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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상태창이 달라졌다-122화 (122/277)

122화

가치란 그 대상에 따라서 늘 달라지는 법이다.

내가 아닌 다른 플레이어였다면, 여기 놓여 있는 장비들 하나하나가 어비스 등반에 있어서 큰 도움을 줄 만한 아이템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내게 저런 아이템들은 하등 쓸모가 없다.

가장 먼저 어비스에서 구입한 아이템은 모두 어비스 내에서만 사용할 수 있을 뿐이다.

'어차피 나는 어비스에서 오래 머무를 생각도, 이유도 없지.'

그렇다고 하여 내가 가지고 있는 아이템이 저 아이템을에 비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장비들은 사실상 탑에 현존하는 아이템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의 장비다.

그리고 마지막.

어비스에서의 내 목적은 하나다.

지혜의 수문장을 만나는 것.

만약 실력이, 혹은 장비가 부족했다면 눈앞에 놓여 있는 호화로운 아이템들에 시선을 뺏겼겠지만.

내 실력과 장비라면 어비스에서 오래 머무르게 될 일도 없으니, 어비스 포인트로 장비나 아이템을 살 이유도 없지 않은가.

'그러니 저것들은 허울뿐이다.'

나는 시선을 돌렸다.

"몰른. 따라와."

나는 비밀 상점 더 깊은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20분도 더 넘게 걸어가고 나니 장비들이 놓여 있는 화려한 선반들은 사라졌다.

그대 신 조금은 허름한 선반들이 죽 늘어서 있었다.

휘황찬란한 장비도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장면은 조금 전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스크롤인가.'

지금 끝없이 늘어진 선반에는 세상의 모든 스크롤을 모아 놓은 듯 셀 수도 없이 많은 스크롤들이 놓여 있었다.

나는 스크롤 몇 개를 집어서 내용을 살폈다.

별 볼 일 없는 스크롤들이다.

마을의 상점에서도 흔히 구입할 수 있는 흔한 것들.

하지만 실망할 이유는 없다.

내 직감상으로는, 이제 곧 진짜들이 나타날 것만 같았으니까.

그렇게 대충 30분 정도를 더 걸어 들어갔을 무렵.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스크롤 위에 그려 있는 붉은, 혹은 금빛의 문양들.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스크롤들이다.

나는 다시 스크롤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 내 예상이 정확히 맞아 들어갔다.

지금부터 진열되어 있는 스크롤들은 확실히 쓸만한 스크롤들이었다.

'이건 부활 스크롤…. 세상에 부활이라니.'

부활 스크롤이라면 확실히 눈이 돌아갈 만한 스크롤이었다.

가격 역시 엄청나다.

하나에 500만 어비스 포인트.

'그리고 이건… 24시간 무적 스크롤.'

24시간이나 무적 상태라면 분명 어비스에서 한 층을 무사히 오르게 도와줄 수 있을 만한 스크롤이다.

그 외에도 전투를 도와줄 수 있을 만한, 그것도 웬만한 아이템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탑의 등반을 '확실시' 시켜 줄 수 있을 스크롤들이 엄청나게 즐비해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해.'

말했듯 전투에 있어서는 지금 내 상태로도 충분하다.

내게 필요한 건, 고작 이런 게 아니다.

나는 혹시 모르니 스크롤 선반을 한참이나 더 살폈다.

내가 시선을 돌리면 스크롤에 대한 정보들이 떠올랐고, 시선을 돌리면 사라졌다.

그렇게 대략 한 시간을 넘게 스크롤들을 살폈을 때.

'이건….'

드디어 내 관심을 끌 만한 훌륭한 스크롤이 눈에 들어왔다.

'점프 스크롤.'

층을 그대로 뛰어넘을 수 있는 스크롤이었다.

'가격은… 1천만 어비스 포인트.'

한 층에 1천만 어비스 포인트가 필요한 셈이다.

현재 내가 가진 어비스 포인트로 총 8개를 구매할 수 있다.

이제 나는 44층에 올라설 테니 6개만 더 사면 곧바로 50층에 올라갈 수 있다.

지혜의 수문장을 만나기 위해 필요한 최소 포인트는 2000만.

'6개 정도는 구매해도 괜찮겠지.'

혹시 2000만 어비스 포인트가 지혜의 수문장을 만나기에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없다.

50층에서 다시 한번 어비스 포인트를 끌어모으면 못 해도 1천만 정도의 포인트는 획득할 수 있을 테니까.

'좋군.'

조금 더 둘러볼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점프 스크롤이야말로 내 목적에 가장 부합하는 아이템이었으니까.

빠르게 탑을 올라 지혜의 수문장을 만나는 것.

[점프 스크롤 6개를 구매하시겠습니까?]

[소모된 어비스 포인트는 되돌릴 수 없습니다.]

환불이 불가능하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하지만 후회할 일은 없다.

"구매하겠다."

그렇게 말한 순간.

[점프 스크롤 6개를 획득했습니다.]

[60,000,000 어비스 포인트를 지불했습니다.]

그렇게 6개의 점프 스크롤이 손에 들어왔고.

이제 내 수중에는 2천만이 조금 넘는 포인트가 남게 되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이가 없군.'

아무리 부익부 빈익빈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까지 격차를 벌릴 수 있다는 것이.

1천만 포인트가 결코 적은 액수는 아니다.

아니, 엄청난 액수다.

남들은 어비스에서 평생 손에 넣지도 못할 만큼.

그렇다고는 해도 다른 플레이어들은 목숨을 내걸고 몇 달, 혹은 연 단위로 고생해야 하는 어비스인데.

그런 어비스의 한 층을 단 몇 초 만에 뛰어넘을 수 있다는 사실이.

'그럼 이제… 곧 지혜의 수문장을 만날 수 있게 되겠지.'

지혜의 수문장.

그리고 초월의 격을 지닌 몇 안 되는 우주적 존재 중 하나.

초월의 격을 지닌 우주적 존재들에 대해서는 이미 전에 말했듯 알려진 게 별로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초월의 격을 지닌 존재와 만나고 난 뒤, 모두가 한층 더 강해졌다는 것.

아이템을 얻었을 수도 있고, 능력을 얻었을 수도 있다.

그게 무엇이든 분명 엄청난 히든 피스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렇게 나는 44층으로 향했고.

그 자리에서 5개의 점프 스크롤을 모두 사용했다.

[50층에 도착했습니다.]

44층에서 단번에 50층으로 점프하게 되었고.

'이제 마지막.'

지혜의 수문장을 만나게 되기까지 50층 한 개의 층만을 남겨두게 된 셈이다.

***

50층.

이제부터는 정말로 탑의 고층에 속했다고 해도 좋다.

어비스에서도 45층 아래와 45층 이후로 플레이어들의 수준이 판이하게 달라진다.

여기부터는 랭커는 아니지만 랭커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는 플레이어들도 슬슬 만나게 될 타이밍이다.

사실 내가 크게 신경 쓸 부분은 아니지만.

어쨌든 감회가 새로운 것도 사실이다.

이제 곧 정말로 랭커들이 판치는 탑의 최전선에 올라가게 될 순간을 목전에 두고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그 말은 즉, 내가 위드 길드를 앞세워 은밀히 움직일 수 있는 시간도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것.

탑의 저층에서야 내가 활약해도 그저 조금 뛰어난 플레이어가 나타났구나, 하고 말겠지만.

랭커들이 즐비한 마법사의 숲에서는 그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다.

'자, 어쨌든.'

50층에서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전에 할 일이 있다.

'박승균.'

내가 얻어낸 정보에 따르면 박승균은 51층부터 60층으로 이어진 마법사의 숲에 있을 확률이 높다.

'가기 전에 정확한 놈의 위치를 파악해 놓을 필요가 있겠지.'

당연히 내가 직접 찾는 것보다는 위드 길드에게 부탁할 생각이다.

그래야 내가 마법사의 숲에 올라서는 즉시 놈을 찾아 나설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나는 박명철에게 메시지 하나를 작성했다.

마법사의 숲을 탐색해 달라는 메시지 말이다.

***

'뭐?'

박명철은 강민의 메시지를 받아 든 순간 제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강민을 의심하리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건 좀….'

얼마 전에 어비스에 도착했다고 했으면서 지금은 또 50층이란다.

그러는 와중에 마법 명가 박승균의 위치를 찾아냈단다.

'이걸 믿어야 돼?'

강민에 대한 신뢰의 문제를 한참 넘어선 문제다.

'물리적으로 말이 안 되잖아….'

며칠 새에 어비스 5개 층을 뛰어넘었다니.

탑을 설계한 신이 아니고서야 이런 일이 가능이나 하다는 말인가.

'참나….'

박명철은 혀를 내둘렀다.

'진짜 신인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강민을 만난 뒤로부터 모든 일이 너무 수월하게 풀려가고 있다.

잠시 길드 인원을 감축하는 기간이 있었지만, 그 이후로는 자신의 역량 이상으로 위드 길드가 성장하고 있었다.

그 모든 게 강민의 도움이었다는 사실은 박명철이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실제로 지금 그의 손에 들려 있는 명패에는.

[대한민국 TOP3 길드 위드]

이런 글자가 적혀 있었다.

화랑 길드는 실제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일을 추진하며 위드 길드를 대한민국 3위 길드로 선정했다.

그 과정에서 잡음 따위는 없었다.

이미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이 위드 길드를 인정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블랙이라는 마법 명가 산하 길드 제명에 대해서 불만을 갖는 세력은 단 하나도 없었으니까.

어쨌든 그 덕에 탑 내에서 위드 길드의 입지와 입김은 비교할 수 없이 강해졌다.

물론 거기에는 화랑 길드의 정치적 술수가 더해졌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화랑은 TOP3를 좌우할 만큼의 힘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위드를 TOP3로 만든 건 바로 우리 화랑이다,'라는 메시지가 모든 플레이어의 뇌리에 각인 된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하지만 박명철은 알고 있다.

잠시일 뿐이라고.

강민이 정말 움직이기 시작한다면, 화랑 길드조차도 결국 강민의 손에 놀아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진짜….'

박명철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리고 자신이 정말 믿을 만한 플레이어들에게 메시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마법사의 숲에서 마법 명가의 흔적을 최대한 수색해 주십시오.]

"후우…."

박명철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쏟아져 들어오는 플레이어들의 가입 신청서와 타 길드들 길드장들의 편지들.

TOP3라는 자리의 무게감은 결코 쉽사리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보다 체술 명가.'

박명철은 현재 모든 촉각을 곤두세워 체술 명가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다.

박명철은 화랑 명가와 체술 명가가 공모를 꾸몄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그랬던 상황에서 지금의 상황은 화랑 길드가 위드 길드를 택했다는 사실을 공표한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분명 곧 체술 명가가 움직일 거다.'

그 표적이 화랑 길드가 될 것인지.

아니면 위드 길드가 될 것인지.

그리고 체술 명가가 혼자 움직일 것인지.

아니면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한 명가들이 함께 움직일 것인지.

아직 섣부르게 움직일 수는 없다.

이제 막 지지기반을 크게 확장하고 있는 위드 길드이기는 하지만, 명가와 전면전을 벌이는 건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

'머리 깨지겠군.'

박명철이 입꼬리를 비틀었다.

복잡하고 위태로운 상황이었지만, 오히려 이 상황이 너무도 즐거웠다.

이런 혼란의 핵심에 놓여 있다는 것이.

그리고 이 혼란한 상황에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그 혼란을 주도할 수 있는 인물이 자신의 아군이라는 사실이 말이다.

***

자, 박명철에게 메시지를 보내놨으니 이제 나는 내 일을 해야 한다.

어비스의 50층.

이곳의 테마는 간단하다.

역시 다른 모든 곳에서 그랬듯 플레이어들과 싸움을 이어가며 우주적 존재들의 유흥을 채워주는 것.

그동안 플레이어들끼리 목숨을 걸고 싸우며 우주적 존재들에게 재미를 줬지만.

하지만 이제부터는 아니다.

어비스 50층.

이곳에서 내가 싸워야 할 상대는 바로 우주적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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