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 #81
쿠웅-
묵직한 철문이 열리고 그 안에 드러나는 광경을 본 강혁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허, 장난 아닌데.”
“3급이나 2급 창고를 보셨으니 아시겠지만 가져가실 수 있는 건 단 한 가지입니다. 그 가치의 차이가 얼마나나든 말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분명 3급과 2급보다 작은 창고의 크기였지만 충분히 컸으며 그 안에 담긴 것들 하나하나가 강혁의 눈에는 세상에 다시 없을 보물처럼 느껴진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별이 떨어져 만들어진 광물, 성철(星鐵).
수십, 수백 명의 피를 머금고 탄생한 블러드 아이언.
대장일을 하는 이라면 꿈에서라도 그려보던 수많은 광물들이 1급 창고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한국에서 망치질을 하고 있을 창수 또한 일평생 동안 몇 번 만져보지 못했을, 어쩌면 볼 수조차 없었을 광물들이 1급 창고 안에 길바닥에 돌멩이처럼 굴러다녔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검, 창, 도, 스태프, 마법서....진짜 없는 게 없군요.”
“세상이 있는 그 모든 물건의 정점에 있는 것보다 한 단계씩 더 높은 보물들로만 이루어져 있으니까요.”
밖에 나가면 명검을 넘어선 무언가라고 불릴 정도로 뛰어난 무구들부터 다양한 갑옷들까지.
헌터인 강혁에게 있어서 억만금을 주어서라도 꼭 가지고 싶은 것들로 내부가 가득했다.
하지만 한참을 창고 안을 둘러보던 강혁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오는 순간 모든 잡념은 사라졌다.
3급 창고에서 마법서를 보았을 때, 2급 창고에서 용혈을 발견했을 때와 비슷했다.
지잉-
보자마자 전신이 진동하며 저걸 가지라고 소리칠 정도로 눈앞에 보이는 무언가는 강혁이 가장 바라마지 않던 것이었다.
“....드래곤 하트!”
“역시 그걸 노리시는 겁니까. 하지만 조심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왜 몇 년 동안 1급 창고를 들어온 이들이 저걸 가지고 나가지 못했는지를 듣는다면 녀석을 가져갈 생각은 들지 않으실 테니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
안내원의 말에 강혁은 확실히 이상함을 느끼곤 고개를 갸웃거렸다.
드래곤 하트는 분명 누구에게나 좋은 물건이다.
그런데 드래곤 토벌 이후 몇 년의 시간이 흘렀는데 주인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이어진 안내원의 말에 강혁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저 녀석은 마음대로 손을 댈 수조차 없습니다. 관상용으로 쓸 게 아니라면 꺼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저 녀석이 직접 말을 건다고 하더군요. 다행히 여기까지 들어온 사람들 중에 모자란 사람들은 없었기에 잡아 먹히거나 미쳐버린 이는 없었지만....”
“자신을 사용할 사람조차 고른다는 거야? 소모품 주제에?”
“예, 아무래도 ‘그’ 드래곤의 심장이라서 그런지 그의 생전 자아가 강하게 박혀 있는 것 같습니다.”
“자아가 사라지려면 얼마나 남았는데?”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강한 자아가 남아 있는 만큼 최소 몇 년은 더....”
“됐어, 그럼 그냥 한 번 내가 집을 수 있는지 확인 해봐도 될까?”
“그거라면 상관 없습니다. 괜히 가져갔다가 관상용으로 놔둘 수는 없으니까요.”
흔쾌히 접촉 허락을 내어주는 안내원의 말에 살짝 목례를 취하며 감사를 전한 강혁이 드래곤 하트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투명한 유리관 속에 둥둥 떠오른 보석 같은 드래곤 하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강혁은 지체하지 않고 유리관 안으로 손을 집어넣고 드래곤 하트를 움켜쥐었다.
쿠구구구-
그리고 강혁이 드래곤 하트를 집기 무섭게 유리관을 비롯한 1급 창고 전체가 뒤흔들렸다.
-놔라, 미천한 필멸....잠깐 네 녀석은 뭔데 반용의 신체를 지니고 있는 거지?
분노가 가득 깃든 드래곤의 목소리가 강혁에게 내리꽂히는 순간 드래곤의 목소리에 어린 당혹을 느끼며 강혁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네가 죽은 드래곤의 자아 맞지?’
-....설명해라! 네 녀석이 대체 어떻게 반용의 신체를 가진 거냔 말이다! 분명 이 세상에는 드래곤의 하프가 없을 텐데?
대답할 여유조차 없는지 당황에 빠져 혼잣말을 지껄이는 드래곤의 자아를 향해 강혁이 강하게 나섰다.
‘내가 먹었다.’
-....뭐?
‘네 피를 내가 마시고 반용의 신체를 지니게 되었다고. 그럼 네 심장도 내가 가지는 게 맞겠지?’
-그런 말도 안 되는! 한낱 인간 따위 드래곤의 피를 마시고 살아남은 걸로도 모자라 반용의 신체를 얻었다고?
당혹을 넘어선 분노에 강혁은 그저 싱긋 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 상황은 어떻게 설명할 건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이미 결과는 나와 있었고, 진실을 보지 못하고 있는 건 드래곤의 자아였기에 강혁은 그가 진정할 때까지 가만히 기다려주었다.
그렇게 몇 분의 시간이 흐르고 진정한 드래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체 넌 누구냐. 일개 필멸자 따위가 가질 수 없는 힘들이 네 몸에서 느껴지는구나. 그리고 네 몸에 박혀 있는 세 개의 파편. 그것들은 분명....
-닥쳐라! 파편이라니, 도마뱀 주제에 감히!
-맞군, 입이 걸걸한 게 딱 전쟁의 신 녀석과 똑닮은 걸 보니까 말이야.
-닥치라 했지!
물론 그의 말에 빡친 분노가 개입하며 난장판이 되긴 했지만 드래곤의 자아의 목소리에서 자신을 인정하려하는 듯한 뉘앙스가 느껴졌기에 강혁은 잠자코 그걸 지켜보았다.
그러다 분노가 찌그러지고, 혼자가 된 드래곤의 자아가 강혁을 향해 물었다.
-....네 녀석 올 마스터지?
‘맞다. 네 힘 말고도 다양한 힘들이 내 안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 그리고 내가 더 나아가기 위해서 네가 필요해.’
말만 들으면 마치 사랑 고백이라도 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심장의 동의를 얻고 흡수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그런 강혁의 대답에 드래곤의 자아는 한 가지를 더 물었다.
-우리 드래곤들을 잡아다 목에 족쇄를 채우고 저들의 장기말로 사용한 신과 악마들. 그들을 우리와 똑같은, 아니 그보다 더 안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게 약속해준다면 나는 너를 허락하겠다.
더 말 할 것도 없는 드래곤의 물음에 강혁은 씨익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말하지 않아도 그건 내가 할 생각이었어.’
-....긴 시간이었군. 그리고 한 가지 더 있다.
‘뭔데 빨리 말해. 들어줄 수 있는 거라면 들어줄 테니까.’
태연하게 말을 던지는 강혁의 모습에 드래곤은 어이 없어 하면서도 자신이 가장 바랬던 것을 꺼내들었다.
-네가 데리고 있는 아이를 잘 키워다오. 그게 내 마지막 부탁이다.
‘....역시 네가 부모였나.’
-그래, 신에 의해서 족쇄를 차고 광증에 걸려 미쳐 날뛰는 수모를 겪었지만 이렇게 되고 나니 그 아이에 대한 감정이 커지더군. 하지만 나는 할 수 없는 일이니 네게 맡기겠다.
‘1....그럴게. 건강하게 자라도록, 내 자식처럼 키우겠다.’
-....흡수해라. 반발은 없을 거다. 본래 드래곤의 심장은 반용들에게 적합하게 만들어져 있으니까. 아니, 정확하게는 반용들이 진짜 용이 되고 싶어 드래곤 하트와 적합하게 만들어졌다는 말이 옳겠지.
‘그럼 흡수한다?’
-오랜 기다림이었다. 나 한 명의 힘으로 하여금 녀석들에게 물을 먹일 수 있다면 그리 나쁜 인생은 아니었던 것 같군.
힘이 빠진 녀석의 목소리와 동시에 강혁의 손에 쥐어진 보석 같은 드래곤 하트가 알알이 흩어지더니 이내 강혁에게로 흡수되었다.
그 모습에 강혁을 바라보던 안내원의 얼굴이 놀람으로 가득찼다.
“....어떻게?”
“이제부터는 잠시만 조용히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알겠습니다.”
드래곤 하트가 모조리 흡수되기 직전 강혁이 한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안내원은 그대로 문 앞으로 다가가 문쪽을 바라보며 섰다.
마치 벌을 서는 듯한 모양새였지만 자신을 위한 배려였기에 강혁은 그대로 나머지 드래곤 하트를 흡수했다.
“....컥!”
그와 동시에 신체가 재구성 되는 고통이 전신에 작렬하고, 짧은 단말마와 같은 비명을 내지른 강혁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차디찬 대리석 바닥에 몸을 누인 강혁은 이를 악 물고 고통을 참아냈다.
[신체 : 반룡체(半龍體)가 신체 : 용체로 진화합니다.]
[현재 진화율 : 1%....3%....]
자신의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창이 끝날 때까지 강혁은 전신이 터져나가고, 박살나고, 재조립되는 고통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커헉!”
거친 숨을 토해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강혁은 땀에 푹 절은 자신의 몸 이곳저곳을 만져보더니 이내 피식 미소를 터뜨렸다.
“성공이네.”
[신체 : 반룡체(半龍體)가 신체 : 용체로 진화하였습니다.]
[용의 힘이 당신의 신체에 깃들었습니다. 사대 스탯이 100씩 상승하였습니다.]
[드래곤 하트의 무한한 마나가 당신의 몸에 깃듭니다. 드래곤 하트가 치명적인 피해를 입지 않는 한 무한한 마나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 드래곤 하트는 치명적인 피해를 받으면 시간을 들여 자가수복합니다.]
[특성 : 용언이 생성 되었습니다.]
[용언의 효과로 알고 있는 모든 마법을 캐스팅 없이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 대가 하나는 장난아니군.”
전신이 수십 번은 박살나는 고통을 느꼈지만 그 대가는 어마어마했다.
사대 스탯이 100씩 오르면 자원 스탯보다 한 수 처지던 사대 스탯들이 자원 스탯들을 빠르게 추월한 것도 모자라 마나 고갈 걱정은 이제 사라졌다.
거기에 드래곤 하트와 자신의 심장까지 도합 두 개의 심장으로 단번에 급소가 꿰뚫려 죽을 걱정 또한 줄었으며.
용언 덕분에 강혁의 마법 활용도 또한 어마어마하게 오르게 되었다.
‘루카스 폴른에게 듣기로 했던 마법 강의까지 다 듣고나며 정말 어마어마하게 강해지겠는데?’
현자 루카스 폴른.
그가 알고 있는 마법은 모든 마법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마법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자랑한다.
거기에 용언과 무한한 마나까지 곁들여진다면 그 어떤 마법사도 강혁의 상대가 되지 못할 터였다.
설령 그것이 마법사로서 정점에 다다른 루카스 폴른일지라도.
그것이 바로 드래곤이라는 종의 힘이었다.
“....드디어 끝나신 겁니까?”
“....저번부터 죄송한 일만 하는군요.”
예전 마법서를 고를 때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고, 공교롭게도 그때와 같은 안내원이기에 강혁은 미안함을 감출 수 없었다.
“몇 시간이나 지났습니까?”
“....72시간이요.”
“....대가리 박을까요?”
“괜찮습니다. 후우, 월차라도 쓰고 좀 자러가야겠군요. 좀....피곤하네요.”
72시간.
3일 내내 벽 보고 서 있었다는 안내원의 말에 강혁은 진심으로 미안함 마음을 느끼며 빠르게 그를 들쳐 메고 지상으로 올라왔다.
“집이 어디시죠? 제가 태워다 드리겠습니다.”
“아, 괜찮은데....?”
-타시죠, 드래곤 택시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지상으로 올라온 안내원의 피곤함 가득한 음색에 강혁은 이번에 얻은 용체를 사용하여 드래곤의 모습을 변했다.
그리곤 드래곤 특유의 텔레파시를 통해 안내원에게 집의 위치를 물었고.
그 날 신문에는 강혁에 대한 이야기, 아니 정확하게는 서울 하늘 위에 나타난 거대한 비행체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