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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될놈이다 >
* 글: 글쓰는기계
* 책 소개
"처음부터 평범하게 강한 직업은 키워봤자 재미가 없잖아? 약한 직업을 키워야 하는 재미가 있지!"
타고난, 축복 받은 재능!
그러나 변태 같은 취향!
스스로 어려운 길을 고르려고 했지만 세상은 그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뭔 전설 직업이야? 싫어, 인마! 취소! 취소!”
뭘 해도 될놈은 된다. 될놈 김태현의 게임 정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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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될놈이다 1화
판타지 온라인의 투기장.
PVP(플레이어 간 싸움)를 위해 만들어진 곳이었다.
많은 플레이어가 게임을 플레이하다가 불만이 생기면 ‘네가 그렇게 싸움을 잘해? 투기장으로 따라 나와 이 자식아!’를 외치는 그곳.
그러나 한 번도 이렇게 많은 인원이 모인 적은 없었다.
“시작하는 건가?”
“누가 이길 것 같냐?”
“몰라. 아무리 그래도 이세연이 이기지 않겠냐? 솔직히 대장장이랑 네크로맨서가 여기까지 싸움 온 것도 웃기는 일인데. 이세연이 지면 진짜 개망신이지.”
사람이 많이 모인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투기장에서 싸우는 플레이어가 그만큼 대단한 플레이어였던 것이다.
한 명은 이세연.
네크로맨서 길드의 수장으로 1년 반 넘게 길드를 1위 자리에 있게 한 능력자였다.
단순히 그뿐만이 아니었다. 길드를 이끄는 능력만이 아닌, 전투력도 뛰어났던 것이다.
그녀는 개인으로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랭커였다.
대규모 사냥에는 뛰어나지만 일대일 싸움에는 취약하다는 네크로맨서의 약점을 극복하고, 그녀는 수많은 PVP에서 랭커들을 꺾었다.
거기에 빼어난 외모까지 갖고 있으니 인기가 있는 건 당연했다.
“누나! 사랑해요!”
“언니! 여기 좀 봐주세요!”
실제로 여기 모인 사람 중 1/3은 그녀의 팬이었다.
그러나 이세연은 아랑곳하지 않고 앞을 쳐다보았다. 상대가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김태현이다!”
“김태현! 난 널 믿는다! 난 너한테 걸었다고! 네가 지면 난 망해!”
아무것도 특별한 게 없어 보이는 남자였지만, 이쪽도 인기는 만만치 않았다.
김태현. 직업은 대장장이.
물론 단순히 대장장이라면 이렇게 유명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판타지 온라인에서 대장장이는 좋은 물건을 만들고 돈을 벌 수는 있었지만 한계가 명확한 비전투 직업이었으니까.
어디까지나 부캐로 키우거나, 본격적인 레이드나 전투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즐길 수 있게 만든 직업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김태현은 그 인식을 깨뜨렸다.
* * *
“나랑 1:1을 뜨자고? 너 미쳤냐?”
“왜, 겁나냐?”
“아니, 어디서 이런 미친놈이 나타나서…….”
남자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그도 그럴 듯이, 그의 직업은 도적이었다. 그것도 일대일 싸움 특화형으로 전문을 탄 직업.
게다가 그가 레벨이 낮은 사람도 아니었다. 판타지 온라인의 20위권 안팎에는 꾸준히 들어가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를 상대로 대장장이가 1:1을 신청하다니.
“겁나면 뭐 어쩔 수 없고.”
“기다려!”
대장장이의 속셈이 뻔히 보였다. 같잖아서 상대를 안 해주면 어디 가서 ‘내가 겁나서 싸움을 피하더라’ 소문을 퍼뜨릴 생각이겠지.
“좋아. 김태현? 올라와. 내가 원래 이런 거 안 해주는 사람인데 정말 고맙게 여기라고.”
“정말 정말 고맙네.”
김태현이 빙글거리며 그렇게 말할 때까지만 해도 도적은 그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시작!
도적의 은신은 대장장이의 일회용 아이템인 재를 뿌려서 막았다. 허공에 도적의 모습이 드러났다. 가볍게 은신해서 뒤를 찌르려고 하던 도적은 놀랐다.
‘아니, 아직 괜찮아. 급습 간다!’
도적이 가진 모든 콤보의 시작, 급습.
뒤에서 공격하는 순간 치명타가 터지고 상대에게 상태 이상을 선사해주는, 도적의 비전이었다.
어차피 은신한 걸 알아차리더라도 대장장이는 도적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었다.
“이, 이런 미친놈!”
그리고 도적은 경악해서 외쳤다. 아까의 미친놈과는 다른 의미의 미친놈이었다.
지금 상태 이상이 걸린 건 김태현이 아니라 그였던 것이다.
“자기 등에 함정을 설치해?!”
어쩐지 외투가 좀 불룩하다 했다. 대장장이가 등에 마비 함정을 설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등을 화려하게 찍은 도적은 제대로 걸려들었다.
퍽!
거대한 망치가 도적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원래 도적은 공격을 맞아가며 버티는 직업이 아니었다. 피하면서 화려하게 상대를 농락하는 직업이었다.
피가 순식간에 절반이 빠져나갔다. 마비당해서 움직일 수 없다지만 도적은 정말로 놀랐다.
‘대장장이인데?!’
공격력이 무슨 전사 뺨치는 공격력이었다.
“공격 스킬이 없다 보니 어쩔 수가 없네. 이해 좀 해줘.”
“너 이 자식!”
마비가 풀린 도적이 바로 백스텝을 써서 뒤로 물러났다. 피는 절반이 빠져나간 상황이었지만 아직 괜찮았다. 상대는 대장장이고, 그는 도적. 정신만 차린다면 앞으로 한 대도 맞지 않고 끝낼 수 있었다.
-함정 설치.
-함정 설치.
-함정 설치.
“???”
그러나 대장장이는 달려들지 않고 바닥에 함정을 던지기 시작했다. 도적 앞에서 바닥에 위장도 하지 않고 깐 함정은 바로 보였다. 설치하는 의미가 없었다.
“뭐하는 거냐?”
“아. 못 피하게 하려고.”
그리고 김태현은 망치를 들어 함정을 내리찍었다.
콰콰콰콰콰콰콰쾅!
함정은 폭발 함정이었다.
그리고 대장장이가 아무리 비전투 직업이라고 해도, 방어력은 도적보다 좋았다.
“져, 졌다……?”
지켜보던 사람들은 예상 밖의 결과에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그건 시작일 뿐이었다.
* * *
다음 상대는 성기사였다.
성기사. 다른 직업들은 ‘바퀴벌레’라고 부를 정도로 끈질긴 생명력과 방어력을 가진 직업이었다.
도적처럼 급습을 사용한 속임수도 통하지 않는 상대.
게다가 상대로 고른 성기사도 만만한 성기사가 아니었다. 10위권에 드는 랭커였던 것이다.
그러나 김태현은 승리했다.
“또, 또 이겼어!”
투구부터 시작해서 부츠까지, 아니, 안에 입는 속옷까지 속성을 맞췄다. 철저하게 성기사를 공략하기 위한 장비였다.
물론 그것만으로 성기사를 쓰러뜨릴 수 있었다면 성기사가 그렇게 욕을 먹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이 감탄한 건 김태현의 컨트롤이었다.
도적 상대로는 워낙 민첩이 밀려서 어쩔 수 없었지만 비슷한 민첩을 가진 성기사 상대로는 그 컨트롤이 빛을 발했다.
치면 피하고 다시 와서 후려치고. 변변한 광역기가 없는 성기사는 피눈물을 흘렸다.
워낙 생명력이 좋아서 맞을 때마다 회복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계속 맞고만 있으니 정신적으로 피곤했다.
세 시간이 넘게 거의 샌드백 꼴이 되고 나서야 그는 항복했다. 피는 아직도 절반이 넘게 남아 있었지만.
“항복!”
* * *
김태현은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는 계속해서 상위권 랭커들을 상대로 PVP를 신청했고, 그때마다 이겼다. 직업의 차이는 그에게 별 상관이 없는 것 같았다.
어느 날 PVP가 끝나고 한 명이 그에게 물었다.
-근데 왜 대장장이로 싸우는 거야? 다른 직업이 낫지 않나?
-재밌잖아.
그리고 김태현의 마지막 상대는 이세연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순위권에 있는 다른 상대가 모두 사라진 것이다.
* * *
한쪽은 개인 랭커 순위 1위에 1위 길드의 길드장.
다른 한쪽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파죽지세로 랭커들을 썰고 다니는, 일명 ‘미친 대장장이’.
덕분에 이세연을 응원하는 측과 달리 태현을 응원하는 측은 분위기가 독특했다.
“지면 죽여 버릴 거야! 마! 너 얼굴 딱 봐놨어!”
“힘내라! 잘나가는 놈들한테 지지 마!”
그에게 거금을 건 도박꾼이나 잘나가는 랭커를 질투하는 사람들이 섞여서 태현을 응원했다.
이세연은 시작 전에 귓속말을 보냈다. 그녀도 태현에게 관심이 많았다. 그가 싸웠던 PVP 영상은 다시 다 돌려봤을 정도로.
“정말 대단하네. 솔직히 대장장이는 직업으로서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거든.”
“한계가 있는 거 맞아.”
“그런데 왜 그 직업을 고른 거지?”
“재밌으니까.”
“뭐?”
“강한 직업으로, 강하게 키워서, 압도적인 컨트롤로 상대를 이기는 건 재미가 없어. 너무 쉽거든.”
다른 사람이 했다면 오만한 소리였지만, 이세연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태현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다른 생각이 들었다.
‘변태 아냐?’
태현이 알았다면 화를 냈을 생각이었다.
“게임의 진정한 재미는 약한 직업인 캐릭터가 온갖 궁리와 노력으로 강한 직업인 캐릭터를 잡아먹을 때 나오는 거 아니겠어? 왜 사람들이 약팀이 강팀을 이기는 걸 좋아할까? 그게 재밌으니까 좋아하는 거야.”
“이해는 하는데. 실제로 하는 건 좀 달라. 너 좀 이상해.”
“그 소리는 이기고 나서나 하시지?”
PVP가 시작됐다.
그리고 태현은 패배했다.
* * *
“어, 어떻게?”
이세연은 중얼거렸다. 그녀 본인도 그녀가 이겼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태현을 얕본 건 아니었다. 다른 사람과 달리, 그녀는 태현의 실력이 어마어마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게임 이해도도 높았고 특히 그 컨트롤이 굉장했다. 미세하게 치고 빠지는 컨트롤은 그녀보다 한 수 위였다.
그렇기에 PVP 영상들을 보며 공부했다. 동시에 대장장이가 쓸 수 있는 방법도 공부했다. 당황하지 않도록.
그녀가 당황하지 않는다면 그녀가 이기는 게임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현은 그녀를 몰아붙였다. 정말 상상치도 못한 온갖 방법이 쏟아져 나왔다.
나온 지 꽤 된 판타지 온라인에 아직도 이런 요소들이 남아 있었나, 감탄할 정도였다. 결투 중만 아니었다면.
승부를 결정지은 건 실력이나 전략, 전술이 아니라 운이었다.
중반까지 이세연은 태현의 함정에 빠져서 허우적거렸다.
순식간에 치명상을 입은 이세연은 이를 악물었다. 여기서 한 번만 타이밍을 잡는다면 네크로맨서의 저주 콤보를 넣을 수 있었는데, 태현은 절대 여유를 주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 공격이 들어왔다.
사전조사를 한 결과 저 대장장이의 망치는 98% 확률로 치명타를 터뜨리는, 대장장이가 만들 수 있는 가장 어려운 무기였다.
그야말로 노가다와 노가다와 노가다를 하지 않고서는 만들 수 없는 무기.
태현은 게다가 길드도 없었다. 혼자서 플레이하는 유저가 저 재료를 다 모았다는 걸 생각해 보면 정말 기가 막혔다.
‘여기까진가?’
“어?”
이세연은 그녀가 죽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치명타가 터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 2% 확률 때문에!
태현은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이세연의 체력 바는 아주 붉게, 조금 남아 있었다.
그러나 방금 공격으로 싸움은 결정 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의 패배였다.
“이 운빨겜 진짜!!!”
이세연은 1위 랭커였다. 아무리 놀라도 손은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순식간에 저주가 중첩되어서 태현의 몸을 날려버렸다.
“졌나…….”
태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캐릭터가 흐릿해지며 깜빡였다. 투기장에서 죽은 캐릭터는 정리할 시간을 준 후 사망 처리됐다. 그 이후 페널티는 필드에서 죽는 페널티와 똑같았다.
판타지 온라인은 사망 페널티가 꽤 엄격한 게임이었다. 유저들이 불평할 정도로. 게다가 그는 길드도 없었고 대장장이라서 한 번 사망하면 다시 복구가 정말 힘들었다.
“내가 졌어.”
이세연은 태현을 보고 귓속말로 말했다.
“완벽하게 내 패배야.”
“헛소리. 진 건 진 거지.”
“그 마지막 공격이 치명타만 터졌어도…….”
“2% 확률도 확률이야. 내가 이제까지 운으로 이긴 것도 있는데 이제 와서 졌다고 억지 부리면 안 되지.”
“아니야. 다른 건 몰라도 네가 이긴 거 맞아. 원한다면 발표할 수도 있어.”
“그만해. 게임도 잘하고 얼굴도 예쁘고 인간관계도 좋은 사람이 인성까지 좋으면 너무하잖아.”
“칭찬 고마워.”
이세연은 잠시 멈추고 물었다.
“앞으로 뭘 할 생각이야? 다시 재도전?”
“아니. 접을 건데.”
멋들어진 대사로 태현에게 길드 영입 제안을 하려던 이세연은 얼어붙었다.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