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미친…. 이게 말이 됩니까? 골렘이 마법을 써요? 아니, 무슨…."
"그런 거 따질 땝니까. 언제 탑이 정상적인 적은 있답니까?"
"그렇지. 그건 그래요…. 그래도 이건 참. 뭐라고 해야 할지…."
사방에서 플레이어들의 곡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그 이유는 말했듯, 29층에서 등장하는 골렘 메이지 때문이다.
골렘들은 인간들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단순 무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때부터 다시 마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는 설정이다.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저들에게 마법 저항력이 없다는 뜻이다.
전에도 한 번 말했듯이, 마법 저항력을 높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아니, 쉽지 않은 수준이 아니라 지금처럼 30층 아래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
그러니 다른 파티원들은 골렘 메이지가 한 번 나타났다 하면 기겁하기 일쑤였고.
이전의 층에서보다 훨씬 더 방어적으로 싸움에 임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용사 파티의 사제가 조금이나마 치유 마법과 보호 마법을 시전해 준다는 정도.
'물론 나는 아다만티움이 섞인 방어구를 착용하고 있느니.'
무려 65%의 마법 저항력이다.
골렘 메이지들의 마법 정도는 맨몸으로 맞아도 큰 타격을 입지 않았고.
몇 마리가 한 번에 마법을 쏘아 내면, 오러 블레이드로 파괴해 버리면 그만이다.
'덕분에 내가 메이지를 독식할 수 있게 된 건 다행이지.'
골렘 메이지에게서는 마력을 포식할 수 있다.
평범한 골렘에게서도 간혹 마력을 포식할 순 있었지만.
그 빈도나 양을 비교했을 때, 골렘 메이지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육체 스탯을 투자해서 마력을 높이는 방법도 있지만.
이왕이면 포식으로 마력을 높이는 게 성장에는 이로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오러 블레이드를 4단계까지만 성장시키고 나면, 오러 블레이드의 지속 시간이 더욱더 늘어날 테니까.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건 사냥의 질적인 차원에서 비교를 할 수 없지.'
그렇기 때문에 나는 더욱더 적극적으로 골렘 메이지를 때려잡았고.
그런 나 덕분에 파티원들은 아마도 한시름 놓을 수 있으리라.
'그나저나 29층의 클리어 조건이 문젠데.'
29층부터는 본격적으로 사원의 끝자락.
즉, 골렘들의 수뇌부가 등장하는 맵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처치해야 할 건 골렘 사제들,'
말이 사제지, 사실상 골렘들의 두뇌이며 또 골렘들을 움직이는 권력자들이다.
인간을 정복하겠다는 야욕을 품고 현재의 골렘들을 만들어 낸 장본인들.
'그들의 전투력은 골렘 지휘관이나 골렘 메이지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다.'
마법과 체술.
두 가지를 동시에 사용하는 말도 안 되는 괴물들이다.
지금 내 전투력으로도 혼자 상대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만큼 골렘 사제는 악명 높다.
그 밑에 이끌고 있는 천인장과 또 골렘 메이지로 이루어진 마법 부대까지.
'어쩔 수 없이 다른 파티들을 끌어모아야 한다.'
전생에서도 골렘 사제를 처치하기 위한 뾰족한 방법을 만들어 내지 못했으니.
결국 최종 결론이 바로 저것이다.
28층에 있는 모든 파티를 한데 모아 골렘 메이지와 싸우는 것.
'대규모 레이드지.'
물론 지금의 시점에서야 다른 파티를 적대시하고 믿을 수 없으니 파티들을 모으는 게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어쩔 수 없지.'
그렇게 해야만 한다.
내가 파티원들을 불러 모았다.
"골렘 사제를 처치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내 말에 모두가 눈을 빛내며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지금 즉시 모두 흩어져 29층에 있는 모든 파티들을 소집해야 합니다."
"예…? 예에에?!"
"다른 파티요? 그, 그건!"
"그놈들을 어떻게 믿습니까!"
내가 예상했던 반응들이다.
이미 파티를 맺은 이들끼리는 어느 정도 유대가 형성되었겠지만.
다른 파티들은 아니다.
명백한 적이고, 악의를 품고 있는 사악한 존재로 비춰질 수밖에.
실제로 그동안 바닥에 나뒹구는 플레이어들의 시체를 수차례 봐 오기도 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골렘 사제는 결코 처치할 수 없다.
아니, 처치하더라도 파티원 대다수가 사망할 것이다.
물론 나 하나쯤 살아남는 건 어렵지 않겠지만.
굳이 그런 위험까지 감수하고 싶지는 않다.
'아직 30층이 남아 있으니까.'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 중 반 이상은 죽을 겁니다."
"……!"
"크읍!"
파티원들이 탄식을 터트렸다.
용사 일행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게 현실이다.
현실을 직시하고 자세를 낮춰야 할 시간이다.
그럼에도 파티원들의 동요는 멈추지 않았다.
잔뜩 걱정스러운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그때 내가 한 마디를 더 얹었다.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내가 있으니까."
"……!"
오만한 말일 진 모르겠지만.
이것 역시 현실이다.
내가 있는 한, 적어도 이 파티의 파티원들을 공격할 수 있는 존재는 29층에는 없다.
"알겠…습니다."
내 말에 결국 파티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
"하하. 다들 오랜만…, 아니 초면이신 분들도 꽤 계시네요."
"흠…."
"좋은 자린데 다들 웃읍시다. 웃어요! 하하하!"
"하하…."
어색한 침묵이 감돌고 있다.
이들은 바로 상위 열 개 길드의 길드장들.
기사에 보도되었던 대로, 이들은 그들이 가진 지식을 공유하고 대한민국 탑의 발전이라는 '명목'으로 모인 것이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속내는 따로 있다.
잠시 손을 잡기는 하지만, 어차피 모두가 적.
상대의 전력을 파악하고, 또 앞으로 자신들이 취할 이득이 무엇이 있을지 파악하러 나온 것이 본 목적이다.
그 중에서 가장 여유가 넘치는 건 화랑 길드의 길드장인 철기영이다.
화랑 길드가 바로 명가를 제외하고 가장 강하며, 거대한 세력.
즉, 랭킹 1위에 빛나는 길드였고.
심지어 명가 산하 소속의 길드도 아니었으니.
이 자리에서 가장 떳떳하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나저나 한 분이 비는데요?"
철기영이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 말대로다.
랭킹 5위.
그리고 자신과 같이 명가 산하의 길드가 아닌, 철목 길드의 길드장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고지를 못 받았을 리는 없고…. 그렇다고 이런 자리에 빠질 사람도 아닌데. 혹시 따로 연락하시는 분 계십니까?"
철기영이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있을 리가 없다.
상위 길드의 길드장이 연락하는 건, 오직 같은 명가 소속일 경우.
그렇지 않고서는 연락은커녕 만나도 인사나 제대로 하면 다행일 지경이니까.
"흠흠…. 뭐. 안 오면 다 자기 손해겠죠. 그렇다고 우리가 그런 사정까지 봐주기에는 다들 바쁜 몸이실 테고요?"
조금은 비아냥대는 말투다.
어차피 너희들은 지시를 받고 움직이는 꼭두각시가 아니냐, 라는 투다.
그 말에 몇몇은 발끈하려 했지만 애써 화를 억눌렀다.
철기영은 스스로가 이 모임의 리더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여기는 중이었다.
다른 이들도 딱히 반박은 하지 않으니, 모임은 계속해서 그가 주도하고 있는 중이다.
"다들 아실 겁니다. 현재 오대 명가에서도 서로 협력하기로 했다는 걸요. 그들은 그들이 쌓아 놓은 정보들을 공유하기로 했죠."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명가의 정보.
그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억만금을 줘도 얻어 낼 수 없는 것이 바로 명가에서 쌓아 온 정보들이니까.
"그러면 우리가 해야 할 건, 당연히 돈을 대는 거겠죠. 단순히 돈만 대는 게 아니라 탑 전반에 걸쳐서 초보 플레이어들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게 맞다고 생각을 합니다만."
철기영이 주변을 둘러봤다.
모두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이렇게 새삼스럽게 말은 하지만 모두가 생각하고 있던 것들이다.
그나마 길드가 명가에 비해서 명함을 내밀 수 있는 게 자금적인 측면이니까.
엄선된 플레이어만 가입할 수 있는 명가에 비해 수용할 수 있는 폭이 자유로운 길드이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딱히 불만들은 없으신 것 같으면 이제 구체적인 사안들에 대해서 논의를 해 봐야겠지…."
그렇게 말하던 철기영이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잠시만요. 메시지가 하나 도착해서…."
그와 동시에 다른 길드장들도 마찬가지로 흠칫 놀란 기색을 표했다.
그들 모두에게도 동시에 같은 메시지가 도착한 것이었다.
"……."
"뭐…?"
"잠깐만…."
"이게 무슨…."
그들에게 지금 도착한 메시지.
그것은 5위 길드, 철목의 길드장인 장한철이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사인은 알 수 없으나 명백한 타살이라는.
"이런 미친!"
전대미문의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이 사실은 탑의 고층.
그리고 상위 랭커들 사이에서만 빠르게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위드 길드도 예외는 아니었으니.
박명철은 지체 없이 강민에게 철목 길드의 소식을 전했다.
***
한 시간이 조금 지났을 무렵.
파티원들이 맵 전체를 돌아다니며 다른 파티의 파티원들을 모아 왔다.
'총 다섯 파티.'
당연히 네 파티보다 더 많은 파티들이 있었지만 말 같지 않은 소리 하지 말라며 꺼지라고 했다던가.
무슨 자신감인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땅을 치며 그 결정을 후회하게 되리라.
그래도 괜찮다.
이 정도의 숫자면 나쁘지 않으니까.
용사 무리까지 모두 합치니 여기에 모인 이들의 수는 대략 70명 언저리.
'여기까지 살아남았으면 다들 실력은 보증된 셈이니, 골렘 사제와 싸우는 것도 큰 무리는 없을 거다.'
골렘 사제의 군대는 천을 넘는다.
70~80명이서 천이 넘는 대 군대와 싸워야 한다는 뜻이지만, 한 파티로 부딪치는 것보다는 훨씬 유리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아직 다섯 파티는 조금도 융합되지 못한 채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한 번 따라와 보기는 했지만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은 표정들도 꽤 보인다.
그때였다.
"한강민 씨?"
한 남자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이제 내 이름을 아는 것 정도는 그리 새로운 일은 아니다.
"예. 맞습니다. 저의 부탁으로 파티원들께서 여러분을…."
"거. 그런 건 됐고. 머리는 잘 쓰신 것 같은데 대장 노릇까지 시켜 드릴 생각은 없습니다."
"……."
또다.
힘자랑.
혹은 허세.
지겹지도 않은 것인지.
"할말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할말? 있다마다. 당신이 얼마나 실력이 뛰어난 건 알겠는데, 솔직히 자연스럽게 대장질하려는 거. 꼴 보기 싫은 것도 사실이거든."
남자의 말에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그래. 그것도 맞지. 대장 하려면 적어도 이름 있는 길드에 소속된 사람이 하는 게 맞지 않나!"
저쪽에서 또 하나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렇게 따지면 나도 빠질 수는 없지."
또 한 사람이 앞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래.
들어나 보자.
다들 얼마나 대단한 길드에 소속된 인물들이신지.
앞으로 나선 사람은 총 셋.
그리고 그들은 자신에 대해서 어필하기 시작했다.
어떤 길드의 소속이고 레벨은 몇이며, 또 얼마나 훌륭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
다들 딱히 별 볼 일은 없다.
나름 유명한 길드지만, 그래 봐야 상위 열 개 안에도 들지 못하는 길드들이었으니까.
내가 한 마디를 꺼내려는 순간.
"그러면 다들 입 다물고 내 말이나 들으십쇼. 다들 들어는 보셨는지. 철목이라고…."
"철목! 랭킹 5위 길드잖아…!"
"……!"
철목 길드의 플레이어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
좌중은 한순간에 그 이름 앞에 압도될 수밖에 없었다.
이것 참….
난감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