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200화
[마법 시약 상점을 약탈했습니다.]
[악명이 오릅니다.]
[고르두의 대장간을 약탈했습니다.]
[악명이 오릅니다.]
태현과 악마들은 대로를 질주하며 뭔가 있어 보이는 건물이란 건물은 모두 들어가서 털었다.
나올 때마다 두둑해지는 가방들!
“태, 태현 님. 그래도 이건 좀…….”
“뭐? 루포. 너도 털게 해달라고? 그래. 부하 좀 줄 테니까 저기부터 저기까지 털고 와라.”
“……그런 게 아니라! 이건 좀 너무 나간 거 아닙니까?!”
“뭘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태현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말릴 거였다면 예전에 말렸어야 했다.
“다른 모험가들과 싸운 일이나 에다오르를 기습해서 쓰러뜨린 건 괜찮습니다. 아니, 오히려 에스파 왕국에서도 좋아할 일이겠죠. 악마를 처리했으니까. 그렇지만 이렇게 대놓고 도시를 약탈하는 건…….”
“괜찮아. 괜찮아.”
“……?”
루포는 태현의 자신만만한 태도에 무언가 숨겨진 생각이 있나 궁금해했다.
“어차피 멀리 있잖아. 설마 가져간 거 되찾겠다고 군대 이끌고 나 쫓아오겠어? 오려면 에랑스 왕국부터 시작해서 거쳐 와야 하는데.”
“…….”
“과연 태현 님!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 그 생각, 다시 한번 감탄했습니다!”
갑자기 튀어나온 에드안이 침을 튀겨가며 태현을 찬양했다. 그의 표정은 매우 밝았다.
등에 짊어지고 있는 건 한가득 챙긴 가방들!
이런 상황에서 대도적 출신인 에드안만큼 잘 챙길 수 있는 사람도 드물었다.
“아니, 이렇게 하셔서 얻으실 게 뭔데요?! 군대를 이끌고 쫓아오지는 않더라도 너무 위험하지 않습니까?”
루포는 태현을 보며 물었다. 다른 거야 그 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다지만, 바르도 시를 이렇게 대놓고 약탈할 만한 이유가 있나?
“원래는 여기 싫어하는 놈이 있어서 시를 좀 박살 내주려고 했지.”
“…….”
세상에 그런 이유로 도시를 박살 내려고 하다니.
“그런데 에다오르가 죽고 나니까 도시 박살은 무리 같더라고. 합쳐도 모자랄 판에 서로 갈라져 가지고. 저래서는 그 전에 멈출 거 같더라.”
“무리면 그냥 물러나셔도 되지 않았습니까! 에다오르를 처치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대한 업적인데! 에스파 왕국에서도 보상해 줄 거라고요!”
“에이. 아깝잖아. 기껏 받은 부하들에 기껏 만들어진 상황인데. 그래서 발상을 전환했어.”
“……?”
“도시를 박살 내는 건 포기하고 그냥 알짜배기만 약탈해서 간다. 그걸로 내 영지를 개발하겠어.”
“!!!!!”
세상에 살다 살다 남의 영지에서 뺏은 물건과 골드로 자기 영지를 개발하겠다니. 게다가 말하고 있는 건 어디 악마가 아닌 신의 화신이었다.
“태현 님. 제발 체면을! 신의 화신이십니다!”
“아, 왜 이래. 루포. 초보자처럼. 원래 나처럼 정의로운 사람이 하면 약탈도 정의로운 약탈이 되는 거야.”
“…….”
“전에야 영지가 돈 잡아먹는 구멍처럼 보였으니 버려놨지만, 이제는 아니지. 이런 기회가 생겼는데 그냥 날리는 건 아깝잖아.”
옆에서 케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예전에 레드존 길드도 요새 하나 붙잡고 야심 차게 영지를 개발해보겠다고 날뛰었던 적이 있었다.
당연히 그 조그만 요새도 골드를 많이 잡아먹었고, 그 골드를 모으기 위해 레드존 길드는 이리 뛰고 저리 뛰어야 했다. 그 와중에 골드를 뜯긴 플레이어들은 레드존 길드의 적이 되었고.
다들 영지, 영지 하지만 영지는 절대로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제대로 굴러가기 전까지는 막대한 골드가 필요했다.
괜히 대형 길드들이 노리는 게 아니었다.
“여기서 약탈한 골드와 아이템들. 맥크레니 상단의 힘. 게다가 백작 자리까지 있으니. 이 정도면 영지 개발할 만하지.”
타타탁-
둘이 대화하는 사이 에드안은 또다시 다른 곳을 털고 나타났다.
“이 에드안, 태현 님의 말을 듣고 눈이 크게 떠진 것 같습니다!”
“넌 좀 저리 가라, 이 도둑놈아!”
루포는 울컥해서 말했다. 에드안은 옆에서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었다.
“그래. 에드안. 알겠으니까 더 털어와.”
“예? 지금 저보다 더 많이 훔친 사람은…….”
“넌 대도적이잖아. 기준이 달라야지. 나중에 확인했을 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양이 적으면…….”
“……지금 갑니다!”
에드안은 후닥닥 뛰어나갔다. 하는 짓만 보면 할당량을 채우는 산적 두목 같은 모습!
“이건, 이건 아니야……!”
“하하. 루포. 여기 칼 예쁜 거 있다. 가질래?”
“필요 없습니다!”
바르도 시에서의 쇼핑, 아니, 약탈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이제까지 했던 것과 비교한다면 <쉬움> 난이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막아라! 어디서 나타난 놈들이냐!”
가끔 나타나는 바르도 시의 병사들. 대부분은 악마 무리를 막기 위해 외곽에 배치되어 있었기에 별로 강하지 않았다.
“내가 누구냐고? 나는 <최강지존무쌍> 길드의 김태산이다! 덤벼라!”
“크아악! 감히 바르도 시에서 이러고도 뒷감당이 무섭지도 않느냐!”
병사들을 쓰러뜨리고 태현은 가차 없이 전진했다. 틈틈이 김태산의 이름을 파는 것은 덤!
* * *
“야, 지금 바르도 시가 털리고 있다잖아! 빨리 가야 해!”
“달려가면 늦어! 텔레포트나 이동 스킬 있는 놈부터 먼저 보내서 막아!”
“안 돼. 멈춰!”
“……?”
길마가 말리자 급하게 움직이려던 길드원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은 한시가 급한 상황. 빨리 움직일 수 있는 사람부터 가서 막아야 했다. 그런데 멈추라니.
“상대가 만만해 보이냐? 김태현에 악마들까지 있다. 따로 나눠서 갔다가는 괜히 당해!”
“아, 과연……!”
“하지만 길마님! 만약 늦게 가면 김태현이 그냥 빠져나갈 수도 있잖습니까!”
“후후. 어디로?”
“……!”
“김태현이 나름 잔머리를 굴렸지만 이번에는 그게 역으로 발목을 잡을 거다. 밖에 있는 플레이어들을 두고 도시로 들어가다니. 빠져나갈 때는 그렇게 못 하겠지. 날아가려고 해도 다시 놓치지는 않을 테니까.”
길마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최근 갑자기 떠올라서 잘나가는 태현이었다.
좋아하는 플레이어들도 많았지만 이렇게 질투하거나 견제하는 플레이어들도 많았다.
“이번에 아주 본때를 보여주자고. 방송에서 망신을 시켜주마!”
길마가 자신만만한 이유가 있었다. 바르도 시에 들어온 이상 아무리 난리를 피워봤자 빠져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유일한 통로인 항구가 있었지만, 거기에는 지금 아무 배도 없었다.
‘스스로 무덤을 팠구나, 김태현!’
에스파 왕국 해군이 전부 배를 징발해서 가져간 것이다. 이번 에다오르가 날뛴 것 때문에 일어난 이벤트였다.
길드원 중 한 명은 바르도 시로 뛰어가며 생각했다.
‘그런데 김태현이 그렇게 아무 대책도 없이 날아왔을 것 같지는 않은데…….’
물론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길마 성격상 김태현을 좋게 말하면 화를 낼 테니까.
* * *
“배가 없어요!!”
이다비는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태현을 따라올 때, 이다비는 자연스럽게 항구에 있는 배를 훔쳐서 빠져나갈 생각을 했다.
그러나 항구에 있는 건 텅텅 빈 선착장!
이다비가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은 표정을 짓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태현은 태연하게 명령했다.
“야. 이 주변도 빠르게 털어.”
“지금 그럴 때가 아니잖아요!”
“걱정 마라.”
태현의 말과 함께, 저 멀리서 다섯 척의 배가 오기 시작했다. 루포는 한숨을 푹푹 쉬었다.
“이래도 되는 건지…….”
“괜찮아. 위장은 철저히 했지?”
“저기 깃발 보이십니까?”
“해적 깃발? 야, 그냥 예시를 들었지 진짜 해적으로 위장하랬냐?”
“차라리 해적이 낫죠! 다른 걸로 위장했다가 안에 들고 있는 거 들키기라도 하면 어쩌시려고 그럽니까!”
“그런데 저 해적 깃발 좀 낯이 익은데……. 잠깐. 저거 그거잖아.”
태현은 맥크레니 상단이 보낸 배에 달린 깃발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카테란드 해적단의 깃발!
“왜 저딴 깃발을 달았냐?”
“저번 토벌 때 얻은 깃발입니다. 상단에 해적 깃발이 어디 있겠습니까! 급한 대로 챙긴 거죠.”
“뭐 상관없나? 어차피 에스파 왕국 주변에서 멀어지면 깃발 내릴 테니까.”
태현은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카테란드 해적단은 완전 박살이 난 상태. 깃발 대신 쓴다고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가자!”
쿵-
배가 도착하자, 태현은 힘차게 손짓했다. 악마들은 우르르 짐을 들고 올라탔다.
이다비도 올라타려고…….
“어허.”
“……?”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어. 값을 내야지.”
“…….친구…….”
“친구 사이일수록 계산을 깔끔하게 해야 한다는 거 몰라?”
이다비는 포기했다. 태현이 말 몇 마디로 움직일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얼마 내야 해요?”
“얼마가 아니야.”
“……?”
“절반.”
“……뭔 절반이요?”
“여기서 챙긴 절반.”
“……!!!!!”
이다비는 그제야 태현의 속셈을 깨달았다.
어쩐지 아무런 대가도 안 받고 데리고 와서 친절하게 풀어주나 했더니……!
“너 상인 직업인 거 안다. 나나 악마들보다 훨씬 더 많이 챙겼겠지.”
상인 직업이라면 대부분 패시브 스킬로 가방 공간이나 무게 버프를 갖고 있었다.
타 직업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크기!
고렙 상인 플레이어는 도시 하나를 먹여 살릴 수 있는 짐을 들고 다닌다는 말이 있었다. 농담 같은 말이지만 진짜였다.
“3, 30%!”
“절반.”
“40%!”
“헤엄쳐서 갈래?”
“…….”
이다비는 눈물이 나오는 걸 참으며 가방을 꺼냈다. 일확천금의 꿈이 절반으로 줄고 있었다.
‘그래도 이게 어디야……!’
빠르게 배에 탄 태현은 출발하라고 신호를 보냈다. 이제 여기 더 있을 이유가 없었다.
“바로 바다로 나가서 아탈리 왕국으로 가자! 영지 개발이다!”
“와아아!”
-크아아아아!
“잠깐, 태현 님. 이 악마들도 데리고 갈 겁니까?”
루포는 태현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뭐? 루포. 설마 버리고 가자고? 그렇게 안 봤는데 생각보다 냉정한데? 어떻게 그런 소리를 할 수 있어? 쟤네들을 보라고.”
갑판 위에 앉아서 그들을 쳐다보는, 똘망똘망한 눈빛의 악마들!
에다오르가 죽고 나서 나뉘고, 로이가 미끼 역할로 또 꽤 가져갔지만, 그래도 수십의 날개 악마들은 무시할 전력이 아니었다.
‘게다가 승급도 가능하고.’
아이템과 스킬로 악마들의 등급을 올려서 성장시켜줄 수 있었다. 태현은 무심코 용용이를 쳐다보았다.
‘얘는 신수가 뭐 이리 성장이 더디냐…….’
경험치를 못 준 태현도 태현이었지만, 그래도 카테란드 섬에서 날뛰었던 그 모습이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지금도 꽤 강한 수준이었지만…….
“루포. 너 자꾸 그러면 상단 직원들이 너 이상하게 생각한다. 저번에도 카테란드 해적 놈한테 어머니 욕한 걸로 상단 직원들이 수군거리던데…….”
“그건 태현 님이 오해하게 말하신 거잖습니까!”
루포는 울컥해서 외쳤다.
“그리고 저는 걱정해서 한 말입니다. 영지에 악마가 있으면 위험하잖습니까! 다른 사람들이 보기라도 한다면!”
“아. 그 소리였어? 괜찮아. 거기 골짜기 안에 숨길 곳이 얼마나 많은데. 안 들키면 되지.”
약탈부터 시작해서 전부 ‘안 들키면 된다’로 말하는 태현. 루포는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태현 님이 알아서 잘하시겠지만…….”
“흠. 쟤네 겉에 뭐 씌워놓으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좋은 거 없으려나?”
영지에 잘 어울리고, 겉으로 봤을 때 별로 위화감이 없는 그런 위장.
“그래. 가고일이 좋겠어.”
움찔!
긴꼬리 1과 같이 갑판에 앉아 있던 날개 악마들은 움찔했다. 태현이 그들을 보는 눈빛이 무언가 불길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