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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상태창이 달라졌다-78화 (78/277)

78화

"이건 상태가 별로고. 이 정도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내가 말한 대로 파티의 플레이어들은 열심히 개미의 등껍질을 모아왔다.

시야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고, 이런 손실에 서툰 나머지 처음에는 불량품도 많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플레이어들은 등껍질을 온전한 상태로 보존한 채 떼어내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오. 이거 은근히 재미있네요."

"재미만을 위해 시키는 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이런 정교한 작업을 해낼 수 있다면, 앞으로 개미굴에서의 생존율은 훨씬 더 올라갈 겁니다."

내가 말했다.

플레이어는 뿌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내가 한 말은 거짓이 아니다.

어중간하게 개미를 마구 때려잡는 것보다는 이런 정교한 작업이 저들의 전투력을 크게 올려줄 테다.

이를테면 절반의 거짓과 절반의 진실이 교묘하게 섞인 핑계다.

"근데 이건 어디에 쓰시려고 모으시는 건가요?"

"…단단해 보이기에 나중에 갑옷이라도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역시나 거짓이 조금 섞인 진실로 얼버무렸다.

하지만 내 말에 오히려 질문한 플레이어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농담도 참. 이런 걸로 갑옷을 만들다니요."

"진짜입니다."

"흐흐. 강민 씨는 가끔 보면 참 재밌어요. 인간미가 있다니까요."

"……."

말을 해 줘도 믿질 않으니 나로서는 고마운 일이다.

혹시 개미 등껍질의 가치를 알아채고 나눠 달라고 아우성이라도 치면 골치 아파졌을 텐데.

'벌써 온전한 상태의 등껍질이 백 개를 넘어섰다.'

전생에 개미의 등껍질은 하나에 100골드 정도에 거래됐다.

훌륭하지만, 그리 비싼 재료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를 거다.'

나는 최소 열 배.

즉, 하나에 천 골드 이상의 가격으로 이 모든 등껍질들을 팔아 치울 계획이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탑의 대장장이들에게 개미 등껍질의 성능을 직접 보여주고.

또 그렇게 만든 장비의 성능을 유저들에게 어필만 해 준다면.

개당 1000골드에 팔아넘기는 건 충분히 가능하리라.

그만큼 개미의 등껍질은 훌륭한 재료다.

전생에서도 보급형 장비 중에서 최고는 역시 개미 등껍질로 만든 방어구들이었으니까.

물론 전생에서는 개미 등껍질의 공급이 넘쳐났고.

덕분에 개당 100골드라는 저렴한 가격에 거래가 이루어졌지만.

'지금은 아니지.'

이 시점에서 개미 등껍질의 공급은 0이다.

유일한 공급책은 오직 나 하나.

즉, 내가 부르는 게 값이라는 뜻.

'이게 개미 등껍질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는다면 그 가격은 더 치솟을지도 모른다.'

한차례 등껍질 떼어내는 작업을 마친 뒤 다시 우리는 개미굴을 헤쳐나가기 시작했다.

모든 사냥을 내가 전담한 뒤로 오히려 사냥 속도는 더 빨라졌다.

개미를 사냥하며 마력도 조금이지만 꾸준히 오르고 있었다.

'마력이 조금씩 늘어날수록 초감각의 감지 능력도 진화하고 있어.'

이제 곧 마력 200이다.

골렘을 사냥하며 마력을 꽤 높여 놨던 덕분이다.

유체 스탯을 전환하지 않고도 200 가까이 되었으니.

육체 스탯을 크게 절약하게 된 셈이다.

마력 200이 되면, 오러 블레이드도 다음 단계인 4단계로 진화시킬 수 있다.

'오러 블레이드 5단계부터가 소드 마스터들의 오러 블레이드와 동급이었지.'

물론 현재 내 오러 블레이드는 고작 3단계다.

5단계까지는 아직 먼 이야기다.

'그래도 3단계의 효율이 이 정도라는 걸 생각해 보면, 5단계의 위력은 어떨지 짐작도 되질 않아.'

콰직!

오러 블레이드의 절삭력에 전투 개미의 몸이 종잇장처럼 찢겨져 나갔다.

오러 블레이드가 아닌, 일반 검이었다면 이렇게 손쉽게 전투 개미를 베어내지는 못했으리라.

다시 한번 초감각을 사용해 전방의 상태를 살폈다.

빛 한 줄기 들지 않는 어두운 동굴 내부의 모습이 선명하게 머릿속에 각인됐다.

나는 최대한 어그로가 끌리지 않게 조용하고 신속하게 앞을 가로 막은 개미들을 베어 넘겼고.

그 순간.

[50 레벨에 도달했습니다.]

[새로운 포식 슬롯이 오픈됩니다.]

반가운 레벨업 소식이 들려왔다,

"잠시 상태창 점검 좀 하겠습니다."

[상태창]

>이름: 한강민

>레벨 : 50

>스탯

-육체

힘 : 430.69

민첩성 : 423.54

체력 : 416.12

-정신

마력 : 199.87

>마법 저항력

+ 65%

>능력

1. 포식자 (S)

2. 뇌전검 (S)

3. 충격파 (AA)

4. 오우거의 신체 (AAA)

5. 오러 블레이드 (S)

6. 아이언 바디 (AA)

7. 지휘관의 외침 (S)

8. 초감각 (A)

9. EMPTY

[포식 포인트 : 150,332P]

'마력은 굳이 전환하지 않아도 괜찮겠어.'

개미 몇 마리 사냥하면 200에 도달할 것이다.

마침 눈앞에 개미 몇 마리가 다가오고 있었고.

녀석들을 베어 넘긴 순간.

[마력이 200에 도달했습니다.]

드디어 마력이 200이 되었다.

동시에 또 다른 메시지가 떠올랐다.

[오러 블레이드가 3단계에서 4단계로 업그레이드됩니다.]

[오러 블레이드 – S]

>4단계 (5단계 해금 조건 : 마력 500)

>육체 / 정신 복합계 스킬

-힘과 마력 수치의 영향을 받는다.

>추가 공격력 : 75.00

>지속시간 : 600.00 초

'훌륭하다.'

추가 공격력 75.

그리고 지속시간은 이제 10분에 가까워졌다.

'5단계에 이르기만 하면….'

오러 블레이드의 위력은 앞으로 차원이 달라질 것이다.

***

[31층 클리어까지 300초 남았습니다.]

벌써 개미굴에 들어온 지 23시간이 지났다는 말이다.

그동안 파티원들의 성장은 눈이 부실 정도였다.

이제는 개미굴 내부에서도 어려움 없이 개미들을 상대할 정도가 되었으니까.

"됐어! 으하하하!"

"5분이에요, 5분! 정말 24시간을 버텨 냈어요!"

지난 하루 동안 저들이 발전시킨 능력은 개미의 공명을 구별해 내는 능력뿐만이 아니었다.

"여기요! 껍질! 이번 건 조금 완벽한 것 같은데요?"

"훌륭하군요."

바로 이것이다.

파티원들의 등껍질 손질 능력은 엄청난 속도로 발전했다.

전투를 완전히 배제하고 손질만을 시킨 결과였다.

대략 20시간이 넘게, 수십, 수백 개의 등껍질 발라내기를 반복했던 결과다.

이 정도면 전생의 최상급 품의 수준에도 결코 모자라지 않은 정도일 거다.

'대략 2천 개가 조금 넘었나.'

개당 1천 골드에 판다고 계산해 보면 200만 골드가 넘는 돈이다.

이 정도 돈이라면 당분간 돈 걱정은 없을 테니, 문제는 없을 거고.

"그럼 이제 슬슬 다음 층으로 올라가면 될 것 같군요."

내가 말했다.

31층에서 더 이상 볼 일은 없다.

그리고 그때 마침.

[31층의 클리어 조건을 완수했습니다.]

[32층으로 올라갈 자격을 획득했습니다.]

메시지와 함께 저 쪽 벽에 빛나는 게이트가 하나 모습을 드러냈다.

"와아아아아!"

"나이스으으!"

하지만 저 기쁨은 오래 가지 못할 거다.

말했듯 31층은 그저 튜토리얼에 불과할 뿐이니까.

***

31층에서 전투를 나 혼자 담당하고, 파티원들에게 하나라도 더 많은 등껍질을 모으게 했던 이유.

그건 바로 32층에서부터는 파티원들이 등껍질을 따고 앉아 있을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등껍질 따는 걸 시키기는커녕 저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이제부터 펼쳐질 세계는, 31층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다.

개미라는 종은 흥미로운 종이다.

여왕을 중심으로 그들의 왕국을 건설하고 전쟁까지 일삼는다.

그 과정에서 나름의 전략을 수립하고 노예까지 부리는 등 인간과 유사한 모습이 많은 종족이다.

탑의 개미굴에 등장하는 개미들은 지구의 개미와는 다르다.

지금까지 봐 왔던 대로다.

페로몬이 아닌, 소리로 소통한다는 점은 둘째 치더라도.

'일단 크기나 생김새부터가 말이 안 되지.'

그들의 전투력은 플레이어와도 충분히 비견될 수 있을 정도이며.

각종 무기와, 그들이 갈고 닦은 무술까지 생각해 본다면 31층의 개미는 정말 애들 장난이라고 생각될 수밖에 없을 정도일 테다.

하지만 중요한 건, 탑의 개미도 어쨌든 개미라는 사실이다.

전쟁과 투쟁, 그리고 싸움이 난무하는 무법지대.

'우리는 지금 그 전쟁터 한가운데에 떨어진 셈이지.'

말 그대로다.

개미들의 전쟁터.

그들의 왕국을 지키고, 또 영토를 확장하기 위한 드넓은 전장에 던져진 셈이었다.

지금 우리 눈앞에 익숙하지만, 또 이질적인 장면이 펼쳐졌다.

"……!"

"이게… 뭐죠…?"

"전쟁…터 같은데요?"

말 그대로다.

사방에는 개미들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전투에서 사망한 개미들일 것이다.

개미의 모습은 다양하다.

근육질의 개미, 각종 장비를 몸에 두르고 있는 개미들까지.

분명 전쟁터였지만, 전쟁터를 가득 메우고 있는 건 인간이 아닌 개미들.

싸움이 한 차례 끝나고 지나갔는지 싸우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 우리에게 메시지가 떠올랐다.

[개미 왕국은 현재 다섯 마리의 여왕으로 나뉘어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방인으로 개미 왕국의 전쟁터 한가운데에 도착했습니다.]

이제부터가 본론이다.

[여러분들의 신분은 용병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개미의 여왕이 탑에게 요청한 용병! 개미의 군대와 함께 전쟁을 승리로 이끄십시오!]

[클리어 조건 : ???]

안내 메시지가 끝이 났다.

플레이어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럴 만도 하다.

전쟁을 승리로 이끌라니.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심지어 클리어 조건은 '???'다.

저들이 당황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전생의 나도 그랬었고.

"용병?"

"그럼… 우리가 저 말도 안 되는 개미들과 싸우라는 뜻인가요? 누구랑? 우리 편은 누구…?"

그때.

[1왕국 – 난이도 : 쉬움]

[2왕국 – 난이도 : 보통]

[3왕국 – 난이도 : 어려움]

[4왕국 – 난이도 : 극도로 어려움]

[반군 – 난이도 : 측정 불가]

현재 이 전쟁터의 세력도가 우리 눈앞에 펼쳐졌다.

내 전생과는 다른 세력도다.

개미 왕국의 역사는 끝없이 흐르고, 동시에 계속해서 변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왕들은 탑에게 '플레이어'라는 용병들을 끝없이 요청하는 것이고.

플레이어들은 개미 여왕과 손을 잡고 끝없는 전쟁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 것이다.

"1왕국! 1왕국으로 가요!"

"맞아요! 난이도가 쉽다는 건 저쪽이 세력이 제일 크다는 거 아닌가요?"

혼란에 빠진 플레이어들의 의견은 크게 고민도 할 필요도 없다는 듯 1왕국 쪽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누구도 확실하게 선택하지는 않았다.

결국 모두의 시선은 나에게로 향했고.

"강민 씨…."

최종 결정권은 내게 주어졌다.

"내 선택을 강요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들 원하는 곳을 선택하시면 될 겁니다."

그동안 함께 했다고 저들과 같이 계속해서 갈 생각은 없다.

"그렇다면… 강민 씨는 설마…."

"하아…!"

"말도 안 돼!"

여기저기서 탄성이 쏟아져 나온다.

아무리 나와 함께라도 '측정 불가'라는 난이도는 꺼려지는 모양이다.

내가 반군을 택하려는 이유는 간단하다.

난이도가 다른 이유는 하나다.

난이도에 따라 보상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당연히 저는 반군을 택할 겁니다. 말했듯 선택을 강요할 생각은 없으니."

[[반군 – 난이도 : 측정 불가]를 선택하시겠습니까?]

"그래."

나는 반군을 선택했다.

그리고.

[지도에 '반군'의 진영이 표시됩니다. 반군의 아지트가 있는 곳으로 이동해 주십시오.]

'멀기도 더럽게 멀군.'

이동시켜 주는 것도 아니고 직접 걸어가라니.

불친절하기 그지없는 스테이지다.

게다가 여기는 전쟁터 한복판.

이런 길을 가로질러 걸어가라니.

측정 불가라는 난이도는 허세가 아닌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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