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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상태창이 달라졌다-92화 (92/277)

92화

새벽이 밝았다.

"몰른. 너는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어."

"아, 알겠습니다아…."

몰른을 데려다 놓은 건, 분가 근처의 여관.

일을 처리하고 최대한 빠르게 개미굴로 귀환하기 위해서였다.

"오래 걸리진 않을 거다."

미리 은신 능력을 사용해 본 결과, 현재 내 마력으로 지속할 수 있는 은신의 지속 시간은 30분.

'30분 안에 끝내야 한다는 말이지.'

만약 분가의 구조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면 30분 만에 내 목적을 달성하는 건 불가능했겠지만.

말했듯 지금 내 머릿속에는 분가의 구조가 담겨있다.

전생에서부터 몇 번이나 되새기고 되새겼던 기억이다.

이날이 오기를 간절하게 바라면서.

'그렇다면 30분으로도 충분하다.'

불필요한 모든 과정을 쳐내고, 내가 목표로 한 마법 명가의 방계들만 빠르게 처리한다면 말이다.

나는 몸을 일으켰고.

분가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

은신을 사용한 상대로 분가의 건물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역시 내 예상대로 분가의 건물을 기치는 병력 중, 내 존재를 알아챈 플레이어는 한 명도 없었다.

확실히 확인하게 위해 그들의 코앞까지 다가갔음에도 누구도 나를 인식하지 못했다.

미리 파악해 놓은 놈들의 병력 교대 시간에 맞춰 나왔고.

그렇게 지금은 놈들의 교대를 기다린 지 대략 3분 정도가 지난 무렵이다.

'이제 슬슬 때가 됐어.'

분가의 앞을 지키는 경계 병력의 교대 시간 말이다.

'문 앞을 지키는 건 총 50명.'

사실상 분가를 지키는 병력의 1/3 수준이다.

원래 같았다면 수백 명의 인력이 분가 내부에서 대기하고 있었겠지만.

고작 200도 안 되는 인원이 분가를 지키고 있다는 건, 그만큼 놈들의 세력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놈들이 교대할 때, 숨어서 같이 저 안으로 들어갈 생각이다.

은신을 활성화시키고, 50명의 인원이 동시에 움직이는 틈을 탄다면, 기척을 들키기 않고 내부로 잠입할 수 있으리라.

'저 내부에 있는 녀석들 중 내 은신을 간파할 수 있는 놈은 없을 거다.'

현재 나의 은신을 간파하기 위해 필요한 마력은 최소 600.

경계 인력 중 3/4는 육체 계열의 플레이어였으니.

육체 계열의 플레이어가 600의 마력을 보유하고 있을 리는 없다.

그리고 1/4의 마법 계열의 플레이어 역시 마찬가지다.

포착 능력을 가지고 있는 녀석은 없어 보일뿐더러 녀석들의 마력도 600이 될 리 없는 것 역시 자명하다.

그리고 그때.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교대 병력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이다.'

나는 걸음을 옮겼다.

최대한 기척을 숨긴 채로 경계 병력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역시나 건물 내부에서 방금 막 모습을 드러낸 녀석들도 내 존재를 조금도 인지하지 못했다.

"특이사항은?"

"없어. 알 거 아니야. 지금 여기 분가 쪽은 세상의 관심 밖이다."

"제기랄. 이러다 우리 잘리는 거 아니야?"

"잘리기야 하겠냐. 썩어도 준치라고 마법 명가는 마법 명가잖아."

"조용히 해. 우리는 그냥 할 일만 하면 돼."

경계 병력들이 이런저런 말들을 떠들어 대고 있었다.

잠시 들어봤지만, 이렇다 할 쓸만한 정보는 없다.

그렇게 짧은 잡담이 끝나고.

"고생해라."

병력이 교차했다.

내가 섞여 있는 무리가 분가 내부로 들어섰다.

나 역시 그 뒤를 따랐고.

끼기긱-

이 무리의 책임자로 보이는 플레이어가 모든 인원이 분가 내부로 들어선 것을 확인했다.

"됐어! 인원 확인 끝났다!"

"문 닫습니다!"

다시 문이 닫혔다.

'됐다.'

나 역시 분가 내부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여기까지는 아주 손쉬운 과정이었다.

'지금까지 소요된 시간은 대충 5분.'

병력 교대가 이루어지기까지 기다리고 여기에 진입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이다.

'탈출하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나한테 남은 건 20분이다.'

목표 지점을 향해 곧바로 치고 달려야 한다.

다시 한번 분가 내부의 구조를 확인했다.

내 전생에서 봤던 것과는 조금 차이가 있지만, 뼈대 자체는 그대로다.

차이가 있다면 전생에 있던 시설 몇 개가 없는 것 정도.

'방계 녀석들의 숙소는 그대로다. 그거면 돼.'

잠시 후 경비 병력들은 잠을 자기 위해 흩어졌다.

모두가 흩어진 뒤.

'저기다.'

나는 한 곳을 바라봤다.

거기가 바로 명가의 방계들이 머무는 장소.

'내가 처리할 건 방계들뿐.'

괜히 다른 경계 병력과 싸울 필요는 없다.

어차피 저들은 아까 대화에서 알 수 있듯 고용된 인력이다.

돈에 의해 움직일 뿐이지, 딱히 명가에 충성심 따위는 없는 이들이다.

아니, 오히려 명가 녀석들의 선민의식에 질릴 만큼 질렸을 테고.

명가가 몰락하고 난 뒤 잘 됐다며 침이나 뱉지 않으면 다행일 테지.

그러니까 방계의 플레이어들을 처치하고, 분가 내부의 모든 시설물들을 박살내면 내 목표는 끝이다.

'가자.'

모든 병력들이 모습을 감춘 뒤, 나도 몸을 움직였다.

***

'세상모르게 퍼질러 자고 있군.'

방계 놈들의 코골이 소리가 문밖에까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들으니 벌써부터 역정이 올라 올 지경이다.

직계와 방계.

둘 중 누가 더 나쁜가.

그렇게 묻는다면 두 쪽 다 쓰레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누가 더 추잡한가, 라고 묻는다면 망설이지 않고 말할 수 있다.

'방계지.'

같은 명가이면서도 직계에 밀려 있는 방계.

직계에 밀렸다는 그 열등감은, 명가라는 선민의식과 뒤섞여 끔찍한 괴물들을 만들어냈다.

직계들이 고고한 모습으로 수많은 플레이어들 위에 군림하고 멸시할 때.

방계들은 추잡하고 탐욕스러운 모습으로 착취와 폭행을 일삼은 것들이다.

오직 명가라는 방패막이 하나를 두른 채, 그들의 모든 악행들은 정당화되기 일쑤다.

그들이 그럴 수 있는 건, 마법 명가에서도 사실 그들을 반 정도는 내버렸기 때문이다.

직계에게 요구되는 철저한 자기 관리나 예절은 방계에게 온전히 적용되지 않는다.

저들의 모습을 보라.

자신 명가가 일촉즉발의 상황에 놓여 있음에도 세상모른 듯 퍼질러 자고 있는 꼴 말이다.

저들은 애초에 명가의 상황에 관심도 없다.

애초에 명가의 중심이 될 수 없다는 숙명을 태어나는 순간부터 뼛속 깊게 새기고 태어난 이들이고.

그저 명가라는 이름에 기생한 채 누를 것들을 누리며 무고한 플레이어들을 착취하는 기생충들이니까.

전생에 놈들이 저질렀던 짓들을 생각하니 다시 역겨움이 밀려온다.

내게 명가의 직계들이 '적'이라면, 방계는 치워야 할 '쓰레기'에 불과하다.

'어쨌든 네놈들도 여기까지다. 네놈들이 죽는다고 해서 슬퍼할 이들은 세상에 하나도 없겠지.'

치직- 치직-

뇌전검을 사용했다.

검 위로 미리 준비해 온 건초를 가져다 댄 순간.

화륵!

불길이 타올랐다.

타오른 불씨를 방계들의 숙소에 흩뿌렸고.

화르르륵!

불이 옮겨붙기 시작했다.

내가 놈들을 처치한 모든 흔적을 지우기 위한 작업이다.

'10분. 앞으로 10분 안에 처치하고 나간다.'

벌컥!

내가 문을 연 순간.

"뭐, 뭐야…."

"아오, X발! 자고 있을 때 들어오지 말라고 했…뭐야? 처음 보는 새낀데? 너 누구야! 이 개새끼야!"

"뭔데? 너 이름 뭐야! 너 이 새끼 바로 묻어 버릴… 커헉!"

푸훅!

가장 가까운 녀석의 목에 검을 박아 넣었다.

"커헉, 커허어어억!"

"뭐, 뭐야! 밖에! 밖에 뭐 해! 침입자잖아!"

저벅

"뭐, 뭐야! 허, 허어억…!"

콰직!

"끄아아아악! 사, 살려! 살려 줘!"

푸훅!

"커허억…."

방에 들어 있던 세 명의 플레이어들은 순식간에 시체가 되었다.

[마력 11을 포식했습니다.]

[마력 6을 포식했습니다.]

[마력 4를 포식했습니다.]

벌컥!

곧바로 그 옆방의 문을 열었다.

그 안에서는 방금 전의 소란에 잠이 깬 방계의 플레이어가 보였다.

아직도 잠이 깨지 않았는지 주번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불도 아직 켜지 않았지만, 초감각 때문에 놈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고.

"푸훅!"

"커억…."

놈도 역시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힘없이 쓰러졌다.

그것을 시작으로 방과 방을 오가며 명가의 방계들을 하나씩 베어 넘겼다.

불은 점점 더 거세게 타오르기 시작했고.

내 머릿속에 담긴 분가의 구조도를 떠올리며 분가 내부를 내 집처럼 오가며 방계 녀석들을 하나씩, 하나씩 베어 넘겼다.

놈들을 베어 넘기는 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정신도 차리지 못한 채 치솟은 불길에 허우적거리는 녀석들은 포착 능력을 사용할 생각조차 못 했고.

당연히 내 모습을 발견한 녀석은 하나도 없다.

푸훅!

마침 내 앞으로 도망쳐 달아나는 녀석의 목에 검을 박아 넣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10분이 지났을 무렵이다

'여기에 머물고 있는 방계의 수는 총 서른넷이었다.'

진입하기 전, 초감각으로 파악한 결과니 틀림없다.

지금까지 내가 처치한 방계의 수는 서른 하나.

남은 건 세 명.

남은 세 명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내게는 초감각이라는, 숨어 있는 쥐를 찾아내는 데에는 특효인 사기적인 능력이 있었으니까.

나는 초감각을 극도로 끌어올린 채 남은 세 명의 쥐새끼를 찾아냈고.

'잘도 숨어 있었군.'

놈들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느새 옮겨붙은 불은 분가 전체로 번져갔다.

밖에서는 커다란 소란이 벌어진 상태였다.

하지만 대체 어떤 일인지는 감도 잡지 못하고 알 수 없는 말들만 떠들어 대고 있었다.

숨어 있는 방계들을 찾아다니며 하나씩 베어 넘겼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잠시 후 숨어 있는 마지막 방계를 찾아냈다.

저벅

내가 놈이 숨어 있는 공간에 걸어 들어가자 놈은 사색이 된 채로 괴성을 내질렀다.

본 적 있는 얼굴이다.

물론 전생의 기억이었고.

내 전생의 기억에서보다 한참이나 앳된 모습이다.

'망할 새끼.'

저 새끼의 발길질에 차인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그때의 그 오만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그저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처절한 생명체일 뿐이다.

"뭐, 뭐야! 뭐야아아! 살려, 살려주세요!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제발 살려주세요! 도, 돈이라면 있는 대로 드리겠습니다!"

방계의 플레이어가 소리쳤다.

내가 있는 방향이 아닌 엉뚱한 방향을 바라보면서.

저벅

다시 한번 걸음을 옮긴 순간.

"으, 으아아아악! 살려줘! 제발 살려줘!"

처절한 비명이 내 귀를 두드렸다.

웃음도 나오지 않는다.

제 목숨이 중요한 건 안다는 게.

푸훅!

"거, 거어어억…."

놈의 몸이 고꾸라졌다.

나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방계의 플레이어들은 처치했지만,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

'시설물 파괴.'

놈들이 가진 모든 연구 자료와 서적들.

그리고 각종 실험과 훈련을 위해 비치해 놓은 모든 시설들 말이다.

'5분.'

남은 5분 동안 모든 시설을 박살내야 한다.

***

상황은 끝났다.

정리된 건 아니다.

저 내부에서는 아직도 이 사태의 진상조차 파악을 하지 못했고.

분가를 지키던 이들은 달아나거나 내부의 상황을 밝혀내기 위해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것이다.

쉬러 갔던 경계 병력들과 본가 외부를 경계하던 병력들 역시 모두가 분가 내부를 샅샅이 뒤지고 있었지만.

이미 나는 그들의 시야에서 한참이나 벗어난 상태였다.

게다가 나의 소행이라는 건 알 수 없으리라.

내가 놓은 불 때문에 내 흔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만한 증거들은 모두 불타 없어졌을 테니까.

게다가 시설물들을 파괴할 때도 내 검이 아닌 명가의 경계 병력들이 사용하던 둔기를 이용했으니까.

그리고 이제는.

"가자, 몰른."

다시 개미굴로 돌아갈 차례다.

남아 있는 한 가지 과제를 끝마치기 위해서.

'지금 상태라면 칼날 개미도 그리 어렵지 않게 무너트릴 수 있을 거다.'

초감각과 은신.

이 두 능력만 있으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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