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1화 〉방향 지정 (61/72)



〈 61화 〉방향 지정

“어딜 감히.”


하지만 세하의 움직임도 빨랐다. 그대로 지나치려는 빛의 거인을 그대로 팔을 뻗어 후려쳤고 놀랍게도 빛의 거인은 공중에서 회전하며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파콰콰쾅!

그리고 양 손이 커다란 포구로 변하면서 강렬한 에너지 포격을 날렸다. 아무래도 높이가 10m나 되는 엘리미네이터 아머 상태가 되다보니 그 화력이 상당했는지라 빛의 거인은 속절없이 얻어맞으면서 밀려나고 말았다.

‘어떻게 이런........’

빛의 거인은 당황한 것 같았다. 지금은 헤러커를 흡수해서 그 표면이 드래곤과 인간의 합성 형태 같았지만 세하로서는 알 바가 아니었다.


“그냥 재수 없으니까 뒈지라고.”


세하는 인정사정없이 화력을 쏟아 부었다. 양손의 포구 그리고 어깨에 튀어나온 런처 등이 아예 시퍼런 불길처럼 퍼부어지며 빛의 거인을 휘감아 버렸다. 거기에 적중 당한 빛의 거인은 속절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희유!”


세하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 주변의 공간도 정리되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저자가 남아버렸네요.


루이제의 말대로 헤러커가 보통 인간의 크기 상태로 쓰러져 있었다. 물론 형태는 용의 머리를 지닌 용인 상태였다.

“쩝... 그레이스처럼 처리해야 하나? 할  없지 뭐.”


안 그래도 먼저 혼절한 아이에르도 신경 써야 하는지라 세하는 공용 회선에 대고 말했다.

“상황 종료됐습니다. 현장 수습에 필요한 인원들을 보내주십시오.”

*
아이에르를 미끼로 걸어버리며 난리를 친 것 치고는 뭔가 허망했다. 그래선지 세하의 표정은 그리 좋진 않았다.

‘소란스럽네.’

그래도 근처의 균열 지대가 해결이 되어버려서 메이지 클랜의 일원들은 모두 세하를 칭송하는 분위기였다. 게다가 사흘 후 아침부터 헌터 협회에서도 조사반이 나와서  일대가 분주해지고 있었다.


-그렇죠. 하지만 근원적인 해결은 안 된 거 같죠?


루이제가 세하의 마음을 읽고서 물었다. 거기에 세하는 여전히 메이지 클랜이 만들어낸 성의  방에서 현장을 내려다보며 푸념을 했다.

“그래. 그 망할 프로타 에고인지 뭔지는 또 도망간 셈이지. 주변에 깃든 에너지나 헤러커까지 꿀꺽 삼키고 덤볐는데 일단은 안 되겠다고 생각한 모양이야.”

세하는 프로타 에고에 대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화만 났다.


“결정적으로 한 방을 먹여야 하는데 이런 식이면  짜증나는 걸.”
“그건 저도 마찬가지에요.”

갑자기 눈앞에서 루이제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루이제가 은색 머리칼을 쓸어 올리는 모습을 보고서 세하는 휘파람을 불었다.


“뭐야? 뭔가 들킬 것 같아서  드러낸다더니?”
“워낙 마스터께서 불편해 하시니 말이죠. 멘탈 케어라고 해야 할까요?”

복색은 마치 메이지 클랜의 마법사 같았다. 적당한 여성용 로브 차림에 로드까지 들고 있었다.  그러냐고는 묻지 않았다. 그래서 세하는 제법 풀어진 표정으로 말했다.


“고맙네. 그나저나 앞으로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세하의 물음에 루이제도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답이 없어요.”

그리고 꺼낸 말에 세하는 피식 웃고 말았다.

“맞아. 답이 없어. 다만 최근에 그레이스와 헤러커를 잡았으니 그걸 위안 삼아야 할까?”
“네. 그리고 제너럴 마이트의 알페렌 그리고 대한민국 헌터 협회에 있는 레이린 리를 비롯한 엑펠트 조사관들이 역량을 모으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다른 국가에서도 그런 존재들을 숨기고 있을 지도 모른다고 봐요.”


루이제는 지금까지 생각한 바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거기에 세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이번에 한   늘어났잖아?”
“네?”


갑자기 세하가 한 말에 루이제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이내 그 말뜻을 깨닫고 황당하다는 감정을 얼굴에 띠었다.


“아이에르  말이군요.”

이번 메이지 클랜의 현장 팀장인 아이에르. 그녀는 세하의 활약 덕분에 엑펠트의 감염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아무래도 그 영향을 받은 덕분에 계속해서 검진을 받고 있는 와중이었다.


“그래. 엑펠트와 엮이면 아무래도 뭔가 변화가 일어나지.”

세하가 내놓은 결론에 루이제도 제법 진지한 표정이 되고 있었다.


“게다가 헤러커도 확보했으니 뭔가 얻어낼 확률도 커지는 거군요.”

루이제까지 이렇게 나서자 세하의 마음이 편해지기 시작했다. 그때 문밖을 가볍게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만 실례하겠어요.”

그러자 루이제가 목소리를 낮춰서 말하며 사라졌다. 그리고 세하는 자연스럽게 입을 열었다.


“네. 안에 있습니다.”
“민세하 헌터님. 아이에르입니다.”


세하가 예상한대로 아이에르가 오자 저절로 입가가 실룩거렸다. 하지만 애써 감정을 정리하고 문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아이에르는 한층 공손해진 모습이었다. 그렇게 맞은 편 소파에 앉자 세하는 자연스럽게 안부부터 물었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네. 물론 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있지만요.”

아이에르는 생각 이상으로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육체적인 오염이나 정신적으로 지배당하는 일은 없어졌어요. 하지만 뭔가 흐름이 파악되기 시작했어요. 이걸 뭐라고 해야 할지.”

아이에르가 이어가는 말에 세하는 속마음을 숨기느라 애를 썼다. 분명 엑펠트를 감지하기 시작하는 반응인지라 그런 것인데 세하는 어렵사리 표정 관리를 하며 말했다.


“아마도 엑펠트나 그 부산물인 융합체를 감지할  있을 겁니다.”
“네?”

아이에르는 세하가 한 말을 믿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세하는 계속 이어 말했다.

“아무래도 헌터 협회와 메이지 클랜 간의 협의가 필요할 거 같네요.”


*
아이에르가 세하에게 자신의 이상을 밝힌 후 1주일 후. 세하는 다시 북미 제너럴 마이트의 본사를 찾고 있었다.

“어서오십시오. 민세하.”

알페렌 중 이번에는 청년의 음성이 들려왔다. 지금 자리한 장소도 평범한 회의실이었다.


“뭔가 보안 때문에 지하에서 보지 않을까 싶었는데 말이죠.”


세하가 그것 때문에 뭔가 김센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알페렌은 개의치 않았다.


“가끔은 분위기 전환도 필요한 법이죠. 그리고 오늘 대화를 나눌 분들은 숨길 것이 없으니 더 그렇습니다.”


사실 말이 회의장이지 창에는 모두 블라인드가 처져 있는 상태였고 세하는  밖에는 고출력의 에너지 필드와 각종 보안 설비들이 즐비하다는 걸 파악하고 있었다.


“그건 그렇네요.”

세하가 자리 중 한 곳에 앉았다. 그러기 무섭게 회의실 문이 열리면서 일단의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대한민국 헌터 협회 소속 엑펠트 조사관 레이린 리는 워낙 구면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따라온 이들의 면면이었다.

“이렇게 뵙게 되네요.”


성결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이는 그레이스까지는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처음 보는 무뚝뚝한 인상의 백인 청년을 보고서 세하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헤러커?”
“맞다. 결국 이렇게 보게 되는 군.”

2m에 가까운 신장에 다부진 몸을 지닌 백인 청년으로 보였지만 입가를 씨익 올려 웃는 표정이 어딘가 용인이던 시절을 떠올렸고 머리칼은 타오르는 것 같은 붉은 색이라서 세하는 그가 진정 헤러커인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결국 살려냈네요.”


세하가 알페렌의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말하자 알페렌이 웃기 시작했다. 실체가 없이 음성만 들리는 터라  웃음소리가 장내로 조용히 퍼지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웃음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엑펠트의 의도가 끔찍하다고 해야 할지 말입니다.”


아무래도 엑펠트의 일원이었다가 추방당했고 정신적인 융합체로 탄생한 알페렌으로서는 제법 회한의 감정이 느껴지고 있었다.


“저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이에르가 들어왔다. 처음 봤을 때처럼 마법사의 복색이라서 제법 눈에  정도였는데 그 모습을 본 헤러커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했어. 아가씨. 여기서는   대화가 편할 거야.”
“그... 그런가요?”

아직 분위기가 적응되지 않아선지 아이에르는 어색해하는 표정이 역력해보였다. 아무튼 모일 사람들이 다 모인 터라 알페렌이 다시 말했다.


“여러분을 모이라고 한 것은 일단은 논의가 필요해서입니다.”


세하는 거기까지 듣고서 알페렌의 의도를 생각했다.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이겠지?’

그리고 이어지는 알페렌의 말은 세하의 확신을 뒷받침했다.


“최근에 이렇게 합류하신 분들의 면면을 보면 우리로서는 기쁘면서도 걱정이 됩니다. 바로 엑펠트의 전력이 생각 이상으로 강하다는 것이지요. 솔직히 그레이스 씨와 헤러커 씨만 해도 근간까지 엑펠트의 개별개체로서 상당한 힘을 가지고 있던 걸로 압니다. 하지만 그들의 중심이라 할 만한 군집체, 프로타 에고는 두 분을 그냥 쓰다버리는 패로 취급했습니다. 맞습니까?”


부정할  없는 진실이었다. 거기에 그레이스와 헤러커의 표정이 잔뜩 흐려졌고 세하는 팔짱을 낀 채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알페렌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계속 이런 식이라면 달갑지 않은 상황입니다. 저희 알페렌도 프로타 에고에게 있어서 쓰다 버리는 패였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이성이 남은 상태에서 그냥 당할 수만은 없는 심정입니다. 그래서 여러분게 고견을 청하고 싶습니다. 엑펠트에게 확실한 타격을 입할 방향을 정하고 싶습니다.”


알페렌이 그렇게 말을 맺자 잠시 주변이 조용해졌다. 분위기에 짓눌린 것 같았는데 그제야 세하가 손을 들었다.

“이런 식으로 짓누르면 다들 말하기 어려워 할 겁니다.”
“그렇습니까? 하지만 당신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일입니다. 민세하 헌터님. 당신의 전력이야 자타가 공인하는 바이지만 혼자뿐이라면 프로타 에고는 계속 현재의 방식을 고수하며 치고 빠질 뿐입니다.”

알페렌은 아무래도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고 있었다. 그럼에도 세하의 표정은 여유롭기만 했다.

“맞아요. 지금 상태라면 그렇겠죠.”


그러면서 세하는 몸을 일으켰고 회의장에 모인 이들을 전부 돌아보았다.

“하지만  인원들이 엑펠트나 융합체를 감지하기 시작한다면 길이 보일  같기도 합니다. 물론 여러 방면에서 흩어지는 것이 아닌 한 지점만을 직접적으로 뚫어야겠죠.”

그리고 세하가 하는 말에 알페렌의 음성에 어딘가 기대감이 어리는 것 같았다.

“선택과 집중입니까? 그러면 어느 지점을 생각하고 계십니까?”


 물음에 세하는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루이제가 마음속으로 타박을 시작했다.

-마스터. 대체 뭐에요? 이렇게 있는 척하고 침묵하시고 말이에요.
‘잠시만 기다려봐.’

세하는 생각을 정리하려는  표정이 흐트러지지 않고 텔레파시로 의사를 전달했다. 좌중의 시선이 그런 가운데 세하에게 쏠리고 있었다.


“그레이스.”

갑자기 세하가 그레이스를 불렀다. 거기에 그레이스는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네... 네넷?!”
“안 잡아먹으니까 너무 놀라지 말아. 그리고 헤러커.”
“뭐지?”

헤러커는 아무래도 기질 상 놀라기 보다는 강한 흥미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래서 세하는 직접적으로 물었다.


“아무래도 최근까지 엑펠트의 전력이었으니 잘 알겠지. 지금 파흐트 계가 어떻지?”
“.......”


현재 엑펠트와 지구와 연관된 이차원 중 한 곳. 그리고 엑펠트의 세력이 상당히 강한 걸로 알려진 이차원인지라 그레이스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얼마 없어요.”

하지만 세하의 시선이 계속 내리 꽂히는 와중인지라 그레이스는 입을 열 수 밖에 없었다. 거기에 헤러커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는 어디에 소속되기 보다는 여기저기 다니기만 해서 마찬가지지. 하지만 이건 확실하게 말할 수 있어. 그곳은 프로타 에고가 아주 좋아하는 곳이다. 영향력이 상당하기 때문이지.”


헤러커가 이렇게 말하는 것에 세하는 도리어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 거기로 쳐들어가면 되겠네.”
“.......”


좌중이 순식간에 침묵에 휩싸였다. 하지만 세하는 꿋꿋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솔직히 조사를 하니 감지를 하니 했는데  필요 없어. 내가 지금 제안할 게. 지금 여기 있는 인원들이 나와 함께 파흐트 계로 가버리자고. 그러면 프로타 에고가 호기심에서라도 반응하고  거야.”


이어진 세하의 말은 더욱 충격적인지라 모인 이들은 서로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0