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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상태창이 달라졌다-115화 (115/277)

115화

'괜찮군.'

마지막 경매로 인해서 많은 어비스 포인트를 끌어모았다.

애초에 내가 예상했던 양보다 250만 포인트가 더 많은 액수였다.

즉, 현재 가지고 있는 어비스 포인트는 무려 850만 포인트.

솔직히 고작 42층에서 이렇게 많은 어비스 포인트를 획득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 못 했건만.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어차피 2000만 포인트라는 것도 지혜의 수문장을 만나기 위한 최소 조건일 뿐이니까.'

그 말대로다.

2000만이라는 것도 전생의 모든 정보들을 통틀어 내린 어느 정도의 추정값일 뿐.

우주적 존재들이 자신들의 값을 가슴팍에 써 붙여 놓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그것이 결론이다.

나는 경매가 끝난 뒤 유유히 중앙부에서 벗어났다.

이제 앞으로 대충 22시간 정도만 시간을 보내면 43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플레이어 몇 명과 시비가 붙어 조금 혼내주기도 했다.

압도적으로 이겨 버리지는 않았다.

적정한 선 안에서, 나한테 다시 까불지 못할 정도로만.

이주성은 이주성일 뿐, 한강민처럼 강해서는 안 된다.

어차피 어비스를 벗어나면 곧 버릴 신분이기도 했고.

보는 눈이 적다면야 문제가 없겠지만, 42층의 중앙부처럼 백이 넘어가는 관객이 있으면 조심해 줘야 할 필요가 있다.

'내 예상보다 너무 빨리 끝나 버렸는데.'

설마하니 마석을 그렇게 쉽게 구하게 될 줄이야.

나쁜 일은 아니지만, 남은 시간동안 할 일이 없어져 버렸다.

그렇다고 마구잡이로 플레이어들을 썰어 버리고 다닐 수도 없고 말이다.

이런 곳에서 괜히 실수했다가는, 개인적인 시비가 아니라 정치적인, 길드 규모의 싸움으로 번지기 십상이다.

'어쩔 수 없지. 어디 구석에 가서 낮잠이라도 자는 수밖에.'

그나저나 아직까지 검술 명가의 플레이어들은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사실상 명가들의 끝판왕이라고도 볼 수 있는 녀석들이 바로 검술 명가의 플레이어들이었으니, 솔직히 나도 그들의 실력이 궁금한 것도 사실이다.

전생에서는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고.

지금에도 검술 명가의 직계들과의 싸움에서 승패를 장담하기는 힘들 것이다.

'심지어 녀석들은 방계들도 직계 이상으로 엄격하게 훈련시키기로 유명하니까.'

다른 명가에서는 직계와 방계에 대한 구별이 꽤 뚜렷하고, 반쯤은 내 은 취급을 하지만.

검술 명가는 다르다.

분명 내 적이기도 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들의 고고하고 오만한 태도에는 그 근거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 봐야 쓰레기라는 건 변하지 않지만.'

겉으로 잘 포장해 놓았을 뿐.

그들의 실체를 보게 된다면 마법 명가나 다른 명가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검술 명가가 스스로에게 엄격한 만큼 그들이 가지고 있는 선민의식은 감히 입에 담기도 민망할 정도다.

애초에 지금의 '명가'와 '일반 플레이어'라는 구분을 만들기 시작한 출발점도 어떻게 보면 검술 명가부터이기도 했고 말이다.

고고한 척, 일반 플레이어들에게 무관심한 듯 보이지만.

결국 다른 명가들을 앞세워 일반 플레이어를 멸시하고 가축처럼 여기는 이 모든 분위기를 만들어 낸 주동자라는 말이다.

"후…."

나는 한적한 곳에 도착해 자리를 잡고 앉았다.

42층의 남쪽.

숲이 우거진 곳이었다.

내가 자리를 잡고 앉자 우주적 존재들이 아우성치기 시작했다.

당장 가서 싸우라고 말이다.

몇몇은 떠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고, 또 몇몇은 어비스 포인트를 주며 회유하기도 했다.

'떠나려면 떠나던가.'

어차피 아직도 격이 낮은 우주적 존재들이 대부분이다.

본격적으로 꽤 격이 높은 녀석들이 등장하는 건, 43층부터니까.

저 녀석들의 역할은 내게 어비스 포인트를 후원하는 것으로 끝이다.

나도 별로 아쉽지 않다는 말이다.

나는 쏟아지는 우주적 존재들의 메시지를 뒤로한 채 눈을 감았다.

'잠깐 쉬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43층부터는 앞으로 쉴 시간도 없을 테니까.'

43층.

거인의 관문.

말 그대로 43층에서는 거인족이 등장하고, 플레이어들은 거인족과 싸워야 한다.

거인족 역시 우주적 존재들이 자신들의 유흥거리를 위해 다른 세계에서 소환한 존재다.

'더럽게 강하지.'

키는 족히 어림잡아도 10m에 육박할 정도로 거대하며, 그저 무식하고 덩치만 큰 거인이 아니다.

'그들은 모두 전사야.'

거인들 세계의 전사.

무기술에 능하고, 수많은 싸움을 거쳐 온 이들이다.

'아무리 플레이어라고 해도 인간의 몸으로는 상대하기 쉽지 않은 녀석들이지.'

문제는 거인족과 싸우는 동시에 다른 플레이어들과도 경쟁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쨌든 내가 걱정할 일은 아니지.'

독보적인 실력을 가졌다면 경쟁 따위 아무런 걱정도 되지 않는 법이다.

***

"정말 괜찮은 거예요?"

위드 길드의 김민희가 조금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안 그래도 어비스로부터 들려온 소식에 위드 길드에게 수많은 질문과 염려들이 쏟아지던 참이었으니까.

"괜찮을 거다."

박명철이 답했다.

그의 표정은 오히려 담담했다.

"우선 여론 자체는 호의적이야. 특히나 명가와의 대척점에서 총대를 맸다는 점이 플레이어들에게 꽤 괜찮게 비친 것 같고."

사실이다.

지금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길드 랭킹을 다시 개편해야 되는 게 아니냐는 여론이 쏟아졌고.

더 나아가서 1위 화랑 다음으로 위드 길드를 넣어야 한다는 의견들이 대다수일 정도다.

하지만 문제는 명가 쪽이다.

"그건 그거지만, 다른 명가들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잖아요. 아직까지는 조용하긴 하지만… 혹시 명가들이 칼을 뽑아들고 우리를 겨누기라도 한다면…!"

김민희는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말을 이었다.

"당장 플레이어들이 위드 길드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는 것은 고맙지만, 아무래도 명가가 우리를 압박하게 된다면, 감당하기 쉽지 않을 거예요."

"그래. 맞는 말이지. 명가는 명가니까."

"그래요. 심지어 마법 명가가 몰락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명가들이 가만히 있을까요? 우리가 결국 총알받이가 될 수도 있어요."

김민희의 말은 틀린 부분이 없다.

마법 명가의 몰락과 함께 명가들은 위기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이치.

그런데 이 시점에서 체술 명가와 대립각을 세운다면, 위기감을 느끼는 다른 명가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당연히 박명철도 그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박명철은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빠져나갈 구멍은 있어."

"예?"

김민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박명철의 입꼬리가 조금 말려 올라갔다.

"이주성이라는 플레이어가 위드 길드라는 사실을 누가 증명할 수 있겠어?"

"예?"

김민희의 머리가 조금 멍해졌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이미 모두가 위드 길드 소속이라고 생각 중인데! 거기에서 우리 길드원들한테 마석 줬다면서요? 그럼 빼박이지! 누가 미쳤다고 마석을 나눠 줘?"

그 말에 다시금 박명철이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래. 그렇게 생각은 할 수 있지, 그런데 말이야… 우리가 부인한다면?"

"예? 부인한다고요?"

"그래. 이주성은 위드 길드와 아무런 관련도 없다고 내가 못을 박는다면 말이야."

"하지만 강민 씨가 우리 길드인 건…."

"아니. 강민 씨가 아니라."

"……!"

"한강민이 아니라 이주성을 부정하겠다는 거야. 이주성이라는 플레이어가 우리 길드에 있던가?"

"아… 어, 없죠…!"

잘 생각해 보면 거짓말도 아니다.

실제로 이주성은 위드 길드의 플레이어가 아니니까.

"그래. 의심은 받을 수 있지. 그래서 뭐? 의심만으로 명가들이 우리를 압박한다? 명분이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더 이상 과거처럼 숨어 있을 만큼 약한 세력도 아닌데?"

박명철의 말에 김민희도 이렇다 할 반박을 하지 못했다.

"여차하면 길드원 목록을 공개할 수도 있고 말이야. 어차피 리스트에는 길드원의 가입, 탈퇴 여부도 모두 기록하게 되어 있으니까. 거기에서 이주성에 대한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

"없…죠…."

"우리는 이주성과 관련이 없는 거야.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렇고."

하지만 여전히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

"이주성이 왜 우리 길드 플레이어들을 도왔냐고 물으면요?"

"그냥…. 우리 길드가 마음에 들어 보여서? 우리 길드도 이제 꽤 괜찮아졌잖아."

"……."

김민희는 입을 떡, 벌렸다.

박명철이 원래 이렇게 뻔뻔한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로 뻔뻔한 박명철의 모습에 말이다.

"그리고 뭐…."

박명철의 입가에 미소가 한 번 더 걸렸다.

"덕분에 노이즈 마케팅은 확실하게 된 것 같고."

지금도 쏟아져 들어오는 길드 가입 신청서들을 돌아보며 박명철이 말했다.

"그럼 된 거 아니겠어?"

"참…."

김민희는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다시금 박명철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 떠올리게 됐다.

'이 사람은 프로지.'

아무리 강민의 도움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내에 길드의 규모를 열 배에 가까이 불릴 수 있었던 건 확실히 박명철의 능력이었다.

'탑에 오르지 않았으면 장사를 해서라도 성공했을 사람이야.'

확실히 대단한 사람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그렇게 대단한 박명철을 더 대단하게 만든 한강민이라는 사람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

김민희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그녀는 확신했다.

위드 길드가 화랑 길드를 뛰어넘을 날도 그리 멀지 않았다는 것을.

'앞으로 강민 씨가 직접 얼굴을 드러내고 활동하게 된다면….'

그때에는 정말로 명가들도 결코 위드 길드를 넘볼 수 없게 되리라고.

'그게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그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김민희는 그렇게 생각했다.

***

시간은 꽤 빨리 지나갔다.

가끔은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다.

물론 그러는 중에 싸움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어차피 지금 내 얼굴을 아는 플레이어는 하나도 없었으니, 내 머리 위에 떠 있는 징표를 보고 나를 공격해 온 플레이어들이 몇몇 있었으니까.

결과는 물론, 모두 같았다.

단 한 명도 살아서 나가지 못했다.

덕분에 어비스 포인트를 조금 더 모을 수 있었고.

그렇게 많은 포인트는 아니었다.

대충 100만 포인트.

사실 100만 포인트가 얼마 안 되는 포인트는 아니다.

42층에 있는 90%의 플레이어들이 가진 포인트를 다 합쳐도 100만 포인트가 안 될 테니까.

'돈이 돈을 번다는 게 이런 말이겠지.'

내가 같은 행동을 해도 우주적 존재들은 더 많은 포인트를 후원한다.

게다가 그 숫자도 많으니, 한 번 싸움에도 모여드는 어비스 포인트의 액수는 차원이 달랐다.

그래서 43층으로 올라가기 직전 내가 가진 포인트는 950만 포인트가 되었다.

'대단하군. 이 속도라면 50층에 올라가기도 전에 지혜의 수문장과 만나볼 수 있겠어.'

최초로 우주적 존재와의 만남을 요청할 수 있는 게 45층부터였으니.

45층에 오르자마자 우주적 존재와의 만남을 요청할 수 있게 될 수 있으리라.

그리고 잠시 후.

[마석을 소유한 지 24시간이 지났습니다.]

[43층, 거인의 관문으로 올라갈 자격이 주어집니다.]

망설일 이유는 없다.

나는 곧바로 43층, 거인의 관문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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