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96화
확실하지는 않았다. 틀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배장욱은 스스로의 감을 믿었다.
이 <해적대장의 잘 세공된 단검>은 카테란드 섬의 퀘스트를 주도한 사람이 올린 아이템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섭외해야지!’
지금도 판타지 온라인 2 게시판에는 골드 드래곤이 브레스를 쏘는 영상이 1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 게시물에는 ‘김태산’이라고 불리는 정체불명의 플레이어를 찾는 댓글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길드 섭외, 개인 방송 섭외, 지도 요청, 거래 신청, 잡상인까지…….
그가 단 댓글이 묻힌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워낙 댓글들이 많고 이상한 사람들도 많았으니 넘기거나 무시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남은 방법은 하나였다.
경매에서 낙찰을 받은 다음 구매자의 권한으로 판매자한테 쪽지를 보내는 것이었다.
‘저 단검을 사면 쪽지를 보낼 수 있겠군!’
현재 가격은 220만 원. 저 레벨 대의 아이템치고는 싸게 먹히는 편이었다.
게다가 배장욱은 아이템 때문에 사는 게 아니었다. 목적은 어디까지나 섭외!
‘좋아. 시작해 보자!’
배장욱은 자신만만했다. 제작비로 지원받은 예산 덕분에 돈도 넉넉했다. 그 말고 누가 또 이걸 사려고 하겠는가.
“잘되어 가고 있나?”
“아. 부장님.”
상사가 오자 배장욱은 고개를 꾸벅 숙였다. 부장은 배장욱을 보더니 어깨를 툭툭 토닥여 주었다.
“일이 힘들겠군. 게다가 이번에 SBC도 게임 프로를 한다고 했으니…….”
“상도덕도 없는 놈들이죠!”
배장욱은 주먹을 움켜쥐고 그렇게 말했다. 부장은 배장욱의 열혈스러운 태도에 살짝 당황하며 말했다.
“그, 그렇지. 상도덕도 없는…… 그래서 준비는 잘되어 가고 있나?”
“예. 물론입니다. 새로 플레이어들을 섭외하고 있습니다. SBC들보다 먼저 섭외해서 절대로 놓치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 자세 아주 좋군. 자네 동생이 열심히 해도 자네보다는 못할 거야.”
부장의 말에 배장욱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그의 여동생 때문이었다.
그의 여동생은 현재 SBC에서 PD로 일하고 있었다. 그것도 그와 같은 게임 프로를 맡고서!
‘절대 질 수 없어!’
어렸을 때 집에서 언제나 다투었던 둘이었다.
-이 아이스크림은 내 거야!
-이 과자는 내 거야!
조금 더 커서도 그건 달라지지 않았다.
-전교 8등이다!
-나도 전교 8등이야!
-내가 사람 더 많은 학교 다니니까 내가 더 위지!
-내가 더 평균 성적 좋은 학교 다니니까 내가 더 위지!
절대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 같은 앙숙!
배장욱이 타오르는 눈을 하는 걸 보고 부장은 살짝 뒷걸음질 쳤다.
‘괜히 말했나?’
그러나 배장욱은 모르고 있었다. 남매는 서로 닮는다는 것을. 그가 그러는 동안에 배미나도 <해적대장의 잘 세공된 단검>을 보고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 * *
“아니, 이건 왜 경쟁이 붙은 거야?”
태현은 이해가 가지 않아 중얼거렸다. 태현은 판타지 온라인 2 사이트가 아닌, 경매창만 보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게시글이 뭐가 올라와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알고 있는 건 치열하게 올라가는 가격뿐!
매우 가볍고 질 좋은 단검이 이렇게 경쟁이 붙는 건 이해가 갔다. 이렇게 레벨 제한도 스탯 제한도 없는 아이템은 사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당연히 가격도 올라가지 않겠는가.
그렇지만 <해적대장의 잘 세공된 단검>은 아니었다.
레벨 제한도, 스탯 제한도 있는 평범하게 좋은 아이템이었다.
일정 가격 이상으로 올라가면 보통 포기하고 다른 걸 사는 게 정상이었다.
이렇게 나오니까 의심까지 들 정도였다.
‘해적대장의 잘 세공된 단검이 무슨 퀘스트 아이템인가? 내가 뭘 놓치고 있나?’
태현은 경매가를 확인해 보았다. 액수는 어느새 천만 원을 돌파하고 있었다.
-1010만 원.
-1060만 원.
‘참여한 게 두 사람인가?’
일정한 간격. 태현은 두 사람이 서로 경쟁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뭐…… 취소할 수도 없고, 비싸게 팔리면 좋은 건가? 에이. 모르겠다.’
태현은 그렇게 생각하며 신경을 껐다. 이미 그가 할 수 있는 건 없었으니까. 비싸게 팔리면 좋은 것 아니겠는가.
* * *
“흑흑. 드디어…….”
“끝났다!”
핼쑥하게 마른 드워프 둘이 서로를 껴안고 서럽게 외쳤다. 옆에 있던 태현은 뻔뻔하게 왜 그러냐는 표정으로 둘을 쳐다보았다.
“그래도 좋은 아이템 만드느라 즐거웠잖아? 응?”
“…….”
“…….”
말이나 못하면!
두 드워프는 항의하고 싶었지만 꾹 눌러 참았다. 태현의 성격을 알아차린 것이다.
여기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말한다면?
-이런, 그렇게 힘들었어? 내가 기운이 나는 요리를 만들어주지!
정체도 모르는 재료들을 뒤에 쌓아놓은 게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
드워프들이 지쳐서 쓰러지기 직전이었지만, 태현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롱소드를 확인해 보았다.
그렇다. 또 다른 아티팩트를 완성시킨 것이다.
[<여러 금속을 이용한 제노마 롱소드>가 완성되었습니다. 아이템 등급: 영웅]
[뛰어난 완성도로 인해 제작자가 이름을 붙일 수 있습니다.]
-이름은 <유성>이다.
<유성>
내구력 330/330, 공격력 175, 마법 공격력 125
스킬 ‘마법 차단’ 사용 가능, 스킬 ‘격분’ 사용 가능, 스킬 ‘강격’ 사용 가능, 스킬 ‘연타’ 사용 가능, 스킬 ‘급소 공격’ 사용 가능, 착용 시 공격력 10% 상승, 공격 속도 15% 상승, 공격에 신성력 부여 가능. 공격 시 일정 확률로 체력 흡수.
레벨 제한 150. 힘 제한 300. 민첩 제한 300.
이미 고수의 솜씨를 갖고 있는 두 드워프 대장장이와, 뛰어난 젊은 대장장이가 합작해서 만들어 낸 걸작 롱소드다.
강력한 절삭력과 진은으로 인한 마법 흡수 효과를 갖고 있는 롱소드.
다만 사용된 금속의 출처 때문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유성은 철벽만큼이나 좋은 아이템이었다. 강력한 공격력도 공격력이었지만 들어 있는 스킬도 좋았다.
특히 ‘마법 차단’이 매우 좋았다.
‘진은을 넣은 보람이 있어.’
맥크레니가 알면 펄쩍 뛰겠지만, 갑옷과 롱소드에 진은을 넣은 보람이 있었다.
마법사를 상대할 때 저런 ‘마법 차단’ 같은 스킬은 매우 편리한 스킬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격분-강격-연타-급소 공격은 콤보 스킬이 가능하겠어.’
하나 하나 따로 있는 스킬이 아닌, 이어서 연계 콤보가 가능한 스킬!
뛰어난 PVP 센스를 갖고 있는 태현은 이 스킬들이 콤보로 매우 좋다는 걸 깨달았다.
가타콰 검법도 좋긴 좋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스킬 하나씩 쓰는 검법.
이건 연달아서 계속 콤보를 퍼붓는, 도적 계열 직업에서 자주 보이는 스킬이었다.
난이도는 그만큼 어렵지만 들어가는 데미지 양은 보증수표!
다 좋았다. 다 좋았는데…….
‘왜 아이템 뒤에 다 ‘다만 사용된 금속의 출처 때문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가 붙어 있는 거지?’
오크들한테서 뺏은 무기와 갑옷, 그리고 해적대장의 세트 아이템을 갈아 넣어 만들기는 했다.
그래도 형태가 사라질 정도로 녹여 버렸으니 문제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하려나.’
문제가 생길지 모른다고 해서 무기를 안 쓸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렇게 포기하기에는 너무 좋은 무기!
태현은 유성을 뽑아보았다. 아주 안정된 형태의 롱소드였지만, 검날에서 선명하게 타오르는 붉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겉만 봐도 명품이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
태현은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이거 너무 튀지 않나?’
물론 떳떳한 상황에서는 써도 별문제가 없겠지만, 태현은 이미 복면을 쓰고 있었다.
앞으로 또 정체를 숨겨야 할 상황이 언제 올지 몰랐다.
“이거 검 위에 바를 만한 거 없나? 색을 숨길 수 있게.”
“……?”
두 드워프는 괴상망측한 태현의 요청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 * *
“이게 무슨 일이야!!”
맥크레니는 크게 외치며 뛰어 들어왔다. 태현은 손을 흔들었다.
“무슨 일?”
“무슨 일이냐니! 창고에 있던 진은을 전부 사용했다고?!”
“아. 고마워. 전적으로 지원해 준다고 해서 믿고 썼지.”
[맥크레니의 친밀도가 크게 하락합니다.]
[이제 맥크레니의 상단에게서 지원을 자유롭게 받을 수 없습니다.]
[다시 창고에서 무단으로 아이템을 가지고 갈 경우 동맹 관계가 끊어질 수 있습니다.]
우르르 뜨는 메시지 창. 그러나 태현은 이미 각오하고 있었던 거였다.
진은부터 시작해서 온갖 걸 그렇게 가져다 썼는데 이 정도면 양호한 결과!
맥크레니는 태현을 한 대 때리고 싶은 표정으로 씩씩대며 말했다.
“그래서 준비는 다 됐나?”
“왕궁 갈 준비? 대충 다 됐지.”
“잘됐군. 그러면 루포가 오는 대로 즉시 떠나라고! 그동안 창고에서 함부로 아이템 건드리지 말고!”
맥크레니는 단단하게 경고하고 자리를 떠났다. 태현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어차피 창고에서 필요할 거 같은 아이템은 미리 미리 빼서 가방에 넣어둔 상태였다.
도둑질은 기회가 있을 때 크게 해야지, 깨작깨작 해봤자 남는 게 없었다.
‘그러면 이제 한 가지만 남았나.’
곧 있으면 루포가 올 것이고, 그러면 왕궁으로 떠나야 할 테니, 그때까지 할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었다.
바로 강화였다.
태현은 침을 삼켰다. 지금 그의 강화 스킬은 +4까지는 무난하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5부터는 절반 확률로 실패!
거기에 대장장이 스킬 레벨이나 행운 같은 요소가 들어가기는 하겠지만, 얼마나 들어가는지 알 수 없는 이상 강화는 겁이 날 수밖에 없었다.
‘철벽이나 유성이 망가지면 정말 눈물이 날 것 같은데…….’
이제 재료를 다 써서 구할 수도 없었다. 태현은 일단 강화를 시작했다.
+4까지는 실패할 가능성이 없었으니 괜찮았다.
땅, 땅, 땅, 땅-
꿀꺽-
[강화에 성공했습니다. 강화 스킬이 오릅니다.]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오릅니다.]
강화 스킬 레벨은 현재 4. 1만 더 오르면 모든 아이템을 한 단계 더 강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강화 스킬은 이미 가능한 강화를 하는 것에는 쩨쩨했다. 해봤자 엄청나게 조금 올라서 구분도 안 될 정도인 것이다.
강화 스킬 레벨을 올리려면, 구하기 힘든 아이템을 부서질 가능성이 있는 구간에서 강화를 해야 했다.
태현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판타지 온라인 1에서부터 경험해왔던 것이었지만, 강화를 하는 순간은 언제나 떨리고 긴장되었다.
태현은 <철벽>을 앞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5 강화를 준비했다.
절반 확률, 아니 절반보다 조금 더 낮은 확률로 실패할 것이다. 행운 스탯과 대장장이 스킬이 있으니까.
이마에서 굵은 땀방울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간다!’
[강화에 성공했습니다. 강화 스킬이 오릅니다. 강화 스킬 레벨이 5가 되었습니다.]
“됐다!!”
무의식적으로 큰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만큼 긴장했었던 것이다.
갑옷 위에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태현은 크게 숨을 내쉬고 다른 아이템들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맥크레니 상단의 창고에 있던 강화석들을 전부 사용할 기세!
<철벽(+5)>
내구력 1620/1620, 방어력 420, 마법 방어력 345.
스킬 ‘물리력 흡수’ 사용 가능, 스킬 ‘마력 흡수’ 사용 가능, 착용 시 체력 33% 상승, HP 회복력 18% 상승, 마법 저항력 20% 상승, 신성 8% 상승. 무게 없음.
레벨 제한 150. 힘 제한 300. 체력 제한 300.
이미 고수의 솜씨를 갖고 있는 두 드워프 대장장이와, 뛰어난 젊은 대장장이가 합작해서 만들어낸 걸작 갑옷이다.
입고 있는 것만으로도 대부분의 물리 공격과 마법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이름 그대로 철벽 그 자체인 갑옷.
다만 사용된 금속의 출처 때문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