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81화
서로가 서로를 오해하고 있는 동안, 싸울 대로 싸운 우정식과 김지산, 박성찬이 터덜거리며 걸어왔다.
“뭐하십니까?”
“요리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태현의 대답에 김지산은 주현영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리고 놀라서 물었다.
“혹, 혹시 설마 요리 가르쳐주고 그런 거 아니죠?”
“아닌데.” “맞아요.”
태현과 주현영의 대답이 동시에 나왔다. 주현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말하면 안 되는 거였나요?”
“응. 다음부터는 내가 말하는 거 보고 맞춰서 행동해줘.”
“죄송해요. 말하면 안 되는지는 몰랐네요.”
둘의 대화를 듣던 김지산은 기가 막혀서 펄쩍 뛰었다.
“아니! 태산 님! 가르쳐 주실 거면 저희가 먼저 아닙니까?! 저희가 어떻게 노력을 했는데!”
“좋아. 가르쳐주지.”
“정말요?!”
“그래. 국자 들어.”
“알겠습…… 네? 왜 국자죠?”
“요리 가르쳐달라는 거 아니었나?”
“요리 말고요! 대장장이 기술이요!”
“대장장이 기술…… 가르쳐줄 게 별로 없는데.”
태현의 말을 듣고 김지산과 박성찬이 피식 웃었다. 우정식도 옆에서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가르쳐줄 게 별로 없다니. 그걸 믿으라고 한 소립니까?”
“그럼 믿지 말던가, 이 자식아.”
대번에 험악해지는 태현의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들은 둘은 아차 싶어서 몸을 움츠렸다.
지금이야 평범하게 있지만, 생각해 보니 태현 성격은 원래 더러운 성격!
‘아니…… 저 여자하고 대화할 때는 친절하게 잘 대화하던데……!’
‘사람 차별하냐!’
태현은 사람에 따라 태도가 달라지는 사람이었다.
어린애처럼 약하거나, 착한 사람한테는 어려워하기는 했지만 그에 맞춰서 대해줬다.
그에 비해 자기처럼 속이 꼬이고 어두운 사람한테는?
원래 성격이 나왔다.
주현영이야 ‘눈부셔!’라고 생각할 정도로 올곧은 성격이니 친절하게 대해줬지만 저 셋은 아니었다.
태현처럼 욕심 많은 게 저 셋이었다.
“아, 아니. 믿지 못한다는 게 아니라…… 뭐든 좋으니까 가르쳐 달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래요! 별로 없어도 괜찮습니다. 그냥 아는 것만 가르쳐주셔도 좋아요!”
빠른 태세 전환!
김지산과 박성찬은 바로 꼬리를 내렸다. 안 되는 상황에서 괜히 뻗대봤자 한 대 더 맞기만 할뿐.
그러나 우정식은 조금 더 눈치가 없었다.
“에이. 내가 보기에는 가르쳐주기 싫어서 그러는 거 같은데?”
“……!”
김지산과 박성찬은 고개를 홱 돌려 우정식을 쳐다보았다. 저 인간이 드디어 미쳐버린 것인가?
둘은 태현과 비교적 오랫동안 섬에서 같이 있었지만, 우정식은 따로 있었다.
그래서 태현의 성격이 얼마나 더러워질 수 있는지를 알지 못했다.
태현은 우정식을 쳐다보며 물었다.
“뭐?”
“네?”
‘뭐’라는 말을 듣자 우정식은 무의식적으로 자세를 바로잡았다. ‘뭐’라는 한 음절에 냉기를 담는 것도 재주였다.
“뭐라고 했냐?”
“어, 그, 가르쳐주기 싫어서 그러는 게 아니냐고…… 농담이었습니다. 농담!”
“농담? 농담 같지가 않았는데?”
“농담할 수도 있죠! 왜 무섭게 그러…… 잠깐, 왜 다가오시는…….”
“나도 농담 좀 해보려고. 왜. 싫어?”
냉기를 풀풀 풍겨대며 농담을 하겠다고 하는 것만큼 무서운 것도 없었다.
우정식은 점점 뒷걸음질 쳤다.
‘설마 이 자리에서 PK를 하지는 않겠지?’
태현은 PK를 하지 않았다. 대신 병사들을 불렀다.
“어이.”
“부르셨습니까?”
“이 양반이 돌아가고 싶댄다. 돌려보내라.”
“네? 제가 언제…… 아니,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이거 놔!”
“돌아가기 싫어하면 몇 대 패도 상관없어.”
태현의 말에 병사들은 창을 들어올렸다. 창대로 팰 기세였다. 그걸 본 우정식은 급히 입을 다물었다.
“돌려보내. 배에서도 떠들면 그냥 바다로 던져버리고.”
“읍! 읍읍읍!”
병사들에게 끌려가면서 우정식은 몇 가지 사실을 더 알게 되었다.
그중 하나는 태현의 성격이 매우 더럽다는 것이었다.
* * *
“시끄러운 놈이 사라져서 좋네.”
“……..”
김지산과 박성찬은 우정식이 끌려간 곳을 쳐다보며 질린 표정을 지었다.
경쟁자기는 했지만 저렇게 사라질 줄은 몰랐던 것!
“그러면 계속해서 가보자고. 병사들도 출발하고 싶어 하니까.”
태현이 그렇게 말하자 두 대장장이는 울상을 지었다. 스킬을 가르쳐달라고 말을 꺼낼 기회가 없어진 것이다.
주현영은 솥을 정리하고서 물었다.
“저도 뭔가 도울까요?”
“요리사가 싸우는 도중에 도울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 일 끝나면 요리나 하면 되겠지.”
대화를 들은 김지산이 물었다.
“저희는 뭐 도울 거 없나요?”
“있지. 내 짐 좀 대신 들어라. 우정식이 사라져서 짐 들 놈이 없어졌어.”
“…….”
명백히 다른 대우!
‘얼굴 좀 예쁘다고 너무한 거 아니냐?’
비록 주현영이 성실하고, 외모도 차분한 느낌의 미인이기는 했지만 억울한 건 사라지지 않았다.
“짐 들기 싫어?”
“아닙니다! 들고 싶어요!”
“움직이자고. 병사들이 싸우는데 방해하면 안 되니까.”
그렇게 플레이어들은 병사들의 뒤를 따라 지하 던전 안으로 깊숙하게 들어갔다.
* * *
“길이 갈라지는데요. 어떻게 할까요?”
병사들을 지휘하는 백부장이 태현을 보며 물었다. 태현은 갑자기 갈라진 길을 보고 눈썹을 찌푸렸다.
‘아까는 이런 길이 없었는데?’
한 번 들어왔지만 길은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태현은 이런 부분에서는 완벽한 기억력을 갖고 있었다.
‘함정이군. 던전 길이 새로 바뀐 걸 보니…….’
길이 시간에 따라 계속 바뀌는 던전은 종종 보였다. 태현은 <신의 예지> 스킬을 사용했다.
“가운데로 갑시다.”
“정찰을 안 보내도 되겠습니까?”
“다른 곳으로 갈 필요 없습니다. 시간 낭비니까.”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브랑송이 태현을 고평가해준 덕분에 병사들도 태현의 말을 잘 따랐다.
만약 다른 플레이어가 말했다면 병사들이 거부하거나 시큰둥하게 나왔을 가능성이 컸다.
“망령 전사다!”
“대열을 갖춰라! 별것 아니다!”
망령 전사는 이미 병사들에게 익숙해진 적이었다. 병사들은 이제 별로 당황하지도 않았다.
“잠깐…… 뭔가 이상한데.”
“예?”
그러나 태현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저놈들은 아까 싸웠던 것보다 더 강해. 조심하는 게 좋겠군.”
“그렇다면 사제들에게 공격을 준비시킬까요?”
“그것도 좋고, 나도 싸움에 참가해야겠는데.”
“그럴 수는 없습니다! 브랑송 님한테…….”
“어이쿠, 발이 미끄러졌네!”
태현은 그렇게 외치며 달려들었다. 망령 전사가 더 강해진 건 사실이었다.
‘고대 신의 망령이 이 주변에 있는 게 맞는 것 같군.’
지하로 도망쳐서 힘을 회복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이 제대로 맞은 것 같았다.
카카칵-
망령 전사가 태현의 공격을 받아냈다. 여기 있는 망령 전사가 더 강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죽여라!
-저놈이다!
태현을 매우 싫어한다는 것!
태현이 앞에 나서자 바로 망령 전사들이 병사들과 싸우다 말고 태현에게 달려들었다.
그러자 병사들도 기겁해서 달려들었다.
“안 돼! 막아라!”
“절대로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
덕분에 태현이 검을 휘두르기도 전에 병사들이 앞에서 벽을 만들어버렸다.
“나 좀 싸우게 해줘, 이것들아!”
태현은 울컥해서 외쳤다. 아무리 배려를 해줘도 그렇지, 이건 조금 심하지 않은가!
* * *
-드디어 찾아왔구나, 후계자여. 기다리고 있었노라.
태현은 매우 피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그들은 고대 신의 망령이 깨어났던 제단에 도착해 있었다.
몰려오는 망령 전사들을 물리치고 함정으로 만들어진 길을 피해서 쭉쭉 전진하자 도착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태현은 매우 피곤한 표정이었다.
망령 전사들이나 함정 때문이 아니었다. 바로 병사들 때문이었다.
‘칼 한 번도 결국 못 휘둘러봤다.’
뭐 하나만 하려고 해도 목숨을 걸고 막아대니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태현은 한숨을 푹푹 쉬었다. 그걸 본 고대 신의 망령은 다른 뜻으로 오해했는지 웃기 시작했다.
-크하하하. 내가 부리는 부하들이 만만치 않았나 보군. 후계자여.
“그래. 그랬지.”
-여기까지 용케 온 것에 대해 칭찬이라도 해줘야겠군!
고대 신의 망령이 떠들기 시작하자 옆에서 주현영이 속삭였다.
“굳이 말하는 거 기다릴 필요 있나요?”
“……?”
“그냥 저렇게 말하는 사이 사제하고 마법사들이 준비해서 때리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싶은데요.”
“완전 냉혹한 계획인데? 아주 좋아.”
“네? 냉혹한 계획이요?”
“변신로봇물에서 상대 로봇이 변신할 때 때리겠다는 수준의 계획이잖아. 완전 내 취향인데.”
“…….”
주현영이 멈칫한 사이 태현은 백부장에게 손짓했다.
“공격 준비.”
“바로 공격합니까?”
“그래. 저놈 말하는 거 들어서 뭐하게. 그냥 때려버리자고.”
-후계자여! 보아라! 내 권능을! 이 섬은 이제 나의 땅이 되었고, 이 섬 앞의 바다는 어떤 자도 드나들지 못하게 되었도다! 나는 이제 손가락 하나로…….
고대 신의 망령이 떠드는 사이 병사들은 우르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건 그렇게 당해놓고서도 변한 게 없군.’
고대 신의 망령은 태현만 보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신경을 끄고 있었다.
덕분에 왕국 해군들은 준비를 깔끔하게 마칠 수 있었다. 마법사들부터 시작해서 사제들까지 주문을 잔뜩 외우기 시작했다.
-어디 한 번 할 말이 있으면 해보…… 음?
앞에서 강력한 마력의 파동이 느껴지자 고대 신의 망령은 말하던 걸 멈추고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는 분노했다.
-비겁한 놈! 후계자여! 네가 그러고도 후계자인가! 혼자서 오지 않고 외부인들을 데리고 오다니!
“이미 나한테 자격 없다고 뭐라고 하지 않았나?”
-그…… 그래도 이건 비겁하다!
“그래. 그래. 난 계속 비겁하게 싸울 테니 넌 정정당당하게 덤벼. 그런데 생각해 보니 섬 지배해서 계속 언데드 쓰는 것도 좀 비겁한 것 아닌가?”
-그건 비겁한 게 아니라 내 권능…….
“신성 폭발!”
“마력 중첩!”
“날뛰는 화염의 구!”
-크아아아악!
태현이 말을 거는 사이 사제들과 마법사들이 주문을 완성시키고 공격을 시작했다.
눈부신 섬광이 고대 신의 망령을 향해 꽂히고, 이글거리는 불꽃 덩어리가 폭발하며 비산했다.
-용서하지 않겠노라!
고대 신의 망령이 울부짖는 소리에 태현은 검을 뽑아 들었다.
어차피 마법으로 끝낼 생각은 없었다. 고대 신의 망령이 저렇게 멍청해보여도 이 섬 전체를 이렇게 바꿀 정도의 보스 몬스터.
끝내려면 그만큼 데미지를 입혀야 했다.
“가자!”
태현은 먼저 달려나간 다음 ‘가자’라고 외쳤다. ‘가자’라고 먼저 말하면 병사들이 막을 것 같아서.
“앗! 저희가 앞장서겠습니다!”
뒤에서 외치는 병사들의 목소리는 무시하고, 태현은 고대 신의 망령에게 접근했다.
그러자 고대 신의 망령이 몸을 채찍처럼 늘려 태현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탁! 타탁! 타타탁!
한 번 바닥을 칠 때마다 바닥이 박살 나고 부서져 나갔다. 태현은 고개를 꺾어 채찍을 피한 다음 검을 강하게 베어내 몸통을 잘라냈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고대 신의 망령의 본체가 파괴되기 시작합니다. 99%]
“……어?”
태현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어 고대 신의 망령을 쳐다보았다.
검은색으로 꿈틀거리는 거대한 덩어리.
그런데 지금 마법사와 사제가 퍼부은 공격을 다 받고서도 99%나 남았다고?
-왜 그러나, 후계자여. 겁이라도 나는 것인가!
“뭐…… 안 되면 도망치지 뭐.”
태현은 깔끔하게 결론을 내렸다. 어차피 여기서 태현 대신 죽을 사람은 많았다.
오싹!
김지산과 박성찬은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