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82화
그렇게 결심하고 다시 싸우기로 한 태현의 귓가에, 골드 드래곤 용용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주인이여. 주인이여.
“어라? 너 아직 깨어 있었냐?”
-……나를 뭘로 보고 있는 것인가?
“브레스 몇 방 쏘고 작아진 놈으로 보고 있지.”
-그건 실수였다. 내 힘이 완전했다면 절대로 그런 일은…….
“됐고, 지금 정신없으니까 할 말 있으면 나중에 해라.”
-그게 아니다. 저놈의 약점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골드 드래곤, 용용이는 고대 신의 망령을 가리키며 말했다.
“약점이라니?”
-저놈이 힘을 숨기고 있다. 저놈의 힘은 어딘가 다른 곳에 있다. 그곳을 쳐야 한다.
“……!”
태현은 용용이가 무슨 소리를 하는 지 바로 알아들었다.
지금 고대 신의 망령이 무언가 특별한 방법을 쓰고 있다!
저렇게 두들겨 맞았는데도 멀쩡한 건 무언가 이상했다. 어떤 비밀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용용이는 그 비밀이 여기 어딘가 다른 곳에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상대가 너무 멍청해서 나도 멍청하게 놀고 있었군.’
고대 신의 망령이 워낙 잘 속아 넘어가고 멍청한지라 태현도 머리를 안 쓰면서 상대하고 있었다.
원래 이런 건 바로 알아차려야 했다. 특별한 조건을 만족시키지 않으면 쓰러뜨리기 매우 힘든 보스 몬스터. 이런 보스 몬스터는 그렇게 드문 적이 아니었다.
“고맙다. 용용이. 밥값을 하는구나.”
그렇게 행운을 썼는데 도움이 안 된다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았다.
이렇게라도 도움이 되는 게 어딘가!
용용이는 우쭐해져서 대답했다.
-나는 위대한 골드 드래곤. 적의 정체를 파악하는 건 별로 어렵지 않다.
“그래서 몸은 언제 회복되냐?”
-…….
용용이는 순식간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입을 다물었다. 태현은 고개를 저었다. 한동안 회복은 기대할 수 없을 것 같았다.
* * *
-나약하구나, 침입자들이여! 자신의 주제를 파악하지 못한 게 너희들의 잘못이다!
고대 신의 망령은 신이 나서 날뛰기 시작했다.
먼저 넓은 홀 전체에 검은색 촉수로 된 채찍을 흩뿌리며 공격하기 시작했다.
“신성한 힘의 방패!”
“고위 마력 결계!”
고대 신의 망령이 매섭게 공격하자 마법사들과 사제들도 일단 수비로 돌아섰다.
병사들이 안으로 들어오자 펼쳐지는 거대한 방어막들!
마법사들과 사제들의 실력은 확실히 대단했다. 사납게 꽂히는 검은색 채찍들도 방어막을 뚫지 못했다.
일단 안으로 피하자, 바로 병사들은 다시 공격을 준비했다. 궁수들은 화살을 메기고, 창술사들은 창을 들어 스킬을 준비했다.
파티 플레이의 정석!
‘든든하군. 든든해.’
그렇지만 여유를 부릴 시간은 없었다. 마법사들과 사제들이 고렙 NPC기는 했지만, 고대 신의 망령도 절대로 만만한 적은 아니었다.
게다가 이 던전에서 무언가 힘을 얻고 있는지 회복 속도도 빨랐다.
계속 이렇게 서로 치고 받고 하면 최종적으로 이기는 건 고대 신의 망령이었다.
-너희는 결코 내 근원에 닿을 수 없을 것이다! 으하하하하!
‘저런 놈한테 속고 있었다니…….’
고대 신의 망령이 하는 대사를 들으며, 태현은 빠르게 움직였다.
뭔가 숨기고 있다는 게 노골적으로 보이는 대사!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자기 약점을 저렇게 광고해도 되나? 자기과시?’
태현은 의심이 많은 성격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저렇게 대놓고 광고를 하면 더 의심을 하게 되어 있었다.
골드 드래곤 용용이가 말하지 않았다면 ‘무슨 함정 아닌가’하고 더 의심을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고대 신의 망령은 아무 생각이 없었다.
망령이 왜 망령이겠는가. 정상적인 판단과는 거리가 머니까 망령!
-신의 예지.
[상대방의 레벨이 너무 높습니다. 약점을 파악하는 데 실패합니다.]
[페널티로 MP가 더 많이 소모됩니다.]
“……!”
신의 예지 스킬이 실패한 건 처음이었다. 태현은 고민했다. 한 번 더 사용해볼까?
만약 아예 불가능하다면 다시 시도하는 건 낭비일 수 있었다.
‘어차피 MP는 넉넉하다.’
태현이 쓰는 스킬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거기에다가 사제와 마법사들이 많은 상황에서는 MP를 좀 낭비해도 됐다.
-신의 예지.
[상대방의 레벨이 너무 높습니다. 약점을 파악하는 데 실패합니다.]
[추가로 페널티가 증가합니다. MP가 더 많이 소모됩니다.]
‘젠장!’
-신의 예지.
[상대방의 약점을 파악하는 데 성공합니다.]
[신의 예지 스킬 레벨이 오릅니다.]
붉은색으로 길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길이 나 있는 곳은…….
‘제단 안!’
고대 신의 망령은 가운데의 제단 위에서 버티고 서서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그리고 붉은색 길이 나 있는 곳은 제단의 안쪽.
‘어쩐지 안 움직인다 했더니 그런 거였나.’
어떻게든 고대 신의 망령을 바깥으로 끌어낸 다음 저 제단 안을 공격해야 했다.
-일어나라! 내 부하들이여!
“……!”
시간이 좀 지나자 고대 신의 망령은 망령 전사들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처리해라! 왕국 해군의 이름으로!”
“절대로 물러서지 마라!”
해군 병사들은 창을 들고 망령 전사들에게 덤벼들었다. 뒤에서 마법사들과 사제들이 힘을 보탰다.
쾅! 콰쾅!
-몰이치는 벼락의 연쇄!
마법사 한 명이 꽤 오랫동안 준비한 주문을 쏘아 보냈다. 마법사 중에서도 꽤나 지위가 높은 마법사 같았다.
망령 전사들이 순식간에 쓰러져나가며 사방에 번개가 튀었다. 고대 신의 망령도 몸을 방어할 정도의 위력이었다.
‘마법이란 게 참 부럽단 말이지.’
전사나 도적 같은 근거리 직업은 강한 생존력을 갖고 있었다.
HP가 높거나, 민첩이 높아서 회피가 쉽거나, 그도 아니면 도망치기라도 쉽거나.
그에 비해 마법사는 다 아니었다. HP도 낮고 한 번 근접전을 허락하면 살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마법이 그 모든 단점을 보상해주었다.
강력한 한 방!
태현은 입맛을 다시며 마법사를 부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마법 몇 개 정도는 배워놓고 싶은데.’
마법사처럼 전문 고위 마법은 아니더라도, 마법은 다른 직업도 배울 수 있었다. 쓸 만한 마법 몇 개는 배워놓으면 아주 쏠쏠하게 써먹을 수 있었다.
“읏!”
“……?”
태현은 주현영을 쳐다보았다. 왕국 해군들이 싸우는 동안, 태현을 제외한 다른 플레이어들은 뒤에서 숨어 있었다.
두 대장장이는 전투 능력이 많이 떨어졌다. 당연히 싸우는 동안 마법사 주변에 숨어 있었다.
어찌 보면 뻔뻔한 짓이었지만, 원래 대장장이 같은 직업은 이런 게 보통이었다.
앞에 서서 날뛰는 태현이 비정상인 것!
그런데 지금 주현영은 앞으로 나오고 있었다. 그것도 솥을 끌고.
“뭐하냐?”
“네? 아. 도움이 될 거 같아서요.”
“솥이?”
“요리가요.”
주현영의 차분한 얼굴은 진지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농담을 하는 줄 알았겠지만, 태현은 주현영이 진심이라는 걸 깨달았다.
“지금 뭔 요리야? 먹을 시간도 없을 텐데? 버프도 다 아까 받았고.”
“아니요. 성수를 만들어서 뿌려보려고요.”
“……!”
어떻게 보면 요리사만이 할 수 있는 발상!
고대 신의 망령은 언데드였고, 그가 계속 소환하고 있는 부하들도 언데드였다.
당연히 성수에 강한 데미지를 입었다.
사제들은 신성 마법을 쓰고 있었지만, 힘을 아끼느라 많이 쓰지를 못했다.
지금부터 힘을 많이 쓰면 나중에 써야 할 때 MP가 회복이 되지 않아 못 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주 좋은 생각이야. 일단 만들어! 혹시 도움이 필요해?”
“무겁긴 한데 혼자서 할 수 있어요.”
“무겁다고? 거기 둘. 나와서 도와!”
태현은 두 대장장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예??”
“대장장이면 힘 좋잖아? 들어서 옮겨. 필요한 거 돕고.”
두 대장장이는 고개를 들어 고대 신의 망령을 쳐다보았다. 고대 신의 망령은 크게 웃으며 사방팔방으로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앞으로 나가면 공격을 맞을 수 있었다.
“어…… 여기서 만들면 안 됩니까?”
“만들고 바로 뿌리려면 좀 앞에서 만들어야지.”
“공격 들어오면요?”
“피해.”
“아니, 그런 간단한 방법이……일리가 있습니까! 저걸 어떻게 피해요!”
“보고, 오기 전에 피해. 간단한데.”
그렇게 말하는 사이 태현의 뒤로 검은색 촉수가 날카롭게 찔러 들어왔다.
완전히 사각에서 들어오는 공격. 저런 건 피할 수가 없었다. 두 대장장이는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그 순간.
획-
태현은 고개만 살짝 꺾어서 공격을 피해냈다. 촉수는 원래 태현의 머리가 있었던 곳을 찌르고 돌아갔다.
“어, 어떻게 피하신 겁니까?”
“오는 소리 듣고.”
‘괴물이냐!’
“어쨌든 도와서 성수 만들어. 어차피 할 것도 없잖아. 여기서 짐 되려고 온 건 아니지?”
태현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묵직하게 명치를 때렸다. 물론 지금 할 게 없기는 했지만!
두 대장장이가 와서 주현영을 돕는 동안, 태현도 자리에 앉아 급하게 아이템을 만들기 시작했다.
지금 필요한 건?
‘크고 화려한 폭탄이지.’
어차피 고대 신의 망령이 하는 공격은 몇 대 맞아줘도 됐다. 병사들이나 다른 플레이어들은 위험했지만 태현은 피할 수 있었다.
제단을 날려버려야 하는데 고대 신의 망령이 몸으로 감싸면서 방해하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폭탄으로 날려버린다.’
기계공학을 배운 이유는 바로 이럴 때 쓰려고였다.
[망령 전사의 갑옷 파편을 날카롭게 쪼갭니다.]
[카테란드 해적의 외날검을 파편으로 만듭니다.]
[내용물 안에 독을 넣습니다.]
연달아 뜨는 흉흉한 메시지창들!
태현은 폭탄 안에 잔뜩 넣어서 고대 신의 망령에게 선물해줄 생각이었다.
[갖고 있는 화약이 부족합니다. 페널티를 받고 만드시겠습니까?]
“당연하지.”
[페널티를 받고 제작합니다.]
[완성된 아이템이 오작동할 수 있습니다.]
[기계공학 스킬이 오릅니다.]
[폭탄 제작 스킬이 오릅니다.]
약간 정신 나간 기술자가 만든 위험한 파편 폭탄:
온갖 잡동사니를 안에 구겨 넣어서 만든 폭탄. 화약을 적게 넣고 다른 방식으로 만들었기에 불안정하고 위험하다.
이걸 만든 사람은 직접 쓰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쓸 거거든?’
태현은 그렇게 생각하며 폭탄을 더 만들기 시작했다. 한 개로 끝날 생각은 없었다.
그러는 사이 주현영과 두 대장장이들은 성수를 완성시키기 시작했다.
“성수 완성했어요! 어떻게 할까요?”
“병사들에게 주고, 남은 건 이쪽으로 갖고 와!”
“지금 병사들 싸우고 있는데 어떻게 주죠?”
“너희가 뛰어야지!”
두 대장장이는 눈물을 머금고 솥을 든 채 뛰기 시작했다. 병사들은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남은 성수는 여기로 갖고 와. 넣어서 던져야지.”
태현은 가죽 갑옷을 잘게 쪼갠 다음 가죽을 재빨리 기워서 둥그런 가죽 물통을 만들었다.
[재봉술 스킬이 오릅니다.]
[기계공학 스킬이 오릅니다.]
[스킬 <여기에다가 쓸 수 있는 건 저기에다가도 쓸 수 있어>를 얻었습니다.]
<여기에다가 쓸 수 있는 건 저기에다가도 쓸 수 있어>
아이템을 분해해서 다른 스킬에 쓸 수 있습니다. 스킬 레벨이 높아질수록 페널티를 덜 받습니다.
잡캐의 길을 걷는 사람한테는 꼭 필요한 스킬! 태현은 메시지창을 빠르게 읽고 남은 아이템을 완성시켰다.
“좋아. 가자!”
태현은 마법사들에게 신호했다.
“쓸 수 있는 마법은 모두 퍼부어! 지금 당장!”
[전술 스킬이 상승합니다.]
[스킬 레벨보다 훨씬 더 높은 아군을 지휘합니다. 페널티를 받습니다.]
[화신의 매력으로 페널티가 상쇄됩니다.]
마법사들은 순간 당황했지만, 태현의 말에 머뭇거리지 않고 준비된 주문을 퍼붓기 시작했다.
“끓어오르는 용암과 같은 화염이여…….”
“눈부신 섬광과 함께 꽂히는 번개여…….”
주문이 다 외워지자 마법이 연달아 발사되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