 깃발을 쓰다니…….
“뭐라고 했지? 찾아온 건가?”
“……아닙니다, 갈르두 님!”
보통 사람이었다면 그냥 지도를 넘기고 떠났겠지만, 태현은 아니었다.
갈르두처럼 거물로 보이는 NPC가 탐을 낸다면 더더욱 줄 수 없다!
“뭐라고?! 네가 간덩어리가 배 밖으로 나온 거냐?!”
[갈르두가 <대해적의 분노>를 사용합니다.]
[배의 내구도가 내려갑니다.]
[공포에 위압됩니다. <공포를 모르는 자> 칭호로 저항에 성공합니다.]
벌벌 떠는 상단 직원들. 그러나 태현은 말을 붙였다.
“갈르두 님. 들어주십시오! 제가 왜 여기까지 배를 끌고 왔겠습니까!”
물론 끌고 온 건 아니었지만!
지금 이 함선들 안에 약탈한 아이템들이 가득 있다는 걸 알면 갈르두가 가장 놀랄 것이다.
“…….”
“그건 갈르두 님께 일의 진행 상황을 말씀드리려고 끌고 온 겁니다!”
“그래?”
“예! 지도를 찾는 일은 거의 다 끝났습니다. 앞으로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신다면 찾아서 바칠 수 있습니다!”
“음……. 좋다! 직접 찾아올 정도니 거짓말은 아니겠지!”
[갈르두를 설득하는 데 성공합니다.]
[명성이 크게 오릅니다.]
[화술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3개월! 3개월 주겠다. 그 안에 일을 마무리 지어라!”
“감사합니다!”
“데넬손. 나를 속일 생각은 하지도 마라. 네 작은 섬이 탄탄해 봤자 내 무적함대 앞에서는 한 줌 가루가 될 테니까. 나를 속였다가는 지옥을 맛보게 될 것이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만약 제가 속였다면, 카테란드 섬으로 무적함대를 끌고 오십시오!”
자기 일 아니라고 막 질러대는 태현이었다.
‘왕궁에 제보하면 이거 공적치 포인트 주나?’
침도 마르기 전에 세우는 뒤통수 계획!
“좋다. 물러나자!”
“아, 갈르두 님!”
“뭐냐?”
“다름이 아니라, 에스파 왕국 해군 놈들이 이 주변에 자주 나타난다고 하는데, 저희를 공격할까 봐 걱정이 됩니다. 보다시피 급하게 오느라 저희는 제대로 된 무장도 없습니다. 만약 잡혔다가 갈르두 님께 바쳐야 할 지도를 바치지 못한다면…….”
“알겠다. 해군 놈들이 보이면 본때를 보여주지.”
“감사합니다!”
기회만 보이면 아주 뼛속까지 빨아먹는 태현이었다. 태현은 손까지 흔들며 갈르두를 배웅했다.
쿡쿡-
“……?”
이다비는 태현을 존경하는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정말……. 그쪽은 우리 길드에 딱인 거 같아요!”
존경심 넘치는 목소리에 태현도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배 밖으로 던져지고 싶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