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상태창이 달라졌다-123화 (123/277)

123화

50층에서는 우주적 존재들이 플레이어들을 위해 나름의 선물을 준비해 놨다.

그 선물이라는 게 우주적 존재와의 싸움이라는 것이 문제지만.

물론 내가 선물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적어도 다른 플레이어들과의 신경전이나 눈치 싸움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과.

우주적 존재들 역시 41층에서부터 50층까지 올라 온 플레이어들의 노고에 대해서 인정해 준다는 것.

덕분에 그 어떤 우주적 존재도 플레이어들이 자신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적어도 50층에 오른 순간 신변에 위협을 당할 일은 없다는 것이다.

보통의 플레이어들의 입장에서 잠시라도 부상이나 사망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건 확실히 큰 메리트이기도 하다.

어쨌든 50층에서 우주적 존재들은 플레이어들을 데리고 다소간의 '장난'을 치며 재미있게 놀다가 다음 층으로 올려 보내준다.

여기에서 플레이어가 싸워야 할 우주적 존재는 가장 낮은 격을 지닌 우주적 존재들.

쉽게 말해서 그들은 높은 격의 우주적 존재들로부터 '짬'을 맞은 것이다.

그들에게도 그들 나름의 서열이 존재했고.

아마도 '나다 싶으면 나가라,'라는 문화가 존재하는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만만한 상대는 아니다.

낮은 격이라고 할지라도 그들 모두가 감히 플레이어로서는 넘볼 수 없을 만큼 강한 존재들이니까.

어쨌든 그들 역시 플레이어를 죽이려고 달려들지 않는다.

재미있는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듯.

혹은 어린아이와 어울려 주는 정도다.

'아무튼 50층은 사실상 통과하지 못하는 게 이상한 층이지.'

그렇다고 해서 모든 플레이어들이 우주적 존재들에게 넋 놓고 농락당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전생에서도 우주적 존재들과 대등한 싸움을 벌였던 이들도 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우주적 존재에게 그대로 농락당해 줄 생각은 없다.

'그게 바로 지혜의 수문장과 만나기 위한 마지막 단계지. 우주적 존재와의 싸움에서 활약하게 되면 초월의 격을 가진 우주적 존재들이 관심을 가지게 될 테지.'

그리고 다시 한번 내 실력을 객관적으로 판단해 볼 좋은 기회기도 하다.

적어도 동층 내에서는 내 실력을 가늠해 볼 정도로 강한 플레이어가 없으니까.

그렇게 잠시 후.

[플레이어 '이주성' 님을 우주적 존재 '낡은 검의 무사'가 소환합니다.]

[잠시 후 우주적 존재 '낡은 검의 무사'와의 싸움이 시작됩니다.]

나는 우주적 존재와의 싸움을 위해 전장에 소환됐다.

***

"흐음…."

한 남자가 내 앞에 서 있다.

그가 바로 우주적 존재 '낡은 검의 무사'다.

하지만 저 모습은 낡은 검의 무사의 본래 모습은 아니다.

인간인 플레이어는 초월적 존재인 우주적 존재들의 본 모습을 마주할 수 없었으니.

잠시 껍질을 입은 채로 내 앞에 서 있는 것이다.

그리고 껍질을 입고 내 앞에 현신해 있는 덕분에 나는 그의 '육성'을 들을 수 있었다.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대단하더군."

그가 말했다.

아무래도 저 우주적 존재도 내 모습을 봤던 모양이다.

"내가 네 모습을 42층에서 본 게 얼마 전인데 벌써 50층에 와 있다는 말인가."

"그렇게 됐습니다."

내가 답했다.

아무래도 우주적 존재에게 반말을 건넨다는 건 나로서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내가 너에게 꽤 많은 어비스 포인트를 후원했는데. 만족했을지는 모르겠군."

"충분히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거짓말이다.

솔직히 너무 많은 후원을 받았으니 낡은 검의 무사라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

게다가 낮은 격이라면….

말할 것도 없지.

"허허허! 입 발린 소리도 잘하는구먼."

"뭐… 인사는 이쯤 된 것 같은데 시작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내가 말했다.

"허허…."

그 말에 낡은 검의 무사는 너털웃음과 함께 주변을 둘러봤다.

당연히 전장 저 밖에는 다른 우주적 존재들의 그림자 같은 형상이 드리워 있었고.

어서 싸움을 시작하라고 낡은 검의 무사를 재촉하고 있었다.

"그래. 그래야지."

그렇게 우주적 존재 낡은 검의 무사는 자신의 검을 치켜들었다.

이름 그대로, 그의 검은 낡은 검이었다.

하지만 겉모습에 속아서는 안 된다.

한 생명체가 우주적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억겁과도 같은 세월 동안 자신의 업적을 갈고 닦아야 할 것이고.

저 낡은 검은 그의 업적이 무기의 형태로 형상화되어 있는 것이다.

그 말은 즉, 그 어떤 값비싼 아이템보다 저 낡은 검이 가진 위력이 더 강하다는 것.

그때.

"자, 가겠네!"

낡은 검의 무사가 나를 향해 쇄도했다.

이렇다 할 스킬이나, 화려한 이펙트 같은 것은 없다.

역시 자신의 이름에 걸맞게 투박하기 그지없는 단순한 돌격이었다.

'자, 해 보자.'

나는 입꼬리를 비틀며 내가 가진 모든 능력들을 활성화시켰고.

뒤에서는 몰른이 나를 향한 버프를 시전했다.

[다수의 우주적 존재들이 흥미롭게 바라봅니다.]

[우주적 존재들이 어비스 포인트를 두고 내기를 시작합니다.]

[다수의 우주적 존재들이 10분 안에 싸움이 끝날 것이라고 장담하며 배팅합니다.]

당연히 내가 10분 안에 패배하리라는 쪽이겠지.

그렇다면 우선 저 기대감을 박살 내주는 게 급선무다.

타앗!

낡은 검의 무사를 향해 검을 날렸다.

오러 블레이드가 허공에 푸른 호를 하나 그려냈다.

"호!"

낡은 검의 무사의 입에서 짧은 탄성이 흘러나온 그 순간.

카아아앙!

오러 블레이드와 낡은 검의 무사의 검이 충돌했다.

'말도 안 되는군.'

단 일 합이었지만, 나는 우주적 존재의 힘에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저 가볍게 휘두른 것 같았건만, 오우거의 신체와 충격파, 그리고 뇌전검의 모든 힘이 합쳐진 내 일격을 너무도 가볍게 막아냈다.

아니, 막아낸 것을 한참이나 넘어서서.

콰아앙!

내 몸을 크게 밀쳐냈다.

"제법이로군!"

그러고 나서 낡은 검의 무사는 저런 말을 지껄여댔다.

내가 10분 이상 버틸 거라는 데에 걸었던 우주적 존재들이 탄식을 쏟아냈다.

'기다려라. 성질 급한 놈들아.'

내가 녀석을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무참히 질 정도로 나약하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 나의 실력이 객관적으로 봐도 탑에서 랭커들의 반열에 충분히 들어갈 수 있으리라는 것도.

'10분. 충분히 버틴다. 아니, 단순히 버텨 줄 수는 없지.'

우주적 존재들의 기대감을 한참이나 넘어선 활약을 보여줘야 비로소 지혜의 수문장의 관심을 끌 수 있으리라.

그저 낡은 검의 무사의 공격을 받아 내거나 피해내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능동적으로, 간혹은 빈틈을 노리는 날카로운 모습을 통해 우주적 존재들의 눈길을 끌어 줘야 한다.

다시 한번 두 개의 검이 충돌했고.

이번에 나는 쉽게 밀리지 않았다.

첫 번째 공방을 통해 낡은 검의 무사의 힘에 대해서 어느 정도 파악한 상태였으니까.

"헛!"

오히려 당황한 낡은 검의 무사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다시 몇 번의 공방이 오갔고,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우주적 존재의 공격을 어렵지 않게 받아내고, 흘려내며 오히려 내가 그를 향해 공격을 시도하는 장면들이 반복되어 펼쳐졌다.

1분, 2분이 흘렀고 어느덧 5분의 시간이 훌쩍 넘어갔다.

[소수의 우주적 존재들이 플레이어 '이주성' 님을 응원합니다!]

[다수의 우주적 존재들이 플레이어 '이강민' 님에게 어서 쓰러지라고 소리칩니다!]

"대단하군."

제법에서 대단으로 단어가 바뀌었다.

하지만 역시나 이 정도에서 만족할 생각은 없었으니.

카앙!

나는 그의 검을 쳐냈다.

'이번엔 이거다.'

타아아앙!

궁신탄영을 사용해 뒤로 크게 물러섰다.

뇌전검의 지속 사용 시간이 끝나기도 했고, 조금 더 화려한 쇼를 보여주기 위한 계획이었다.

곧바로 다시 궁신탄영을 사용해 낡은 검의 무사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 역시 조금은 놀란 기색을 보였지만, 그뿐이었다.

그의 침착한 눈동자는 단 한 순간도 나를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휘릭!

검이 정확히 나의 미간을 향해 쏟아졌다.

솔직히 나도 기겁할 정도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궁신탄영의 속도를 눈으로 좇는 것도 대단할 지경인데, 그 와중에 정확히 나의 미간을 노리다니.

파아앙!

나는 다급히 고개를 돌리며 그의 검을 피해냈다.

콰직!

이어서 그의 머리를 향해 발을 내질렀지만, 그는 한쪽 팔을 들어내 공격을 차분히 막아냈다.

나는 멈추지 않았다.

그 추진력을 이용해 허공에서 다시 한번 검을 휘둘렀다.

카아앙!

"호오!"

낡은 검의 무사가 내 공격을 능숙하게 막아냈다.

그의 입에서 감탄성이 터져 나왔다.

확실히 조금씩 달라지는 반응이 눈에 띌 정도였다.

어느덧 시간은 훌쩍 지나 8분을 넘어서고 있었으니.

내가 10분도 버티지 못하리라는 쪽에 걸었던 녀석들이 점점 초조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궁신탄영을 사용해서 전장을 바쁘게 오갔다.

앞에서 뒤로, 좌에서 우로.

이미 궁신탄영의 숙련도는 거의 완성된 수준이다.

이토록 빠른 속도로 움직이면서도 내가 노리고자 하는 부분을 정확히 공략했다.

그런 정신없는 공격을 몇 번 시도하고 나니 낡은 검의 무사도 조금은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하는 모양이다.

한두 번 정도야 내 움직임을 간파 할 수 있었다지만, 그 수가 열 번, 스무 번으로 늘어나고 내 공격 패턴이 다양해지며 그를 혼동시키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다시 한번 내 전생의 경험들이 제힘을 발휘했다.

살기 위해 익혀야만 했던 처절하고 악착같은 공격 패턴들.

남들은 굳이 시도도 해보지 않을 만큼 쓸모없어 보이는 작은 움직임들이 그에게는 크나큰 피로감으로 다가가고 있을 것이다.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우주적 존재에게 피로감을 느끼게 만들 정도로 복잡하고 현란하게 움직이는 당사자인 나의 피로감은 어떻겠는가.

말할 것도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야가 핑핑 돌아가고 현기증이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그럼에도 멈출 수 없는 것은 지금 이 순간 우주적 존재들의 반응이 가장 뜨겁기 때문에.

그리고 슬슬 높은 격을 지닌 우주적 존재들의 반응이 격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50층임에도 불구하고 콧대 높은 그 녀석들은 쉽사리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사실 메시지만 떠오르지 않았을 뿐 저곳 어딘가에서 내 모습을 훔쳐보고는 있을 거다.

자신의 격에 대한 오만할 정도의 자부심 때문에 '티'를 내지 않을 뿐이지만.

'이제 곧 초월의 격을 지닌 녀석들이 모습을 드러낼 거다.'

이제 10분까지는 고작 30초만을 남겨두고 있었고.

빠득!

나는 다시 한번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더욱더 바쁘게 궁신탄영을 사용하며 전장을 누볐고, 사방에서 낡은 검의 무사를 압박했다.

그때였다.

빠르게 움직이는 나를 향해 그의 검이 기묘한 궤적을 그리며 움직였다.

절묘한 궤도다.

나의 빈틈을 완벽하게 노리고 들어오는 일격이었다.

과연 아무리 나의 오랜 경험이라고 해도 우주적 존재가 쌓아 올린 격에 비하면 하잘것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날카로운 일격이었다.

그와 함께 우주적 존재들의 메시지들이 떠올랐다.

[다수의 우주적 존재들이 싸움이 끝났음을 직감하고 있습니다.]

[다수의 우주적 존재들이 플레이어 '이주성'의 노고를 치하합니다.]

[다수의 우주적 존재들이 플레이어 '이주성'의 실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소수의 우주적 존재들이 안타까운 마음에 탄식을 흘립니다.]

그만큼 그의 일격은 날을 간 일격이었으며.

낡은 검의 무사 역시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고 입꼬리를 비틀었다.

어떻게 보면 플레이어를 크게 죽이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깨버리겠다는 의지가 비쳐질 만큼.

하지만 저들의 모든 의문은 빗겨갈 수밖에 없었다.

이미 내가 궁신탄영을 사용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극도로 끌어 올린 초감각 때문이었다.

눈으로 보는 것과는 감히 비교도 할 수 없이 광범위하고 즉각적인 통찰력.

그리고 나는.

휘릭!

몸을 회전시키며 검을 내질렀다.

파직!

"……?!"

오러 블레이드가 낡은 검의 무사의 몸을 가르고 지나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