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65화
망령 전사가 비명을 지르며 몸을 뒤틀었다. 옆에서 그걸 보던 루포의 입이 떡 벌어졌다.
“이, 이게 뭔?”
아무리 봐도 태현은 그보다 밑이었다. 그러나 그의 공격을 거뜬히 버텨낸 망령 전사가 일격에 저렇게 되다니.
딱 봐도 막대한 데미지를 입어 빈사 상태에 빠진 것 같았다.
태현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망치를 휘둘렀다. 공격의 원은 한 번 시작하면 계속해서 공격이 이어지는 연속 검술!
쾅! 쾅! 쾅!
[망령 전사를 쓰러뜨렸습니다. 던전의 적들이 깨어납니다.]
“응?”
뭔가 불길한 메시지창을 본 것 같았다.
[강력한 상대와 싸워 추가 경험치 보너스를 받습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
무엇보다 기쁜 메시지. 태현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지금 태현 상황에서 레벨 업은 무엇보다 기뻤다.
‘잠깐, 이 망령 전사들은 레벨이 얼마나 높은 거야?’
생각해 보니 원래 전설 직업은 고렙이 되어서야 받을 수 있는 것이었으니, 여기 있는 놈들도 그 정도 수준일 것이다.
당연히 경험치도 그 정도 수준!
‘다행인 건지, 아니면 걱정해야 하는 건지…….’
“저, 태현 님.”
“……?”
“저기 망령 전사들이…….”
“이런 젠장.”
던전의 적들이 깨어난다는 소리가 무슨 소리인지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벽에서 망령 전사들이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보통 위압적인 모습이 아니었다.
* * *
쾅! 쾅! 쾅!
“크…… 윽!”
루포는 비명이 새어 나오는 걸 참으며 망령 전사 하나를 쓰러뜨렸다.
솔직히 여기 오면서 자만한 것도 있었다.
-적이 있어 봤자 충분히 나 혼자서 상대할 수 있겠지.
그러나 지금 와서 그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여기 있는 놈들은 하나하나가 그를 쓰러뜨릴 수 있는 실력자였다.
한 명씩 따지고 보면 그보다는 못하지만 여럿이 몰려나오니 그만큼 힘든 게 없었다.
‘마법사도 데리고 올걸!’
“질주하는 질풍의 원!”
범위 공격 스킬, 질주하는 질풍의 원을 쓰자 루포의 주변에 강력한 원이 생겨나며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카칵, 카칵, 카카칵!
망령 전사들은 그 위력에 밀려났다.
-크르르…… 인간…… 건방지다……!
“태현 님! 무슨 방법 없습니까?!”
루포는 저도 모르게 태현을 쳐다보며 외쳤다.
방금 보여준 태현의 모습. 태현이 그보다 약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적어도 지금 이런 상황에서는 훨씬 더 강할지도 몰랐다.
“너 나 지키려고 따라온 놈 맞냐?”
태현은 어이없다는 듯이 물어보며 망치를 휘둘렀다. 망령 전사의 몸이 사라지며 태현의 뒤에서 나타났다.
“이 자식…… 치사하게!”
[회피에 성공했습니다.]
-치…… 치사한 건 네 기술이다……!
망령 전사는 제대로 들어간 공격이 그냥 빗나가 버리자 그렇게 쏘아붙였다.
사실 사기적인 스킬로만 따지면 태현도 할 말은 없었다. 어지간한 공격은 다 회피해 버리니까.
-그러면 이것도 피해 봐라!
망령 전사는 사납게 외치며 손을 뻗었다. 태현은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여 피하려고 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빠르고 범위가 넓었다.
파아앗!
검은색으로 일렁이는 덩어리가 폭발적으로 분출해나갔다.
[망령의 저주에 맞았습니다. 회피할 수 없습니다.]
[마법 방어력이 하락합니다.]
[물리 방어력이 하락합니다.]
[망령의 저주로 독 데미지를 입습니다. 신성 권능으로 데미지를 낮춥니다.]
[회피율이 하락합니다.]
회피가 불가능한 저주!
태현은 혀를 찼다. 태현의 행운은 무적의 갑옷이 아니었다. 이런 식으로 회피가 불가능한 공격은 맞을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신성 권능 덕분에 직접 피해는 없다.’
독 데미지는 패시브 스킬인 신성 권능 때문에 완전히 막아진 상황.
그러나 회피율이 하락하는 건 위험했다.
태현이 이 망령 전사들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것은 대부분의 공격을 회피할 수 있어서였다.
만약 맞게 된다면?
그때부터는 위험해졌다.
‘피하려면 아예 맞지를 말거나 막아야 하겠군.’
태현은 망치를 똑바로 들었다. 원래 이런 식의 싸움에서는 잔뼈가 굵은 태현이었다.
상대를 읽는다.
망령 전사라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성가신 스킬만 있을 뿐, 공격할 때는 어딘가 움직이는 부분이 있었다.
‘다리!’
망령 전사의 공격이 허공을 갈랐다. 태현이 한발 앞서서 피해낸 것이다.
-크르르…… 어떻게?
태현은 대답 대신 망치를 돌려주었다.
쾅!
전력으로 휘두른 망치에 얻어맞자 망령 전사는 비틀거리며 물러섰다.
루포의 공격력을 능가하는, 초월적인 망치의 공격력!
한 번 비틀거리는 순간, 그때부터는 태현의 차례였다.
태현은 망설이지 않고 연달아 공격을 퍼부었다. 마땅한 공격 스킬이 없어도 태현에게는 일반 공격 자체가 무기였다.
망치를 휘두르고 찌르고 후려치는 다양한 기술로 망령 전사를 두들겨 패자 망령 전사는 반격도 하지 못하고 쓰러졌다.
“이쪽으로 와라, 루포!”
“예?”
루포는 왜 오라고 하는지도 몰랐지만 일단 태현이 오라고 하니 움직였다.
그는 방금까지 상대하던 망령 전사를 밀치고 허겁지겁 달려왔다.
그러자 태현은 망설이지 않고 바로 무언가를 꺼내서 던졌다.
콰콰콰쾅!
바로 폭탄이었다.
“맥스웰 밑에서 배울 때 갖고 오기를 잘했군.”
기계공학을 배울 때 쓸 만한 폭탄을 몇 개 챙겨뒀었다. 이렇게 쓰게 될 줄은 몰랐지만.
루포는 기겁해서 머리를 움켜쥐었다.
“이런 곳에서 썼다가 무너지면 어떡합니까?!”
“괜찮아. 나는 피할 수 있으니까.”
“…….”
루포는 ‘저는 어쩌란 겁니까?’라고 묻지 않았다. 이미 태현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한 이상 저런 질문은 의미가 없었다.
폭탄이 벽과 천장을 무너뜨려서 일순 길을 막았다. 망령 전사들도 데미지를 받았는지 나타나지를 않았다.
“태현 님. 어떻게 하실 겁니까? 생각보다 놈들이 너무 강합니다.”
루포는 포션을 꺼내서 마신 다음 붕대를 꺼내 몸에 감았다. 얼마 싸우지 않았는데도 그는 꽤나 피곤해 보였다.
그에 비해 태현은…….
‘왜 저리 멀쩡한 거야!?’
겉모습이 저주 때문에 약간 검게 변한 거 말고는 멀쩡해 보였다. 그 저주도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고.
“여기 길을 뚫기는 해야 하잖아?”
“그렇죠…….”
“강하기는 한데 못 뚫을 정도는 또 아니고.”
“네. 그런데 여기서 이 정도면 안이 더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길을 지키는 망령 전사가 이 정도로 강하다면, 더 안으로 들어갔을 때 뭐가 나올지는 상상하기도 싫었다.
“그렇겠지.”
“그러면…….”
“그래도 어쩔 수가 없어.”
태현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위로 올라갈 수가 없으니까. 이번 기회에 가지고 나갈 수 있는 건 모두 가지고 나와야 해.”
언제 들킬 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나갔다 들어오는 건 무리였다.
루포는 위에 올라가서 사제나 마법사들을 데리고 오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무리였다.
-크르르…… 이 비겁한 놈들……!
-침입자 주제에!
부서진 통로 사이에서 망령 전사들이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루포는 한숨을 쉬며 칼을 다시 들었다.
어쩌겠는가. 태현이 하라는 대로 해야지.
“좋은 생각이 났다.”
“예? 뭔데요?”
“일단 그 빛나는 팔찌 좀 줘봐.”
“여기 있습니다만…… 그건 왜……?”
루포는 팔찌를 건네면서 반사적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후회했다.
태현이 사악한 웃음을 짓고 있었던 것이다.
* * *
“저주할 거야! 저주할 거라고!”
루포는 그렇게 외치며 뒤로 달렸다. 망령 전사들은 그를 쫓아오고 있었다.
태현은 은신을 쓰고 앞으로 달려나갔다.
망령 전사는 몇 번 공격을 했지만 태현에게 공격이 통하지 않자, 바로 루포에게 달려들었다.
“루포! 뒤로 도망가서 있어라! 여기 지키는 놈들이니 그렇게 멀리는 안 쫓아올 거야!”
“진짜 저주할 겁니다!”
“다 너를 위해 이러는 거야!”
태현의 목소리가 메아리치듯이 사라졌다. 루포는 이를 갈며 더욱더 달리기 시작했다.
실제로 망령 전사들은 끝까지 쫓아오지 않았다.
“헉, 헉헉…….”
루포는 발걸음을 멈추고 통로를 쳐다보았다. 이렇게 달리게 된 게 얼마 만인지 알 수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태현이 안에서 깨고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과연 괜찮을까?
원래 상식대로라면 당장 태현을 따라가야 했다. 그러나 루포는 그러지 않았다.
태현은 이런 무모한 짓을 해도 무언가 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그런 게 있었던 것이다.
* * *
-망령의 저주, 망령의 저주, 망령의 저주!
“크악!”
루포의 믿음과 달리, 태현은 고전하고 있었다.
판타지 온라인 2에서 처음으로 피가 쭉쭉 닳는 게 보였다. 태현의 레벨이 낮다고 해서 결코 스탯이나 HP, MP까지 낮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 현재 중수에서 고수 사이 플레이어 정도였고, 망령 전사들은 정말로 강력했다.
망령 전사들은 태현이 제대로 된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자마자 저주만 퍼붓기 시작했다.
신성 권능으로 줄여도 저주가 중첩되자 피가 상당히 많이 닳았다.
“젠장……! 행운의 일격! 공격의 원!”
태현은 이를 악물고 공격을 퍼부었다. 지금 믿을 수 있는 건 공격밖에 없었다. 적을 쓰러뜨려서 저주를 줄여야 했다.
[검술 스킬이 오릅니다.]
[초급 검술 스킬이 중급 검술 스킬로 변합니다.]
[중급 검술 스킬을 얻었습니다. 앞으로 모든 검술 관련 스킬에 추가치를 받습니다.]
[가타콰 검술의 스킬이 추가됩니다.]
[도시에서 검사로 인정받습니다.]
[검술 관련 NPC들이 우호적으로 대합니다.]
드디어 검술 스킬이 중급까지 올랐어도 좋아할 수도 없었다. 태현은 정신없이 움직였다. 저주를 최대한 피하기 위해서였다.
오랜만에 이렇게 공격을 피하면서 움직이니 예전 생각이 났다.
‘그래, 요즘 좀 나태하긴 했지!’
행운만 믿고 너무 회피를 맡긴 것 같았다.
원래 태현은 이렇게 직접 피하지 않았었나!
망령 전사가 손을 뻗는 순간 저주가 뿜어져 나왔다. 손을 뻗지 못하게 하거나, 뻗는 순간 다른 망령 전사 옆으로 피해서 방패로 삼아야 했다.
-죽어라!
쾅!
어느 정도 저주를 걸자, 망령 전사는 자신이 생겼는지 검을 휘둘러 덤벼왔다.
[회피에 성공했습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내가 할 소리다!”
태현은 보답으로 망치를 돌려주었다. 망치를 휘둘러 정확하게 망령 전사의 얼굴을 후려친 것이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크아아악!
망령 전사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저주 하나가 풀리자 감소하는 피가 줄어들었다. 태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싸우기 시작했다.
남은 놈들을 모두 쓰러뜨리자 피가 20% 정도 남은 상태였다.
‘위험했다. 진짜로.’
기껏 루포를 두고 혼자 왔는데 죽으면 그것만큼 망신도 없었다.
확실히 루포가 있을 때가 편하긴 했다. 루포한테 공격이 집중되니 태현은 그저 데미지만 넣으면 됐던 것이다.
그렇지만 루포는 태현과 달랐다. 여기서 죽게 할 수는 없었다.
앞으로 계속 부려먹어야 할 고렙 NPC!
* * *
“에취!”
루포는 재채기를 했다. 갑자기 오한이 스민 것이다.
“누가 내 이야기 하나?”
* * *
망령 가루:
언데드 망령에게서 나온 불투명한 가루다. 언데드의 정수가 스며져 있다. 언데드가 강력할수록 가루의 정수도 강력하다.
“칼이나 갑옷이나 줄 것이지…….”
태현은 투덜거리며 망령 가루를 챙겼다.
망령 가루는 대장장이나 마법사들이 좋아할 재료였다. 그러나 태현은 저걸 잘 쓸 수가 없었다. 마법 부여 스킬이나 그런 게 없는 이상…….
정리를 하고 태현은 붕대를 감았다. 붕대나 포션은 상단에서 나올 때 많이 챙겨온 상태였다.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는 철저함!
‘그러고 보니 검술 스킬이 중급이 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