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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상태창이 달라졌다-63화 (63/277)

63화

흑암파를 상대하는 두 가지 방법.

하나는 놈들이 '암'을 활성화하기 전에 처치하는 것이다.

하지만 놈들이 암을 활성화했다고 해서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암은 놈들의 기척과 존재를 숨기는 능력일 뿐, 무적이 되는 능력은 아니니까.

분명 싸울 수는 있다는 뜻이다.

물론 엄청나게 힘들다는 것이 문제지만.

'결국 남은 건 몸으로 때우며 하나씩 수를 줄이는 것.'

말이 쉽다.

실제로 그걸 해낸다는 건 압도적인 힘의 차이가 없다면 결코 불가능한 일이다.

'오우거의 신체와 오러 블레이드. 그리고 해밀턴이 만든 장비가 없었으면 꿈에도 상상 못 할 일이었을 거다.'

오러 블레이드의 파괴력은 골렘과 합쳐진 녀석들도 쉽지 않게 베어냈다.

스탯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오러 블레이드의 위력 역시 동시에 배로 뛰었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를 위협하는 흑암파의 공격은 미스릴 장비가 탁월하게 방어해 냈다.

물론 놈들의 공격을 완전히 방어하는 건 불가능하다.

애초에 회피는 꿈도 꿀 수 없었으니까.

그 남은 상처는 미리 복용한 회복 포션의 힘을 빌려 조금이나마 치유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도 대충 몇 명이 남았는지는 파악이 가능하다는 게 다행이지.'

놈들이 흩뿌리는 마력을 통해 대략적인 수를 유추하는 셈.

그 결과 남은 흑암파의 숫자는 10.

1층에 모여 있는 모든 흑암파 녀석들이 몰려와서 나를 협공했지만.

'나는 살아 있다.'

그 말은, 내가 이 싸움의 승리자가 될 것이라는 뜻.

'말도 안 되는군.'

내가 해낸 일이지만, 스스로도 어처구니가 없다.

이런 감상에 빠져 있을 시간은 없다.

이미 명가의 본당으로 연락이 갔을 테니까.

'길어야 1분.'

그 안에 이 싸움을 끝내고, 취할 것을 취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은 당연히 연구소의 파괴.

놈들의 모든 데이터를 말소하고, 실험체를 파기한다.

그리고 다시 복구할 수 없을 만큼 처참하게 망가트리는 것.

'조금만 더.'

사방에서 나를 향해 날아드는 마법은 고맙게도 흑암파의 숫자를 함께 줄이는 데 일조해줬다.

덕분에 흑암파의 숫자는 빠르게 줄어들었고.

콰앙!

모든 녀석들을 다 처치하고 바닥에 내려왔다.

"허, 헉! 보, 본가에서는 언제쯤…."

[마력 1.1을 포식했습니다.]

콰득!

"미, 미친 새끼! 괴물이다! 괴물이…!"

콰직!

[마력 1을 포식했습니다.]

"사, 살려…."

푸학!

[마력 0.8을 포식했습니다.]

남은 명가의 플레이어들은 말도 채 끝맺지 못한 채 바닥에 쓰러졌다.

'아직 끝이 아니다.'

더 이상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 안에 있던 명가의 연구원의 숫자가 30명.'

내가 처치한 숫자는 28.

아직 둘이 빈다.

건물 밖으로 나갔을 리는 없다.

저 문 앞에는 몰른이 지키고 있을 거고.

마주쳤다면 몰른의 비명 소리가 들렸어야 정상이다.

'그러면 어딘가에 숨어 있다는 뜻이다.'

남은 두 명마저도 처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놈들은 명가의 본당으로 돌아가 나에 대한 정보들을 건넬 것이 분명하다.

'확실한 건, 이 방에는 없다.'

어떤 기척도.

마력도 느껴지지 않는다.

'찾아내야 한다.'

방법은 있다.

쥐구멍에 숨은 쥐를 불러내는 훌륭한 방법.

'쥐구멍을 때려 부수는 거지. 겁에 질리면 어떻게든 뛰쳐나오게 되어 있으니까.'

어차피 자료는 수집할 만큼 수집했다.

몇 개 더 있으면 좋겠지만, 굳이 그런 데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

'마지막 실험실에서 몇 개 건지면 될 거다.'

그러면 이제는.

'때려 부순다.'

나는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져 있는 둔탁한 물체를 집어 들었다.

그 위에 다시 오러 블레이드를 덧씌웠고.

'간다.'

벽을 향해 내리쳤다.

콰아아아앙!

실험실의 벽이 한 번에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또.

쿠르르릉! 콰아앙!

쉬지 않고 때려 부수기 시작했다.

실험실이 하나, 둘 무너져 내렸고.

원래의 형체는 조금도 남아 있지 않다.

그렇게 몇 개의 실험실을 더 파괴했을 때.

파삭!

아주 작은 인기척이 들려왔다.

"흐으윽… 흡!"

잡았다.

저벅

그리로 향해 걸었다.

이제야 마력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동안 숨겨 온 노력이 가상할 정도다.

물론 자비는 없다.

부우우웅!

"으, 으아아아악!"

콰직!

이제 남은 건 하나.

남은 한 명을 발견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미 녀석 역시 살아날 가망이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인지.

기척을 숨기지 못한 채 허공에 마력을 흩뿌리고 있었으니까.

남은 한 녀석도 빠르게 처치했다.

'남은 건 대충 3분.'

이 정도면 충분하다.

현재 마지막 실험실 하나를 제외하고 모조리 박살 낸 상태였으니까.

'자. 한번 보자.'

나는 마지막 실험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저게 뭐지?"

"저 문양이면… 마법 명가의 문양 아닙니까?"

"그런 것 같은데요. 대체 저 사람들이 여길 왜…."

한 무리의 마법 명가 플레이어들이 다급하게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수군거리는 플레이어들.

그들은 강민이 소속되어 있던 파티의 플레이어들이었다.

"신경 쓰지 맙시다. 저쪽이랑 관련돼서 좋을 건 없으니까."

"맞는 말이에요.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냥 조용히 탑을 오르는 게 정신 건강에 좋습니다."

모두가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강민 씨는 언제쯤 돌아오는 거죠?"

"글쎄요. 두 시간 안에 돌아온다고 하긴 했는데…. 이제 막 한 시간 정도 지났으니까 아직 좀 더 걸릴 것 같습니다."

"확실히 그분이 없으니까 진도가 안 나가긴 하네요."

"조금만 더 힘 내봅시다. 강민 씨만 도착하면 30층까지는 사실상 프리패스나 다름없을 테니까요."

"으하하하! 좋다, 좋아!"

플레이어들은 어서 강민이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27층을 클리어하기 위해서는 용사들과 함께 27층의 미션을 클리어해야 한다.

말했듯이, 골렘 백인장을 처치하는 것.

운이 좋으면 골렘 백인장을 빠르게 만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26층과 같이 만날 때까지 27층에서 머무르는 수밖에 없다.

물론 만나도 문제다.

정말 운이 나쁘다면 골렘 백인장과 그가 이끄는 십인장, 또 오장.

오장 아래의 골렘 투사들까지.

대략 천여 마리의 골렘과 치열한 싸움을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후…. 대체 이 탑은 누가 만든 걸까.'

대체 어떤 무자비한 존재기에, 이런 말도 안 되는 미션을 플레이어들에게 선사한 것인지.

플레이어들은 탑을 만든 존재의 뺨이라도 한 번 날려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용사님. 아직 백인장의 기운은 안 느껴집니까?"

"그렇소. 그들의 사악한 기운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군."

용사.

용사가 되기 위해서는 몬스터들의 마기에 민감해야만 했으니.

용사는 사실 이 파티의 나침반과 같은 존재였다.

'그나저나 용사 파티도 꽤 세긴 하네.'

용사의 무력은 말할 것도 없다.

마법사와 사제, 그리고 궁수까지.

전형적으로 떠오르는 정석 파티의 구성이었는데.

그들 개인의 무력은 충분히 150이상 레벨의 플레이어 수준을 상회했다.

그들은 골렘 투사와도 능숙하게 싸우는 모습을 보여줬다.

어떤 면에서는 플레이어들보다도 우수한 전투 요원이기도 했다.

용사 일행은 플레이어 파티에게 있어서는 훌륭한 전력이었다.

'하긴. 탑은 항상 불가능한 미션은 주지 않아.'

하지만 탑의 난이도는 절묘할 정도다.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뚜렷한 해법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

잠시라도 방심한다면 절대로 클리어하지 못할 정도의 기가 막힌 난이도 조절 실력을 보여줬다.

'괜찮아. 어차피 강민 씨만 도착하면 문제는 없을 테니까.'

그들은 강민이 돌아오길 기다리며 열심히 골렘 투사와의 싸움을 이어갔다.

그동안에도 마법 명가 플레이어들이 몇 번이나 그들을 지나쳐갔다.

'무슨 일이 생긴 건 분명한데….'

애써 명가의 플레이어들을 머리에 지우고 있을 무렵.

"강민 씨다!"

"어? 정말이다! 강민 씨!"

강민이 모습을 드러냈다.

"미안합니다. 좀 늦었군요."

"늦긴요. 이제 한 시간 조금 지났어요. 훨씬 빨리 오셨네요."

"음…. 그렇군요."

'싸운 흔적을 지우느라 시간이 조금 소요됐지만. 나쁘지 않군.'

피와 땀을 깨끗이 씻어 낸 강민의 모습은 누가 봐도 백여 명이 넘는 적을 처치한 플레이어의 모습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럼. 갑시다. 골렘 투사가 등장하는 위치를 알고 있습니다."

강민이 가볍게 던진 한마디의 말에 파티원들은 놀라 까무러칠 지경이었다.

"놀랄 것 없습니다. 백인장이 있는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잠시 파티를 이탈했던 거니까."

파티원들의 눈에 강민은 어떤 위대한 위인처럼 비춰지고 있었다.

***

"그게 무슨 개 같은 소리야!"

박승균이 화가 나 소리쳤다.

연구소에 누군가 침입했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플레이어들을 출동시켰다.

하지만 돌아온 건, 연구소가 모조리 파괴되었다는 소식뿐이었다.

"흔적은? 실험 데이터…. 실험체는! 아, 아니지… 정균이! 박정균! 그 자식은 어떻게 됐어?"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뭐부터 물어야 할지.

어디에서부터 사태를 파악해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처음 느끼는 감정이다.

언제나 차분하고 냉철하게.

모든 판단을 내릴 때에는 감정을 배제한 채로 정확하고 원칙적으로.

그것이 바로 박승균의 원칙이었건만.

지금 이 순간에 단 한 번도 깨뜨린 적 없던 원칙이 무너져 내렸다.

그만큼 급박한 상황이었고, 박승균은 이성의 끈을 간신히 부여잡는 것만으로도 벅찰 지경이었다.

"대답해! 대답하라고! 이 쓰레기 같은 새끼야!"

박승균이 다시 악을 질렀다.

그 앞에 서 있는 플레이어는 사색이 되었다.

무슨 말을 하더라도 박승균의 화를 가라앉힐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부웅!

"……?!"

콰득!

"커헉!"

박승균은 화를 참지 못하고 플레이어의 안면에 주먹을 내질렀다.

플레이어가 갑작스러운 충격에 코를 부여잡았다.

"말해. 아니면 죽여 버릴 거니까!"

"그, 그것이…."

"말하라고!"

"모, 모든 것이 파괴되었습니다! 치, 침입자의… 흔, 흔적도 찾을 수 없었고… 모든 데이터와 실험체가 파괴되어있었습니다! 그리고…. 흐, 흐으윽!"

박승균의 부들거리는 손이 남자의 목을 움켜쥐었다.

"바, 박정균… 공자님께서는…."

콰아아아앙!

박승균의 손에서 거센 화염이 치솟았다.

"크아아아악!"

남자의 몸이 거세게 타올랐고.

순식간에 재가 되어 바닥에 흘러 내렸다.

화를 참지 못한 박승균은 결국 플레이어를 죽여 버린 것이다.

"어, 어떤… 어떤 개 같은 새끼들이…."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 왔던 성과들이 한 번에 물거품이 되었다.

엄청난 자금과 인력을 투입했던 연구소.

그리고 대한민국의 플레이어를 지배하고, 더 나아가 세계의 플레이어들 머리 위에 군림하겠다는 그 꿈이.

한순간에 박살이 났다.

거기에 더해 박승균이 더 참을 수 없었던 것은.

'박정균….'

자신의 동생.

그가 죽었다는 사실이다.

그가 분노하는 건, 아끼는 동생이 죽었다는 게 아니다.

자신과 같은 명가의 피를 이어받은 직계.

그 고귀한 혈통이 누군가의 손에 짓밟혔다는 그 모멸감.

그것을 절대 참을 수 없었을 뿐이다.

그의 눈이 붉게 달아올랐다.

화를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건….'

역시나 검술 명가 밖에는 없다고.

그는 확신했다.

하지만 지금 검술 명가는 그런 행동을 할 수 없다.

박승균의 제안대로 다른 명가들은 현재 탑을 오르기 위해 협력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분명 어딘가에 사주를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건.

'거대 길드. 이 천한 벌레들이….'

박승균의 칼날은 탑의 거대 길드를 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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