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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한 번만 해요, 그거-108화 (108/132)

# 108화

심장이, 내 것 같지 않게 뛴다. 손가락 끝이 저릿해질 만큼 혈액이 빠르게 돌아 어지러울 정도다. 내게 그 열정적인 시선을 고정한 파이가 나를 안아 든 채 침실로 향한다.

걱정 반, 기대 반. 스스로 제어할 수 없을 만큼 고양된 감정은 사고라는 것을 마비시켰다. 밀어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의 황홀한 미소에 아무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너답지 않군. 왜 그렇게 겁을 먹었지?”

혹여 부서질까 천천히 침대 위에 나를 내려놓는 그가, 작은 크기의 침대를 한번 훑어보고는 한숨을 내쉰다. 혼자서 자기엔 적당한 곳이지만 저 커다란 덩치와 함께 누우면 좁은 그런 공간이므로.

“아무래도 침대부터 바꿔야겠어. 네가 한 바퀴만 굴러도 떨어지겠다.”

“나 이제 굴러서 떨어질 나이 아니거든요? 내가 얼마나 얌전히 자는데.”

언제까지 나를 어린아이처럼 볼 참인지. 반년간 이곳에서 떨어진 역사가 없었건만.

“그래? 그럼 어제의 나는 헛것을 본 모양이군. 아니면 너처럼 꿈을 꾸기라도 했던가.”

“…그게 무슨 말이에요?”

어이없다는 듯 콧방귀를 뀌다가 어제를 언급한 그를 의아한 눈으로 올려다 봤다. 그러자 은근슬쩍 내 위로 올라타는 파이 때문에 나 역시 은근슬쩍 엉덩이를 들썩거리면서 뒤로 도망갔다. 하지만 내 움직임을 눈치챈 그가 내 왼쪽 발목을 잡는 바람에 더는 피할 수가 없었다.

“이, 이거 놓…….”

“깊게 잠든 어제의 너는 이 침대에서 무려 세 번이나 굴러떨어질 뻔했지. 만약 내가 받아주지 않았으면 크게 다칠 수도 있었어.”

“내가요?”

그의 손에 잡힌 발목을 빼내려고 애를 쓰다가 기억에도 없는 이야기를 꺼내는 파이를 향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제 내가 꿈도 꾸지 않고 깊은 잠에 빠지긴 했었다.

하지만 분명 지난 반년간은 내가 잠들던 그 자세 그대로 잠에서 깨곤 했었다. 이건 뭐 내가 직접 확인하지 못하는 경우라 그의 말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판단할 수가 없다.

“네가 보지 못한 일들을 믿지 못하는 마음은 알겠다만, 내가 어제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아나? 예전처럼 침실에 마력을 걸어놓을까 했지만 네가 그 사실을 알게 되면 화를 낼까 봐 차마 하지 못했다.”

나에 대한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던 그다. 내 안전에 대해서라면 이 치치르자 왕국 전체에 보호 마법을 걸고도 남을 이라는 것도 안다. 어제 밤새 내 방에서 잠든 나를 어쩌지도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었을 그를 떠올리면 왠지 웃음이 났다. 어제 내게 무슨 짓을 했냐며 화내고 따져야 할 상황인데도 어이가 없어서 그런지 입꼬리가 씰룩거리기만 했다.

“그럼 지금은 내가 화낼 걸 몰라서 이렇게 나를… 읏!”

내 발목을 들어 올린 그가 신발을 벗겨내면서 발등에 입을 맞춰온다. 아까 목욕을 하긴 했지만 외출했다가 돌아와서 깨끗하지 않은데. 그보다 말랑한 입술이 닿은 발등이 화끈거려 몸이 바르르 떨렸다. 입술을 떼어내면서 눈동자만 들어 올려 나와 시선을 맞추는 그의 눈빛이 지독하게도 관능적이었다.

“치즈.”

“으…. 하, 하지…….”

“아까도 말했지만 네가 원하지 않는 이상 억지로 하진 않아. 그저 네가 기뻐할 수 있는 일을 하고자 하는 것뿐이야.”

“그게 그거잖아!”

“…아? 나와 몸을 섞는 것이 네가 기뻐할 수 있는 일인 건가?”

저, 저 음흉한 드래곤! 하여간 능청스러운 건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다. 미소를 띤 그가 곧 발목부터 타고 올라오는 그의 손이 종아리를 잡아 쥐어 조심스럽게 마사지를 시작했다. 종일 밖에서 서 있기만 한 내 다리는 이미 퉁퉁 부은 채다. 매일 밤 내 손으로 마사지를 해서 풀긴 했었는데 어제는 그대로 잠이 드는 바람에.

“다리가 많이 부었어.”

“일하면 누구나 다 그래요. 어쩔 수 없는 거라고요.”

“바닥이 푹신한 신발을 하나 제작해야겠다. 이러다가는 뼈도 상해.”

일할 때는 모르는데 저택으로 돌아와 긴장이 풀리면 다리가 욱신거리곤 했다. 그렇지 않아도 요사이 심해져서 마사지를 받으러 가야 하나 고민하고는 있었는데.

“으, 아파요. 아…….”

파이의 손이 또 얼마나 매운지. 근육이 아파서 그러는지는 몰라도 그의 손이 지나간 곳이 찌릿찌릿 전기가 흐르는 것 같았다. 식은땀이 이마에 맺힐 만큼의 통증이 느껴져 어깨를 바르르 떨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내 목구멍에서 나오는 신음이 어딘지 모르게 야릇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 같아서 최대한 참으려 애를 썼다. 하지만 그게 어디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었던가.

“윽, 응, 으흑! 아프다고, 흐읏…. 아아.”

단단하게 굳어버린 근육을 쥐어짜는 느낌이다. 온몸이 경련하듯 떨리면서 눈물을 찔끔 흘리는데도 그는 내 반응만 유심히 살피며 종아리를 열심히 조몰락거렸다. 거침없는 손놀림에 기운이 쭉쭉 빠지는 기분이다. 결국, 나는 후들후들 떨리는 팔로 몸을 지탱하기 버거울 정도로 힘이 빠져서 그대로 침대에 누워버렸다.

“아파, 흑, 아프… 아흑!”

그러거나 말거나 반대쪽 종아리도 마사지를 시작하는데 허리가 절로 비틀리고 나도 모르게 발버둥을 치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손이 점점 위로 올라와 허벅지를 매만지기 시작했음을 뒤늦게 깨달아버렸다. 그것도 아까부터 배어 나온 애액 때문에 질척하게 젖은 속옷을 스치는 그의 손가락에 의해서.

“이젠 통증도 쾌감으로 느끼는 건가?”

“아, 아니야!”

“어쩐지 네 체취가 짙어졌다 했더니 이유가 있었군. 언제부터?”

다 알면서 모른 척 내 대답을 유도하는 그를 찌릿 노려봤다. 그러나 그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내 얇은 속바지를 손쉽게 벗겨내서 깜짝 놀랐다. 속바지 안에는 속옷뿐이고, 이미 드레스 치맛자락은 허벅지 위에 모여 우그러져 있는 상태다. 정말 아차 싶었다. 재빨리 드레스를 아래로 내리려고 손을 뻗었으나, 내 손이 그의 손에 잡혀 옴짝달싹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뭐, 하려고요?”

“혼자 손으로 푸는 건 영 성에 차지 않는다며. 도와준다고 했잖아.”

“…대체 뭘 도와, 악! 버, 벗기지 마요!”

슬프게도 아까 너무 마사지에 힘을 썼더니 그의 손힘을 막아낼 재간이 없었다. 아무런 방해도 느끼지 못한다는 듯 간단하게 내 속옷을 벗겨낸 그가 대충 뒤로 던져놓은 채 씨익 웃었다. 그 미소가 왜 이렇게 오싹한 지.

“내가 하… 하지 말라고 했어요, 분명. 손대지 말라고.”

“말했듯 너를 범할 생각은 없어. 네가 원하지 않는 이상. 다만 네가 너무 욕구가 쌓인 것 같아서.”

차마 아니라고 반박할 여지가 없다. 마치 내가 식사를 할 때부터 이미 무슨 생각을 했는지 다 알고 있다는 눈치라서. 그래서 그저 목구멍에 열이 홧홧하게 올라 두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기 바빴다.

그사이에 내 위로 올라타는 그의 검은 그림자가 나를 덮쳐와 바짝 긴장했다. 하지만 그는 머리맡의 베개를 꺼내와 내 뒤통수에 넣어주기만 했다. 물론 그 뒤로 내 드레스 치맛자락을 허리 위로 올려서 홀딱 벗은 하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버렸지만.

“액이 꽤 많이 흘렀어. 침대를 적시겠군.”

내 하체를 빤히 내려다보는 그의 뜨거운 시선에 나는 두 허벅지를 바짝 모아 붙였다. 그리고 어떻게든 가려보려고 떨리는 손으로 치맛자락을 말아 쥐어 아래로 내렸다.

“그, 그런 말을 왜 하는 거람?”

“가리지 마. 그게 더 자극되니까.”

아까보다 조금 목소리가 갈라진 것 같은데. 이거 위험한 거 아닐까 싶다. 아아, 내 몸은 분명히 손가락만으로 만족하진 못할 것이다. 정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겠고.

괜히 울적해진 사이에 그가 내 무릎을 활짝 열어서 또 뺨이 뜨끈해졌다. 서늘한 공기가 열기를 머금은 은밀한 곳에 내려앉아 엉덩이를 움찔거렸다. 그의 적나라한 시선에 꽃잎 사이가 오므라들면서 꽉 조여지는 게 느껴진다.

“파이…….”

“여기, 빨간 꽃망울이 활짝 피었다.”

집중하듯 한 곳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그가 엄지손가락으로 봉긋하게 솟아오른 클리토리스를 가볍게 건드린다. 순간 비명을 지를 뻔했다. 쟤는 언제 저렇게 잔뜩 흥분해서는! 내 몸의 한 부분이지만 정말 눈치도 없구나 싶다.

“흐읍.”

“그렇게 이를 깨물면 이가 상한다고 했잖아. 참지 않아도 된다. 차라리 이불이라도 물어.”

그러면서도 클리토리스를 가볍게 문지르는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다. 결국, 달달 떨리는 손으로 이불을 겨우 움켜쥐어 당겨서 입을 막았다. 허공에 뜬 두 허벅지는 아마도 그가 마력으로 무슨 조처를 했는지 움직여지지 않았다. 다만 서서히 치밀어 오르는 쾌감에 경련하듯 떨고 있었다.

“흡, 흣! 아흑!”

“쾌락에 취한 네 표정은 세상 그 무엇보다 아름다워. 네가 가장 기뻐하는 모습이거든. 달콤한 신음은 세이렌의 노랫소리보다 더 황홀하지.”

“그… 흑, 그만…….”

“아직 모자라잖아. 그리고 너는 한 번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걸 벌써 잊은 건 아니겠지?”

하체에서 치미는 전율이 정수리를 수없이 두드린다. 시야가 희미해지면서 머릿속은 엉망으로 물들었고, 오랜만에 느끼는 희열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클리토리스를 매만지던 엄지로 애액이 흘러나와 미끌거리는 질구를 가볍게 문지를 때는 눈앞이 번쩍했다.

“아……!”

아랫배가 거친 파도처럼 크게 일렁거린다. 늘 상상으로만 애타게 기다리던 그 쾌감에 도달하려면 끝까지 가야 했지만. 흥건한 물줄기를 이루는 계곡 사이를 어루만지던 그가 다시 젖은 손가락으로 클리토리스를 자극했다. 아까보다 물기를 더 잔뜩 머금은 질척한 소리에 등줄기가 오싹해졌다.

“전보다 더 감도가 좋아진 것 같은데. 설마… 그사이에 다른 놈과 이런 짓을?”

“흑, 아니라고! 이 멍청… 흡!”

순간 클리토리스에서 찌릿한 열통이 꿈틀거리다가 빛처럼 전신으로 퍼져 숨이 훅 멈춰졌다. 거대한 불덩이에 타올라 하얀 재만 남은 심장이 유열에 흠뻑 젖어 잘게 진동했다. 백야에 머문 시야는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전신의 근육과 신경이 저릿해 통증에 시달리는 것 같았다. 물론 그 통증은 너무도 지독한 쾌감이 한순간 터져버려서 생긴 거지만.

온몸을 비틀어 쥐어짜는 듯한 전율이 서서히 가라앉으면서 겨우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촉촉하게 젖은 눈가에서 눈물이 땀과 함께 흘러내려 침대 시트와 드레스가 축축해진 기분이다. 겨우 흐트러진 초점을 맞추자 나를 내려다보는 파이의 얼굴이 시야에 한가득 들어섰다.

꽤나 만족스럽게 웃는 미소는 소름이 끼칠 만큼 뇌쇄적인 표정을 자아냈다. 한번 절정에 치솟은 몸은 그의 본심이 새겨진 미소에 위태로움을 느꼈다. 그가 조금만 이성을 잃는다면, 그 즉시 나는 그에게 뼈도 남지 않고 전부 잡아먹힐 것이다.

“비… 비켜요.”

“아직 안 끝났어.”

“…아, 안 한다고 했잖아. 안 한다며!”

“나 말고 너. 나는 충분히 참을 수 있다.”

금방이라도 나를 덮쳐버릴 의지가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는 주제에! 어디서 저런 뻔뻔한 거짓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뱉어내는지.

“나는 됐으니까 이제 그만…….”

이미 급격하게 피로해진 터라 금방이라도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새 레시피를 아직 완성하지 못했는데.

하지만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두 허벅지를 더 벌려 그사이에 얼굴을 파묻는 그의 행동에 경악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뜨거운 숨결과 축축한 혀로 꽃잎을 가로질러온다. 그 바람에 순간적으로 격정이 휘몰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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