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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151화 (151/1,826)

§ 나는 될놈이다 151화

“그래도 적이 나타나면 지키는 거 맞죠?”

루포의 물음에 태현은 고개를 저었다.

“……?”

아니라니. 루포는 정수혁을 쳐다보았다. 한눈에 봐도 약해 보이는 마법사였다.

방어 마법을 미리 걸고 있다고 쳐도 몇 방 맞으면 바로 죽을 것 같은 겉모습!

“지키지 말라고요?”

“여기까지 왔는데 자기 앞가림은 자기가 해야지.”

루포는 어이가 없어서 정수혁을 쳐다보았다. 설마 이런 말에 동의할 리는…….

“물론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

“씩씩하니 얼마나 좋아. 그래, 그렇게 열심히 하라고.”

정수혁은 걸어가면서 방어막을 스스로에게 걸었다.

마법사는 보통 몬스터가 나오고 싸우기 직전에 방어 마법을 걸었다.

그래야 효과를 가장 크게 볼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태현은 정수혁에게 다른 걸 지시했다.

-넌 그냥 평소에도 마법 걸고 다녀라.

-예? 그러면 낭비가 심하지 않나요?

-어차피 마법 스킬도 고급까지 찍은 놈이 뭘…… 그리고 넌 동시에 스킬 여러 개 쓰는 게 안 되니까 MP 낭비되고 제때 마법 못 쓰더라도 미리 쓰는 수밖에 없어.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재능이 없다고 하더라도 못 싸울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남은 건 전부 공격에 올인해라. 네 수준이면 레벨도 빠르게 오르겠지.

-열심히 하겠습니다!

-물론 네 수준이면 죽기도 쉽겠고.

-그래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몇 대 잘못 맞으면 훅 갈 수 있는 상황에서도 정수혁은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한 자세로 외쳤다.

-신의 예지.

다시 갈림길이 나오자 태현은 신의 예지 스킬을 사용했다. 아까부터 길을 이걸로 찾고 있었다.

이런 복잡한 지형에서는 사기적인 수준의 효과를 발휘하는 스킬!

다른 파티들은 몇 번이고 도전과 후퇴를 반복해서 지도를 만들었지만, 태현은 그냥 길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정수혁한테 뭐라고 할 때가 아닌데. 나도 MP 낭비가 좀 심해.’

태현은 속으로 생각했다.

신의 예지는 만만찮게 MP를 잡아먹는 스킬이었다. 필요한 순간에만 써도 MP가 팍팍 닳는 게 보였다.

물론 MP 회복 포션이야 잔뜩 들고 왔지만, 나중에 급할 때 쓰기 위해서는 벌써부터 써서는 안 됐다.

‘마력 회복의 귀걸이 말고도 다른 마력 회복 옵션이 붙은 아이템을 좀 구했으면 좋겠는데.’

마력 회복 속도가 올라가는 옵션은 옵션 중에서도 상위권에 속하는 옵션이었다.

일단 붙으면 부르는 게 값!

그리고 태현은 마력 회복 속도를 올려주는 반지를 얻을 기회가 있었다.

<풍림화산> 길드가 길드 재산을 탈탈 털어서 만든 그 반지!

사디크 교단이 습격해서 가져간 그 반지!

그 반지를 생각하자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불끈!

고대의 망치를 든 태현의 손에 힘줄이 드러나자 뒤에서 보던 정수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선배님도 긴장하시는 건가?’

* * *

“나왔습니다!”

“좋아. 해보자고.”

태현은 자신만만하게 말하고 달려들었다. 마르덴 언데드 창병 둘이 복도를 막고 서 있었다.

-여긴 지나갈 수 없다.

-후작님이 쉬시는데 방해하지 마라!

파파팍-

[회피에 성공했습니다.]

언데드 창병들이 날카롭게 창을 찔러왔지만 태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앞으로 더 전진했다.

붕, 붕, 붕-

두 바퀴 반을 회전한 다음 태현은 그대로 망치로 언데드 창병을 후려쳤다.

콰콰콰콰콰콰쾅!

<아키서스의 변덕> 패시브 스킬로 다른 플레이어들보다 훨씬 더 쉽게, 많이 올릴 수 있는 스탯.

거기에 강력한 행운으로 인한 치명타와, <행운의 일격> 버프. 마지막으로 무지막지한 공격력을 갖고 있는(생물은 공격할 수 없지만) 고대의 망치까지.

쿠르르르…….

태현은 이 지하 던전에서 학살자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마르덴 언데드 병사 몬스터들은 태현에게 제대로 된 공격을 하지 못했다.

기껏해야 거는 저주들은 이동속도를 내리는 저주가 전부. 거기에다가 명중률도 형편없었다.

들어가는 공격은 전부 회피!

상성이 최악 중의 최악이라고 봐도 좋았다.

쾅! 쾅! 쾅!

-으어어! 지나갈 수 없!

-후작님 도와주…… 커헉!

마치 두더지 잡기라도 하는 것처럼 망치를 휘둘러서 언데드 병사들을 쓸어버리는 태현의 모습에, 정수혁의 입이 떡 벌어졌다.

“저게…… 프로 방송인의 모습……!”

배장욱이 봤다면 ‘아니, 그건 저 김태현만 저런 거고. 다른 사람들은 안 그러는데’라고 말했을 것이다.

콰직!

그러는 사이 정수혁에게서도 위기가 닥쳐왔다. 갑자기 통로 돌벽이 열리더니 안에서 언데드 몬스터가 튀어나온 것이다.

“으아앗!”

정수혁은 깜짝 놀랐지만, 이내 태현이 말한 것을 떠올렸다.

‘태현 선배는 이럴 때 어떻게 하라고 했었지?’

-너보다 강한 놈한테 근거리에서 붙잡히면 어떡하냐고? 그냥 죽어야지 뭐.

‘아니, 이런 거 말고!’

-죽기 싫으면 먼저 죽여. 기껏 마법 스킬을 고급까지 올렸으면 써먹어야지. 왜 장점을 내버려 두고 단점을 고치려고 하냐?

“으아아앗!”

정수혁은 고함과 함께 스태프를 휘둘렀다. 스태프 끝에서 벼락이 모이더니 그대로 뻗어 나갔다.

-카흘라단의 번개!

마탑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배웠던 마법 중 가장 위력이 좋은 마법이었다.

파지지직!

번개를 맞자 언데드 창병은 순간 멈칫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정수혁은 다시 마법을 준비했다.

-카흘라단의 번개! 카흘라단의 번개! 카흘라단의 번개!

회피, 방어, 기타 등등 다른 건 전혀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공격에만 몰두!

파직! 파지직! 파지지직!

[마법을 빠르게 연속으로 사용하는 데 성공합니다. 마법 스킬이 오릅니다.]

[전격 마법 스킬이 오릅니다.]

조금 걸어오다가 멈추고, 조금 걸어오다가 멈추고…….

적이 하나뿐인 데다가 통로가 좁아서 가능한 싸움이었지만, 정수혁은 기뻤다.

그의 장점을 살려서 싸우고 있었으니까!

[레벨 업 하셨습니다.]

“……!”

이윽고 쓰러지는 적. 정수혁은 기뻐서 펄쩍 뛰었다.

“선배님! 저 레벨 업 했습니다!”

“……뭐?”

태현은 닥치는 대로 언데드들을 망치로 후려 패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는 지금 수십 명 가까이 쓰러뜨리고 있는데 경험치 바가 아주 조금 움직였는데, 정수혁은 한 마리 잡았다고 바로 레벨 업?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다 선배님 덕분입니다!”

‘저거 확 앞에 세워버릴까…….’

악의가 없다는 걸 알아도 울컥한 태현이었다.

-주인이여. 주인이여.

“왜 그러냐.”

-나도 돕고 싶다.

“돕고 싶다고?”

태현은 망치를 들고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완전히 박살이 나서 흩뿌려진 언데드 시체들로 가득!

도움이 필요한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앞으로의 싸움을 대비해서 말이다!

“아. 예. 뭘 하실 수 있으신지?”

-나는 골드 드래곤. 드래곤은 마법의 지배자다. 다양한 마법을 쓸…….

“……!”

태현은 순간 놀랐다. 용용이가 많이 약해져서 놓치고 있었지만, 용용이는 일단은 골드 드래곤이었다.

알고 있는 마법도 분명 많을 것!

그러나 사람, 아니, 드래곤의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아는 법이었다.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래…….”

-지금 상황에서 도와주려면 역시 속박 마법이겠군! 내가 적들을 묶어주겠다.

“그래. 너도 저쪽으로 가라.”

태현은 용용이를 집어 들어 던졌다. 허공에서 용용이가 날개를 파닥거렸다.

-어째서?!

“나보다는 저놈들이 더 도움이 필요할 테니까. 그리고 내 사냥에 방해되거든.”

태현은 루포와 정수혁이 있는 쪽으로 용용이를 보냈다. 어차피 태현은 도움이 필요 없었으니 저 셋을 묶어놓는 게 좋았다.

그리고 솔직한 심정으로는…….

‘도움도 필요 없는데 뭐하러 경험치를 뺏기냐.’

정수혁이 바로 레벨 업 한 것 때문에 불이 붙은 경쟁심!

적어도 이 던전에서 레벨 1은 올리고 나가겠다!

태현은 그렇게 생각하며 망치를 움켜쥐었다.

* * *

“후…….”

태현은 한숨을 쉬며 통로 천장을 쳐다보았다.

지금 던전 공략 상황은 매우 좋았다. 다른 파티들이 고생을 하면서 시간을 버릴 때 태현은 일직선으로 가고 있었으니까.

그렇다고 사냥 내용이 부실한 것도 아니었다. 몬스터가 나타날 때마다 태현은 그야말로 폭풍처럼 날뛰며 사냥한 것이다.

나중에는 고대의 망치를 집어넣고 기계공학 스킬로 개조한 무기들을 썼다.

여유 넘치는 짓이었지만 태현은 자신이 있었다.

[검술 스킬이 오릅니다.]

[폭탄이 내장된 은제 카바 블레이드를 사용해 성공적으로 언데드를 쓰러뜨렸습니다. 기계공학 스킬이 오릅니다.]

한마디로 태현은 지금 상황에서 뽑아낼 수 있는 건 전부 뽑아내면서 전진하고 있었다.

그러나……

“선배님! 또 레벨 업 했습니다!”

“…….”

옆에서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정수혁! 루포와 용용이, 정수혁은 궁합이 잘 맞았다.

태현이 혼자서 날뛰는 동안 그들은 나름대로 잘 싸웠다. 갑자기 뒤에서 나타나는 몬스터들을 잡거나, 태현을 넘어서 온 몬스터들을 잡거나…….

잡은 수는 엄청나게 차이 났지만, 그것만으로도 정수혁은 레벨이 올랐다.

축하할 만한 상황이었지만 태현은 뭔가 억울했다. 어쩔 수 없는 사람의 마음!

“어? 선배님.”

“왜?”

어딘가 날카로운 태현의 목소리! 정수혁은 순간 그가 착각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완벽 그 자체인 태현이 아무 이유 없이 그에게 화를 낼 리 없었으니까!

“저기 복도 구석에 앉아 있는 거 몬스터 아닙니까?”

“몬스터가 가만히 앉아 있을 리가…… 진짜잖아?”

태현은 눈을 깜박였다. 어두운 복도 벽, 움푹 들어간 곳에 전신 갑옷으로 무장한 사람이 있었다.

“아니, 몬스터가 아니군. 플레이어 같아.”

주변에서 나타나는 언데드 몬스터들 때문에 헷갈렸지만, 태현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정수혁이 착각할 만도 했다. 플레이어의 전신 갑옷은 어둡고 칙칙하고 더러워서 몬스터 같았기 때문이었다.

“먼저 온 사람일까요?”

“그렇겠지. 근데 왜 혼자지?”

혼자서 뚫는 태현이 이상한 거지, 보통 태현처럼 사기 수준의 상성이 아니라면 파티로 뚫어야 하는 곳이었다.

‘이 던전에서 솔플을?’

태현은 의아해했다. 물론 판타지 온라인에서 불가능은 없었지만, 태현처럼 미친 짓을 하는 사람은 찾기 힘들었던 것이다.

“파티원들이 다 죽은 거 아닐까요?”

“글쎄. 아닌 거 같은데. 물어볼까?”

태현은 성큼성큼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앞에 있던 플레이어도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전신 갑옷 플레이어는 앉아 있다가 바로 일어섰다.

“다가오지 마!”

“……?”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길 전세 냈냐?”

“길은 상관없어. 나한테 다가오지 말고 가라는 거야.”

전신 갑옷 플레이어는 가까이서 보니 더 흉측하고 기괴스러웠다. 갑옷 위에 뭐가 달라붙은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대장장이로서 뭔가 수리하고 정비하고 싶어지는 욕망이 치솟는 겉모습!

“지나가지 말라는 게 아니라 너한테 다가가지 말라고?”

“그래.”

“이유를 물어봐도 되나?”

“다치니까.”

“……PK하겠다 이거?”

태현의 목소리가 한층 내려갔다. 얼굴을 가려서 드러나지 않았지만, 태현의 입가는 위로 올라가 있었다.

태현이 가장 좋아하는 것 중 하나가 거만하게 구는 플레이어를 꺾고 짓밟는 것!

“PK를 하겠다는 소리가 아니야.”

“……?”

태현은 순간 혼란스러웠다. 그러면 무슨 소리지?

“그러면 왜 다친다는 건데?”

“내가 다치게 할 생각은 없어. 그렇지만 나한테 가까이 다가오면 다치게 되어 있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괜히 다가왔다가 후회하지 말고 물러서.”

“아. 알았다.”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태현의 눈빛은 바뀌어있었다. 호전적인 눈빛에서, 어딘가 아픈 애를 보는 눈빛으로!

‘쯧쯧. 몇 살인지는 몰라도 아직도 중2병이라니.’

상대가 들었다면 바로 부들부들 떨며 PK를 신청했을 무례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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