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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95화 (95/1,826)

§ 나는 될놈이다 95화

태현이 지금 이 아이템을 경매장에 올리는 순간 엄청나게 큰 소란이 일어날 게 분명했다.

그러나 태현은 별생각이 없었다.

원래 자기와 관련이 없는 문제는 빠르게 잊는 성격!

‘이 두 개 팔면 되겠지? 최상윤을 시켜서 아예 대놓고 광고를 할까…… 아니.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대장장이로서 이름을 걸고 나갈 때는 최상윤의 힘을 빌릴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아직은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별거 아닌 아이템들이니, 그냥 익명으로 팔아도 되겠지.’

결정을 내린 태현은 간단하게 경매장에 아이템들을 올렸다.

그때는 몰랐다. 이 간단한 판매가 어떤 결과를 만들게 될지.

* * *

불타는 강철의 중갑, 불타는 강철의 도끼, 해적대장의 잘 세공된 단검, 매우 가볍고 질 좋은 단검.

태현이 올린 아이템 리스트였다.

불타는 강철의 중갑과 불타는 강철의 도끼는 꽤 좋은 아이템이었기에 바로 경쟁이 붙었다.

-80만 원.

-85만 원.

-90만 원.

“으아아아! 이 자식 어떤 자식이야!”

그리고 경매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 바로…….

김병국이었다.

태현에게 PK를 시도했다가 처절하게 당한 바로 그 사람!

김병국은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경매에 참여하고 있었다. 자기 아이템을 자기 생돈을 주고 사야 하다니…….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이 아이템은 정말 필요했으니까.

-야. 야. 너 판타지 온라인 2 경매 사이트 봤냐?

-뭐가 올라왔는데?

-네 아이템 올라왔어! 불타는 강철의 중갑이랑 불타는 강철의 도끼!

-뭐?!

김병국은 친구가 말해준 소식을 듣자마자 와서 월급을 쏟아 붓고 있었다.

-95만 원.

돈을 올린 다음, 김병국은 감정 표현을 했다.

판타지 온라인 2 경매 사이트는 철저하게 익명이었다.

상대에게 쪽지를 보낼 수는 있었지만 그것도 아이템을 산 다음에나 가능했다.

리플이나 그런 것도 달 수 없지만,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게 바로 감정 표현!

얼마를 내겠다고 말한 다음 감정 표현 이모티콘을 띄울 수 있었던 것이다.

‘분노’, ‘조롱’, ‘울음’, ‘웃음’ 같은 감정 표현 이모티콘들. 처음에는 별거 아닌 기능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곧 이 기능을 매우 잘 사용하게 되었다.

경매란 건 원래 돈으로만 싸우는 게 아닌, 상대의 마음을 읽고 공격하는 싸움!

돈을 올리면서 ‘비웃음’ 감정 표현을 하고, 돈이 없는 척하면서 ‘울음’ 감정 표현을 하고…….

이런 수 싸움이 펼쳐지는 게 바로 판타지 온라인 2의 경매 사이트였다.

김병국은 95만 원을 박고 나서 ‘메롱’ 하는 감정 표현을 했다.

‘나는 더 낼 수 있어!’라고 상대에게 보여주는 허세!

그리고 실제로 그랬다.

‘어디 끝까지 가보자! 절대 포기 안 해!’

* * *

“응? 불타는 강철의 중갑이랑 도끼는 왜 벌써 이렇게 붙었지?”

태현은 잠깐 둘러보다가 놀라서 확인에 들어갔다. 별로 올린 시간도 안 길었는데 나온 액수 숫자가 많았던 것이다.

“35, 36, 37, 38, 39, 40, 45…… 아이고. 자잘하게도 많이 넣었다. 누가 이러는 거지?”

태현은 흥미진진하게 경매 과정을 훑어보았다. 나름 괜찮은 아이템이라 초반에 사람들이 많이 와서 찔러본 것 같았다.

그런데 한 명이 특이했다. 사람들이 와서 찌를 때마다 바로 바로 액수를 올려서 대응하고 있었다.

특유의 감정 표현 때문에 한 명이 이러고 있다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태현은 그걸 보고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이 자식 설마 나한테 아이템 뺏긴 놈인가?’

이 불타는 강철의 중갑과 도끼가 좋은 아이템이기는 했지만, 다른 좋은 아이템들도 많았다.

이 아이템에 목을 맨다는 건 이유가 하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확인해 볼까?’

-80만 원.

태현은 아버지 김태산의 아이디로 로그인해서 경매에 끼어들었다. 바로 액수가 올라갔다. 상대도 85만 원으로 대응했다.

-90만 원.

-95만 원.

‘이 자식 맞는 거 같은데?’

태현은 갑자기 재밌어졌다. 원래 넘어진 놈 한 번 더 넘어뜨리고 상처 난 놈 위에 소금을 붓는 게 태현의 취미였다.

‘얼마나 따라오나 볼까?’

-100만 원.

-105만 원.

-120만 원.

-……125만 원.

잠시 멈췄다가 따라오는 게, 갈등하고 있는 게 바로 느껴졌다.

태현은 히죽히죽 웃었다.

* * *

“으아아아아아! 대체 어떤 놈이! 다른 것도 많은데!”

김병국은 책상을 쾅쾅 쳤다. 그는 이 아이템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퀘스트를 깨면서 얻은 아이템. 희귀한 퀘스트라 다른 곳에서는 팔지도 않았다.

게다가 그는 이 아이템에 맞춘 전용 스킬도 배운 상황이었다.

-200만 원!

-250만 원.

“……?!”

갑자기 50이 뛰어버리는 상황. 김병국은 이를 갈았다.

‘어떡하지?’

* * *

250을 박고 한동안 아무 말도 없자,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설마 포기했나?’

상대가 포기하면 태현은 그냥 수수료만 날리게 되는 셈이었다.

고민하던 태현은 쿨하게 포기했다.

‘뭐, 날리면 날리는 거지. 상대 괴롭힌 걸로 만족하자.’

누군가를 괴롭힐 수 있다면 돈 정도는 쿨하게 포기할 수 있는 사악한 정신!

그러나 태현의 포기는 일렀다. 상대가 대답을 해온 것이다.

-251!

‘한계까지 몰렸군.’

5만 원 단위로 올리던 사람이 1만 원 단위로 올리는 걸 보고 알 수 있었다.

태현은 한 번 피식 웃고 나서 경매 창을 껐다. 포기한 셈이었다.

* * *

“없지? 없지? 없지? 이겼다!”

김병국은 환호를 하며 펄쩍 펄쩍 뛰었다. 그의 머릿속에 원래 50만 원이면 샀을 아이템을 5배 되는 돈을 주고 샀다는 건 남아 있지 않았다.

* * *

불타는 강철의 중갑과 도끼에서 재미를 봤기에, 태현은 다른 두 단검 아이템은 별 재미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두 단검에 비교하면 불타는 강철의 중갑과 도끼가 별 재미가 없는 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

올라온 두 단검 때문에 사이트에서는 사건이 터지고 있었다.

* * *

-이거 저번에 그 단검이잖아!?

-야! 합성이라고 한 새끼 나와라! 이거 합성 아니잖아!

-(이미 탈퇴한 회원입니다.)

-튀었어! 이 자식 튀었어!

사이트 창은 이미 혼돈의 도가니!

주간 베스트 7위 글에 <경매장에 올라온 단검>이 위치하고 있었다.

인기 방송도 아니고 퀘스트 해결 영상도 아닌 단순한 경매장 캡처 글이!

그만큼 사람들이 리플에서 치고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중 주목받는 리플이 있었다.

-이거 저번에 이런 리플 올린 사람 있지 않았어요? ‘만약 합성 아니면 내가 저 플레이어한테 찾아가서 무릎 꿇고 절하면서 사과한다!’

-맞아. 나 캡처해 놨는데.

사람들의 기억력은 뛰어났다. 그들은 바로 캡처했던 원본을 올렸다.

[-야. 내가 대장장이 키우고 있거든? 이런 단검은 못 만들어. 단검 사진 보면 재료가 철이지? 그러면 아무리 잘 만들어도 한계가 있다니까. 게다가 이거 보면 레벨 제한도 없고 스탯 제한도 없잖아. 보통 이런 게 어떻게 나오는지 아냐? 대장장이 레벨 낮을 때, 아이템 레벨 안 잡고 그냥 만들면 이런 거 나와.

이거 분명히 레벨 낮은 대장장이 하나가 주목 좀 받겠다고 합성한 거야. 처음 대장장이 시작하면 단검 같은 간단한 거 만들라고 퀘스트 주거든? 그 단검 만든 다음 그 창에 저 수치 합성한 거라고. 원래 레벨 낮을 때 만드는 단검은 저런 제한 없을 정도로 성능이 구리거든. 거기에 성능이랑 옵션만 합성해서 넣으면 저런 사기가 나오는 거야.

-와. 님 진짜 잘 아시네요. 레벨 몇이세요?

-대장장이 레벨 56이다.

-개쩐다. 대장장이 56이라니.]

박제된 원본!

사람들은 이 댓글을 단 대장장이를 찾아 약속을 지키라고 떠들기 시작했다,

-약속 지켜라!

-약속 안 지키세요? 어디서 플레이하는지 다 아는데?

* * *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응?”

우정식은 판타지 온라인 2 사이트를 켜고 의아해했다.

쪽지 보관함에 새로 온 쪽지가 몇백 개를 넘긴 것이다.

“……?”

평소 많아봤자 10개를 넘지 않았다. 대장장이로 공략 글을 올렸지만 인기는 별로 없었던 것이다.

‘설마 내 글이 뒤늦게 인기를 끈 건가?’

기대되는 마음으로 우정식은 쪽지 보관함을 켰다.

그리고 얼굴이 검게 죽었다.

* * *

-아니, 저도 제가 잘못 알았다는 거 인정합니다.

우정식은 눈물을 흘려가며 리플을 달았다.

다시는 내기를 하지 않으리라!

내기를 좋아해서 입버릇으로 내기, 내기 거렸다가 최근에 손해를 얼마나 본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사과를 하고 싶어도 사과를 할 수가 없잖아요.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상대가 나오면 사과를 하겠다 이거죠?

-게임 내에서 찾아가서 무릎 꿇고 절하기? 꼭 하는 거 맞죠?

우정식은 움찔했다. 사람들은 만만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우정식을 무릎 꿇고 절하게 만들고 싶은 사람들!

우정식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저번에 이걸 올렸을 때도 결국 누가 올렸는지 나오지 않았어. 즉, 이걸 만든 사람은 자기 정체를 숨기고 싶은 거다. 그러면 앞으로도 안 나올 가능성이 크지!’

이런 아이템을 만들 수 있는 대장장이라면 온갖 길드에서 귀찮게 할 것이 분명했다.

귀찮은 걸 싫어하는 성격이라면 안 나오는 것도 납득이 됐다.

우정식은 결심을 내리고 리플을 달았다.

-당연하죠! 제가 약속했는데! 누군지 나오면 제가 찾아가서 무릎 꿇고 절하겠습니다!

-캡처했습니다.

-게임 내에서 누군지 아니까 지우고 튈 생각하지 마요! PK 해버릴 테니까!

살벌한 협박들!

우정식은 다시 움찔했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제발 누구든 간에 나오지 마라!’

* * *

무의미한 게시판의 리플과는 상관없이, <매우 가볍고 질 좋은 단검>은 천만 원을 가볍게 뛰어넘고 2천만 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법사나 제작 계열 직업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갖기 위해 돈을 쏟아 붓는 중!

레벨 제한도 스탯 제한도 없는 강한 아이템이라니, 사람들이 환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동안, <해적대장의 잘 세공된 단검> 쪽에서는 다른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해적대장의 잘 세공된 단검은 좋은 아이템이었지만, 그뿐이었다.

레벨 제한도 있고 스탯 제한도 있는 아이템. 그렇다면 쓸 수 있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었다.

이런 아이템을 낄 수 있는 도적들은 이미 단검을 갖고 있거나, 더 좋은 단검을 찾게 마련이었다.

그래서 별로 경쟁이 붙지 않아야 했다.

그게 정상이었다.

* * *

“뭔가 이상한데.”

“뭐가요?”

“이 아이템 봐.”

MBS 방송국의 PD, 배장욱은 손가락으로 경매 사이트를 가리켰다. 그가 가리키고 있는 건 <해적대장의 잘 세공된 단검>이었다.

부하직원은 배장욱의 말을 이해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냥 단검이잖아요?”

“그냥 단검이 아니지.”

배장욱은 MBS 방송국 내에서 꽤나 이름이 있는 사람이었다. 인기나 트렌드에 맞춰서 몇 개 되는 방송 프로를 대성공시킨 것이다.

당연히 보는 눈이 있었다.

“이 해적대장의 잘 세공된 단검. 이름이 이상하지 않아?”

“……?”

배장욱은 생각에 잠겼다. 지금 이런 아이템이 나온다는 건?

앞에 ‘해적대장’이 붙었다는 건 해적과 관련되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최근 해적과 관련해서 크게 퀘스트가 일어난 곳은?

카테란드 섬이었다.

그 섬 말고 해적 관련된 퀘스트가 크게 일어난 곳이 없었다.

배장욱은 카테란드 섬에서 일어난 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 본 사람이었다.

물론 태현의 시점이 아닌, 끌려온 다른 플레이어들 시점이어서 제대로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몇 가지는 알 수 있었다.

‘거기 묶여 있던 플레이어들은 정신이 없어서 아이템은 챙기지도 못했어. 도망가다가 훔치려고 해도 이런 아이템은 쉽게 구할 수가 없지. 그렇다면?’

이 카테란드 퀘스트를 주도하고 골드 드래곤을 부른 사람이 얻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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