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57화
“제가 해냈습니다! 언제나 제가 말하지만, 저는 펠마스 같은 놈과는 질적으로 다른 놈이란 말입니다! 하하!”
“……너희 친구 맞냐?”
우정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얄팍함!
그러나 에드안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떠들어댔다. 어지간히 자신이 있는 모양이었다.
“보십시오! 이 홀을!”
“?!”
에드안은 품속에서 불길한 붉은색으로 번들거리는 지팡이 형태의 홀을 꺼냈다.
끝에 달린 수정 해골이 딱 봐도 귀한 아이템이라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게다가 한 가지 더.
-내 손에 들어와라, 홀이여!
-내 손에 들어오라고 했다, 홀이여!
-이 무슨…… 대체 무슨 일이냐! 내 홀이 어디로!
마르덴 후작이 손을 뻗으며 했던 말들! 그는 분명 홀을 찾고 있었다.
마르덴 후작의 홀:
내구력 150/150
명성 제한 1000, 사용 시 지휘 능력 25% 상승.
마르덴 후작의 홀. 인간 시절 마르덴 후작이 부하들을 지휘할 때 사용하던 홀이다.
위대한 영웅이었던 마르덴 후작이 홀을 들고 걸을 때면 수많은 사람들의 환호성이 쏟아졌다.
이 홀은 마르덴 후작의 보물, 만약 사라진다면 목숨을 걸고 찾을 게 분명하다.
‘뭔 놈의 아이템 설명이 왜 이렇게 불길해?’
마지막 문단이 특히 그랬다.
태현한테 ‘넌 이제 죽었어!’라고 말해주는 것 같은 느낌!
그래도 태현은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에드안 덕분에 목숨을 구한 것이다.
에드안이 <마르덴 후작의 홀>을 훔쳤기에 마르덴 후작이 당황해서 홀을 찾으려고 가버렸고, 그 사이 그들은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일종의 나비효과!
쾅! 콰콰콰콰쾅!
“……!”
저 멀리 고성 안에서 강렬한 소리가 들리더니 붉은색 기운이 줄기줄기 솟구치기 시작했다.
다시 고성으로 갈 준비를 하던 다른 플레이어들은 생각지 못한 변화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게 뭐지?”
“누가 뭐 건드린 거 아냐?”
그리고 뜨는 퀘스트창!
<마르덴 후작의 분노!>
오랜 잠에서 깨어난 마르덴 후작은 그의 홀이 사라져 있다는 것에 대노했다.
그는 잠든 부하들을 일으켜 세우고 다른 곳에 있는 뱀파이어들을 불러 군대를 모으려 한다.
서둘러 막지 않으면 에랑스 왕국에 재앙이 닥칠 것이다.
보상:?, ???, ?????, 에랑스 왕국 공적 포인트.
“뭐??”
“마르덴 후작이 왜?”
“죽은 거 아니었어?”
플레이어들은 순식간에 시끄러워졌다. 당연했다. 갑자기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튀어나온 것이다.
지하의 던전을 클리어하고 보상을 받으려는 파티들은 의외의 상황에 당황!
“잠깐, 더 좋은 거 아니야? 백작한테 보상도 받고, 에랑스 왕국한테 보상도 받을 수 있잖아.”
“그런가?”
이들은 아직 마르덴 후작이 어느 정도 되는 보스 몬스터인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우르르-
그사이 몬스터들을 뚫고 나온 태현 일행은 빠르게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일단 튀고 보자!
“뭐야, 저것들?”
“퀘스트 뜨는데 왜 도망치지?”
“자신 없나 보지. 잘된 거 아냐? 경쟁자 숫자는 적으면 적을수록 좋잖아!”
“그런가? 하하!”
몇몇 파티는 겁도 없이 바로 고성으로 들어갈 준비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알지 못했다. 고성 안에 있었던 다른 파티는 찍소리도 내지 못하고 마르덴 후작한테 당하고 있었다는 것을.
“으아아악! 이거 뭐야!”
“공격이 전혀 안 먹혀!”
-내 성을 침범한 대가, 그 몸으로 갚아라!
태현 일행을 놓친 마르덴 후작은 단단히 분노해서 안에 있던 다른 애꿎은 파티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태현 일행도 마르덴 후작을 상대하지 못하고 튀었는데, 다른 파티들이 상대가 될 리 없었다.
그들은 재수 없게 거기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강제 로그아웃을 당해야 했다.
“항복! 항복!”
-뭐라고?
마르덴 후작은 플레이어 한 명을 쳐다보았다. 플레이어는 별생각 없이 말한 항복이란 말에 마르덴 후작이 반응하자 당황했다.
“항…… 항복이요.”
-항복이라고?
“예! 항복합니다! 항복!”
-오호라…….
마르덴 후작의 머릿속에서 사악한 계획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 * *
“이쯤 오면 못 쫓아오겠지.”
태현은 그렇게 말하며 발걸음을 멈췄다. 태현이 가장 먼저 한 건 고대의 망치를 확인해 보는 것이었다.
[피의 속박-남은 시간:165시간]
거의 일주일 가까이 쓸 수 없었다. 태현은 혀를 찼다. 하필이면 마르덴 후작을 상대하기 가장 좋은 무기가 봉인 당하다니.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나도 모르겠다. 갑자기 마르덴 후작이 깨어나서 날뛰네.”
태현은 정말 모르겠다는 듯이 말했다. 물론 태현은 마르덴 후작이 왜 갑자기 깨어난 건지 짐작 가는 이유가 있었다.
‘아무래도 나 때문 같아.’
아키서스의 화신이라는 직업으로 그렇게 헤집고 다녔으니 마르덴 후작을 자극했을 게 분명했다. 그가 보인 반응을 보면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지만 굳이 그걸 말해서 책임을 질 필요는 없었다. 태현은 천연덕스럽게 모르는 척했다.
“원래 퀘스트가 이런 식의 함정 퀘스트였던 게 분명해. 내가 너무 안일했어! 그냥 잠든 마르덴 후작을 처치하면 된다니. 그 뱀파이어들. 나를 속이다니. 두고 봐!”
에반젤린은 씩씩대며 그렇게 말했다. 그녀를 보자 태현은 양심이 살짝 찔렸다.
사실 뱀파이어들이 속인 게 아니라 태현 때문에 퀘스트가 꼬이게 된 것!
대장장이들은 혼이 빠진 얼굴이었다.
방금까지 장사 잘하고 있다가, 태현이 뒤에서 미친 사람처럼 ‘뛰어! 뛰어! 뛰라고!!’라고 말하는 걸 들으며 전력 질주를 한 것이다. 혼이 반쯤 나갈 수밖에 없었다.
“어…… 그러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루포의 질문에 태현은 살짝 고민했다. 지금 태현에게는 선택지가 여러 개 있었다.
‘아예 도망을 쳐버려?’
살짝 끌리는 선택지!
이 선택지가 끌리는 이유는 단 하나. 마르덴 후작을 제대로 엿 먹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냥 다 포기하고 홀을 들고 도망치면 마르덴 후작은 태현을 쫓아올 방법이 없었으니까. 이 주변은 신나게 박살이 나겠지만 태현이 알 바 아니었다.
‘역시 안 되겠어.’
태현은 도망치는 건 제외했다.
이 주변이 받을 피해를 생각해서는 아니었다.
이미 충분히 많이 만들어놓은 적!
여기에다가 마르덴 후작 같은 적을 또 추가할 필요는 없었다.
‘이제 적은 그만 늘리고 가능하면 죽일 수 있을 때 죽이자!’
나중에 길 가다가 칼 맞기 싫으면 정말로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게다가 여기까지 와서 고생한 게 있었다. 마르덴 후작이라는 보스 몬스터가 하나 갑자기 튀어나왔다고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고성 지하에서야 아무런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마주쳤으니 도망쳤지만, 밖에서 준비를 하면 또 이야기가 달라졌으니까!
태현의 머리가 팽팽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마르덴 후작을 잡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 * *
“미, 미친…….”
“저걸 어떻게 잡으라고?!”
그러는 사이 마르덴 고성 앞에서는 겁이 없는 파티 몇 개가 박살이 나고 있었다.
신이 나서 고성으로 접근하던 파티를 본 마르덴 후작이 직접 부하들을 이끌고 앞으로 마중을 나온 것이다.
물론 그 결과는 보지 않아도 뻔했다.
-짙은 어둠의 피!
-연쇄:피의 순환!
마르덴 후작이 스킬을 몇 개 사용하자 만반의 준비를 하고 온 파티는 그대로 찢겨나갔다.
몇 겹으로 건 버프도 소용이 없이 그냥 박살!
-크하하하하하! 이걸로 끝이냐!
마르덴 후작은 전사 플레이어 둘을 잡고 바로 흡혈해서 HP를 채운 다음 외쳤다.
그 모습을 멀리서 보고 있던 다른 플레이어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저건 딱 봐도 이 인원으로 상대할 보스 몬스터가 아니었다!
“도, 도망치자.”
“일단 빠지자!”
고성으로 겁 없이 다가간 다른 파티와 달리, 망설이거나 재정비 때문에 늦은 파티는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그들은 고성 앞에서 마르덴 후작이 벌이는 학살쇼를 보고 기겁해서 거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근처에서 장사를 벌이고 있던 상인 플레이어들도 마찬가지!
“같이 가! 같이 가자구요!”
“아니, 우리랑 친하지도 않으면서 뭘 같이 가요? 알아서 가요! 게다가 바가지를 그렇게 씌워놓고…….”
“옆에서 팔던 놈보다 싸게 팔았는데 무슨 바가지! 바가지 아니라니까!”
“헛소리하고 있네! 그러면 떨어져서 가!”
마르덴 고성 근처는 혼돈이었다.
* * *
“같이 가!”
“저리 가라니까!”
멀리서 떠드는 플레이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걸 본 케인이 안절부절못하며 물었다.
“야. 우리도 더 가야 하는 거 아냐?”
“여기까지 오려면 오기 전에 보이겠지. 괜히 겁먹지 말라고.”
“겁은 누가!”
에반젤린은 케인과 태현의 대화를 듣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케인도 그렇고, 뭔가 어디서 본 것 같은 익숙함이 있었다.
‘어디서 본 걸까?’
태현한테 말했다가는 또 이상한 소리만 들을 것 같아서 조용히 속으로 생각하는 에반젤린이었다.
“좋아. 아농 백작한테 가자.”
“아농 백작이요?”
아농 백작. 마르덴 고성 주변과 지하를 토벌해달라는 의뢰를 건 백작이었다.
당연히 그는 마르덴 후작이 죽지도 않고 그 밑에서 잠자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겠지만,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아농 백작은 이 사건의 가장 큰 관련자였다.
왜냐하면 마르덴 후작이 군대를 모으고 움직인다면 가장 먼저 부딪히게 될 곳이 아농 백작의 성!
“꽤 뜯어낼 수 있을 거야. 마르덴 후작 그놈은 자기 부하들까지 잔뜩 데리고 올 텐데 우리만으로는 무리지.”
“아농 백작이 순순히 군대를 내놓을까요? 그냥 자기 성만 지키면서 마르덴 후작과 안 싸우려고 할 수도 있잖습니까?”
루포는 걱정이 된다는 듯이 물었다. 사실 그럴듯한 질문이었다.
마르덴 후작이 오랜 잠에서 깨어나 군대를 모으고 있었지만, 굳이 마르덴 후작과 싸워야 할 필요는 없었다.
사람은 모두 다 자기 재산이 소중한 법이었다. 아농 백작도 그냥 자기 성을 지키며 마르덴 후작이 다른 곳으로 가기를 빌 수 있었다.
그러나 태현은 피식 웃었다.
“안 내놔도 상관없어.”
“……?”
“홀을 들고서 우리가 그 안으로 들어가면 마르덴 후작이 알아서 그쪽으로 올 테니까.”
“……!”
사악하기로는 정말 끝이 없는 태현! 루포는 인간이 어쩌면 이렇게 사악한지 전율했다.
“태현 님.”
“왜?”
대화가 끝나자 우정식이 손을 들고 태현을 불렀다.
“저 사람은 누굽니까?”
우정식이 가리킨 건 물론 에반젤린이었다.
에반젤린의 겉모습은 대장장이의 도전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겉모습!
저 장비 세트를 잡고서 수리만 해도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팍팍 오를 것 같은 겉모습이었다.
“밑에서 만나서 친해졌어.”
“예? 친해졌다고요?”
우정식은 정말로 놀랐다. 태현과 친해지다니. 대체 어떻게?
‘설마 우리 같은 사람인가?’
어떤 고생을 하더라도 태현 곁에 남아 있을 수 있다면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들도 그렇기에 이러고 있는 것 아닌가.
우정식의 눈빛이 경쟁자를 보는 눈빛으로 변했다.
“친해지기는 누가!”
“……?”
“속아서 당하기만 했거든? 하나도 안 친해!”
에반젤린이 그렇게 말하자 우정식은 살짝 안심했다. 역시 태현은 평소의 태현이었다. 고성 지하 던전이라고 해서 다른 사람들한테 친절하게 굴 리가 없는 것!
“누가 내 욕한 것 같은데.”
태현은 케인을 쳐다보았다. 케인은 진심으로 억울하다는 듯이 펄쩍 뛰었다.
“나 아냐!”
“너밖에 없는데…… 뭐 마르덴 후작도 있으니까.”
케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에반젤린을 보며 안쓰럽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동병상련!
“힘내라. 쯧쯧.”
“……?”
에반젤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