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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혼자 올 마스터-69화 (70/178)

나 혼자 올 마스터 #69

멈춰진, 아니 정확하게는 멈췄다고 느껴질 정도로 느려진 세상 속에서 오직 내 머릿속만은 평범하게, 어쩌면 평소보다 더 빠르게 움직였다.

‘신체는 이미 맛이 갔고, 몸속의 기혈이란 기혈은 모조리 뒤틀린 것 같은데. 이거 살 수 있나?’

붕괴 되어 가는 신체, 망가진 내부.

그 모든 것들이 몇 초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사이에 모조리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들은 뒤로 미뤄둔 채, 내가 생각한 것은 단 하나.

‘어떻게 하면 녀석을 이길 수 있지?’

눈앞에 있는 블라드를 이길 방법 뿐이었다.

시간이 많지는 않았지만 적지도 않았기에 곰곰이 생각을 마친 순간 내 머릿속에 떠오른 방법이 있었다.

목숨을 건 도박과도 같은 방법이었지만 지금으로선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도 했다.

‘....일단 한 번 해보자.’

생각을 마친 나는 곧바로 아공간 주머니에서 유리병 하나를 꺼내 들었다.

유리병 안에 든 것은 발터 밀란의 No.19.

즉, 극독 중의 극독이었다.

얼마 전에 내가 극복했던 No,18의 바로 윗 단계 독이며 발터 밀란조차 소화해낼 자신이 없던 극독.

그걸 나는 단숨에 들이켰다.

마시자마자 기도와 식도가 녹아내리고, 오장육부가 녹아내리는 듯한 고통이 전신에 일었다.

하지만 그 순간 불안전한 만독불침이 그걸 해독해나가기 시작했다.

서서히 잦아드는 고통과 그에 더불어 8할에서 9할까지는 회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지난 시간 동안 노력해온 나의 결과물에 미소를 지으며 나는 마치 전투를 포기한 것처럼 축- 늘어졌고, 그와 동시에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정확하게는 내가 주어진 전투 예지의 시간이 끝나고 정상적으로 세상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지만 내겐 그거나 그거나였다.

“....뭐지? 무언갈 빠르게 하더니 결국 고른 게 포기냐? 멍청하군.”

“....”

비웃음마저 느껴지는 블라드의 이죽거림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제자리에 서 있는 내 모습에 블라드는 인상을 찌푸리며 내게 다가오며 자신의 날카로운 송곳니를 꺼내들었다.

어둠이 사라지고, 어느 정도의 빛이 들어온 고성 내부에 비친 빛이 송곳니를 눈부시게 빛내주었다.

그런 송곳니를 꺼내든 블라드는 내게 다가오더니 이내 내 목에 자신의 송곳니를 박아 넣었다.

“....이강혁! 너 뭐하는 거야! 왜 가만히 있냐고!”

“....니아, 나갈 준비를 해라. 강혁에게 신호가 떨어지면....”

“신호는 개뿔이 신호. 난 갈 거야. 가서 강혁이를 구해야....”

자신의 친구들에게서 들려오는 소란에 강혁은 서서히 피가 빨려 나가는 느낌을 받으며 짙은 미소를 머금었다.

‘성공인가.’

강혁의 노림수.

그것이 드러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컥! 카학!”

“....?”

“쟤 왜 저래?”

강혁의 피를 빨던 블라드가 검은 피를 토해내고, 그걸 보는 강혁의 친구들의 얼굴에도 당황이 떠오를 때.

블라드의 송곳니가 박혔던 자리를 치유하며 강혁이 짙은 미소와 함께 블라드를 바라보았다.

“어때? 내 피는 맛있나?”

“....이게 무슨. 대체 네 녀석의 피는 뭘로 만들었길래 이런 독성이....컥!”

말을 하는 와중에도 치솟는 독기에 정신을 못 차리는 블라드의 모습에 강혁의 입가에 걸린 미소는 짙어져만 갔다.

“요르문간드.”

“....!!!”

“정확하게는 그의 화신체라고 보는 게 맞겠지. 그 녀석의 독이다. 어때? 효과 죽이지?”

요르문간드.

신과 악마.

그중에서도 악마에 가까운 괴물.

그런 괴물의 화신체가 지상에 나타났을 때, 최강의 10인은 그를 사냥하는 데에 성공했다.

피해는 컸지만 사상자 없이 무사히는 잡아냈던 바로 그 괴물의 독.

발터 밀란의 No.19 독이 바로 요르문간드의 독이었던 것이다.

당연하게도 그 독은 독기의 1인자, 이제는 강혁에게는 내줘야 할 1인자 자리에 서 있던 발터 밀란조차도 해독하지 못했던 독.

물론 강혁의 몸이 자체적으로 해독하던 독인 만큼 본래의 독 만큼 강하진 않았지만 독에 대한 면역이 없는 블라드에게는 치명적이었다.

“분리....분리를....”

다만 피에 대한 절대적인 지배권이 있는 블라드가 주춤주춤 물러서며 자신이 빨아들인 피와 이미 섞여버린 피를 분리를 하려고 할 때.

강혁은 그런 블라드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이미 신체는 망가질대로 망가진 상황.

피부는 늘어지고, 피부 아래의 살과 근육들이 문드러져 가고 있었음에도 강혁의 발걸음에는 멈춤이 없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주춤대는 블라드의 앞에 도달한 강혁이 입을 열었다.

“이래도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해?”

“....”

포기를 한 것처럼 상황을 연출시키고 목을 내어줘 피를 빨게 한다.

뱀파이어들이 포기한 먹잇감을 노릴 때 보이는 모습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파놓은 함정.

그것에 블라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강하기만 하진 않군. 누구보다 뛰어난 정보를 바탕으로 함정을 파는 데에도 능하다는 건가. 간교한 신과 비열한 악마에게도 밀리지 않겠어. 나는 정말 이 필멸자를 주인으로 모셔도 되는 건가? 아니, 모셔야 하는 건가?’

강혁의 강함과 정보력을 말이다.

더불어 그 어떤 강자를 상대로도 물러서지 않는 그의 모습이 정말 신과 악마를 몰아낼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마저 들게 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당연하다는 듯이....

털썩-

“....따르겠나이다. 뱀파이어 백작 블라드. 새로운 주인을 만나 그가 걷는 길의 끝까지 도달할 때까지 곁에 보필하고, 가로막는 적을 쳐부수겠습니다.”

“그래, 그럼 족쇄부터 부수자. 나 지금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거든?”

“얼마든지 좋습니다.”

“이 악물어라.”

“예?”

“좀 많이 아플 거거든.”

이빨마저 드러내며 씨익 웃는 강혁의 미소에 블라드의 입가에 어색한 미소가 걸렸다.

그마저도 아름답기 그지 없었지만 현재 블라드가 느끼고 있을 당황을 어느 정도 표현하기엔 그보다 충분한 건 없었다.

“....끄으아아아악!”

강혁 본인과 전투를 벌일 때보다 더 고통스러운, 입가에 침과 피가 섞인 게거품이 줄줄 올라오는 블라드의 모습에 모인 이들이 얼굴에 놀람이 번져갔다.

이 중에서 태연한 것은 단 한 사람.

“음, 나도 저랬었나. 좀 꼴불견인데....내가 족쇄를 풀 때는 아무도 없어서 다행이군.”

이미 한 차례 저걸 겪어본 알마드만이 그걸 웃으면서 지켜보고 있었다.

노예 1호 아크 리치에 이은 노예 2호 뱀파이어 백작이 합류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아, 현기증 생기네.”

“괜찮으십니까? 넌 네 걱정이나 해. 독 흡수 되지 않도록 잘해서 몸 밖을 빼내고.”

“이미 그러고 있습니다. 주인님의 옥체가 상할까 걱정이 돼서....”

“누구 때문에 이 난린데? 됐고, 주변 정리나 싹 해 놔. 뱀파이어들에게 인간 사냥은 멈추라고 지시하고.”

“알겠습니다.”

신성화를 해제하고 본래 몸 상태로 돌아온 강혁은 짜증이 담긴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블라드의 몸 상태를 걱정해서였고, 둘째로는 더 이상 뱀파이어로 인한 인명 피해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래서였다.

그런 강혁의 명령에 토 달지 않고 고개를 끄덕끄덕거리던 블라드는 이윽고 홀가분해진 몸으로 고성 어딘가로 사라졌다.

다른 뱀파이어들을 소집하고 갈구기 위해서 사라진 그를 바라보며 강혁은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강혁이 주저앉기 무섭게 다른 이들이 강혁에게 달려왔다.

“괜찮나?”

“강혀가 너 여기서 기절하면 그대로 덮쳐버릴거야. 이거 진담이야.”

“....괜찮으신 거 맞죠?”

덤덤하게 안부를 묻는 루카스 폴른과 선포를 하는 니아 아리엘, 마지막으로 걱정 어린 안부를 묻는 엘리자베스 할론까지.

다양한 반응들을 바라보며 피식 미소를 지은 강혁은 한 마디를 던졌다.

“....안 괜찮아.”

그 말을 끝으로 강혁은 기절했다.

혼절해버린 강혁의 모습에 세 사람은 깜짝 놀랐지만 제대로 숨을 쉬는 강혁의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살아는 있군.”

“근데 정상은 아닌데?”

“그럴 수밖에. 녀석이 다루던 힘은 우리의 힘을 넘어섰어. 다만 그 힘을 가진 리바운드가 온 거지. 멀쩡한 게 더 이상한 일이다.”

“그러고 보니 여기 오기 전에도 강혁이가 혼자서 S급 보스를 처치한 것도....?”

“아마 그렇겠지. 지금과는 정반대의 모습이었지만 말이야.”

“아까 느껴진 신성력은 아버지보다도 강했어요.”

“그럼 확실하군.”

엘리자베스 할론의 아버지 루터 할론의 신성력보다 강하다.

즉, 신성화 혹은 악마화 상태일 때의 강혁이 최강의 10인보다 윗줄의 강자라는 얘기라는 말이었다.

다만 그 대가 신체의 붕괴라는 점이 문제였지만 말이다.

결국 세 사람은 기절한 강혁을 바라보며 걱정 어린 대화를 나누었다.

“이대로 두면 녀석은 다신 움직이거나 전투를 할 수 있는 상태가 되진 않을 거다.”

“동감이야. 전신의 근육이 조각조각 박살이 난데다가 기혈도 뒤틀렸어. 이 정도면 고칠 수 있는 이가 있는 게 더 신기한데?”

“답은 하나밖에 없군.”

“아아....확실히 이런 상처를 고칠 수 있는 존재는 단 한 명밖에 없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맞장구를 치는 니아 아리엘의 모습에 엘리자베스 할론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그게 누군데요?”

궁금증 가득한 그녀의 물음에 루카스 폴른과 니아 아리엘은 피식 미소를 지으며 대꾸해주었다.

“루터 할론.”

“그러니까....네 아빠, 정확하게는 네 아빠와 부하들이지.”

“....예에?”

그리고 지금의 강혁을 구해줄 수 있는 이는 그녀 또한 익히 아는 사람이었다.

다름 아니라 그녀의 아버지 루터 할론과 그의 부하 성기사, 성직자들이었으니까.

결국 오랜만에 집으로 되돌아가게 된 그녀가 얼떨떨한 얼굴로 되물었다.

“정말 아버지랑 아저씨들이면 강혁 아저씨를 구할 수 있는 거에요?”

“뭐, 그들만으로는 무리지.”

“....그럼요?”

“지금의 강혁을 구할 수 있는 건 분명 그들이지만 물건 또한 하나 더 필요하거든.”

“물건? 대체 어떤 물건이길래 강혁 아저씨를 구할 수 있다는 거죠?”

지금 강혁의 상태는 그리 좋지 못했다.

금방이라도 하늘로 승천해버릴 것 같은 모양새.

그나마 겉은 멀쩡해보이지만 내부는 완전히 곪아버린 상황.

그렇기에 엘리자베스 할론은 믿을 수 없었다.

강혁이 죽는 걸 바라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안 되는 게 된다고 믿는 것만큼 비관적인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어진 두 사람의 말에 그녀의 얼굴엔 놀람과 동시에 믿음이란 감정이 번져갔다.

“엘릭서.”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면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다는 희대의 명약.”

“....그거 도시 전설 같은 거 아니었어요?”

엘릭서.

도시 전설처럼 죽은 자도 살릴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비슷하긴 한 엘릭서가 바로 강혁을 살릴 수 있는 마지막 피스였다.

그리고 그 마지막 피스를 가지고 있는 건 단 한 사람.

“지금 당장 영국과 미국으로 흩어지도록 하지.”

“알케미스트는 네가 만나게?”

“그래, 어느 정도 연은 있으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연금술사, 알케미스트가 바로 엘릭서의 소유주였다.

순식간에 떠날 사람과 떠날 곳을 정하진 네 사람이 환한 빛무리에 휩싸이는 순간.

“주인님! 다녀왔습니다! 주인님....?”

“갔다.”

“....? 어딜 가? 난 여기에 있는데? 너도 여기에 있잖아?”

“그건 나도 모르지.”

“....”

뱀파이어들에게 명령을 마치고 돌아온 블라드와 알마드만이 어색하게 서로를 바라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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