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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한 번만 해요, 그거-8화 (8/132)

♬  #8

지쳐서 축 늘어진 나를 꼭 끌어안으면서 어깨와 쇄골에 입을 맞춰오는 파이가 연신 허리를 바삐 놀렸다. 그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질수록 불안해지는 건 내 쪽이다.

“흐으, 그만요. 그만 해요. 그만하라고!”

결국, 내가 빽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그가 움직임을 멈췄다.

“왜.”

“왜라니. 그러다가 나 정말 죽어요. 내가 죽길 바라는 거예요?”

“겨우 이 정도로 죽지는 않아.”

“…나는 인간이라고! 드래곤이 아니야!”

그제야 아쉬운 한숨을 뱉어내는 그가 부들부들한 속살에 욱여넣은 제 분신을 빼냈다. 미끈한 액이 주륵 흘러내려 엉덩이와 허벅지를 적셔서 끈적하다. 하지만 파이는 개의치 않고 내 옆에 누워 나를 품에 꼭 껴안는다.

“그렇게 힘들었어?”

오늘따라 참 다정하게 군다. 커다란 손으로 내 허벅지를 조물조물 주물러주기까지. 나는 이렇게 지치는데 그는 왜 저렇게 멀쩡한 거람?

“며… 크흠, 지금 몇 시예요?”

“일어나기엔 조금 이른 시간이긴 해.”

“그럼 일어나야지.”

생각해보니 이러고 밍기적거릴 시간이 없다. 여기가 수도에서 조금 떨어진 외곽이긴 하지만 최대한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가려면 서둘러야 했다. 그리고 지금 일어나지 않으면 종일 그의 품에 매달려 떨어지지 않을 것 같으니까.

나는 팔꿈치로 푹신한 침대를 밀어내며 상체를 일으켜 세우다가 다시 풀썩, 쓰러져 버렸다.

몸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질 않아. 정말이지, 저 짐승이 더 달려드는 바람에!

그러다가 이불이 허리 아래로 내려가면서 그의 매끈한 근육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또 넋 놓고 빤히 탐색했다.

정말 교과서적이고 이기적인 몸매다. 흠하나 없이 완벽한 근육을 보고 있노라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저 대단한 몸에 내가 안겼단 말이지.

다부진 가슴에 귀엽게 매달린 유두조차 맛있어 보인다. 빨아보고 싶어. 어제 이것저것 다 했었어야 하는데.

처음이라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이제 와 빨아도 되냐고 물어보기도 그렇고.

“만지고 싶으면 만져도 돼.”

내 시선을 눈치챘는지 그가 내 손을 잡아 제 가슴 위에 얹어놓는다. 나는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손가락으로 볼록 튀어나온 유두를 살살 문질러보았다. 말랑하던 자그마한 돌기가 금세 단단하게 세워진다.

신기해.

나는 다시 눈동자를 위로 굴려 그를 쳐다봤다. 하지만 다시 황급히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그의 눈빛이 타들어 갈 것처럼 너무 뜨거워서 다리 사이가 화끈거려 얼굴에 열기가 확 몰릴 만큼 부끄러워져서.

“치즈.”

“으응?”

“한 번만 더 하자. 금방 끝낼게.”

말하면서 내 허리를 감싸 안아 당기는 그가 내 한쪽 허벅지를 잡아서 제 허리에 걸쳐놓는다. 아직 잠에서 덜 깬 채라 격렬한 키스와 함께 벌어진 하체를 빠르게 파고들어 오는 그를 막을 수는 없었다.

“으응! 응! 흣!”

아까처럼 누운 자세가 아니라서 그런지 또 다른 낯선 쾌감에 제어되지 않는 신경이 날뛰었다. 그 손가락 하나조차 버겁게 들어가던 곳에 그보다 네다섯 배는 더 굵은 남근이 꾸역꾸역 비집고 들어왔다. 욱신거리면서도 흥분이 차올라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겨우 그 물건 하나에 정신이 까마득해질 정도로 아찔한 쾌락을 느끼는 것이 꼭 꿈만 같았다. 덕분에 등줄기에 소름이 확 돋아나 뒷골이 짜릿해졌다.

어제부터 느낀 거지만, 내가 그런 야한 신음을 내게 될 줄은 몰랐다. 거칠었던 숨소리가 섞이던 것도. 땀에 젖은 몸을 맞대고 문지르면서 입을 맞추고 혀를 섞은 것도. 몸을 활짝 열어 그를 받아들인 것도.

안 그래도 뜨거운 얼굴이 더 화르륵 불타는 느낌에 정수리가 다 화끈거렸다. 다 좋은데, 너무 좋은데… 너무 힘들어.

“흑, 금방, 끝낸다고… 그랬, 아! 흑.”

분명 가만히 그가 주는 쾌락을 얻어내는 것뿐인데. 체력이 너무 달린다. 급격하게 지쳐 또 정신을 놓아 버릴까 봐 무서워졌다.

결국, 내가 훌쩍거리면서 눈물을 보이고 나서야 그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무언가 자기 뜻대로 되지 않아서 안절부절못하는 느낌이다.

“울지 마라. 그만할게. 응? 착하지.”

다행히 이번에도 그가 밀어붙이지 않고 제 것을 뒤로 물렸다. 순간 부끄러워서 차마 그의 얼굴을 마주 볼 수가 없어 몸을 반대로 휙 굴렸다. 그러자 또 연신 작은 웃음소리를 흘리는 파이가 내 팔뚝을 토닥토닥 가볍게 두드려주며 어깨에 입을 맞춰온다.

“식사는 뭐로 준비할까? 생각나는 게 있으면 말해.”

“치즈파이요. 크림치즈파이. 그거 먹을래요. 어제부터 먹고 싶었어. 준비해줘요.”

“알았어. 준비하라고 할게. 쉬고 있어. 조금 이따가 데리러 올게.”

순간 또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늘 내게 다정하던 남자긴 했는데 오늘따라 조금 더 과하게 상냥하고 자상한 것 같다.

기분 탓이겠지? 응. 그럴 거야. 내가 과민하게 느껴서 그러는 걸 거야. 몸을 섞었다고 그새 정이 더 들어버린 걸지도 몰라. 빨리 여길 떠나야겠어.

날뛰는 심장을 진정하면서 호흡을 고르고 머릿속을 비우려고 노력했다. 그 사이에 침대를 벗어난 파이가 방문을 조심히 열고 밖으로 나갔다.

소리 없이 방문을 닫는 것까지 확인한 뒤에야 나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려 덮어 버렸다. 그리고 민망함을 가득 담아 이불을 발로 팡팡 걷어차다가 허리가 욱신거려 눈물을 찔끔 흘렸다.

어제. 그리고 밤. 처음 그가 내 안에 들어왔을 때는 정말 몸이 찢어질 듯 아팠었다. 그러나 몇 번 맛을 알고 나니 세상천지에 그런 쾌락이 또 어디 있나 싶을 정도였다.

겨우 여성과 남성의 몸이 하나로 이어지는 것뿐인데. 비어 있는 곳을 그가 채워준 것뿐인데 정말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와 버려서 당황스러울 뿐이다.

‘…또 해보고 싶어.’

방금도 힘들어서 눈물까지 보였는데도 이상하게 내 몸은 그를 더 원했다. 사실 그가 멈춰주지 않기를 아주 조금, 바랐다. 어제 정신을 잃기 직전의 그 소름 돋을 만큼 치솟던 절정을 또 한 번 느껴보고 싶기는 했다.

그런데 그는 왜 나하고 세 번이나 한 걸까? 나는 한 번만 같이 자자고 했는데.

하여간 그 야릇한 행위의 감각이 시도 때도 없이 치솟아 올라서 민망함에 발버둥을 쳤다. 물론 또 그러다가 허리 근육이 삐끗해서 아야야, 죽는소리를 냈지만.

혼자 이리저리 침대 위를 뒹굴다가도 야한 생각에 얼굴을 잔뜩 붉히고는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질렀다. 그리고 한숨을 푹 내쉬던 때에 노크 소리가 들려오면서 방문이 조심스레 열렸다.

“치즈. 식사 준비 다 되었다는데 우선 씻을까? 아니면…….”

“식사부터요.”

이대로 전부 씻어버리면 어제 그의 흔적까지 다 없어질까 봐 싫었다. 그래서 주섬주섬 침대에서 일어나 그가 입혀주는 속옷과 잠옷을 얌전히 입고 방을 빠져나갔다.

나란히 복도를 걸어 식당까지 가는 길도 멀게 느껴진다. 차마 그를 볼 용기가 나지 않아 두 주먹을 꾹 말아 쥐고 조금 더 걷는 속도를 내어 식당에 먼저 들어섰다.

허벅지가 좀 당기고 다리 사이가 조금 부어 있어서 아려오긴 했지만 참을 수 있어.

식당 안에서는 코에 가득 들어차는 치즈향과 데워서 느끼해진 우유 냄새 같은 향기가 식당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고소함과 새콤함이 절로 느껴져 입맛이 돌았다.

맛있는 냄새.

나는 날름 내 자리로 촐랑촐랑 뛰어가 바로 착석을 했다. 이어서 파이가 내 대각선 옆자리에 앉았다. 그러고 나서야 요리를 챙겨다 주는 집사가 식탁 정 가운데에 커다란 파이를 내려놓았다.

“우와!”

오늘따라 향기도 그렇고 크기도 모양도 색깔도 참 마음에 들었다. 포동포동한 파이의 겉에 반질반질한 무언가가 발라져 있어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파이에게 물었다.

“이거 설마 꿀이에요?”

“응.”

“헉? 오늘 무슨 날이에요? 이 썩는다고 꿀도 못 먹게 하더니?”

꿀이라면 환장하는 내가 만날 꿀만 핥아 먹는다고 음식에서 꿀을 뺀 지 어언 5년째. 그는 참으로 독한 남자였다. 내가 먹고 싶다고 징징 짜고 울어도 몸에 좋지 않다며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단호하게 딱 잘랐었지. 그래서 아카데미 다닐 때 식사시간에 꿀만 나오면 그것만 미친 듯이 퍼서 먹었었다. 그런 나를 굶주린 곰 같다며 동기들이 한심하게 쳐다보긴 했었다.

아무튼,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눈썹을 휙 들었다가 내렸다.

사람이 하루아침에 바뀌었잖아?

“육체적 노동을 하면 단 음식으로 보충해줘야 한다더군. 그래서 네가 좋아하는 꿀을 듬뿍 넣으라고 했다. 마음에 드나?”

그 말에 또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육체적 노동이 뭘 뜻하는지 단번에 이해해버려서.

“거참 가, 감사하네요. 잘 먹을게요.”

그 뒤에 집사가 말없이 내 앞에 내 전용 그릇을 내려놓았다. 아기자기한 토끼 가족이 그려진 새하얀 접시. 내 수프 그릇과 컵과 이 앞 접시는 세트였다. 포크와 나이프와 숟가락의 손잡이에도 똑같은 토끼 가족이 그려져 있었다.

이 식기 세트를 제작하는 공방은 귀족들 사이에서 꽤 유명한 곳이었고, 이 ‘쪼꼬미’ 가족 세트는 그 공방에서 3년에 한 번씩 한정판으로 나오는 제품 중 하나였다.

토끼 이름이 쪼꼬미라니. 너무 귀엽잖은가!

제 작년에 아카데미에서 정보를 듣고 나서 파이에게 사달라고 애걸복걸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걸 구하기 위해 파이가 참 애를 많이 썼지. 그가 이 쪼꼬미 식기 세트를 직접 고르고 계산하고 들고 나왔다는 것 자체가 감히 상상이 안 된다. 그 아기자기한 공방에 단신으로 들어간 것도.

내가 따라가서 같이 보려고 했는데 굳이 나를 집에 놓고 혼자 다녀왔단 말이다. 그것도 조금 아쉬운 일화 중 하나였다.

하지만 오늘로 이 식기 세트도 안녕이다. 잘 있으렴. 네 주인은 오늘 떠난단다.

…아쉬우니까 숟가락만 가지고 튈까?

“어서 먹어. 배고플 텐데.”

파이가 작게 잘라져 있는 치즈파이 한 조각을 내 접시에 옮겨다 주었다. 그리고 내 손에 포크를 쥐여주고 내 물 잔에다가 따뜻한 우유를 가득 채워줬다.

우유에서 달달한 향이 느껴지는 걸 보니 여기에도 꿀을 탄 것 같다. 그래서 조금 심장이 욱신거렸다. 괜히 코끝이 찡해져서 눈물이 나려는 걸 겨우 참았다.

오늘이 마지막인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잘해주는 거냐고!

“맛은 어때?”

“…맛있어요.”

포크로 치즈파이를 뚝 잘라 콕 찍어 입에 넣자, 부드럽게 녹아서 입 안 가득 치즈향이 맴돌았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꿀의 달달함까지 더해 최고급의 맛을 자랑했다. 하지만 그 맛있는 걸 먹고도 신경은 다른 데에 쏠려있었다.

오늘따라 파이가 유난히 말이 많네. 부담스럽게 왜 저러는 거야?

상황이 거꾸로다. 늘 내가 조잘조잘 떠들고 파이가 듣기만 하면서 간간히 추임새를 넣어주곤 했었는데. 지금은 그가 내게 자꾸만 묻고 나는 거기에 단답형으로 대답을 해주고 있었다.

“간은 괜찮나?”

“네.”

“우유는 어때? 날이 추워서 데우라고는 했는데 네가 데운 우유 맛없어서 싫다고 했잖은가. 그래서 꿀을 넣었다.”

“응. 맛있어요.”

이런 식으로 말이다. 마치 ‘나 잘했으니까 칭찬해줘’라는 느낌이긴 하지만 설마 다른 사람도 아니고 파이가 그럴 리 없잖은가. 한두 살 애도 아니고.

자꾸 왜 저러나 싶어서 신경이 다른데 쏠리다 보니 정작 치즈파이의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최후의 만찬인데 정말 울적해지네.

“치즈.”

조금의 침묵이 이어지고 나는 포크를 입에 문 채로 혀를 굴려 치즈의 맛을 음미하는 척하고 있었다. 그런 나를 그가 조심히 부른다. 그래서 나는 대답 대신 눈동자만 굴려 그를 쳐다봤다.

“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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