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48화
태현은 카지노에서 하는 도박이 불리하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원래부터 카지노한테 유리하게 만들어진 도박!
여기서의 도박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태현의 행운이었다.
행운이 2500을 넘는 남자의 패기!
사실 행운을 가장 직접적으로 쓸 수 있는 곳은 이런 곳일 것이다.
“오오! 태현 님! 믿고 있었습니다!”
“과연 아키서스의 화신!”
넥돈과 펠마스는 신이 나서 태현을 졸졸 쫓아갔다.
아키서스가 누구인가.
행운과 도박사의 신 아닌가!
그런 신이 함께하니 이제까지 잃기만 했던 그들도 인생을 필 기회가 온 것이 분명했다.
그들은 싱글벙글해서 태현의 뒤를 따라갔다.
* * *
“잠깐.”
“……?”
자연스럽게 들어가려던 태현과 둘은 멈춰야 했다. 정문에 서 있던 남자가 그들을 불러세운 것이다.
‘레벨이 대체 몇이야?’
딱 봐도 그들 수준으로는 상대하기 힘든 NPC 같았다. 태현은 속으로 불평했다. 아니, 무슨 카지노가 왕성보다 더 경비가 삼엄하단 말인가.
“왜 막는 거냐. 무슨 불만이라도 있냐!”
그리고 역시 이럴 때 나서주는 건 펠마스였다. 펠마스는 의기양양하게 삿대질을 했다.
남자는 짜증을 내며 펠마스의 멱살을 잡고 들어 올렸다. 펠마스는 가볍게 들어 올려져 버둥거렸다.
“넌 저리 비켜라. 돈도 없는 놈이 여기는 왜 자꾸 오는 거야? 내가 볼일이 있는 건 그쪽이다.”
남자가 가리킨 건 태현이었다.
“나?”
“그래. 너. 잠깐…….”
남자는 이상하게 생긴 흰색 돌을 꺼내 태현을 향해 겨눴다.
그러자 그 돌이 순식간에 새빨갛게 변했다.
“……!”
“저거 뭐냐?”
태현이 펠마스와 넥돈에게 속삭이듯이 물어봤지만 둘도 몰랐다.
“잘 모르겠…….”
“너희들은 대체 도움이 되는 게 있냐?”
“하하. 태현 님. 언젠간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러는 사이 남자는 돌을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이리로 오시죠.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
“아. 너희 두 거지는 꺼지고.”
남자의 말에 넥돈과 펠마스는 분노했다. 사람을 무시하다니!
“이, 이놈이!”
“태현 님! 뭐라고 한 마디 해주십시오!”
그러나 태현은 냉정했다.
“나중에 보자.”
“태현 님?!”
태현은 손을 흔들고 남자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괜히 억지로 데리고 들어가 봤자 좋을 꼴 볼 일 없다는 강렬한 예감!
* * *
남자는 따로 나 있는 문을 통해 비밀 복도로 태현을 안내했다.
바닥에는 붉은 카펫이 깔려 있고, 천장에는 흰색으로 반짝이는 마법 전등이 박혀 있었다.
한마디로…….
‘엄청나게 돈 많은 놈이 만든 곳이구만?’
태현은 그렇게 생각하며 남자의 뒤를 쫓았다. 그러면서도 관찰을 멈추지는 않았다.
‘허리춤에 들린 검은 마법 부가에, 재질도 평범한 철은 아닌 것 같고…… 은? 아다만티움? 갑옷은 중갑옷까지는 아니고…….’
네가 입은 아이템을 말해준다면 네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
태현은 실제로 그럴 자신이 있었다.
무겁고 두꺼운 중갑옷을 입고 방패를 뒤에 들고 다닌다면?
묵직한 방어력을 가진 탱커 계열의 전사 직업일 가능성이 컸다.
가벼운 경갑옷을 입고 무기만을 들고 다닌다면?
민첩과 회피로 공격을 피하며 강력한 공격을 넣는, 딜러 계열의 전사 직업이나 도적 직업일 가능성이 컸다.
로브나 천옷은 이제 마법사나 제작 직업 계열로 볼 수 있었고…….
그런 의미에서 남자는 탱커와 딜러 사이의 느낌이었다.
적당히 두꺼운 갑옷에 롱소드. 방어력과 공격력, 민첩까지 적절한 능력을 가진 만능형?
“저는 루포라고 합니다. 왜 이렇게 따로 불렀는지 궁금하실 겁니다.”
“궁금하긴 한데.”
“밖의 두 멍청이에 대해서는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제 주인님도 잘 알고 계시죠.”
“주인님?”
“이 카지노의 주인, 대상인 맥크레니 님을 모르신단 말이십니까?”
“아. 모를 수도 있지. 다른 왕국에서 왔는데. 내가 무조건 알아야 하냐?”
태현은 상대가 그에게 존댓말을 하는 걸 보고 감을 잡았다. 뭔가 필요한 게 있구나.
그렇다면 강하게 나가도 됐다.
생각대로 루포는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워낙 유명하셔서…… 어쨌든 맥크레니 님은 대상인이십니다. 이 제노마 시를 주름잡고, 왕국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드물 정도로…….”
“그래. 그래. 그렇게 대단하다 이거지. 그래서 그게 뭐. 밖의 놈들이랑 뭔 상관인데?”
빠른 재촉!
루포는 점점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 두 멍청이들은 신의 화신을 찾고 있잖습니까. 아키서스의 화신.”
“……!”
태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 자식들은 대체 뭐 얼마나 소문을 내고 다닌 거야?’
생각해 보니 아키서스의 비기가 담긴 고문서도 카지노에서 날렸으니…….
다른 사람들이 알아도 이상할 건 없었다.
“그거 헛소문이야.”
“헛소문인 것 치고는 그 문서들은 그럴듯했습니다. 꽤 자세했고. 그리고 실제로 아키서스란 신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예 없는 신이라면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지도 않겠죠.”
‘이런 예리한 자식.’
루포는 전사 직업 주제에 머리가 잘 돌아가는 것 같았다.
“어쨌든 주인님께서는 저 멍청이들의 말을 듣고 흥미가 생기신 모양입니다.”
“어째서?”
“당연한 거 아닙니까? 행운의 신이라니. 그 누가 싫어하겠습니까.”
“하긴 그것도 그러네.”
행운을 싫어할 사람은 없었다. 게다가 이 대상인이라는 사람은 카지노까지 운영하고 있으니…….
“게다가 몇 가지 더 이유가 있습니다.”
“말해봐.”
“지금 대륙에 있는 교단들은 다 세력이 큽니다. 주인님 같은 분이 엄청난 액수를 기부해도 아주 조금 생색만 내죠.”
대륙의 교단들은 아쉬울 게 없었다.
이미 곳곳에 신전이 있고, 성기사들과 사제들이 있었으며, 믿는 사람들도 많고 기부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어지간해서는 아쉬울 게 없었다.
귀족이나 왕족한테도 뻣뻣하게 구는데 상인한테는 당연히 더 뻣뻣하게 굴었다.
“그런 교단들 때문에 주인님께서는 상당히 화가 나신 모양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차라리?”
“새로 시작하는 교단을 밀어주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신 모양입니다.”
아키서스의 화신이 정말로 나타난다면 새로 교단을 만드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많이 도와준다면, 지금 있는 교단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걸 얻어낼 수 있었다.
과연 상인다운 생각이었다.
“그래서 저한테 이 돌을 맡기셨죠.”
“그 돌이 뭔데?”
아까 태현을 향하니 붉게 달아오른 돌. 루포는 그 돌을 꺼냈다.
“상대방의 행운에 따라 반응하는 돌입니다. 아키서스의 화신이라면 분명 엄청난 행운을 갖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
태현은 속으로 혀를 찼다. 저런 게 있으면 카지노에서 골드를 모으는 건 무리 아닌가.
“그리고 저 두 멍청이들은 분명 화신을 찾으면 신이 나서 카지노로 올 거라고 생각했지요.”
“…….”
“다 왔습니다. 맥크레니 님. 루포입니다.”
“들어와라.”
문이 열렸다.
안은 복도에 비해 심심한 편이었다. 장식 하나 없는 방에, 거대한 책상 하나만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 늙은 여자가 있었다.
안경을 꼈지만 눈빛이 날카로웠다. 태현은 방을 빠르게 확인하다가 눈이 마주쳤다.
“그래서, 아키서스의 화신이 저 사람인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저한테 주신 돌이 반응한 건 확실합니다.”
“어떻게?”
“아주 시뻘겋게요.”
“화신 맞군.”
태현은 하품을 하며 둘의 대화를 들었다.
“오면서 루포가 설명은 해줬겠지?”
“대충?”
“내가 뭘 원하는지도?”
“내가 교단을 세우면 그 교단과 친하게 지내고 싶다…… 이거 아닌가?”
“바로 그거야.”
맥크레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돈이 많지.”
“나도 많은데.”
“그렇지만 그게 곧 힘은 아니야. 어지간한 교단 놈들은 돈을 준다고 해서 움직이지 않으니까. 그놈들은 왕족이나 귀족들한테는 살랑거리면서 우리 같은 상인들은 무시하거든. 나는 그게 불쾌해서 참을 수가 없다.”
“뭐…… 귀족 자리를 돈으로 사지 그랬어? 아니면 그냥 귀족으로 태어났던가. 귀족으로 태어나려던 노력이 부족했네.”
루포가 태현의 옆구리를 찔렀다. 입을 다물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태현은 혓바닥으로 상대방을 도발하는 스킬이 있다면 이미 마스터를 찍었을 사람.
맥크레니의 이마에 혈관이 선명하게 돋았다.
“지금 내 제안이 장난 같나?”
“장난 같지는 않은데. 들어가려던 사람 억지로 데리고 왔으면 그 사람이 성질을 내도 이해를 해줘야지.”
“루포가 억지로 데리고 왔나?”
갑자기 불똥이 자기한테 튀자 루포는 당황했다.
“네? 아닙니다! 억지로 데리고 온 거 아닙니다!”
“말이 억지가 아니지 억지나 마찬가지였다고.”
“아니, 내가 언제! 공손하게 모셨잖아!”
졸지에 주인 앞에서 명령을 어긴 놈이 된 루포는 억울해서 가슴을 치며 태현을 노려보았다.
‘이놈이 대체 왜 이러는 거야!’
“말이 공손하게지, 나는 위협적이었어. 내 친구들도 밖에 세워놓더라고. 그중 한 명은 멱살도 잡았지. 아마?”
“…….”
루포는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 입을 다물었다. 맥크레니는 질린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그 멍청이들을 말하는 건가 보군. 그건 이해해 줬으면 해. 그놈들은 이 카지노의 골칫덩어리라고. 매번 와서 돈을 잃고 이상한 걸 담보로 돈을 빌리려고 하지. 그것도 한두 번이어야지. 루포가 저놈들을 몇 번 쫓아냈는지 아나?”
진상 중의 진상!
펠마스와 넥돈은 이미 카지노에서 진상 중의 진상으로 찍혀 있었다.
“그렇지만 그 담보로 얻은 것 중에서 이익을 본 것도 있었을 텐데?”
“고문서를 말하나? 아키서스의?”
“그래.”
“그래. 이건 참 기대치도 못한 수확이었지. 놈들이 화신을 찾는다는 것도 이것 덕분에 알게 되었고. 그냥 정신 나간 도박 중독자들인 줄 알았는데.”
“정신 나간 도박 중독자들 맞는데.”
“자기 추종자들을 굳이 위장시킬 필요 없어. 우리는 협력할 수 있으니까.”
“아니, 진심으로 생각하는 건데.”
맥크레니는 태현이 다른 사람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서, 그들에게 저런 식으로 살라고 지시한 줄 알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저들은 너무 막장이었으니까.
그러나 태현은 그런 지시를 내린 적이 없었다.
펠마스나 넥돈은 원래 저런 놈들!
“어쨌든 저 밖의 멍청이들한테 무례하게 군 건 미안하지만, 저런 놈들하고 손을 잡는 것보다는 나하고 손을 잡는 게 나을 거야.”
“흠. 그것도 좀…….”
맥크레니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왜지?”
“저 멍청이들은 멍청해서 날 이용할 생각은 못 할 것 같은데, 그쪽은 날 이용할 생각을 할 것 같아서.”
“서로 도움이 되는 이용이잖나? 너는 교단을 세우고 나는 지원을 해준다.”
“그리고 대가를 치러야지. 흠. 점점 따로 노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데.”
“…….”
맥크레니의 얼굴이 더욱 찌푸려졌다. 지금 아쉬운 건 확실히 그녀였다.
태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제안을 거절하고 밖에 나가서 따로 움직이면 그만이었으니까.
“뭘 바라나?”
“이제 말이 좀 통하는군. 지원, 협력 다 좋은데 말이야. 좀 적당히 하자고. 적당히 지원해 주고 적당히 받아가. 다 해 먹으려고 하지 말고.”
“……그 정도라면…….”
“그리고 저 밖의 멍청이들도 교단에 넣고. 내보낼 생각은 하지 마.”
“그건 좀…….”
맥크레니는 진심으로 싫은 표정이었다. 새로 만들어질 교단에 저런 막장들을 넣고 싶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