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화
"장군, 장군님이 아무것도 못 하고 당했어…."
"맙소사."
"저 인간은 대체 뭐지?"
여왕개미가 나타났음에도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개미들의 술렁임은 작아지지 않았다.
내 앞에 있는 장군 개미 역시 온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다리를 제외한 총 네 개의 팔 중, 남아 있는 건 고작 하나뿐.
'어차피 놈들의 회복력은 인간과는 궤를 달리하는 수준이니, 치료하는 건 어렵지 않을 테지.'
만약 놈들의 자존심이며 상징인 턱을 베어냈다면 상황이 달라졌겠지만.
팔 세 개 정도 잘라낸 것 정도로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장군 개미는 크게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가성비가 훌륭한 기선 제압이었다.
"이, 인간…!"
팔이 잘린 장군 개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무시하던 인간 나부랭이에게 손도 못 쓰고 팔 세 개를 잘렸으니.
쪽도 꽤나 팔리겠지.
"아직도 못 믿겠으면 다른 세력으로 가겠다. 나도 이딴 대접 받고는 더 있고 싶지 않군."
"자, 잠…."
"기억해라. 내가 만약 다른 세력에 들어가서 너를 만나게 된다면 너부터 찢어 죽일 테니까."
장군 개미에게 한 말이다.
저놈은 앞으로 내 눈도 못 쳐다보게 짓눌러 줄 생각이거든.
"그, 그…."
나는 대답을 듣지 않고 몸을 돌렸다.
연기다.
나는 반군에 계속 남아서 최고의 보상을 얻어 낼 계획이었으니까.
다만 놈들이 조금 더 애타게.
더 나아가서 놈들을 내 손에 휘어잡고 앞으로 진행될 일들을 더 편하게 만들기 위한 작업일 뿐이다.
"자, 잠깐! 잠깐! 인간, 아니 모험가여!"
장군 개미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하지만 아직이다.
여왕개미가 나를 붙잡을 때까지.
그때까지는 시선조차 주면 안 된다.
저벅
다시 한 걸음 내디뎠고.
그때.
"모, 모험가여!"
드디어 여왕개미가 나를 불렀다.
나는 자리에서 멈춰 섰고.
몸을 돌렸다.
"불렀나?"
"…대화가 필요할 것 같소."
내 물음에 여왕개미가 말했다.
***
"무례를 용서하시오."
나는 지금 호랑 개미 참모들의 작전 회의실에 앉아 있다.
말이 참모 작전 회의실일 뿐, 실상은 허름한 천막이었다.
뭐.
그런 건 신경 쓰지 않는다.
지금 내게 중요한 건,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여왕개미의 '목적'이다.
'여왕개미의 목적이 곧, 이번 개미굴의 클리어 조건과도 직결될 테니까.'
"개의치 않는다."
내가 말했다.
무례한 태도로.
앞으로도 쭉 이런 태도를 고수할 생각이다.
저들이 나를 하대했다고 삐져서 그러는 건 아니다.
다만 개미굴을 더 간편하고 빠르게 클리어 할 수 있기 위해서다.
내 그런 태도에 장군 개미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무례하…."
"그만."
장군 개미 한 명이 언성을 높이려 했지만 여왕개미가 저지했다.
나름 상황 파악에 능한 여왕이다.
"경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저 모험가의 전력이 절실하다는 것을."
오호라.
스스로 자존심을 낮출 줄도 안다.
멍청한 장군 개미와는 달리 여왕개미는 꽤 명석하다.
"……."
"크읍."
"젠장."
여기저기서 탄식 소리가 터져 나왔다.
"당신과 싸웠던 이는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좋군."
나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사과는 하지 않는다.
"그 옆의 모험가도 당신과 같은…?"
여왕개미가 몰른을 보며 말했다.
내심 큰 기대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나 정도의 실력자가 두 명이라면 저들은 쌍수를 펴고 환영할 일일 테니까.
"저, 저는, 저느으으은…."
"안타깝지만, 아니다. 이 녀석은 전투 능력이 없어."
"…그렇군."
실망한 기색을 잠시 내비쳤다.
하지만 실망감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그만큼 내 실력에 대해서 크게 감명 받았다는 뜻이리라.
싸움이 끝나고 대충 정황을 파악했을 때, 나와 싸웠던 녀석은 대충 반군의 선봉장쯤 되던 녀석으로 보였다.
그만큼 실력에 자신이 있으니 나를 테스트 하기 위해 나섰던 것이고.
그런 녀석을 무참히 박살 냈으니, 여왕 역시 나를 신뢰하기 시작한 것일 테다.
"다시 한번 사과드리겠소. 보아서 알겠지만 우리는 그리 좋지 못한 상황에 놓여 있었고, 당신과 같은 모험가들에게 크게 실망해 있던 상태였으니."
"나는 다를 것이다."
"그럴 것이라 확신하오. 다만 그대도 알아야 할 것은 우리의 상대가 결코 녹록지…. 아니, 사실상 우리와 감히 비교도 할 수 없는 전력이라는 사실이오."
여왕은 어떤 가감도 없이 현재 자신들의 처지를 설명했다.
그만큼 여왕 역시도 절실한 상황이라는 뜻일 거다.
"우리는 현재 칼날 개미들과의 싸움에서 계속해서 패배했고, 결국 여기까지 몰려 있는 상황이오."
칼날 개미.
몸에 털 대신 칼날이 돋아난 개미들이다.
당연히 전투력에 있어서는 개미들 중 최상급 티어에 속해 있는 녀석들.
아니, 사실 그런 분류도 무의미하다.
단연코 최고다.
호랑 개미 역시 전투에는 빠지지 않는 녀석들이지만 칼날 개미에게는 상대가 될 수 없다.
그런 녀석들과 척을 지고 싸움이 붙었다면 호랑 개미가 이렇게까지 처참한 상황에 놓였다는 것도 납득할 수 있다.
'실제로 전생에서도 가장 큰 세력을 구축한 건 칼날 개미였으니까.'
그만큼 여기에서 나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문제는…."
나는 잠시 내 귀를 의심했다.
칼날 개미와 척을 지고 있는 것 이상의 문제가 있다니.
말 그대로 첩첩산중이다.
"현재 칼날 개미는 사자 개미들과 연합을 한 상태라는 것이오."
"사자 개미라…."
사자 개미.
그들은 호랑 개미와 비슷한 전투력을 가졌지만, 조금 다르다.
호랑 개미가 개개인의 전투력에 특화되었다면 사자 개미는 팀플레이에 훨씬 능하다.
그렇다는 건, 전쟁이라는 다수의 싸움에서 호랑 개미보다는 사자 개미 쪽이 훨씬 뛰어나다는 뜻.
'결국 호랑 개미는 칼날 개미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는 뜻이군.'
호랑 개미와 사자 개미.
비슷한 능력을 지닌 두 개미 집단 중 칼날 개미의 선택을 받지 못한 호랑 개미들은 지금 멸망의 길을 걷게 된 셈이다.
'어차피 칼날 개미의 입장에선 멸망시켜야 할 이들이었으니, 그 중 현재 더 필요한 집단을 선택했겠지.'
"그래서 그쪽의 목적은 칼날 개미를 박살 내는 것인가?"
내가 물었다.
내 물음에 여왕의 눈이 흔들렸다.
"그, 그것은…."
그렇다고 말하고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아니면 뭐. 사자 개미 조금 족치는 걸로 만족할 것인가? 그쪽이라면 나도 훨씬 수월할 테고."
"하지만 칼날 개미는…."
지긋지긋한 패배의식.
이들 상황에선 어쩔 수 없겠다만.
나는 다시 한번 확신했다.
개미굴을 클리어하기 위해선, 이들을 '돕는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모든 판단은 내 독자적으로, 그리고 행동 역시 내 뜻대로 해야 한다.
"때려치우던가."
내가 말했다.
내 한 마디에 장군 개미들이 술렁인다.
조금 과격하게 말한 것도 맞지만.
당연히 의도한 바다.
저들 역시 처음 내게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듯, 나 역시 마찬가지다.
호랑 개미들이 아무리 힘을 모으고, 머리를 짜낸다고 해도 칼날 개미와의 싸움에서의 승산은 제로다.
'저 녀석들에게 선택지는 없다는 뜻이다. 당연히 나를 지휘할 권한도 없고.'
시작부터 나는 저들에게 숙일 의향이 없다는 이미지를 심어 주는 작업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행동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는 셈이다.
침울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여왕개미.
다른 장군 개미들도 이제 더 이상 나를 저지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말을 들을 사람도, 또 들을 이유도 없다는 것을 저들도 깨닫고 있으리라.
결국 여왕개미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가, 가능하다면… 칼날 개미를…."
그 순간.
[업적이 오픈되었습니다.]
[업적 – 이룰 수 없는 목표]
>업적 수락 시, 개미굴 클리어 난이도가 '측정 불가' 단계에서 '초월' 난이도로 변경됩니다.
>'초월'등급 업적 달성 시, 추가 보상이 지급됩니다.
>거절 패널티 : 없음
[업적을 수락하시겠습니까?]
내게 선택지가 열렸다.
하지만 고민은 하지 않는다.
더 좋은 보상을 얻을 수 있다면, 거절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칼날 개미. 박살 내 보는 것도 괜찮겠군."
[업적을 수락했습니다.]
[이번 업적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여왕개미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
"이, 이게 무슨 말이오!"
"카, 칼날 개미를 박살 내겠다니!"
"책임질 수 없는 말을 그리 쉽게 내뱉다니!"
"너의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한들, 네 놈 혼자서 칼날 개미 왕국을 부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장군 개미들이 소리쳤다.
여왕개미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입을 떡 벌리고 있었고.
아직 업적이 진행되었다는 메시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제안에 여왕개미 역시 고민에 빠진 모양이다.
당연한 일이다.
오늘 내일 생존을 고민하고 있던 와중 칼날 개미라는 가장 강력한 집단과의 싸움을 앞두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오래 기다려 줄 생각은 없다.
나 역시 한시가 급한 몸이다.
"생각해 봐. 어차피 이대로 가다가 너희는 끝이다. 어차피 끝날 거, 부딪쳐는 봐야 하지 않겠나?"
그때였다.
"알겠…소."
[[업적 – 이룰 수 없는 목표]가 시작되었습니다.]
[클리어 보상이 조정됩니다.]
"여왕님!"
"여왕님! 이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장군 개미들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하지만 여왕개미는 더 이상 동요하지 않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다.
"잘 선택했군."
내가 말했다.
그리고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어디 가는 거요?"
"싸우러 가야지. 여기에 앉아 있다가는 칼날 개미들이 천하를 통일할 것 같은데?"
"가, 가기 전에 우선 작전 회의를 해야 하지 않겠소! 병력 편성도 해야 할 것이고…!"
"필요 없다."
말했듯, 혼자 움직일 생각이다.
괜히 개미들을 끌고 다녀 봤자 번거로울 뿐이다.
"자, 잠깐…."
"다시 돌아올 테니, 그때까지 괜찮은 작전을 짜 놨으면 좋겠군."
나는 작전 회의실 밖으로 걸음을 나섰다.
***
개미굴에는 '층'의 개념이 없다.
하지만 개미굴을 완전히 클리어하게 되면 자연스레 41층으로 올라갈 자격이 주어진다.
개미굴에서 층을 나누는 개념은, 여왕의 인정을 점수로 환산한 결과물이다.
'10%에 한 층.'
즉, 50%를 달성하게 되면 그때에는 마을에 갈 자격이 주어지는 셈이다.
어쨌든 그건 아직 먼 이야기다.
이미 내가 내뱉은 말이 있으니 칼날 개미들을 초전박살 내기 전까지는 개미굴을 클리어할 수 없을 테고.
'우선 첫 번째로는 사자 개미들을 박살 내야겠지.'
나는 지도를 펼쳐 개미들의 세력도를 살폈다.
역시 가장 큰 영토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칼날 개미.
두 번째는 솔져 개미.
그리고 세 번째가 거북 개미였으며, 네 번째가 바로 사자 개미였다.
이것 말고도 다양한 개미 종들이 있지만, 호랑 개미를 포함한 다섯 개미 종들이 오랜 싸움 끝에 살아남는 최종 다섯 개 세력인 셈이다.
'어쨌든 다행이군. 사자 개미가 네 번째라서.'
그리 어렵지 않은 상대다.
마침 사자 개미와 호랑 개미의 영토는 인접하고 있었으니.
'저곳부터 시작하면 좋겠군.'
목적지를 정했고, 나는 바로 목적지를 향해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