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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2화 (2/1,826)

§ 나는 될놈이다 2화

그러나 태현은 태연했다.

“접는다고.”

“왜?!?!?!?!!?!?!”

“그야 판타지 온라인에서 할 거 다 했으니까.”

이세연은 그제야 태현이 말했던 걸 떠올렸다. 그는 약한 캐릭터로 강한 캐릭터를 잡는 재미에 게임을 플레이한다고 말했었다.

그녀 말고 다른 랭커들은 모두 잡힌 상태.

“나, 나한테는 못 이겼잖아?”

“뭐야. 아까는 졌다고 했으면서. 역시 서비스였나?”

“아니, 그게 아니라…….”

“넌 강해. 너는 내가 운이 없어서 졌다고 했지만, 그것도 실력이지. 그리고 난 앞으로 널 못 이길 거야.”

태현은 스스로의 캐릭터를 가리켰다.

“사망 페널티가 있거든.”

“아…….”

“안 그래도 비책은 다 썼는데 레벨까지 내려가면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지. 성장은 네가 더 빠를 테고.”

“도, 도전하면 되잖아! 앞으로 계속!”

이세연은 다급하게 말했다. 그녀가 왜 태현을 말리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도전은 가능성이 있을 때나 하는 거고. 가능성이 없어도 계속 도전하는 건 미련한 거지.”

‘그게 대장장이로 네크로맨서한테 덤빈 사람이 할 소리야?!’

이세연은 속으로 말을 삼켰다.

“끝났어. 여기까지 온 것도 운이 좋았던 거지. 솔직히 나도 대장장이로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잠깐만! 게임에는 다른 재미가 있어. 우리 길드에 들어오면 내가 그걸 알려줄…….”

-김태현 님이 로그아웃하셨습니다.

“나쁜 놈……!”

* * *

“아. 재밌었다.”

태현은 기지개를 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초기 단계의 가상현실 게임도 이 정도로 재밌었는데, 본격적으로 발표되는 게임은 얼마나 대단할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전화가 왔다.

-야! 졌다며!

“기껏 전화해서 한다는 소리가 그거냐?”

-지금 커뮤니티 사이트, 게시판 다 폭발했거든? 생각보다 너 좋아하는 사람도 많더라. 다들 아쉽다고 하더라고. 마지막에 치명타 안 터졌지?

“안 터졌어.”

-와. 그거 2%였지?

“아니. 시작 전에 추가 강화해서 사실 0.1%였어.”

-미친…….

0.1%의 확률 때문에 세기의 대결에서 패배하다니. 최상윤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안 억울하냐?

“억울하긴 한데, 뭐 어쩔 수 없는 거지. 그게 게임인데. 나한테 진 놈 중에도 운 없어서 진 놈들은 있으니까.”

-게임은 언제 다시 들어갈 거야?

“접을 건데?”

-뭐?

“할 거 다 해봤으니 이제 쉬어야지. 다른 게임 나오면 해보려고. 판타지 온라인 2 다음 달에 나온다고 했지?”

판타지 온라인을 만든 판타지아 사는 정말 본격적인 가상현실 게임을 만들겠다고 호언장담을 하고 있었다. 전 세계 규모의 동시 가상현실 게임.

-너 설마 거기서도 그 짓 할 거 아니지?

“그 짓이 뭔데?”

-뭘 알면서 물어! 일부러 약한 직업 골라서 키우는 거!

“아. 그게 얼마나 재밌는데.”

-그거 변태나 하는 짓이야, 이 자식아!

“너한테 듣고 싶지는 않다.”

최상윤은 투덜거리면서 말했다.

-그러지 말고 나랑 같이 길드 만들자. 너 솔직히 제대로 된 직업 고르고 나랑 길드 만들었으면 판타지 온라인에서 1위 먹었다니까? 이세연? 걔보다 네가 못한 게 뭔데?

“외모가 딸려.”

-야…….

“농담이야. 그보다 그 제안 다른 데서도 들은 거 같다.”

-뭐? 어떤 놈이 너한테 길드 들자고 했어? 아. 하긴 네가 보여준 게 있으니까 그렇겠지. 너 그래도 다른 놈이랑 하면 절대 안 된다! 할 거면 나랑 꼭 같이하는 거야!

“길드 들어갈 생각도 없는데 무슨.”

최상윤은 태현의 오랜 친구였다. 그도 태현처럼 게임에 관심이 많았고, 실력도 좋았다.

사실 태현이 20위권 랭커부터 목표를 잡은 건 최상윤 때문이었다. 그가 25위 안팎을 드나드는 전사였던 것이다.

‘야! 나부터 노리는 건 진짜 아니다! 20위권부터 노려! 걔네들 내려가면 나도 올라가고, 좋네, 좋아!’

그의 친구였지만 정말 현실적인 친구였다.

-그러면 판타지 온라인 2 나오면 바로 같이 달리는 거냐?

“아니. 게임 오래 했으니 여행도 좀 하고 몸도 좀 만들고 하려고.”

-몸은 거기서 왜?

“게임을 하려면 체력이 중요하거든. 어려운 난이도로 갈수록 더더욱.”

-또라이 같은 자식. 아, 너 아저씨가 뭐라고 안 하시냐? 복학은 언제 할 거야?

“복학은 슬슬 해야지. 위험하니까. 아버지는…….”

“아들, 이리 와봐라!”

중저음의 목소리가 밑의 층에서 들려왔다.

“지금 뭐라고 하실 것 같네. 나중에 보자고.”

* * *

“아들. 난 네가 정말 자랑스러웠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고등학생 때까지는 말이다.”

“지금도 자랑스러워해 주세요.”

“네가 전국 모의고사 때 만점을 받아왔던 게 기억에 선하구나. 중학생 때는 그렇게 공부를 안 하던 놈이. 정말 대단하다 싶었지. ‘이놈이 그래도 못 배운 애비와는 다르구나, 못 배운 내 한을 씻어주겠구나’ 했는데…….”

“저 그다음에도 성적 계속 유지했습니다만.”

“그래. 수능 만점까지도 좋았다! 난 정말 감격했다! 말은 안 했지만 이 애비가 몰래 술을 마시며 울었다는 걸 아냐!”

“몰래라뇨. 아버지. 동네 창피할 정도로 크게 소리 지르면서 우셨어요. 살짝 귀가 먹으신 아래쪽의 강 할머니를 빼고 동네 사람들은 다 들었을 걸요.”

“나는 그때 생각했지. 애비는 못 배웠지만 이놈은 법대를 가서, 수석 졸업을 해서……. 그래, 이런 생각을 했단 말이다. 로스쿨이 뭐냐! 내가 못 배웠다지만 돈은 넘쳐나는 사람 아니냐! 네가 가는 길에 싹 금칠을 해줄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그런데 이 새끼야!”

김태현의 아버지, 김태산은 일어나서 태현의 멱살을 잡았다. 두 남자 다 덩치가 작은 편이 아니었기에 험악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어?! 국문학과를 가?! 이 미친놈아!”

“아니, 국문학과가 뭐가 어때서요? 아버지 지금 우리 민족의 얼과 혼을 무시하시는 겁니까?”

“이 자식아! 국문학과 갈 거면 그렇게 성적은 왜 냈어!”

“그러면 일부러 못 내야 합니까!”

“거기 나와서 뭐 할 거야! 작가라도 할 거냐! 요즘 세상에 작가라니. 굶어 죽기 딱 좋다!”

“어차피 아버지 돈 많으니 굶어 죽을 일은 없을 겁니다!”

“이, 이 자식! 그래. 국문학과까지는 그렇다고 치자. 국문학과더라도 한국대니까! 한국 제일의 대학이니까!”

김태산은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말을 이었다.

“그런데 학점은 F로 도배를 하고. 학사 경고도 벌써 제한 찼지? 군대 갔다 온 다음에는 휴학하면서 게임이나 하고 있고! 너 이 자식, 국문학과가 만만하냐!”

“국문학과 무시하신 건 아버지거든요!”

“네가 멍청한 놈이면 내가 말도 안 해! 내 아들이니까, 그냥 잘 먹고 잘살기만 하라고 보살펴 줬을 거다. 그렇지만 넌 대단한 놈이잖아! 왜 그러는 거야!”

“아니, 학점 잘 받을 필요가 없잖습니까. 졸업만 하면 되는데.”

“취직을 해야 할 거 아냐!”

“아버지가 주신 건물들이 있는데, 그냥 건물주 하면 안 될까요?”

“사람은 일을 해야 해! 신성한 노동으로 건강한 땀을 흘려야 한다, 이 소리야! 그래야 진짜 남자가 되지!”

김태산은 밑바닥에서 올라온 남자였다. 젊었을 때에는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아버지……. 건물 수십 채 돌리시면서 수입 뽑으시는 분이 그런 소리 하시면 진짜 설득력이 하나도 없어요. 제가 본 아버지 모습이 골프 치고 책 읽고 바둑 두는 것밖에 없는데…….”

“나, 나는 젊었을 때 일했어!”

“그 뭐시냐,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이런 거 다 헛소리에요. 인생은 편하고 쉽게 사는 게 중요한 겁니다.”

“이 자식……. 나가! 너 인마! 여긴 내 집이야!”

“아버지. 이미 제 명의로 돌리신 집 몇 채 있는 거 아시죠? 거기 가면 되는 것도 잘 아시죠?”

“이, 이익……. 내놔, 인마!”

“세금 때문에 제 명의로 돌려놓고 이제 와서 뭘 내놔요! 법정 가시던가!”

두 남자가 추하게 싸우는 동안, 한 여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탁-

쟁반이 탁자 위에 올려지는 소리였지만, 두 남자는 일제히 동작을 멈췄다.

그리고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험, 험.”

“어머니 오셨어요?”

“그래. 싸우는 소리가 바깥까지 들리더라.”

집안의 절대 권력자. 정윤희 여사였다.

“태현이를 고생시키자고요?”

“아, 아니. 내가 그런 소리로 한 게 아니라……. 이 자식이 능력도 있으면서 워낙 방탕하고 나태하게 사니까…….”

“태현이가 나태하긴 하지만 방탕하진 않아요.”

어머니 화이팅! 그런 뜻으로 팔을 흔들던 태현은 정윤희의 눈빛 공격을 받고 손을 내렸다.

“그리고 젊으니까 고생시키자는 건 반대에요. 내 자식이에요. 우리가 고생한 건 우리 자식을 고생 안 시키려고 그런 거였잖아요? 우리가 고생했다고 우리 자식도 고생시키면 그게 무슨 짓인가요?”

“그, 그렇지? 내가 화가 나서 실언을…… 하하…….”

김태산은 옆에서 비웃는 태현을 한 대 쥐어박고 싶어서 주먹을 부들거렸다. 저게 아들인지 원수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태현아. 네가 요즘 너무 나태하긴 한 것 같더라.”

“……!”

불똥이 그에게 튀었다.

“제대하고 나서 쉰다고 했을 때는 그러라고 했지. 하지만 이제 복학해야 하지 않니?”

“그…… 렇죠.”

“난 네가 딱히 취직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굳이 어려운 자리에 가서 네가 고생하는 걸 보고 싶지도 않고. 하지만 내 아들이, 나태하고 게으른 사람이 되는 건 보고 싶지 않구나. 무슨 소리인지 알겠지?”

“예…….”

“바르게 살렴. 부끄럽지 않게.”

“학점 관리 하라는 거죠?”

“아니. 학점 관리는 네 자유지. 내 말은, 네가 스스로를 자랑스러워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거다. 학점도 좋고, 국문학과를 갔으니 글도 좋겠지. 네가 열중해서 결과를 떳떳하게 자랑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 좋단다. 그런 걸 해보라는 거야. 계속 놀지만 말고.”

이제는 김태산이 태현을 비웃었다.

“아들을 믿어도 되겠지?”

“물론입니다. 어머니.”

“그러면 결과를 기대해도 되겠구나? 이 어미는 아버지처럼 재산을 안 물려준다거나, 하는 협박은 할 수 없지만…….”

정윤희의 눈빛이 번쩍였다. 김태산도 김태현도 보면 주눅이 드는 그 눈빛이었다.

“네가 변하는 게 없다면 네가 이 어미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로 알겠다.”

“어머니! 그건 너무하잖아요!”

“사랑한다면 열심히 하겠지.”

치사하게 모자 관계를 끊는다는 걸로 협박을 한단 말인가. 태현은 가슴을 치며 말했다.

“차라리 다른 선택지를 주세요! 어머니 기준은 너무 높단 말이에요! 그거 만족시키려면 몇 년은 고생해야 할 텐데!”

“그래? 그러면…….”

정윤희는 핸드백에서 서류를 꺼냈다.

“맞선부터 볼까? 내가 참한 아가씨들 몇 명 추려왔는데. 너도 결혼하면 책임이 뭔지 배우겠지. 착한 애니까.”

“당장 복학부터 하겠습니다. 전액 장학금 받아올게요.”

* * *

“이렇게 됐다.”

-와하하하하하하! 와하하하하하하하!

“끊는다. 너 차단한다.”

-아니야! 끊지 마!

최상윤은 계속 웃다가 다급하게 말했다. 그의 친구는 의외로 성격이 좁았다. 한다면 정말 하는 친구였다.

-그래서 복학은 할 거야?

“어. 일단 빡세게 공부해서 장학금 따서 어머니 만족만 시켜드리고 게임 해야지. 3개월 정도 늦게 시작하겠네.”

-게임 3개월 늦게 시작하면 많이 밀리는 거 알지? 희귀 직업이나 영웅 직업 같은 거 다 먼저 채갈 수도 있다고. 너 그런 거 좋아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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