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화
“켁……!”
하마터면 입에 담긴 닭고기가 분출될 뻔했다. 그렇지 않아도 아까부터 키스하려고 그를 덮칠 생각이 머릿속에 담겨있는 상태라서 더 당황해버렸다.
‘혹시 내 생각을 들여다본 건 아니겠지?!’
나는 황당한 표정으로 파이를 어이없게 올려다 봤다. 그러자 작게 웃음을 터트리는 그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정하게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식기 전에 어서 먹어라. 다음에는 저거 어때? 맛있어 보이던데.”
나는 뺨을 붉힌 채로 얄미운 그를 노려봐주고, 그가 가리키는 곳을 쳐다봤다. 그곳에서는 불에 초벌구이한 칵테일새우를 상큼한 칠리소스에 볶으며 화려한 불 쇼를 펼치고 있었다. 그 칠리새우 볶음을 사 먹으려는 줄이 어찌나 긴지. 그곳이 인기메뉴라는 것을 증명하듯 길목을 막을 정도였다.
“먹어봐야겠네요.”
다른 곳에 비교해 사람이 유독 많아서 흥미가 간다. 대체 얼마나 맛있으면 저럴까? 가끔 레스토랑에서 먹은 새우튀김도 제법 맛이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 줄 끝에 가서 섰다. 그리고 기다리면서 닭꼬치를 야금야금 해치웠다.
“왕궁에서는 무엇을 먹었지?”
“스테이크요. 그 이외에도 이것저것 먹었고요.”
“맛있었나?”
“맛있게 잘 먹고 왔으니까 이상한 말 하지 마요.”
아까처럼 또 낯부끄러운 말을 할까 봐 미리 차단하며 그를 흘겨봤다. 여전히 입가에 미소가 가시지 않는 그가 이번에는 또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생각 외로 대단히 맛있지는 않았나 보군.”
뜨끔했다. 꽤 맛있긴 했지만 그건 레어에서도 충분히 먹어봤던 고급요리였으니까.
“그 정도면 맛있게 먹은 거거든요?”
“정말 맛있는 것을 먹었을 때, 네 반응 자체가 달라. 반나절 넘도록 입맛을 다시며 극찬을 하던 네가 그냥 맛있다, 로 끝내버리다니. 왕궁 요리사 체면이 말이 아니군그래.”
“…흥!”
나는 깐족거리는 그의 말을 못 들은 척 고개를 팩 돌려버리고 닭꼬치를 크게 베어 물었다. 곧 금세 한꺼번에 많이 볶아낸 칠리새우 볶음을 네모난 종이 그릇에 담아낸다. 앞줄부터 순서대로 하나씩 받아가면서 빠르게 줄어든다. 물론 줄어드는 만큼 우리 뒤에 꼬리를 물고 서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빨리 먹고 싶다. 냄새 봐. 저거 열 개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입에 침이 고이는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칠리새우 볶음을 먼저 받아간 사람들이 한입 먹고 너나 할 것 없이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너무 맛있다고, 하나 더 사가자고 다시 줄을 서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니까 더 입술이 바짝 말라갔다.
미리 초벌구이해놓은 칵테일새우를 다시 튀기는 시간이 길었다. 그렇게 세 번 정도 대량으로 볶아 팔고 나서 딱 우리 앞사람이 마지막 그릇을 받아간다. 이제 저 새우가 튀겨지고 칠리소스에 볶아지면 가장 먼저 우리가 받을 수 있다.
‘배고파, 배고파.’
분명 맛있는 스테이크를 먹고 왔는데도 그 맛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다. 유난히 붉은 칠리소스의 색감과 냄새가 내 모든 감각을 집중시켰다.
“몇 개 드릴까요, 손님?”
“한…….”
“네 개.”
내 말을 자르고 파이가 대신 대답한다. 그래서 두 눈을 둥그렇게 뜨고 그를 올려다보자 굉장히 오만한 표정으로 나를 마주 본다.
“왜?”
“…파이도 먹게요?”
“아니.”
“그런데 왜 네 개나 사요?”
“하나는 아쉬울 거고, 두 그릇쯤 비우면 방금 네가 먹은 맛이 사실인지 궁금해할 것 같아서. 그걸 증명하려면 세 개는 있어야지.”
“그럼 나머지 하나는 어쩌라고요?”
“우리 주방장에게 연구하라고 보낼 참이다. 네 입맛에 최대한 맞춰보라고 해야지. 그리고 아까 열 개도 먹을 수 있을 것 같다며.”
날 너무 잘 아는 파이다. 그렇지 않아도 한 그릇만 먹기엔 너무 아쉽겠다고 생각했는데.
미리 돈을 지불하고 정말 네 그릇을 건네받은 파이가 그중 한 그릇을 순식간에 사라지게 했다. 그리고 세 그릇 중 한 그릇만 내게 주었다.
나는 혹시나 떨어트릴까 봐 두 손으로 꼭 쥐고 근처의 빈 테이블에 올려놓은 뒤 자리에 앉았다. 파이도 내 옆에 나란히 앉아 두 개의 그릇을 멀찍이 내려놓고 내 앞에 놓인 그릇을 더 당겨주었다.
“어서 먹어봐.”
“잘 먹을게요.”
어쩜 이렇게 반지르르한 표면을 자랑하는지. 바싹하게 튀겨진 새우도 내가 먹던 새우튀김보다는 튀김옷이 얇았다. 해산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도 이건 정말 맛있어 보인다. 나는 일단 눈으로 감상한 뒤에 꼬지로 새우 하나를 찍어 조심스레 베어 먹었다.
“…응! 응응!”
맛있다. 진짜 맛있었다.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바삭한 튀김옷과 야들야들한 새우의 속살이 입안에 흘러와 칠리소스와 함께 어우러지는 그 조합이 대단했다. 새우튀김은 타르타르소스가 아니라 칠리소스와 굉장히 어울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입맛엔 이게 정답이었다.
역시 칠리소스가 진리야!
“오랜만에 보는 것 같군. 그 표정.”
미각과 후각을 제대로 느끼면서 황홀한 표정으로 칠리새우를 찬양하다가 움찔했다. 귀가 녹아내릴 정도로 달콤한 음성으로 중얼거리는 그의 말에 왜 이렇게 또 설레는 건지. 입안에 새우를 가득 담은 채라 열심히 오물거리면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기만 했다.
그때 파이가 내게 손을 뻗어와 또 어깨가 바짝 굳어버렸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내 입가에 묻은 소스를 닦아내 주는 그의 행동에 기시감이 든다.
“기억난다. 네 이 표정. 프리센 왕국의 칠리 핫도그를 처음 먹었을 때도 이런 얼굴이었어. 그리 맛있나?”
아, 나도 기억났다. 가출에 실패하고 그와 함께 프리센 왕국에 가서 핫도그 가게에 갔던 그 날. 첫날밤을 보낸 이후에 내가 아는 파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내게 다정하게 굴던 그 모습도.
이미 처음부터였다. 내가 파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이 심장에 품을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을 때가. 그를 정말 많이 사랑하고 있음을, 오로지 그만이 내 심장을 움직일 수 있음을.
여태껏 그에게 못되게 굴었던 미안한 마음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또 여전히 나만 바라봐주는 그가 너무 고마워서 울컥했다.
“치즈……?”
나도 모르게 커다란 눈물방울들이 뺨을 타고 미끄러지듯 하강한다. 내게만 상냥한 그가 너무 사랑스럽다. 한결같이 나만 바라봐주는 그 매혹적인 집착이 너무도 예뻤다. 그는 내 온몸을 흠뻑 적실 정도로 갑자기 퍼붓는 폭우다. 늘 피하기도 전에 나를 덮쳐서 속수무책으로 당해버리니까.
“이상하군. 눈물을 보일 상황은 아닌 것 같은데. 울지 마라. 네가 울면 이 세상을 전부 부숴버리고 싶은 충동이 느껴져.”
덕분에 순간적으로 눈물이 쏙 들어가 버렸다. 그래서 내 젖은 뺨을 닦아내 주는 그의 손을 밀치고 고개를 돌린 채 코를 훌쩍거렸다.
“이 새우가 너무 맛있어서 그래요. 세상을 부수면 나는 어떻게 살라고? 그럼 이 칠리새우 볶음을 다시 먹을 수도 없잖아.”
“알았다. 네가 허락하지 않는 한 그럴 일은 없도록 노력하마.”
“어? 치즈!”
입술을 불퉁하게 내밀다가도 칠리새우의 맛에 다시금 기분이 풀리고 있던 찰나였다. 어디서 레이라의 목소리가 들려와 고개를 돌렸다. 레이라도 칠리새우볶음을 사 먹으려고 하는지 에이든과 함께 줄에 서 있었다.
“레이라! 너도 먹으려고?”
“응.”
내 옆에 앉아있는 파이를 슬쩍 쳐다본 레이라의 얼굴에 의아함이 담긴다. 아마 리브엘과 데이트를 하던 중으로 알고 있을 테니까 놀랐겠지. 나는 그저 해맑게 웃으며 레이라에게 손짓을 했다.
“이리 와. 여기 미리 사둔 게 있으니까 같이 먹자!”
그렇게 우리 넷은 오랜만에 또 합석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칠리새우 볶음 세 그릇이 전부인 테이블이 썰렁하게 느껴졌는지 파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음식들 몇 개 더 가져오마. 먹고 있어.”
“이상한 거 사오지 마요. 아까 그 애벌레 같은 거.”
“알았다.”
파이가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나 해서 강조했다. 그런 나를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그가 자리를 떴다. 완전히 멀어지고 나서야 레이라는 자못 비장한 표정으로 내게 상체를 숙여 작게 속삭였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래서 나는 꼬지로 칠리새우를 깨작거리며 시선을 피했다.
“뭐가?”
“오늘 비플라츠 공작 각하와의 데이트라며. 그런데 왜 각하가 아닌 저분이 너와 함께 있는 거냐고. 그것도 축제 야시장에.”
“으응……. 리브엘이 급한 사정이 생겨서 식사만 하고 헤어졌거든. 그러다가 우연히 파이를 만나서 오게 된 거야.”
아마 레이라에게 아까 있었던 사실 그대로를 털어놓는다면 경악할지도 모른다. 오늘 같은 날에 레이라를 충격에 빠트리고 싶지 않았다.
내 설명에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수긍하던 레이라가 아까보다 조금 더 호기심을 담아 다시 물었다.
“데이트는 어땠어? 어디 갔었는데?”
“왕궁에 건국기념제 때만 예약을 받아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더라고? 거기 다녀왔어.”
“왕궁?! 아, 그거 소문으로만 들었었는데. 거기는 청혼하기 위해 데리고 가는 곳이라고 유명하거든.”
“…처, 청혼?”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어느 정도 이해는 갔다. 리브엘이 아무 목적 없이 나를 왕궁까지 데려가진 않았을 테니까. 아예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던 거였구나.
“그래서 각하하고 무슨 이야기를 했어? 되게 아쉬워하셨겠네. 첫 데이트라 분명 준비를 많이 했을 텐데.”
“그냥 평소랑 같았지.”
“별로였어?”
“음… 글쎄?”
나는 레이라의 옆에서 귀를 쫑긋 세우며 우리 대화를 듣고 있는 에이든을 흘겨봤다. 눈치껏 좀 빠지라는 눈빛을 보내자, 헛기침하며 자리에서 일어난 에이든이 자리를 피해 주었다. 덕분에 둘만 남은 자리에서 나는 잠시 머뭇거리며 고민했다.
대체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 할까?
“사실은… 고백할 게 있어.”
“고백? 나한테?”
“내 진심. 그거 인정하기로 했어. 네 말이 맞아. 나, 파이가 좋아. 얄미워서 어떻게든 내가 아픈 만큼 복수하려고 괴롭혔었어. 그런데…….”
부담스러울 정도로 두 눈을 반짝거리며 레이라가 어서 더 말해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거린다. 나는 괜히 부끄러워져서 꼬지로 새우를 이리저리 뒤적거리며 목을 가다듬었다.
“뭐, 결국 그를 괴롭혀서 얻는 것도 없더라. 내가 더 속상해지고. 네 말대로 마음을 부정한다고 해서 잊을 수 있는 게 아니었어.”
“잘했어. 아주 잘했어! 우리 치즈가 이렇게 기특한 생각을 다 했네? 너무 잘됐다!”
나보다 더 기뻐하는 레이라가 손뼉까지 치며 활짝 웃는다. 그래서 나도 볼을 발갛게 물들인 채 어깨만 으쓱거렸다.
“그래서, 둘이 어떻게? 혼인해? 얘기된 거야?”
“…아니, 아직.”
“아직이라고?”
“아니… 원래 내가 딱 계획하던 게 있었는데…,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발생해버려서.”
그러자 레이라가 나보다 더 실망이 역력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곧 기다렸다는 듯 에이든과 파이가 음식들을 양손 가득 들고 온다.
“치즈. 네가 좋아할 만한 거로 골라왔다. 먹어봐.”
내 앞에 접시 하나를 가까이 당겨주는 파이가 다정하게 미소를 짓는다. 주위가 시끌벅적하고 음악 소리도 섞여 난장판이나 다름없는데도, 그의 목소리가 유난히 귀에 박힌다. 나비가 꽃을 찾는 것처럼… 내 온몸의 감각들이 그에게 반응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