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8화 〉이상한 인연 1 (68/72)



〈 68화 〉이상한 인연 1
세하는 생각했다.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단독으로 나서게 됐지?’

물론 루이제가 항상 있으니 단독은 아니었다.

-마스터의 업보라고 해야겠죠. 아니, 저하고 엮여서 이렇게 된 거라고 할까요?


어딘지 루이제의 음성에서 자책의 감정이 묻어났다. 하지만 세하는 껄껄 웃으며 반응할 수 있었다.

“원래 큰  하는 사람은 고독한 법이라잖아? 물론 네가 항상 곁에 있으니 외롭지 않아.”


이미 아이에르가 전해준 통신기는 루이제가 무력화 시켰다. 물론 이쪽에서 통신으로 전하고 싶을 때는 전할  있었다. 말 그대로 자신이 듣고 싶을 때 듣고 말하고 싶을  말할 수 있는 상태였다. 그래선지 세하는 마음 편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가면 갈수록 답이 없는 느낌이네.”

엘트레이와 아이에르와 헤어지고 나서 10분 정도를 걸었다. 하지만 뭔가 적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고 계속 보던 광경만이 눈에 들어오는  같았다.

-달리 감각 혼란이나 정신적인 오염 같은 것은 감지되지 않습니다.

루이제는 그런 세하의 상태를 염려해서 수시로 상황을 체크하고 있었다. 그리고 전면 디스플레이 오른쪽 상단에 남은 시간이 표시되고 있어서 세하는 계속 확인을  수 있었다.


“하아. 그럼 또 예전처럼 깽판을 쳐야 하나?”

세하는 고민했다. 모름지기 뭔가 적이 조용하다 싶으면 깽판부터 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이곳은 메이지 클랜의 핵심 마력로가 있는 곳이었다.

‘뭐 엘트레이 같은 경우에는 다 내보낸다면 박살낼 각오였으니 상관없으려나.’


세하가 그렇게 멈춰 서서 극단적인 생각으로 머리를 체우고 있자 루이제는 답답했는지 결국 세하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말았다.


“어? 루이제. 너 요즘 자주 나온다?”
“그 말은 저번에도 했거든요?”

루이제는 한숨을 푸욱 내쉬고 있었다. 복장은 헬멧만 안 쓰고 있다 뿐이지 파워드 슈트를 연상케 하는 방호복을 입고 있어서 일단 위화감은 덜해보였지만 그녀가 반투명한 상태로 존재하는 건지라 세하는 잠시 눈을 의심해야 했다.


“매번 볼 때마다 적응이  돼.”
“그렇다고 전투 시에 실사에 가깝게 나오면 마스터에게는 방해가 되니까 그렇죠. 그나저나 어떻게 하실 생각이에요?”


루이제의 물음에 세하는 볼  없다는 식으로 말했다.

“최대한 들어가 봐야지.  10분 남았을 때 빠져나가고 말이야.”
“그래요?”


루이제는 어차피 세하가 이런  가지고 겁먹을 성격이 아니란  알아서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렇게 둘이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게 되었는데 세하가 질문을 던졌다.


“엘렉티오로 어느 정도까지 진화가 되지?”

아무래도 세하에게 궁금했던 일 같았다. 거기에 루이제는 잠시 생각하는 가 했더니 바로 세하의 눈앞에 가상화면을 띄웠다.

“일단은 고기동형 항공모함 수준의 형태까지가 한도에요.”
“항공모함?”

세하는 순간 머릿속에 희한한 광경을 생각했다. 하지만 뒤이은 루이제의 말은 그런 세하의 망상을 부정했다.

“말이 그렇다는 거예요. 실제 항공모함처럼 거대한 정도는 아니지만 탑재기가 따로 있어서 마스터의 행동을 보조할 수 있는 개념인 거예요. 기체 자체의 화력도 출중하지만 탑재기들의 화력도 마찬가지로 상당한 수준이죠.”

루이제가 거기까지 설명하자 세하는 그제야 납득이 갔다.

“가히 일 대 다수에 최적화된 타입이겠군.”
“네. 현재 진화해서 변환 가능한 기체 타입이 여러 가지 있긴 한데 절대 우위라는 건 없어요. 상황에 맞춰서 운영하는 감각이 필요하죠.”

루이제는 거기까지 말하더니 갑자기 미간을 찌푸렸다.


“마스터. 조심하세요.”


안 그래도 루이제가 먼저 감지해낸 것 같았다. 뒤이어 세하도 자신의 감각을 날카롭게 자극하는 걸 느끼는 터라 표정이 진지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게 말이다.”


회색의 혈관과도 같은 조직에 온통 금속의 벽과 지면으로 이뤄진 통로에서 갑자기 유령처럼 뭔가 희미한 형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뭔가 다수로 튀어나오는 게 아니었군.’


그리고 그 형태가 점차 뚜렷해지는 걸 보면서 세하는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전투를 상정하고 있기에 루이제는 모습을 진즉에 감췄다. 그런 상태에서 세하는 입을 열었다.

“가로 막을 거면 박살  거고 대화를 원한다면 우선 개소리라도 들어주마.”


초면에 이런 식이라면 누구든 좋지 않은 반응일 터였다. 하지만 상대는 세하가 말을 걸자 신기하다는 듯 웃음을 짓고 있었다.

“이런 정도로는 겁을 안 먹는 거군요. 반가워요.”


달리 공기를 울리는 것도 아니고 제대로 말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 음성은 영롱한 울림이 담긴 맑디맑은 여성의 것이었다.

‘이거야 원.’


세하는 그레이스를 만났을 때와는 다른 기분이 들었다. 어딘가 세파를 초월한 여유와 아름다음이 느껴지는 여성이었다. 그러면서 그녀 또한 마법사의 로브를 입고 있었다. 길고 푸른 머리칼이 눈에 띄는 것이 어딘가 엘클레이를 닮은 느낌이었다.


-마스터. 혹시 엘크레이님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요?


루이제의 생각도 세하와 같은 것 같았다. 그래서 난감함에 세하는 더 비틀린 기분으로 말했다.


“누구하고 많이 닮은 거 같아서 기분이 나빠.”
“네. 엘클레이는 제 오라버니시니까요.”
“.......”

그리고 세하가 말하지도 않았는데 엘트레이를 언급하는 여성의 말에 세하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그러자 문제의 여성은 우아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슈타크카이트의 아크메이지인 사야넬이라고 합니다.”

자신을 사야넬이라고 밝히는 그녀를 보고서 세하는 다시 물었다.


“그래. 많이 닮은  같네. 그런데 너도 아크메이지라고?”
“네. 하지만 뭔가 더 묻고 싶으신 거 같네요.”

겉모습으로만 본다면 청초한 미모의 미인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세하는 그녀가 이렇게 핵심 마력로의 안쪽에 나타난 것부터가 수상했다. 그래서 결코 말투가 곱지 못했다.

“엘트레이는 너 같은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는데 말이야.”
“오라버니는 항상 그런 식이셨죠. 사실 경우에 따라서 당신을 속일까도 싶었습니다. 민세하님.”

사야넬은 세하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세하의 경계심은 더욱 높아졌다.

“골 때리네. 내 이름을 안다 이거지? 그러면 슈타크카이트에 있으면서  이름을 들었던지 아니면........”

세하는 말끝을 흐리면서 슈트의 양 손을 사이킥 캐논으로 바꿔 사야넬을 겨눴다.


“엑펠트와 관련이 있어서 알겠지.”
“아하하하... 급하시네요. 아직 제가 어느 쪽에 속해 있는 지 말씀을 안 드렸는데 말이에요.”


사야넬은 낮게 웃었다. 하지만 두 눈이 붉게 변해서 빛나는 모습에서 세하는 오히려 침착하게 말을 받았다.


“너 같은 것들에게 한 마디 더 하자면, 보기 좋은 모습으로도 충분히 개 같은 짓거리를 한다는 거야. 그리고 나를 속일 생각이었다며?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안 속여도 충분히 어떻게 해볼  있다는 계산이 선다는 거겠지.  그래?”
“그래요. 게다가 엑펠트 살해자로 이름이 높은 당신을 만나니 더욱 흥미가 동하네요. 자세한 사정은 제가 당신을 제압하고 나서 알아봐도 되겠죠.”

사야넬의 주변 공기가 변하기 시작했다. 역시나 회색의 냉기 같은 것이 가득 일어나며 움직이는 꼴을 보며 세하는 투덜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냥 들을 것 없이 후려갈기고 볼걸 그랬어.”


퓨화화확!


세하의 슈트 주변에도 화끈한 불길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상대가 냉기를 형상화한 것에 대한 반응의 여파였다.


“놀랍네요. 이런 식으로 힘을 형상화할 수 있다니.”

아무래도 사야넬은 세하의 능력에 대해서 처음 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세하의 두 눈이 가늘어질 수밖에 없었다.


‘뭐 상관없겠지.’

그러면서 세하는 전면 디스플레이의 제한 시간 표시를 보았다. 지금까지 20분이 경과되었다. 그때 사야넬이 가볍게 말했다.


“아마도 오라버니께서는 시간을 정해두고서 외각에서 이곳을 날려버릴 생각을 하시는 것 같군요.”
“그래?”


세하로서는 신경 쓰이는 말이 아닐 수 없었다. 거기에 사야넬은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띤  말했다.


“네. 뭔가 문제가 생긴다고 하면 그것을 자세히 파헤치기 보다는 조금이라도 안전한 방법으로 처리하는  오라버니의 방식이죠. 직접 저를 대면해서 이길 자신이 있다면 만났을 텐데 여전한가 보네요.”


아무래도 엘트레이의 방식에 대해서 잘 아는 것 같았다. 하지만 세하는 사야넬의 말에서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이 녀석 좀 이상한데? 엘트레이에 대해 제법 과거형으로 말하고 있단 말이지.’
-그렇네요.  더 캐보심이 옳은 듯해요.

루이제도 사야넬에 대해서 파악하는 것을 택했다. 그래서 세하는 공격하기 보다는 대화를 이어나갔다.

“엘트레이를 만난 지 얼마나 됐지?”
“.......”

사야넬이 돌연 허공을 바라보며 생각에 빠진 얼굴이 되었다.


‘와. 이거 상상 외로 희한한 상황인  같은데.’


사야넬이 바로 말을 못하고 있자 세하는 상상 이상의 일이 벌어지는 걸 예감했다.

“글쎄요. 얼마나 됐을까요? 하지만 정확한 건 오라버니는 저를 버렸다는 거죠. 사실 지성을 가지고 있으면 각자의 입장에 대해서 얼마나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는지 아실 테죠?”

그렇게 세하가 기다리자 사야넬이 천천히 세하에게 다시 시선을 향하며 말했다.


“제 입장에서는 그래요. 버림받고 제 자신이 죽어나가게 된 판이니 누구의 손이든 잡지 못할까요? 물론 제가 저지른 해악이 엄청나니 오라버니로서는 그런 선택을 하셨겠지만 사실 제거하려면 확실하게 하셨어야죠? 애매하게  존재를 써먹으려 들다가 이런 사단이 났으니 자업자득이라는 거죠.”


사야넬이 계속 하는 말에 세하는 교차 검증의 필요성을 느꼈다. 하지만 사야넬이 세하를 곱게 보내줄 지는 장담할 수 없는지라 일단 각오를 하고 말했다.


“잘 알겠어. 그럼 네 사정을 엘트레이에게 이야기 해봐도 될까? 아니면 내가  녀석을 데리고 여기로 와서 대질을 시켜보고 싶군.”
“........”

사야넬의 표정이 차갑게 변했다. 하지만 바로 대답하지 않은  보면 세하의 의견에 뭔가 생각의 여지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단순한 시시비비라면 그렇게 하시는 게 옳겠죠. 하지만 민세하님. 이 일은 말이죠. 단순히 저와 오라버니만의 문제가 아니랍니다. 아마도 당신도 알고 있는 문제겠죠.”


하지만 그녀의 주변에 어리고 있던 회색의 냉기가 더욱 짙어지기 시작했다.  모습을 보면서 세하는 한숨을 내쉬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  말이 좀 통하는 가 싶더니 결국에는 실력행사에 나설 수밖에 없는 모양이군. 그렇게 큰 입장에서 나도 그냥 보내줄 수는 없다 이거겠지?”
“맞아요. 당신을 여기서 그냥 보내줬다간 오라버니와 작당해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일이지요. 그러니 우선 당신을 무력화해서 인질로 삼은 다음에 오라버니와 이야기를 해봐야겠어요. 그러면 뭔가 대화의 활로가 열리지 않을까 싶어요.”

말투는 공손하고 그 음성은 맑디맑았다. 하지만 세하는 사야넬의 두 눈에 어린 광기를 놓치지 않았다.


‘꽤나 억하심정이네. 확실히 말하지만 않았지만 엑펠트와 연관된  맞는 거 같고. 제한 시간 내에 잡을 수 있으려나?’


시간을 충분히 들여서 제대로 싸운다면 세하는 사야넬을 제압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루이제가 설정해 놓은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었다. 그래서 세하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루이제. 통신기 설정 고쳐놔.’
-알겠습니다.


루이제는 세하의 텔레파시를 바로 알아듣고 움직였다. 그러자 세하의 헬멧 안 쪽 오른쪽 귀에 걸린 통신기에서 갑자기 음성이 들려왔다.


“민세하 헌터님? 들리세요?”
“한참 찾았나 보군. 나 무사하니까 말한다. 지금 옆에 엘트레이 있나?”

아이에르가 놀라서 말하는 걸 알아듣고 세하가 말했다. 그런 세하의 모습에 사야넬은 움찔해서 아무 행동도 못하고 있었다.

“네. 민세하님.”

 통신기에서 엘트레이의 음성이 들렸다. 거기에 세하는 바로 말했다.


“지금 여기에 네 여동생이 있다는데? 사야넬이라고. 그리고 지금 너한테 굉장히 원한이 있는 것 같아. 어떻게 생각하지?”
“........”


통신기 너머에서 엘트레이가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대답은 바로 돌아왔다.

“민세하님께서 처리하실 수 있겠습니까? 저로서는 한때 혈육이기도 하고  능력 밖의 일이라서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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