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50화
에드안이 큰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지었다.
“아니! 태현 님!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억울하면 네가 아키서스의 화신을 하면 되겠네.”
세상에서 가장 치사한 대답. ‘꼬우면 네가 하던가!’
물론 에드안은 그럴 수 없었다.
“그러면 밑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내려가기 전에…….”
태현은 대장장이들을 쳐다보았다. 돌아다닐 때 짐꾼 역할을 하는 건 좋았는데, 밑에 내려가서 싸울 때 대장장이들은 솔직히 방해였다.
물론 데리고 싸울 수 있기는 했다. 거추장스럽지만 태현은 이미 그런 적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태현은 더 좋은 방법을 생각했다.
“너희들은 여기에 있어라.”
“예??”
대장장이들은 태현의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여기에 좌판을 차려.”
“……?”
“우정식 너. 직업이 떠돌이 대장장이잖아.”
태현의 말에 우정식은 펄쩍 뛰었다.
“그건 비밀로 해주기로 했잖습니까!”
“아. 비밀이었어? 그런데 왜 비밀이었지?”
다른 두 대장장이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게?”
“비밀로 할 만한 직업인가?”
그 말에 우정식은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는 천천히 말했다.
“그…… 직업을 말했다가 나중에 견제를 받을까 봐…….”
“…….”
잠시 정적.
그리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풋!”
“으하하하!”
우정식은 다른 대장장이들이 그를 비웃자 얼굴이 붉어져서 화를 냈다.
“야! 걱정할 수도 있지!”
“아니, 다른 사람들이 뭐가 아쉬워서 우정식 씨를 견제해요.”
“맞아. 맞아.”
괜히 말했다가 비웃음만 샀다. 우정식은 투덜거리며 말했다.
“그래서 뭡니까? 떠돌이 대장장이인 건 왜 말하신 건데요.”
“떠돌이 대장장이는 하이브리드 직업이잖아.”
대장장이와 상인이 섞인 직업. 떠돌이 대장장이. 물론 상인 직업이 적성에 잘 맞지 않은 우정식은 주로 대장장이 위주로 키우고 있었다.
“그러면 상인처럼 활동도 가능하겠지.”
“가능하긴 한데…… 저 상인 스킬은 거의 안 올려놔서…….”
“상관없어. 어차피 여기는 경쟁도 없으니까.”
상인들끼리의 경쟁!
그건 어떻게 보면 레이드 경쟁보다 더 치열한 경쟁이었다.
인기 많은 사냥터에 어떻게 최대한 많은 아이템을 갖고 가서 이득을 남겨서 파는가?
다른 직업들이 스스로의 캐릭터를 키울 때 상인 직업들은 골드를 모으고 신분을 올려 성장했다.
그런 만큼 상인 플레이어들끼리의 경쟁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격렬!
다른 NPC들을 사주해서 견제하는 건 물론이고 온갖 생각도 못 한 방법이 다 튀어나왔다.
그러나 이 마르덴 고성 안은 다른 상인 플레이어들이 없는 블루오션이었다.
아무리 경쟁이 좋아도 여기까지 들어와서 아이템을 팔려는 상인 플레이어들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죽기라도 하면 엄청난 손해였으니까.
“생각해 봐라. 이 던전을 깨려는 파티는 여기를 무조건 지나야 하잖아. 처음에야 여기서 안 사려고 해도 계속 왔다 갔다 하다 보면 생각이 바뀔 수밖에 없을걸.”
자기 파티는 사지 않더라도 다른 파티가 여기서 살 거라는 생각을 하면 초조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퀘스트에서 중요한 건 남보다 한발 앞서는 것!
자기 파티가 이 고성 밖으로 나가서 재정비를 하고 돌아오는 동안 다른 파티는 그냥 여기서 사고 다시 던전에 들어간다면, 경쟁에서 밀리는 것이다.
“그렇군요!”
“당장 시작하겠습니다!”
둘은 신이 나서 외쳤다. 당장 도시만 가도 대장장이 플레이어들끼리 경쟁이 치열했다.
-부츠 전문 스킬 익힌 대장장이입니다! 이동속도! 회피! 마법 저항력까지! 버프 다 걸어드립니다!
-옆 대장장이보다 무조건 싼 가격에 해드립니다!
-너 이 자식! 상도덕도 없냐!
-없어!
사람 많은 곳에서는 이런 부끄러운 싸움을 하루에 꼭 한 번씩 보게 되었다.
그렇지만 여기는 그런 경쟁으로부터 자유로운 곳!
온갖 플레이어들의 장비를 만질 수 있었다. 김지산과 박성찬은 손을 비비며 신이 나서 준비를 시작했다.
태현은 우정식에게 시선을 돌렸다.
“여기 상단에서 갖고 온 아이템들 있는데, 최대한 잘 팔아봐.”
우정식이 잘 팔면 잘 팔수록 아이템을 개조한 태현에게도 스킬 보너스가 들어왔다.
마치 다단계 같은 구조!
“알겠습니다.”
“그리고 잡템을 최대한 긁어내.”
“……?”
우정식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던전에서 나오는 잡템을 긁어내라고. 던전 돌고 나오는 플레이어들은 잡템에 크게 신경 안 쓸 거야. 대장장이 스킬이나 소모성 아이템 팔 때 잡템으로 팔아. 정 없으면 골드도 괜찮지만 최대한 잡템을 긁어내.”
“어…… 왜요?”
“다 쓸 곳이 있지. 어쨌든 할 수 있지?”
우정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 오는 게 힘들었지 여기서 하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았다.
각종 대장장이 스킬이야 도시에서도 썼던 것이었고, 좌판을 깔고 각종 아이템들을 파는 건 그가 갖고 있는 상인 스킬로도 충분히 가능했다.
“좋아. 너도 남아라.”
“왜?!”
갑자기 지목받은 케인은 깜짝 놀라서 뛰었다.
“얘네들만 있으면 불안하거든. 몬스터가 들어올 수도 있고 다른 플레이어들하고 시비가 붙을 수도 있으니까 옆에서 폼이나 잡고 있어.”
“나, 나도 던전에 들어가고 싶…….”
당연했다. 케인은 지금 몇 번 죽은 것으로 사망 페널티를 많이 받은 상태.
복구하려면 최선을 다해 더 달려야 했다.
“네가 쓴 계약서 다시 볼래?”
“……열심히 폼 잡으면 되잖아!”
케인은 고개를 숙이고 그렇게 대답했다.
‘정말 치사하고 더러워서…….’
* * *
그사이, 태현한테서 사기를 당한…… 아니, 정당한 거래를 끝낸 파티는 성문 밖으로 나가서 몬스터들 사이를 다시 뚫으려 했다.
장비를 수리하고 아이템을 받았지만 그래도 파티원 중 한 명이 죽은 상황.
계속 던전을 도는 건 무리였다.
“빨리 가서 기다리자. 이 주변 어디에서 부활하더라?”
“마을까지 가야지.”
“아…… 안 그래도 다른 파티들 와가지고 걱정되는데…….”
“어쩔 수 없어. 걔 없으면 우리 누가 힐 해주는데.”
“그렇긴 하지. 설마 그사이 다른 파티들이 앞서가지는 않겠지?”
“그렇겠지, 설마?”
“마을 받으면 넌 뭐 할래?”
“난 작은 마탑이라도 세울 거야. 마법 스킬 보너스 받게.”
“난 대장간. 다른 대장장이들하고 치고받고 하면서 도시 대장간 쓰는 거 너무 짜증 났어.”
꿈에 부푼 플레이어들!
그들의 꿈은 나름 소박했다. 태현처럼 처음부터 백작 자리와 넓은 영지를 원하지도 않았다.
마을 하나면 충분!
사실 마을 하나만 정식으로 받을 수 있어도 지금 상황에서는 충분히 앞서나가는 것이었다.
게다가 어디 내전이 일어나고 있는 왕국이나 변방이 아닌, 가장 많은 플레이어가 있는 에랑스 왕국의 마을!
하나만 갖고 있어도 그들이 원하는 건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김태현은 영지에다가 건물 올리고 있다고 했지?”
“그래. 세금도 거의 안 걷고, 아주 본격적으로 영지를 키우려고 하는 것 같더라.”
“나 같아도 그러겠다. 지금 자기 땅 정식으로 있는 사람이 없잖아. 그런 기회를 놓칠 사람이 있겠어?”
“그래가지고 아예 그쪽 골짜기로 가는 사람들도 있다던데. 영지 발전할 때 대비해서 미리 자리를 잡아놓겠다고…….”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했는데 모두 다 알아서 김칫국을 사발로 마시고 있었다.
사실 사람들이 이상한 건 아니었다.
그런 영지를 보상으로 받았는데 안 쓰고 묵혀두는 게 더 이상한 거였으니까!
“부럽다, 진짜.”
“우리는 우리 마을부터 먼저 갖자고! 저기 몬스터 온다!”
“좋아. 내가 왼쪽 창병 쏠게!”
태현한테 화살을 구입한 궁수 플레이어는 능숙한 동작으로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파팍!
스킬을 쓰며 화살을 쏘자 화살이 빛나며 날아갔다.
콰콰쾅!
“?!”
그러자 공격 한 번에 뒤로 넘어져 버린 마르덴 언데드 창병!
“뭐, 뭐야?”
“너 뭐 했어? 아니, 이런 스킬이 있었으면 왜 이제까지 안 쓴 거야?”
폭발에 넉백 효과까지. 이런 스킬을 쓸 수 있었다면 훨씬 더 편했을 것이다.
“아냐! 내가 쓴 스킬 아냐!”
“뭐? 그러면 저건 뭔…….”
“으아! 몬스터들 온다! 야! 일단 싸워! 떠들지 말고!”
아까 태현 일행이 몰아온 몬스터들은 아직 다 완전히 흩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파티원들은 이를 악물고 다시 싸움에 집중했다. 그 탓에 궁수 플레이어는 태현한테서 구매한 화살을 다시 확인해 보지 못했다.
‘나중에 확인해 봐야지!’
궁수 플레이어는 화살을 쏘면서 한 발은 남겨서 따로 빼놓았다. 정말로 궁금했던 것이다. 대체 뭔 개조를 했기에 저 언데드들이 저렇게 팍팍 박살이 나는 걸까?
* * *
“에드안은 위로, 얼간이들은 성문 쪽에…….”
“그리고 저희는 아래로입니까?”
“그렇지.”
“저도 차라리 위가 좋았던 거 같은데…….”
“하하.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아니, 정말인…… 읍읍.”
태현은 루포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중앙 지하 계단으로 내려오자 바로 던전의 입구가 나타났다.
[던전:마르덴 고성 지하 던전에 입장하셨습니다. 당분간 로그아웃이 제한됩니다. 로그아웃 시 던전에서 강제로 퇴장당하며, 페널티가 부여됩니다.]
지하여도 제대로 건축이 되어 있지 않거나 하지는 않았다. 통로 벽 하나하나가 다 잘 다듬어진 돌벽으로 되어 있었다.
“이런 곳까지 이렇게 철저하게 만들 이유가 있나?”
“마르덴 후작이야 유명한 인물이잖습니까.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거물 귀족이었죠.”
루포는 검을 쥐고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설명을 계속해나갔다.
아주 예전에 이 주변을 다스리던 마르덴 후작은 그 권세가 대단했던 모양이었다.
강한 병사들과 비옥한 영토를 거느리고 있고, 본인의 실력도 뛰어났다. 덕분에 다른 귀족들도 두려워할 뿐만 아니라 바깥의 적들도 그를 두려워했다고 한다.
“그것도 이제 다 옛날이야기지만…… 마르덴 후작이 사라진 지 몇백 년이 넘었으니까 말입니다.”
“사라졌다고?”
“예. 어떤 사람들은 아내가 죽어서 미쳐버렸다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자살했다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영원히 살아남는 방법을 찾아서 떠났다고 하고…… 다 소문이죠.”
“거 소름 끼치는 소문이군.”
마르덴 후작이 사라진 후 남은 후계자들은 서로 싸우다가 같이 쓰러졌다고 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이 주변에서 언데드 몬스터들이 나타난 것이다.
그 이후로는 아무도 오지 않아 점점 폐허가 되어버린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오른쪽으로.”
“태현 님. 저는 물론 태현 님을 믿고 있습니다만…….”
“믿고 있는 놈은 보통 말을 시작할 때 ‘믿고 있습니다만’ 같은 걸 안 붙이는데.”
“……다름이 아니라, 길을 제대로 알고 가시는 거 맞습니까?”
마르덴 고성 지하 던전의 길은 보통 복잡한 게 아니었다. 1분도 지나지 않아서 갈림길은 물론이고 세 갈래로 나뉜 갈림길도 심심찮게 나왔다.
그러나 태현은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바로 선택!
옆에서 보는 루포는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믿는 자에게 복이 있으리라는 말도 모르냐? 화신이라고 쫓아왔으면 좀 믿어라.”
“물, 물론 그렇죠.”
루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 표정은 ‘이제까지 워낙 무모하신 짓을 많이 하셨잖습니까’라고 말하고 있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쟤 옆에나 붙어 있어.”
태현은 정수혁을 가리켰다. 루포는 그걸 보고 물었다.
“적이 나타나면 지키라는 겁니까?”
“응? 아니. 그냥 옆에 붙어 있으라고. 내 옆에 붙어 있으니까 네가 자꾸 쓸데없는 소리를 하잖아.”
“…….”
루포는 인내심을 발휘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서 정수혁이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그의 등을 두들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